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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들이 타고 다니는 자동차. 참 빠르더군요!

 

나, 고라니도 산속에서 달리기라면 빠지지 않는데. 불빛이 번쩍이는가 싶더니 어느새 내 몸을 훑고 내빼는 데는 움치고 피할 재간이 없었습니다.

 

할아버지 아버지 시절만 해도 산자락은 이어지고 들녘은 맞닿아 어디든지 시원스럽게 쏘다녔건만. 숲과 들을 가르고 잘라낸 자동차만을 위한 길-우리에겐 그저 벽일 뿐이지요-이 들어선 지금 이웃 나들이는 목숨을 내건 한판 싸움입니다.

 

사람에겐 길, 동물에겐 벽

 

자동차에 부딪혀 뭇짐승들이 죽어나가는 것을 사람들은 '길죽음(로드킬)'이라 부르더군요.1998년부터 2005년까지 고속도로에서만 길죽음 당한 동무들이 6338 마리에 이릅니다. 우리 고라니가 2777마리로 가장 많고, 너구리 2143마리, 뒤를 이어 토끼 570마리, 노루 361마리, 족제비 276마리, 오소리 186마리, 사슴 47마리, 살쾡이 28마리입니다.

 

후미진 일반국도에서 올망졸망 뒤를 따르는 새끼들과 함께 어이없이 목숨을 빼앗기는 멧돼지 가족까지 넣는다면 숫자는 훨씬 늘어나지요.

 

사람들은 늘 자동차 편만 들더니 우리들 주검이 해마다 쌓이자 깨달은 바가 있는 지, 몇 해전 "로드킬을 줄일 '도로건설 지침'"이란 걸 내놓았습니다.

 

로드킬을 줄일 '도로건설 지침'-건설부

2007년부터 자동차길을 만들 때는 길가에 30cm 높이로 0.5cm*0.5cm  촘촘한 그물망을 엮어 개구리나 뱀 따위가 빠져나오지 못하도록 한다.

 

높이 1m까지는 족제비나 너구리같은 작은 짐승이 드나들지 못하게 2.5*5cm 그물망을 친다.

 

또 멧돼지나 삵이 나타나는 곳에는 울타리를 1.5m까지 높이고, 사슴이나 고라니 같이 높이 뛰는 동물들이 사는 곳에는 2.5m 높이 울타리를 만들어야 한다.

 

 

 

그렇다고 우리가 깊이 감동하거나 고마운 것은 아닙니다. 꼭 우리네 위해서 하는 일은 아닌 것 같으니까요. 주검 때문에 쌩쌩 달려야 할 자동차가 멈칫거리는 것도 거슬렸을 테고, 입만 열면 평화니 생명이니 하는 고상한 말을 들먹이는 사람들 체면도 생각했을 테지요.

 

우리들 목숨을 지키기 위해 울타리를 쳐주고 이것저것 신경써주는 것은 고마우나 자동차길에 갇혀 겪는 고통은 그리 쉽게 끝나지 않을 것 같습니다.

 

자동차길은 사람과 사람을 가르는 단절

 

우리가 목숨을 걸고 자동차길을 건너는 것은 애초 그 길이 드넓은 앞마당이자 이웃이고 쉼터였기 때문이지요. 자꾸 충돌사고를 일으킨다고 하시는데 늘 다니던 길을 다니는 것뿐입니다. 마당을 가로질러 이웃을 찾고, 정을 나누며 함께 먹이를 구하는 일은 사람이나 뭇짐승이나 마찬가지 아닌가요.

 

하늘나라에 와서 보니 길죽음을 당한 숫자가 길짐승보다 오히려 사람들이 훨씬 많은 것을 보고 놀랐습니다.

 

그렇습니다.

 

우리 뭇짐승들이야 철망과 울타리로 목숨을 지킨다지만, 속도와 직선을 탐닉하는 자동차에 사로잡힌 당신들은 무엇으로 생명을 이어나갈 작정인지요?


#그래!숲#로드킬#자연보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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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무와 숲 그리고 조경일을 배웁니다. 1인가구 외로움 청소업체 '편지'를 준비 중이고요. 한 사람 삶을 기록하는 일과 청소노동을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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