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창 잘 나갈 때 그 기세를 이어가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 것인가를 뼈저리게 느끼게 해 준 한판이었다. 경기 결과에 큰 영향을 미치는 순간이 대개 후반전에 몰려 나오게 마련이지만 적어도 이 경기는 달랐다. 전반전 중반 이후 '마(魔)의 4분'이 문제였다.

 

최태섭 감독이 이끌고 있는 한국 남자핸드볼대표팀은 우리 시각으로 25일 이른 새벽 크로아티아 자그레브에서 벌어진 제21회 남자핸드볼 세계선수권대회 본선 1그룹 슬로바키아와의 첫 경기에서 20-23(전반전 12-15)로 아쉽게 패했다.

 

핸드볼의 '흐름' 휘어잡기

 

 예선 라운드에서 세계를 놀라게 한 우리 선수들 소식이 실린 대회 공식 누리집(http://www.croatia2009.com)

예선 라운드에서 세계를 놀라게 한 우리 선수들 소식이 실린 대회 공식 누리집(http://www.croatia2009.com) ⓒ 국제핸드볼연행

 

이틀 전 우리 선수들은 핸드볼에 관심이 있는 많은 사람들에게 너무나 놀라운 결과를 선물했다. 4년 전 일이지만 그래도 상대 스페인은 세계선수권대회 챔피언에 빛나는 이력을 자랑하는 팀이었다.

 

당시 우리 선수들은 본선 무대에 얼굴을 내밀지도 못한 처지였는데, 이번에 그런 대단한 팀을 상대로 한 골 차 명승부를 펼치며 그들을 13~24위 순위를 가리기 위한 프레지던츠컵으로 내려보냈다. 예선 C그룹에서 폴란드와 마케도니아에 밀려나 같은 신세가 된 러시아와 함께 이번 대회 최고의 몰락 팀을 만들어낸 것이었다.

 

그 덕분에 크로아티아의 수도 자그레브에서 벌어지는 메인 라운드에 포함된 우리 선수들은 그 첫 경기로 A그룹에서 2위를 차지한 슬로바키아를 만났다. 사실, 그들도 뉴스의 주인공이나 다름없었다. 세계선수권대회 공식 기록이 없다고 해도 과언이 아닌 그들이 처음으로 메인 라운드(12강)에 얼굴을 내민 것. 8년만에 메인 라운드에 올라온 팀과 첫 경험을 나누고 있는 팀의 기념비적인 맞대결이었다.

 

최태섭 감독은 2007년 8월 15일, 마케도니아에서 열린 21세 이하 세계청소년핸드볼선수권대회에 우리 대표 선수들을 데리고 나가 조별리그에서 슬로바키아를 먼저 경험하며 두 골 차의 승리를 거둔 바 있지만 이번에는 양상이 달랐다.

 

전반전 중반, 자신감 넘치는 표정의 우리 선수들은 귀중한 흐름을 잡았다. 10분, 피벗 플레이어 박중규가 얻은 7m 던지기를 노련한 이재우가 왼손으로 던져넣으며 처음으로 앞서가기(5-4) 시작한 우리 선수들은 유동근, 김태완, 오윤석의 연속골이 터져 17분에 이르기까지 점수를 10-6으로 만들었다. 마치 세계선수권대회에서의 경험을 한 수 가르치고 있는 듯 보였다.

 

하지만 그 생각은 오산이었다. 우리 선수들에게 '마(魔)의 4분'이 찾아왔다. 16분 30초, 레프트백 오윤석의 점프슛이 슬로바키아 골문을 흔든 뒤 약 4분의 시간이 흐르는 동안 우리의 득점 행진은 멈췄다. 그러는 동안 상대는 간판 골잡이 술츠의 연속골이 터지며 경기는 다시 원점(10-10)으로 돌아갔다.

 

핸드볼도 네트를 사이에 두고 실력을 겨루는 테니스, 배구, 탁구 이상으로 그 흐름을 잘 잡아나가는 것이 중요하다. 특히, 코트 면적이 그렇게 넓지 않기 때문에 공-수 전환의 속도는 상상 이상으로 빠르다. '오버 스텝, 공격자 반칙, 라인 크로스' 등 뜻밖의 장면이 연출되면 곧바로 상대에게 빠른 역습을 허용하며 골을 내줘야 하는 것이 핸드볼이다.

 

집중력이 흐트러지면서 작은 실수가 거듭되면 그 흐름을 결코 움켜잡을 수 없는 것이 특히 핸드볼이다. 그럴수록 축구의 플레이메이커 격인 노련한 센터백의 존재가 필요한 것이다. 한 팀 한 팀 맞붙는 상대마다 세계 최고 수준의 경기가 펼쳐지는 메인 라운드이기 때문에 센터백의 가치는 그 어느 때보다 두드러진다.

 

그런 의미에서 센터백이 그 흐름을 꿰뚫어보고 조절을 할 수 있느냐 하는 것이 핸드볼 승부의 관건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지금 우리 팀에서는 정의경이 이 역할을 주로 맡으며 간혹 새내기 심재복이 왼쪽 날개를 접고 가운데로 와서 뛰지만 한계는 분명해 보였다.

 

2미터의 높은 벽 앞에서 아쉽게 물러서다

 

그 과정에서 우리 선수들은 두 가지 높은 벽을 느꼈다. 첫 번째 벽은 예선 라운드 다섯 경기를 치르는 동안 공격 공헌도(득점-도움 기록)가 가장 높았던 피벗 플레이어 박중규가 느낀 높은 벽이다.

 

라이트백 이재우(5경기 27골)에 비해 득점수는 뒤지지만 박중규는 23골 12도움을 기록하며 공격포인트 35개로 예선 라운드 전체 선수 중 15위에 올라서서 메인 라운드에 나왔다. 하지만 그의 앞에는 2미터급 거구들이 즐비했다.

 

결과적으로 박중규는 단 한 차례의 슛 시도에 무득점으로 경기를 끝냈고 상대적으로 같은 자리에서 몸싸움을 벌이던 슬로바키아의 2미터 거구 코프코는 다섯 차례의 슛 기회를 모두 골로 연결시키는 알토란 활약을 펼치며 승리의 주역이 되었다.

 

우리 선수들이 느낀 또 하나의 높은 벽은 바로 상대 문지기였다. 서른두 살의 노련한 문지기 스토츨(2미터)은 우리 선수들이 던진 34개의 슛 중에서 무려 15개나 막아내는 순발력과 뛰어난 감각을 자랑했다.

 

특히, 양팀 통틀어 최고 득점을 기록한 이재우(8골)가 외형상으로는 가장 알찬 수확을 거둔 것처럼 보이지만 실상은 일곱 차례나 상대 문지기 스토츨에게 걸렸다. 반대편 골문을 지킨 우리의 맏형 강일구도 11개나 선방을 기록하며 특유의 자신감 넘치는 표정을 지었지만 결과에 미친 영향력은 스토츨이 분명히 앞섰다.

 

예선 라운드에서의 상대 전적을 그대로 안고 올라와 마지막 실력을 겨뤄야 하는 메인 라운드 시스템에서 우리 팀은 이로써 3패를 기록하게 되었다. 상위권에 올라갈 수 있는 기회를 이 맞대결에서 잡지 못한 우리 선수들은 이제 하루 뒤 더 높은 벽 프랑스(A그룹 1위 /  1995, 2001 세계선수권 우승 / 2008 베이징올림픽 금메달)를 만나게 된다.

덧붙이는 글 | ※ 제21회 남자핸드볼 세계선수권대회 메인 라운드 1그룹 25일 경기 결과, 크로아티아 자그레브

★ 한국 20-23(전반 12-15) 슬로바키아

◎ 한국 선수들 선방/득점 기록
문지기 강일구 선방 11/30개(방어율 37%), 박찬영 선방 1/5개(방어율 20%)
정의경 5골, 심재복 2골, 김태완 1골, 오윤석 3골, 유동근 1골, 이재우 8골

2009.01.25 12:07 ⓒ 2009 OhmyNews
덧붙이는 글 ※ 제21회 남자핸드볼 세계선수권대회 메인 라운드 1그룹 25일 경기 결과, 크로아티아 자그레브

★ 한국 20-23(전반 12-15) 슬로바키아

◎ 한국 선수들 선방/득점 기록
문지기 강일구 선방 11/30개(방어율 37%), 박찬영 선방 1/5개(방어율 20%)
정의경 5골, 심재복 2골, 김태완 1골, 오윤석 3골, 유동근 1골, 이재우 8골
박중규 이재우 핸드볼 슬로바키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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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천 대인고등학교에서 교사로 일합니다. 축구 이야기, 교육 현장의 이야기를 여러분과 나누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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