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두 분은 헬기로 들려 올려 구조되었다고 합니다.
▲ 헬기로 구조되고 있는 굴뚝 농성 노동자 두 분은 헬기로 들려 올려 구조되었다고 합니다.
ⓒ 울산노동뉴스제공

관련사진보기


설 전 마지막 야간출근을 위해 잠자고 있는데 오후 3시경 아는 사람에게 전화가 왔습니다.

"창기야, 나 남식인데 미포문제 해결됐단다. 그래서 굴뚝 농성도 해제했다."

간판쟁이지만 노동문제에 관심 많은 친구입니다. 출근시간에 잠시 어찌된 일인지 확인하기 위해 <울산노동뉴스>에 들어가 보았습니다. 사진과 기사가 올라와 있었습니다. 초췌한 모습의 영도형(이영도)과 김순진 미포조선 노조원 모습이 보였습니다.

지난해 12월 24일 새벽 3시 30분에 100미터 굴뚝에 올라간 후 올 1월 23일 오후에 내려오게 되었으니 한 달이란 기간이 지난 후 내려오게 된 것입니다.

나는 밤새 일이 손에 잡히지 않았습니다. 건강은 어떨까요? 발에 동상이 걸려 무척 아프다던데요. 아침 6시 작업을 마치고 회사 문을 나서는데 차마 집으로 가는 발걸음이 떨어지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길을 건너가서 병원 쪽으로 가는 버스를 탔습니다. 오늘 따라 날씨가 왜 이리 추운지요.
.
119 구조대원들이 이영도, 김순진 씨를 구조하러 오르고 있습니다. 이영도 형은 119구조대원의 노고에 감사한다며 거듭 이야기 했습니다.
▲ 119구조대 입승 119 구조대원들이 이영도, 김순진 씨를 구조하러 오르고 있습니다. 이영도 형은 119구조대원의 노고에 감사한다며 거듭 이야기 했습니다.
ⓒ 울산노동뉴스제공

관련사진보기


헬리콥터로 구출되어 시티병원 응급실에 있다는 기사 내용에 따라 응급실로 가보았습니다. 호실을 알아내어 그리로 갔습니다. 병실 문앞엔 '절대 안정 면회 금지'라 쓰여 있었습니다. 그렇다고 추운 날씨에 예까지 왔는데 그냥 집으로 발길을 돌릴 수야 없지요. 문을 살살 여미며 안으로 들어가 보았습니다. 특실이라 그런지 병실 환경이 좋았습니다. 일반 병실과는 달리 병실 안에 화장실이 달려 있고 넓어 보였습니다.

두 사람이 어둠 속에서 침대에 누워 잠들어 있었습니다. 얼굴을 확인하려고 가까이 접근하니 인기척에 잠을 깬 영도형이 나를 알아보았습니다.

한달 내내 굶다시피해서 초췌한 모습이지만 눈빛 만큼은 반짝입니다. 영도형 수고 많았습니다.
▲ 100미터 높이 굴뚝에서 한달여만에 내려온 이영도 형 한달 내내 굶다시피해서 초췌한 모습이지만 눈빛 만큼은 반짝입니다. 영도형 수고 많았습니다.
ⓒ 울산노동뉴스제공

관련사진보기


"어~ 창기 왔어. 불 좀 켜봐."

불을 켜고 봤더니 사진과는 달리 말끔했습니다. 병원에 오자마자 목욕부터 했다고 합니다. 두 분 모두 링거를 꽂고 있었습니다. 불을 켜니 옆에 자고 있던 김순진 조합원도 깨어났습니다. 우린 시간 가는 줄 모르고 여러 가지 이야기를 주고받았습니다.

- 어떤 이유로 올라가게 되었어요?
"이홍우 조합원 사건이 난 후 한 달이 지났는데도 아무런 반응이 없었어. 게다가 길거리에서 천막농성을 했는데 3번이나 동구청에서 강제 철거를 했고 또 바닥에 물까지 뿌려가며 농성을 할 수 없게 했어. 현대미포조선 사측은 자체 유인물을 내서 현장조직에 책임을 묻겠다는 등 강경한 입장을 계속 발표했지. 이번에 나랑 같이 굴뚝에 올라간 이 친구(김순진 조합원)도 사측으로부터 정직 2개월을 받는 등 모진 탄압을 많이 받았거든. 용인기업 불법파견 문제가 대법원에서 승소판결 났는데도 차일피일 미루기만 하고. 벼랑 끝으로 내몰리는 기분이 들었어."

- 정확히 언제쯤 올라갔나요?
"그때가 크리스마스 이브였지. 새벽 3시 반쯤 되었을 거야. 그 전에 나는 집에 가서 아내랑 대충 이야기했고 이 친구는 아내가 임신 7개월째라 아무 말 못하고 올라갔지. 병원 가서 이홍우 동지 만나보고 어떻게 될지 모르니 국밥 한 그릇씩 먹고 비장한 각오로 한 계단 한 계단 올라갔어. 경찰이 강경진압하면 죽음도 각오해야 하는 상황이었지. 오르면서 눈물이 다 나더라고. 87년 7월 대투쟁이 지난 지 벌써 20년이 지났는데 말이야. 아직도 노동자는 권리를 주장하기 위해 죽음을 각오한 투쟁을 해야만 하는 노동현실이 서글펐어."

영도형은 담담하게 이야기해 나갔습니다. 그때 잠시 눈물이 그렁그렁한 모습을 보았습니다. 나도 담담하게 들었지만 속에선 같이 눈물이 나고 있었습니다. 영도형과 김순진 조합원이 100미터나 되는 그 90도 오르막 철사다리를 오르면서 가족도 버리고 벗도 버리고 자신의 목숨도 하늘에 내맡긴 채 한 발 한 발 올라갔을 당시를 생각하니 왜 이리 가슴 한구석이 먹먹해지던지요.

- 올라간 후 상황을 좀 이야기해줘요.
"우리가 굴뚝에 올라가고 2일 정도 소각장을 돌렸어. 소음이 아니라 굉음이야. 얼마나 시끄러운지 혼났어. 거 있잖아 왜 헬리콥터가 바로 앞에 있는 거처럼 들리는 소리 말이야. 귀가 따가워 혼났지 뭐. 거기다 또 진동도 강하더라고. 몸이 마구 떨려 피곤해도 잠을 잘 수가 없었어. 그래도 소각장을 돌리니 등은 따습드만. 꺼지고 나니 또 얼마나 추위가 닥쳐오는지... 보름 후나 되었나. 행글라이더로 침낭을 던져주었어. 그 전까지 엄청 추웠지. 밤은 또 왜 그리 길드나. 볼 거 없지, 들을 거 없지, 할 거 없지 지루함과 싸우는 것도 힘겨웠지. 그나마 아래서 지켜주고 먹을 것도 올려주려고 노력하고 하는 데서 힘을 얻곤 했지.

잘못하면 침낭도 소각장 안으로 떨어질 뻔했어. 행글라이더에서 던지는데 못 받았거든. 근데 하늘이 도왔는지 그게 뾰족한 피뢰침에 '딱'하니 걸렸지 뭐야. 기분이 얼마나 좋은지 그때는. 비닐 덮고 잠을 청할 때는 추위는 좀 피할 수 있지만, 단점이 습기가 차더만. 침낭을 덮고 잠을 청하는데 햐~ 좋더라고. 그래서 우리가 그랬어. 정몽준 침실 안 부럽다고. 우린 너무 급히 결정하고 올라와 이번에 엄청 고생했지. 다음번에 이런 투쟁이 있으면 그땐 먹을거리와 침낭을 꼭 준비해야겠더라고. 현수막하고 물만 조금 짊어지고 올라갔거든."

"저는 올라갈 때 먹을 거는 올려줄 거라 생각했어요"

김순진 조합원이 중간에 말을 거들었습니다.

오늘 아침 방문했을때 김순진 미포조선노조 조합원의 얼굴이 동상에 걸려 있었습니다. 얼굴 곳곳에 붉은 반점이 있었습니다.
▲ 힘들어 누워있는 김순진 미포조선노조 조합원 오늘 아침 방문했을때 김순진 미포조선노조 조합원의 얼굴이 동상에 걸려 있었습니다. 얼굴 곳곳에 붉은 반점이 있었습니다.
ⓒ 울산노동뉴스제공

관련사진보기

- 몸엔 어떤 반응이 오던가요?
"꼭대기다 보니 바람이 엄청 강했어. 추위를 견디기 힘들었지. 나중엔 오한과 몸에 통증이 오는데 너무 힘들었어. 발끝이 시려오는데 온몸이 다 얼어 터지는 거 같았어. 며칠 지나면서부터 배도 고파오고 하면서 허기져 움직일 힘조차 없어지데. 나중에 침낭과 함께 온 게 쇠고기 말린 포였어. 포 씹어 먹고 물 먹으며 견뎠지. 춥고 배고프니 똥도 오줌도 안 나와. 내려오기 며칠 전 똥이 마려워 똥을 싸는데 토끼똥 같이 뭉쳐, 나오질 않는 거야. 똥구멍이 얼마나 아픈지 나중엔 손으로 파냈어. 똥이 딱딱해져 있더라고. 변비가 심하게 걸렸나봐. 혼났어."

- 해결이 잘되었다고 보나요?
"절반의 성공이지 뭐. 그래도 용인기업 노동자들 2월 9일부로 모두 복직합의 했고 이홍우 조합원 문제도 원만히 해결되었고 민형사상 면책과 현장탄압 중단 등을 해결했으니 잘된거지 뭐. 우리가 요구하는 사항은 대부분 해결되었어. 이번 투쟁으로 노동자들의 단결과 미포노동자들의 자발적 투쟁 동참도 희망했는데 그런 부분은 좀 미흡하지. 그건 숙제로 남겨야지 뭐 할 수 있나."

- 지금 병원에 입원해 있는데 이후 어떻게 될까요?
"구속되겠지 뭐. 구속될 각오하고 있어. 사안이 사안이잖아. 남의 집 굴뚝 무단점거했으니
가만 놔 두겠어?"

- 끝으로 하고 싶은 말이 있으면 해주세요.
이영도 "따뜻하고 정직한 노사관계가 되어야 해. 비열한 탄압 좀 그만했으면 싶어. 노조도 정직한 노조활동 하기를 바라고. 단결과 연대의 중요성을 절실히 깨달았어. 국가는 노사관계에서 화해를 주선해야 하고 갈등을 조정하는 게 올바르지. 지금 보면 너무 편향적이야. 함께 가는 노동운동이 되었으면 싶어. 잘난 사람 혼자 백 걸음 가기보단 백 사람이 한 걸음 가는 게 올바른 노동운동이라 생각하거든."

김순진 "젊은 친구들 사회 나오면 모두 비정규직 되고 실업자 신세잖아요. 요즘 대학생들 너무 개인적인 거 같아요. 함께 건강한 일자리 만들기 등을 주장하고 사회에 요구하고 정치인들에게 요구해야 하는데 그런게 하나도 안 되고 있잖아요. 젊은 친구들이 힘을 합쳐서 사회가 제대로 돌아가게끔 요구하는 목소리를 내었으면 합니다."

이야기를 마치고 일어서려는데 김순진 조합원이 휴대전화로 온 문자를 보여주면서 말했습니다.

"굴뚝에 있을 때 가장 기분 좋을 때가 있었어요. 출근 시간이나 퇴근 시간에 일부 조합원들이 지나가면서 손을 흔들어 주었어요. 그때 참 기분이 좋더라구요."

문자를 보니 이렇게 적혀 있었습니다.

'고생 많았네. 좋은 소식 들려 가슴 찡하네. 그대들이 우리에게 꿈과 희망을 심어 주었네.'

그 문자를 보낸 분은 비조합원이었다고 합니다. 얼굴이 얼어 붉은 반점이 나있고 손가락이 얼어 껍질이 벗겨지고 있었지만 김순진 조합원은 웃고 있었습니다. 구속될 수도 있는 마당이지만, 굴뚝 농성 한 달여 만에 두 사람이 바라던 일들이 잘 매듭지어졌으므로 그들은 웃을 수 있는 게 아닐까요. 승리자는 끝내 웃을 수 있다는 사실을 병실문을 나서면서 알게 되었답니다.

현대미포 조선 관련 노사 합의서 전문
주식회사 현대미포조선(이하 '회사')과 현대미포조선노동조합(이하 '조합'), 민주노총울산지역본부 이홍우투쟁대책위원회(이하 '대책위')는 현대미포조선 현안문제와 관련하여 다음과 같이 합의한다.

1. 회사는 이홍우 조합원 투신사고와 관련하여 유감을 표명하며, 재발방지를 위해 필요한 제반사항을 조치한다.

2. 회사는 사내 안전사고 발생시 관련절차에 의거 신속하게 조치토록 하고, 재해자의 보호에 만전을 기하며 산재요양 신청서 재해자가 불이익을 당하지 않도록 노력한다.

3. 근로형태(연장, 휴일근무)에 대해서는 운영실태를 재점검하여 규정에 따라 적합하게 운영되도록 한다.

4. 회사는 용인기업 노동자들을 회사 종업원(정규직)으로 우선 복직시키고, 임금 기타 나머지 문제는 재판(조정 또는 합의 포함)결과에 따르며, 회사는 재판지연에 영향을 미치는 일체의 행위(추가자료 제출, 증인 신청 등)를 하지 않는다.

5. 이홍우 조합원의 병원 치료비 전액을 회사가 지급하고, 의료전문가가 완치 판정을 내릴 경우 회사는 즉각 원직에 복직시키며, 임금 및 장해 판정의 경우 산재환자에 준하여 처리한다.

6. 회사는 용인기업 복직투쟁, 이홍우 조합원 투신투쟁, 소각장 굴뚝농성 투쟁과 관련한 조합원의 징계시 최대한 선처한다.

7. 이 건(이홍우 투신, 용인기업 복직, 사내 현장활동 등)과 관련하여 회사와 대책위는 일체의 민 형사상 책임을 묻지 않고, 구속될 경우 석방될 수 있도록 노력한다.

8. 회사와 조합은 굴뚝농성과 관련한 민·형사상의 문제에 대해 경찰과 현대중공업에 선처를 건의한다.

2009. 1. 23.

* 합의서 원문은 울산노동뉴스에서 제공 받았습니다.


태그:#굴뚝농성, #이영도
댓글
이 기사의 좋은기사 원고료 11,000
응원글보기 원고료로 응원하기

인간해방 사회는 불가능한가? 노동해방 사회는 불가능한가? 청소노동자도 노동귀족으로 사는 사회는 불가능한가?


독자의견

이전댓글보기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