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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은 뭐니뭐니 해도 좀 추워야 한다. 그게 설에 대한 내 고정관념이다. 그래야 손을 호호 불며 설빔을 입고 세배를 다닐 게 아닌가.
 
내 어릴 때는 왜 그리 날씨가 추운지. 지금 생각해 보면 날씨도 추웠지만 실은 변변찮은 입성 때문이 아니었나 싶다. 어머니께서 설빔이라고 새 옷을 입혀주시긴 했지만 고작해야 손수 솜을 넣고 누벼주셨던 옷이 대부분이었다. 그러니 그 매서운 추위를 모두 덮을 수가 있었겠는가.

 

세뱃돈에 온 관심이 집중됐던 어린 시절

 

 

설 하면 할아버지 집을 비롯하여 이웃 어른들을 찾아다니며 세배를 하던 추억이 가장 먼저 떠오른다. 항상 이맘 때가 되면 그 시절이 그리워진다. 내가 나이를 먹어가나 보다. 세배는 섣달그믐이나 정초에 집안이나 이웃의 웃어른을 찾아 인사하는 우리나라의 명절 풍습이다.

 

민중신학자 안병무는 '잔치'라는 설교에서 "연초에 젊은 사람들이 새해인사를 왔는데 상당히 많은 수가 왔습니다, 물론 세배는 안 받습니다, 난 두 가지를 않는데 정조는 다 깨고 세배를 안 받는 정조하고 주례 안 하는 정조만 지키고 있습니다"고 했는데, 그 이유를 모르겠다. 그저 혼자 생각하건데 돈과 관련이 있기 때문이 아닌가 싶다.

 

그런데 난 그 반대였다. 왜 세배하는 데는 관심이 없고 세배한 이후에 벌어질 그 어떤 일에만 집착했는지. 지금 생각해도 참 철이 없었다. 그러니까 굿보다 떡에 관심이 있었다. 제사보다는 젯밥이었다. 세배보다는 세뱃돈이었다. 그러고야 어디 세배를 했다고 할 수 있겠는가.

 

그래도 설날이 되면 어김없이 할아버지 앞에 넙죽 엎드렸다. 다음으로 큰어머니, 돌아가며 가운데 아버지와 어머니, 그리고는 '아저씨'라 불리는 이들에게 넙죽넙죽 엎드렸다. 촌수가 어떻게 되는지는 그때도 몰랐지만 지금도 모른다. 그러면 대단한 칭찬과 함께 소위 세뱃돈이란 게 내 손에 쥐어졌다.

 

"아, 고놈 귀엽기도 하지. 요깃다 세뱃돈."

"야가 대경이 아들이꺄? 대견하게 컸시다."

"고놈, 너 세배가 뭔지나 아냐?"

 

할아버지가 머리를 쓰다듬으며 하시는 말씀, 아저씨라는 분 중 하나가 할아버지에게 하시는 말씀, 그리고 누군지도 모를 이가 날 살짝 꼬집으며 한 말씀이다. 7년 만에 아들을 낳았는데, 내가 태어난 지 7개월 되어서 나와 어머니를 남기고 아버지가 돌아가셨으니 그런 말들이 나올 만도 하다.

 

한 차례 사촌들까지 세배행렬이 이어지고 나면 맛있는 음식이 기다린다. 지금도 그때만 생각하면 군침이 돈다. 떡국, 약과, 약식, 식혜, 잡채, 각종 부침개, 엿 …. 없는 게 없었던 것 같다. 지금은 이런 음식이 지천이어도 그때 맛이 안 난다.

 

세뱃돈을 받아든 다음 날부터는 내가 왕이다. 그렇게 부자인 적이 없었으니까. 설날 받은 세뱃돈은 그간 내가 갖고 싶었던 장난감들을 사는데 요긴하게 쓰였다. 딱지며 썰매, 팽이, 연 등 당시에 놀이기구였던 모든 것들을 만드는 재료를 사거나 완성품을 사는 데 쓰였다.

 

"니들 세배가 뭔지나 아나?"

 

 

요즘은 설날이 되면 세뱃돈 나갈 걱정이 태산이다. 20년 전에만 해도 빳빳한 천 원짜리 몇 장 정도면 만족하던 애들이 요샌 몇만원으로도 성에 차지 않으니 말이다. 내 딸내미와 아들 녀석은 마지못해 세배를 한다. 그러나 세뱃돈은 은근히 챙긴다.

 

"미리내, 슬기! 세배 안 하니? 세배를 해야 세뱃돈을 주지."

 

요샌 이런다. 설날이 점심 때를 치닫는데도 세배할 생각을 안 하니 어쩌겠는가. 설날이 되었으니 세뱃돈을 주기는 해야 하는데 세배할 생각을 안 하니 하는 수 없이 세배 받을 사람이 채근할 수밖에. 그래서 내가 그러든지 아내가 그러든지 먼저 세배하라고 조른다.

 

그러면 마지못해 하는(내가 보기에는 그렇다. 아이들은 다른 소릴 할지 모르지만) 세배를 받고 미리 준비한 세뱃돈을 건넨다. 그러니까 내 어릴 때와 마찬가지로 굿보다 떡이고, 제사보다 젯밥이며, 세배보다 세뱃돈이다.

 

목사인 내게는 또 다른 세배꾼들이 있다. 교회학교 꼬맹이들과 중고등부 학생들이 그들이다. 꼬맹이들은 아직 어리기 때문에 오천원짜리 한 장만 줘도 입이 찢어진다. 중고등부 학생들은 최소한 만원 정도는 넣어야 한다. 명수가 많을 때는 그게 만만치 않은 일이다.

 

어른이 되어 세배를 받을 때도 역시 세배보다는 세뱃돈이 문제다. 세배를 드리던 어린 시절과 세배를 받아야 하는 어른 시절은, 같은 상황의 역할 바뀜인데도 전혀 다른 기분이다. 받을 때 기분과 줄 때 기분이 모두 좋은 건 맞다. 그러나 묘하게도 무언가 다르다. 그리고 속으로 어린 시절 그 누가 하던 말이 입가에 맴돈다.

 

"니들, 세배가 뭔지나 아냐?"

 

그렇게 말하고 싶다. 그러나 입속에서만 뒹굴고 만다. 하여튼 무언가 부족하다. 2%가 아니라 98% 부족하다. 그러나 어쩌랴. 설날은 세배 받는(하는) 날이 아니라 세뱃돈 주는 날(받는 날)이라고 생각하면 그만인 것을.

 

세뱃돈과 관련 없는 새배도 있다

 

 

그냥 그렇게 세배가 세뱃돈과 함께 참 뜻이 희석되고 마는 것만은 아니다. 나는 지금 특수목회를 하고 있다. 서울에서 시골로 내려와 '사랑의마을'이라는 노인요양원에서 어르신들의 신앙을 지도하는 목사로 사역하고 있다.

 

분명 내가 어른이지만 나보다 더 어른들이 교인들이니 당연히 설날에는 그들에게 세배를 해야 한다. 물론 엎드려 하는 세배가 아닐 수도 있다. 이태 전 다른 노인요양시설에 있을 때에도 다른 직원들과 함께 엎드려 단체로 세배를 드렸다. 어르신들의 얼굴이 얼마나 환해지는지. 지금도 그 모습이 아련하다.

 

지난해는 어쩐 일인지 그냥 지나갔다. 실은 기독교문화에서는 유교전통 세배에 대하여 그리 형식을 중요하게 생각하지 않는다(내 개인 생각일 수도 있다). 우리 민족의 세배는 약 400년 전 김장생의 <사계전서>에 제시된 배례법의 전통을 따르고 있다. 나는 새해 첫날 서로 축복하는 것이 바로 세배라고 생각한다.

 

올해는 지난 23일 설날맞이 행사를 미리 당겨 하고 직원 모두가 어르신들께 큰절을 했다. 세뱃돈이 빠진 세배, 의미어린 세배 말이다. 아는 사람은 알겠지만 나와 어르신들의 관계가 사제지간이기 때문에 내가 세배를 한다고 해도 불편해 할 분들이 많다. 그래서 어울려 하면 어른들도 그리 불편해하지 않는다.

 

예전에 있던 교회에서 나보다 나이가 많은 장로들과 성도들이 세배한다고 설날 나를 찾아온 적이 있다.

 

신앙에 대하여 낯선 분들 중에는 그런 게 어디 있느냐고 할지 모른다. 나이 어린 사람이 나이 많은 어른에게 하는 것이라고. 맞다. 나도 그렇게 생각한다. 그래서 극구 사양했다. 그러나 그들은 "무슨 말씀입니까? 제자가 스승에게 하는 게 도리죠"라며 절을 했다. 나도 엉거주춤 그들과 맞절을 했다. 물론 세뱃돈은 없었다.

 

실은 이런 세배가 진정 의미 있는 세배가 아닌가 모르겠다. 새로 맞은 해를 서로 축복하며 하는 세배 말이다. 세뱃돈하고 전혀 상관없는 세배.


태그:#세뱃돈, #설날, #새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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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도 행복이라 믿는 하루가 또 찾아왔습니다. 하루하루를 행복으로 엮으며 짓는 삶을 그분과 함께 꿈꿉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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