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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살수차를 막기 위해 차 밑에 드러누운 아저씨. 이 분은 철거민도 시위대도 아닌 단지 길을 지나던 직장인이었다.
 살수차를 막기 위해 차 밑에 드러누운 아저씨. 이 분은 철거민도 시위대도 아닌 단지 길을 지나던 직장인이었다.
ⓒ kbs뉴스라인 화면캡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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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저씨, 얼마나 분하셨어요. 20일 저녁 용산 철거민 참사 추모행렬에 물대포 쏘는 살수차를 보며 화를 참지 못해 얼마나 발을 구르셨나요. 그래서 양복저고리 벗어던지고 살수차 막기 위해 추운 겨울 물 뿌려진 차가운 아스팔트 위로 드러누웠겠죠. 아저씨는 철거민도 시위대도 아니었는데 오죽했으면 그 길로 뛰어드셨을까요? 혹시 경찰에게 끌려 나가 아스팔트보다 더 차가운 유치장 바닥에 누워 계신 건 아닌가요?

그날 밤, 젖은 옷가지에 많이 추우셨죠? 이번 겨울이 정말 춥습니다. 차가운 아스팔트가, 더 차가운 유치장의 공기가, 죽음 앞에서도 차가운 경찰의 폭력이……. 그래요, 우리는 민주주의가 얼어붙은 대한민국 민주주의 빙하기에 살고 있습니다.

 살수차를 막아선 아저씨를 경찰이 끌어내고 있다.
 살수차를 막아선 아저씨를 경찰이 끌어내고 있다.
ⓒ kbs뉴스라인 화면캡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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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경찰들에 의해 질질 끌려가는 아저씨
 경찰들에 의해 질질 끌려가는 아저씨
ⓒ kbs뉴스라인 화면캡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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뜨겁던 피마저 얼리는 그들의 차가운 폭력

아저씨가 살수차 밑에서 끌려가던 날, 희생자 추모를 위해 모인 시민들을 경찰은 여지없이 폭력으로 짓눌렀죠. 물대포를 쏘고, 돌을 던지고, 전투화 발로 여성을 짓밟고, 기자를 폭행하고, 국회의원을 연행하려 하는 대한민국의 경찰들은 미쳐가는 것 같아요.

아저씨, 어쩌면 현장을 진압한 경찰들이 미치는 것은 당연한 일인지도 모르겠어요. 자신들이 저지른 일에 대한 공포와 두려움, 명명백백한 역사적 범죄 앞에 자신은 범죄자가 되고 싶지 않은 몸부림일지도 모릅니다. 자신의 죄를 정당화하고 그것이 정말 정당한 것이라 믿으며 신념으로 굳혀가는 것은 1980년 광주항쟁의 폭력을 닮아가고 있네요. 대한민국 민주주의 빙하기는 그들의 뜨겁던 피도 차갑게 얼리고 있는 것 같습니다.

 군화발로 밟히고 있는 여성
 군화발로 밟히고 있는 여성
ⓒ kbs뉴스라인 화면캡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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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경찰에 폭행당해 쓰러진 MBC기자
 경찰에 폭행당해 쓰러진 MBC기자
ⓒ kbs뉴스라인 화면캡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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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 미쳐가는 것은 경찰만이 아니네요. "과격시위의 고리를 끊자"는 청와대 대변인, "극렬 세력이 불법 폭력 시위를 미화한다"고 말하는 한나라당 이은재 의원, 이번 참사를 도심테러라 말하며 "스스로 불을 질렀다"라는 신지호 의원……. 6명의 억울한 죽음 앞에서조차 싸늘한 그들의 말은 참을 수 없는 폭력입니다. 

아저씨, 저는 어제(21일) 공권력에 살해되신 분들을 추모하기 위해 병원에 갔습니다. 신원확인도, 유가족들의 참관도 없이 부검을 진행했다는 말에 온몸이 파르르 떨려 왔습니다. '세상에 이런 냉혈한들이 있을 수가!' 과거 독재정권 때도 없었던 정말 가혹한 겨울이 찾아 왔다는 것을 느꼈습니다.

우리는 가족을 잃은 것 같은 분노와 슬픔을 안고 거리로 나섰습니다. 그런 우리에게 돌아온 것은 물대포와 발길질과 짱돌이었죠. 이 차가운 폭력의 빙하기를 누가 끝낼 수 있을까요?

살수차를 막기 위해 차 밑으로 들어가셨던 아저씨의 마음, 이제 어떤 마음이었을지 잘 알겠어요. 우리는 20여년 만에 또 다시 외치고 있습니다. "독재정권 물러가라! 살인정권 물러가라!" 화가 난 군중은 지난해 여름 그랬던 것처럼 청와대를 향해 가고 있습니다. 네, 맞아요. 아저씨와 촛불을 든 우리가 끝내는 겁니다. 희생자 촛불추모제에 참여하는 우리가 모여 살수차를 막고 경찰의 미친 질주를 막고 이 정권의 차가운 독재를 막아야 해요.

 '용산철거민 살인진압 이명박 규탄 및 희생자 추모대회'를 마친 시민들이 21일 밤 서울 중구 명동 앞에 모여 경찰의 강제진압에 항의하며 손피켓을 들어보이고 있다.
 '용산철거민 살인진압 이명박 규탄 및 희생자 추모대회'를 마친 시민들이 21일 밤 서울 중구 명동 앞에 모여 경찰의 강제진압에 항의하며 손피켓을 들어보이고 있다.
ⓒ 유성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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늦은 밤, 추모행사를 마치고 격해졌던 마음을 추스르려 집으로 돌아가는 버스에서 노래가 흘러나왔어요. '일어나 일어나 다시 한 번 해보는 거야, 일어나 일어나 봄의 새싹들처럼' 꼭 저에게 들려주는 노래 같았어요. 그래요. 봄의 새싹들처럼 일어나 차디찬 빙하기를 끝내고 더 이상 억울해 눈물 흘리지 않는 세상을 만들 수 있는 건 바로 촛불을 든 우리입니다. 그러니까요 아저씨. 아저씨 일어나 기운 내요. 우리 봄의 새싹들처럼 일어나요.

김광석 '일어나'

검은 밤의 가운데 서있어 한치 앞도 보이질 않아 어디로 가야하나 어디에 있을까 불러 봐도 소용없었지 인생이란 강물 위를 뜻 없이 부초처럼 떠다니다가 어느 고요한 호숫가에 닿으면 물과 함께 썩어가겠지 일어나 일어나 다시 한 번 해보는 거야 일어나 일어나 봄의 새싹들처럼

끝이 없는 말들 속에 나와 너는 지쳐가고 또 다른 행동으로 또 다른 말들로 스스로를 안심시키지 인정함이 많을수록 새로움은 점점 더 멀어지고 그저 왔다갔다 시계추와 같이 매일매일 흔들리겠지 일어나 일어나 다시 한 번 해보는 거야 일어나 일어나 봄의 새싹들처럼

가볍게 산다는 건 결국은 스스로를 얽어매고 세상이 외면해도 나는 어차피 살아. 살아 있는걸 아름다운 꽃일수록 빨리 시들어가고 햇살이 비치면 투명하던 이슬도 한순간에 말라버리지 일어나 일어나 다시 한 번 해보는 거야 일어나 일어나 봄의 새싹들처럼


#용산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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