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오마이뉴스의 모토는 '모든 시민은 기자다'입니다. 시민 개인의 일상을 소재로 한 '사는 이야기'도 뉴스로 싣고 있습니다. 당신의 살아가는 이야기가 오마이뉴스에 오면 뉴스가 됩니다. 당신의 이야기를 들려주세요.】

어제(20일) 아침 서울 용산에서 벌어진 참극의 충격과 공포는, 오늘도 계속 되고 있습니다.

머리통은 터질 듯한 분애로 가득하고, 무기력한 몸뚱아리는 힘없이 울분에 휘감겨 있습니다.

 

그리고 언론 보도와 인터넷, 블로그를 통해 국민의 삶, 생명보다 '준법질서'를 외치는 정부와 경찰의 강제진압과 개발이익에 눈 먼 건설자본 때문에 치솟는 화염과 불구덩이에서 죽임 당한 철거민들과 이들의 죽음을 애도, 추모하는 시민들과 촛불집회까지 물대포와 방패로 무자비하게 진압한 지난 밤의 끔찍한 소식에 또 경악하고 말았습니다.

 

'분노할 때 분노할 줄 알아야 한다' '암흑같은 세상이 어찌 돌아가는 것인지 도무지 알 수가 없다'는 혀에 박힌 말만 기계적으로 터져 나왔습니다. 자신(블로거)이 할 수 있는 무엇인가 해보려고 애써보지만, 역시나 자위하는 수준이라 부끄럽고 죄스럽기만 합니다.

 

* 용산 철거민과 우리의 삶-생명을 지키기 위해 블로거가 해야 할 일!!

 

 

작년에 이어 이상하게 뒤바뀐 세상에서 힘 없고 가진 것 없는 이들이 살아가기기 더욱 힘겹고 고통스럽다는 것은 절감했지만, 6명이나 되는 무고한 시민들을 죽음으로 몰고간 정권과 그들이 휘어잡은 세상은 상식을 넘어섰습니다. 더 이상 용서하거나 지켜볼 수 없을만큼 그동안 기만과 배신을 일삼은 저들은, 잔인하고 무섭게 우리들의 삶과 생명마저 뜨거운 불길 속으로 토끼몰이 하듯 몰아넣고 있는 게 아닌가 싶습니다.

 

이런 암담하고 부질없는 생각들로 하루를 시작하는데 아침 뉴스에 놀라고 씁쓸해 하시던 부모님은, 여느 해보다 참혹한 겨울이 지난 뒤 땅이 봄눈 녹듯이 녹는 그날을 위해 고추씨를 준비했습니다. 작은 봉투 하나에 1200개 정도의 씨앗이 들어 있는 것을 4봉지나 털어냈습니다. 양파를 담아두던 선홍색 망에 정성스레 고추씨를 나눠 담아 중간 크기의 플라스틱 대야에 넣어 두었습니다. 고추씨 싹을 틔우기 위해서 말입니다.

 

 

쌀과 함께 우리의 피와 살이 되어주고 삶과 생명을 이어주는 고추를 얻기 위해, 땅을 일구며 살아온 부모님은 아직 추운 기운이 남아 있지만 서둘러 고추씨를 부려놓았습니다. 이렇게 부려놓은 고추씨는 물에 담궜다가 수건이나 헌옷가지, 담요로 감싸 집에서 가장 따뜻한, 솜이불이 언제나 깔려 있는 제 방 한 구석에서 봄을 시기하는 겨울의 마지막 추위를 피해 차츰 싹을 틔울 것입니다.

 

 

떡잎과 뿌리를 비죽 내민 고추씨는 하우스 밭의 고운 흙에 뿌려질 것입니다. 그리고 따스한 봄날의 햇빛과 기운에 힘받아 뿌리를 땅 속 깊이 내려 포트에 이식할 만큼의 크기로 자라날 것입니다. 조심스레 일일이 포트에 담아 중간 크기로 길러낸 고추모종은 다시 고추농사를 짓는 마을 이웃들에게 하나둘 팔려 나가고 고춧대가 세워진 밭에 심어질 것입니다.

 

그렇게 고추씨가 싹을 틔우고 농부들의 정성스런 손에 의해 열매를 맺듯이, 지금 우리도 희망과 생명의 싹을 틔울 준비를 해야 하는 게 아닌가 싶습니다. 어디서부터 어떻게 해야할지 난감하지만, 마음을 모으고 노력하면 가능하지 않을까 싶습니다.

 

 

덧붙이는 글 | 이기사는 U포터뉴스와 블로거뉴스에도 송고합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태그:#고추씨, #용산참사, #참혹, #비극, #희망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독자의견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