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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객기 추락사고에 묻힌 부시 고별연설

추락사고가 머릿기사를 장식한 16일 <뉴욕 타임스>의 1면. 부시의 고별 연설기사는 21면에 실렸다.
 추락사고가 머릿기사를 장식한 16일 <뉴욕 타임스>의 1면. 부시의 고별 연설기사는 21면에 실렸다.
ⓒ 뉴욕타임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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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초 예정대로였다면, 지난 15일 미국 국내 뉴스의 하이라이트는 두 개였다. 하나는 오전에 있었던 에릭 홀더 법무부 장관 내정자의 상원 법사위원회 청문회, 다른 하나는 저녁에 있었던 부시의 마지막 고별 연설.

그러나 미국 전체를 감동과 놀라움의 도가니로 몰고간 것은 당일 오후 3시 30분에 일어났던 US 에어웨이 1549 스토리였다. 뉴욕의 라가디아 공항을 이륙한 지 3분여 만에 승객 150명과 승무원 5명을 태운 여객기가 맨해튼과 뉴저지 사이를 흐르는 허드슨 강에 불시착한 것이다.

당시 기온은 영하 8도. 허드슨 강의 수중 온도는 1.6도였다. 이런 물에 몸을 담갔다가는 5분이면 동상에 걸린다고 한다. CNN의 기상담당 기자 체드 마이어는 허드슨 강의 물 온도를 가리켜, "얼음만 안 떠있을 뿐, 북극의 바닷물이나 마찬가지일 것"이라고 말할 정도로 물은 아주 차가웠다. 그러나 현재까지 알려진 부상은 승객 한 명의 다리가 골절되었다는 것뿐이다.

거위 아니면 갈매기로 추정되는 새가 비행기 엔진에 부딪혀 그 큰 비행기가 불시착할 수밖에 없었다는 것도 거짓말처럼 믿기 어려웠지만, 어떻게 155명 전원이 그토록 무사할 수 있는지, 지상이 아닌 물위를 선택한 그 놀라운 조종사는 어떻게 그리 미끌어지듯 강물 위로 착륙할 수 있었는지, 또 기체가 물에 가라앉기 전에 어떻게 그 많은 사람들이 안전하게 모두 빠져나올 수 있었는지 신기할 따름이다.

또한, 언제 어디서 그 많은 페리와 해경들과 경찰 다이버와 소방 요원들이 1~2분 내로 나타나서 여객기 승객들을 구조하기 시작했는지, 일반 시민들은 언제 또 그렇게 모여들어 팔을 걷어붙이고 봉사를 하기 시작했는지…. 정말 이 모든 것이 놀라울 뿐이었다. 그러니, 아무리 대통령의 마지막 연설이라지만 사람들은 부시에게 거의 주목하지 않았다.

'인터뷰 지침'까지 내려가며 치적 미화하는 부시 정부

미국 국민을 위한 마지막 연설이었지만 13분밖에 되지 않는 짧은 연설이었다. 딴은 무슨 할 말이 더 남아 있을까? 작년 11월 4일 대통령 선거가 끝나고 얼마 있지 않아, 부시 대통령의 핵심 참모인 칼 로브와 캐서린 휴는 지난 8년의 부시의 행적을 '미화'하는 작업을 벌이기 위해 '부시 유산 만들기 프로젝트'라는 것을 추진했다. 그리고 그 일환으로 레이건과 클린턴 전임 대통령들 보다도 훨씬 더 많은 '퇴임자 인터뷰(exit interview)'를 진행했다.  

작년 12월, <더 데일리 비스트>는 백악관에서 제작한 2페이지짜리 인터뷰 지침서를 폭로했다. 부시 행정부의 장관들을 주요 대상으로 마련된 것인데, 언론이나 행정부외 사람들이 부시에 대한 평가를 질문해오면 어떻게 대답해야 할지를 알려주는 것이었다.

지침서의 주요 내용은, 가령 "부시 행정부는 9/11 이후 미국인들을 안전하게 지켰다, 2001년 이후 감세를 통해서 경제를 부흥시켰다, 아프리카의 에이즈 확대를 막아냈다, 경제 침체를 막기 위해 과감한 조치를 취했다, 대통령직의 명예와 위엄을 유지했다"라고 말해야 한다는 것이다.  

부시 대통령 본인도 여러 퇴임자 인터뷰를 통해 스스로를 방어하는 데 전력을 다했다. 가령, 작년 12월 초 ABC-TV 인터뷰에서 현재의 경제 침체에 책임감을 느끼지는 않는가라는 질문에, 그는 "월스트리트에 대해서 내려졌던 많은 결정들은 내가 (백악관에) 오기 수년 전에 이미 내려졌다는 것을 사람들이 곧 알게 될 것"이라고 했고, 2008년 대통령 선거 결과가 부시 행정부에 대한 심판이 아닐까라는 질문에 대해, "(내가 아닌) 공화당에 대한 심판이다"라고 대답했다.

알카에다의 공격 가능성에 대한 미 정보부의 경고를 무시했던 그는, "9/11 테러는 마치 하늘에서 뚝 떨어진 듯 갑자기 일어난 일"이었지만, 이라크를 침공한 것은 "미 정보부의 실수"였다며, 그 책임을 미 정보부에게 떠넘겼다.

C-스팬과의 인터뷰에서는, "나는 전시 대통령이이고 전쟁은 정말 지치는 일이다"라고 상념에 잠기듯 말하면서, 그러나 전쟁에서 부상당하거나 전사한 가족들을 만나는 일이 "흥미로운 경험"이라고 말했다. 위 ABC-TV 인터뷰에서는 "대통령은 결국 많은 사람들의 슬픔을 자신의 영혼안에 담는 일을 한다"며, "군 병원에 가면 항상 치유하는 경험을 받게 된다"라고 회고했다.


                 부시 대통령의 고별연설에서 체니 부통령이 졸고 있다.

그리고 그는 15일의 마지막 연설에서도 "여러분들은 내가 내려왔던 힘든 결정에 대해 동의하지 않을지도 모르지만, 내가 기꺼이 힘든 결정을 내리려고 해왔다는 점에는 동의해 주길 바란다"며, 자기 연민과 변명에 끝이 없었다.  

7.2%로 치솟은 실업률, 두개의 전쟁... 이것이 부시의 치적

NBC뉴스에 따르면, 2001년 1월 부시가 백악관에 입성했을 때 미국의 실업률은 4.2%였지만, 지금은 7.2%라고 한다. 조금 더 비교를 해보자면, 2001년 1월 정부 예산은 2360억 달러 흑자였지만 현재는 1조2천억원 적자이다. 2001년 1월 소비자 신뢰도 지수는 116였지만, 지금은 38이고, 당시엔 약 4천만 미국인들이 의료보험 없이 지냈지만, 이제는 4600만명이 무보험 상태라고 한다.

부시가 오고 나서 전쟁 두 개가 시작되었고, 이라크에서는 5년 반 이상을, 아프가니스탄에서는 그 보다 더 오래 미국은 전쟁을 치르고 있다. 2005년 여름 시작되었던 뉴올리언스 홍수피해의 비극도 여전히 계속되고 있다. 

최근 <NBC 뉴스/월스트리트저널> 공동 설문조사에 따르면, 미국인의 79%가 부시 대통령을 그리워하지 않을 것이라고 대답했다고 한다. 어제 나온 <뉴욕 타임스/CBS> 설문결과를 보면  현재 부시의 대통령 수행 지지율은 불과 20%다.

지난 12월 부시가 마지막으로 이라크에 갔을 때, 한 이라크 기자로부터 '신발 공격' 받는 장면을 보고, 그에 대한 이라크 사람들, 아니 대부분 세계인들의 '평가'가 저 장면 하나로 정리되는구나 싶었다. 웃겼지만 씁쓸했고, '당연한' 장면이었지만 마냥 통쾌하지만은 않았다.

지난 15일 뉴욕의 허드슨 강에 추락한 US 에어웨이 1549 여객기 승객들이 보트에 나눠타고 구조를 기다리고 있다.
 지난 15일 뉴욕의 허드슨 강에 추락한 US 에어웨이 1549 여객기 승객들이 보트에 나눠타고 구조를 기다리고 있다.
ⓒ AP=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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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드슨 강에서 목격한 '미국이 굴러가는 이유'

하지만, 지난 주 US 에어웨이 1549가 일으킨 '허드슨 강의 기적'을 보았을 때, 그래도 아직 '미국이 굴러가는 이유'를 발견했다.

'허드슨 강의 기적'이라는 말은 사실 내가 붙인 말이 아니라, 사고 이후 뉴욕 주지사인 데이비드 패터슨이 붙인 말이다. 그는 "34번가의 기적"이라고도 부르며 매우 감격해했다. 그러나 곰곰 따지고 보면, 이번 비행기 사고가 대형 사고로 이어지지 않은 것은 단순히 '기적'의 문제가 아니다. 

비행기가 허드슨 강 위로 떨어지자마자 1분도 지나지 않아서 맨해튼과 뉴저지를 오고가는 페리 여러 대가 사고 현장에 나타났다. 페리의 승무원들은 탈출한 비행기 승객들을 도와 페리로 안전하게 이동시켰다. 또 1분이 채 지나지 않아서 경찰 보트, 소방대 보트, 견인선, 해안 경비대, 경찰 다이버 등등이 무리 지어 달려왔다. 육지에서는 비행기 승객들을 응급 조치하고 병원으로 후송시킬 앰뷸런스와 소방대원들, 경찰관 등등이 진을 쳤다.

누구보다 많은 주목을 받고 있는 이 비행기의 조종사는 알고 보니 한 때 공군 전투기 조종사였고, 민간 항공업계로 와서는 비행안전 컨설팅업체를 운영한 적도 있었다. 또한 위급 상황에서 승무원들의 심리 상태를 안정시키는 방법에 대해 연구도 했던 것으로 알려졌고, 글라이더 파일럿으로 인증을 받기도 한 인물이었다. 이같은 위기 상황을 대처하는데 이보다 더 완벽할 수는 없는 모든 조건을 갖춘 조종사다.

그러나 이 조종사의 개인적인 능력보다도 US 에어웨이 1549의 승객들에게 엄청난 행운이 있었다는 사실과, 이들을 돕기위해 달려온 수많은 구조원들에게 헌신과 용기, 영웅심이 충만했다는 사실보다도 더 중요한 것이 있다.

그것은 이 조종사와 비행기의 승무원들, 구조원들이 모두 잘 '훈련'받았고, 이런 위기에 잘 '준비'된 사람들이란 사실이다. 피해를 최소화 시키기 위해 마련된 좋은 시스템, 위기에 빠진 사람들이 최대한 많은 가능한 선택을 할 수 있도록 개발된 프로그램, 최악의 상황에서 빠르고 정확하게 대응할 수 있도록 정신공황에 빠지지 않고 냉철하게 처리할 수 있도록 사람들을 잘 훈련시키는 체계적인 제도.

전문적인 인증제도, 규제, 공정한 법의 집행력, 위기대처능력과 훈련, 그리고 이를 뒷받침하는 적절한 장비. 이런 것들이야말로 이번 사건을 대형참사로 끝나게 하지 않은 진짜 이유가 아닌가 싶다.

지난 8년 간 부시 행정부는 바로 이런 기본적인 것들에 대한 투자를 소홀히 해왔다. 물질적으로 제도적으로, 또 도덕적으로도. 다행히 '미국의 힘'이라고 내가 발견한 이런 것들이 지난 8년간 고사당하지 않고 살아남아, 지난 목요일 그 힘을 증명해 보였고, 사람들은 그 힘에 감격한 것 같다. 그래서 부시의 마지막 연설 따위는 더 이상 안중에 없었던 것이 아닐까 싶다. 드디어 부시가 간다.

법무장관 내정자 "관타나모는 문닫을 것이다"

이날 오전 상원 법사위원회는 법무부 장관 내정자인 에릭 홀더의 자격을 심사하기 위한 청문회를 열었다. 이 자리에서 에릭 홀더는 그의 전임자인 곤잘레스와 현 뮤카시 장관과는 확연히 다른 어조로, "워터보딩(Waterboarding: 수건이나 헝겊 등을 입에 덮고 그 위로 물을 부어 물에 질식하는 듯한 공포감을 들게 하는 고문 테크닉)은 고문이다. 어떤 (고문) 기술을 사용하든지 그것은 우리가 원하는 결과물을 만들어낼 것이다"라고 똑부러지게 대답했다.

체니 부통령은 워터보딩이 테러리스트 혐의자에게 사용되는 것을 분명하게 지지해왔었고, 미 수사 당국이 이 고문 기법을 사용해왔다는 것에 대해서도 여러번 확인해준 바 있다.

관타나모 기지에 대해서 홀더는, "관타나모는 문을 닫을 것이다. 실제 이 시설을 물리적으로 폐쇄하는 일은 비교적 빠를 수 있지만, 문제는 현재 그곳에 수감되어 있는 사람들을 어떻게 처리할 것인가 하는 문제다. … 이것 때문에 실제로 관타나모 기지를 폐쇄하는 일이 우리가 원하는 만큼 신속하지 못할 수도 있다. 그러나 미국 국민들에게 확실히 하고 싶은 것은 관타나모는 문을 닫을 것이라는 점이다"라고 역시 분명하게 대답했다.

홀더 내정자는 클린턴 행정부 시절 논란거리였던 인사를 사면해준 것 때문에, 이번 인사 청문회가 까다롭게 진행될 것이라는 예상이 많았다. 그러나, 고문은 고문이고, 관타나모는 폐지될 것이며, 미국의 법무부는 미국의 법을 수호하는데 앞장설 것이라고 대수롭지 않게 답변했다. 지난 8년간 부시 행정부의 법무부 장관들로부터는 들을 수 없었던 당연한 말이었지만 말이다.


태그:#부시 고별연설, #부시, #허드슨강, #US 에어웨이 1549, #여객기 추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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