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버스는 오지 않았다.

정초

수많은 사람들이 어두운 버스정류장에서

밑도 끝도 없이 기승을 부려대는 추위에 잔뜩 움츠리고 있었다.

서민들의 차로, 버스전용차로마저 매서운 추위에 얼어붙어

끝내 길을 내지 못하고 있는 것일까?

 

춥고 긴 밤

버스는 내내 오지 않았다.

 

수많은 사람들은 광화문으로 가는 버스정류장에서

버스가 오기 전까지

버스가 와 한 웅큼의 따뜻함을 주기 전까지

따뜻함이 흐드러져 있는 곳으로 데려다주기 전까지

고드름처럼

사람들은 나와 함께 그대로 멎어있었다.

 

수많은 사람들은

발마저도 동동 구르지않았다.

인터넷에 찬바람이 불고 누군가가 끌려가고 난 뒤

한 논객이 인터넷에서 종적을 감추며 띄워놓은 세 마리 원숭이 그림에서처럼

귀 막고 입 막고 눈까지 가리고

그대로 멎은 채

수많은 사람들이

매서운 바람 맞으며 버스를 기다리고 있었다.

 

작년 봄부터 여름까지

소담스럽게 시작되어 장엄하게 타올랐던 촛불

그 앞에 서 본 사람들은 알고 있을까

그 촛불이 꺼지고 난 뒤의 처연함을 아스라이 숨겨놓고 있는 사람들은 다 알고 있을까

불어닥치고 있는 정초의 매서운 추위가

기실, 겨울부터 시작된 추위가 아니라고 하는 것을

올겨울은 그 어느 때보다도 길 것이라는 기상청 예보는

그리도 잦게 터지곤 했던 그 흔한 오보가 아니라는 것 또한 사람들은 잘 알고 있을까

 

추위가 얼게 하는 것이 어디 한 두가지이랴

공장문들이 닫히면서

곧장 길로 걸어나온 공장들이 먼저 쫓겨나와 있던 주인들을 만나 함께 얼어가고

한강을 끼고 있는 가벼운 섬

여의도도 쉽게 얼어

외국잡지는 넥타이로 목을 조르는 한국 의원들의 사진을 가지고 경쾌하게 조롱하고

판문점 역시도 추위에 더 이상 견디기 어려웠던 것일까.

로봇 같은 미군들이 걸어나와 10여년 전의 풍경으로 되돌아가 있었다.

 

그렇게

밤이 깊어가고 추위는 더 매서워 갔지만 광화문 가는 버스는 여전히 오지 않았다.

끝내 버스는 안 오고 마는 것일까.

 

 

어쩌면

귀 막고 입 막고 눈까지 막은 수많은 사람들이

새해정초에 세차게 불어 닥치고 있는 추위에 떨며

꽁꽁 얼어 붙어서서

기다리고 있는 것이

버스가

아닐지도 몰랐다.

 

아무것도 들을 수야 없어야 하지만

퍼득대는 날갯짓 소리가 간헐적으로 들려왔고

아무것도 말할 수야 없어야 하지만

겨울은 추울 뿐 길게 나둬서는 안 된다는 우물거리는 말이 입김처럼 피어오르고 있었고

아무것도 못 보아야 하지만

고개 조금 들어 어둠속에 파묻힌 흐릿한 산허리를 꼼꼼히 훑고 있는지도 몰랐다.

 

하늘아래 둔덕마다

영마루 휘감아 올리는 산자락마다

두견의 순결한 피가

언 땅을 다 적셔놓게 되었을 때

마침내

한라산에도

지리산에도

백두산에도

그리고 광화문 뒷산에도

흐드러져 피어날

진달래

 

모든 길이 꽁꽁 얼어붙어

끝내

길을 내주지 못해

버스도 택시도 못 갈 광화문길이 되면

사람들이

 

사람들이

진달래 한 웅큼 움켜쥐고

작년 봄부터 여름까지 피어올랐던 순결한 촛불의 한 올올이 붙안고

넓은 차도로

성큼 디뎌나가

그 어떤 무리도 감히 가로막아나서지 못할

소처럼 우직한 걸음으로

한 걸음씩 한 걸음씩

나아가리라는 것을

 

오지 않을 것처럼 보이는 광화문 버스를 기다리며

 

짙은 어둠 속에 갇혀 꽝꽝 얼어붙어 있는 수많은 사람들에게서

머지않아

이 모진 추위 걷어내고

진달래로

흐드러질

그 광화문을 위해

그 광화문을 향해

핏빛 진달래 휘날리며

뚜벅뚜벅

걸어가리라는 것을

 

분명히 보았다.

 

광화문행  버스를 기다리며


태그:#광화문, #진달래, #촛불, #사람들, #버스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독자의견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