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오마이뉴스의 모토는 '모든 시민은 기자다'입니다. 시민 개인의 일상을 소재로 한 '사는 이야기'도 뉴스로 싣고 있습니다. 당신의 살아가는 이야기가 오마이뉴스에 오면 뉴스가 됩니다. 당신의 이야기를 들려주세요.】

"엄마, 엄마. 말리 엄마가 죽었대. 오늘 아침에.”
"뭐, 뭐라고? 왜?"

"새벽에 조깅하다가 그만 뺑소니차에 치였대."
"저런, 세상에. 어떤 말리?"

"말리 앤더슨."

지난 6일, 학교에서 돌아온 아이들이 큰 소리로 말리 엄마의 슬픈 소식을 전했다. 말리 앤더슨은 아이들이 다니는 해리슨버그 고등학교 밴드의 클라리넷 수석이다.

말리는 엄마가 죽었다는 연락을 받고 수업 도중에 황급히 집으로 갔다고 한다. 밴드 모임에서 종종 봤던 말리 엄마의 사고 소식은 내게도 충격이었다. 더구나 사고 운전자가 뺑소니까지 치고 도망갔다고 하니 더욱 안타까웠다.

"엄마, 말리가 불쌍해서 어떡해? 엄마도 없고. 운전자까지 도망갔다고 하니."
"그러게. 하지만 뺑소니는 잡힐 거야."

그날 저녁 우리는 말리 가족의 슬픈 소식을 들으면서 우울했다.

다음 날 아침, 이곳 해리슨버그에서 발행되는 조간 '데일리 뉴스 레코드(DNR)' 1면에는 머릿기사로 말리네 엄마 사고 소식이 올라와 있었다.

뺑소니 사고 소식을 처음 전한 데일리뉴스 레코드. 사고 현장에는 말리 엄마의 조깅화가 나뒹굴어져 있다.
 뺑소니 사고 소식을 처음 전한 데일리뉴스 레코드. 사고 현장에는 말리 엄마의 조깅화가 나뒹굴어져 있다.
ⓒ DNR

관련사진보기


치명적인 뺑소니 사고 관련 여성 검거

해리슨버그 경찰은 지난 6일 새벽에 발생한 제임스메디슨 대학교 교직원 사망 뺑소니 사고 관련자인 한 여성을 긴급 체포했다. 사우스 메인 41번지에 사는 베다니 존스(24)는 사우스 메인 스트리트를 조깅하고 있던 셰리 앤더슨(55)을 친 뒤 달아나 과실치사 중죄 뺑소니 혐의가 적용되었다.

오전 5시30분 경 현장에서 즉사한 셰리 앤더슨은 제임스메디슨대학교 부속기관인 '쉐난도 밸리 아동 개발 클리닉' 교육 컨설턴트로 일해왔다.

경찰은 사고가 발생한 뒤 오전 동안 사고 현장인 제임스메디슨대학교 입구에서부터 남쪽 사우스 메인 도로까지를 완전 폐쇄한 뒤 현장조사를 실시했다.

경찰은 뺑소니 차량에 의해 사람이 치었다는 보고를 받은 뒤 현장으로 즉시 출동했고 당일 오후 9시경에 용의자를 체포했다. 경찰이 사고 차량과 용의자를 어떻게 검거했는지에 대해서는 입을 다물고 있다.

경찰은 사고 관련 용의자를 체포했지만 추가 정보를 제공하기 원하는 사람은 '범죄해결과(574-5050)'로 전화해 주기를 요청하고 있다.

작년 가을 홈커밍데이 풋볼 경기 때 졸업반인 말리는 밴드 선생님(맨 왼쪽), 부모님과 함께 사진을 찍었다. 하지만 말리에게는 더 이상 엄마가 계시지 않는다.
 작년 가을 홈커밍데이 풋볼 경기 때 졸업반인 말리는 밴드 선생님(맨 왼쪽), 부모님과 함께 사진을 찍었다. 하지만 말리에게는 더 이상 엄마가 계시지 않는다.
ⓒ 존 먼로

관련사진보기


갑작스러운 말리 엄마 사고 소식은 학교 친구들에게도 충격이었다. 친구들은 말리를 위로하기 위해 학교가 끝나면 수시로 말리를 찾아갔고 학교 밴드 엄마들은 말리네 가족을 위해 몇 주일 분의 음식을 준비한다는 소리도 들렸다.
맨 오른쪽에 앉은 클라리넷 수석인 말리 앤더슨. 그녀의 넘치는 열정과 끼, 에너지는 누구도 따라오지 못한다.
 맨 오른쪽에 앉은 클라리넷 수석인 말리 앤더슨. 그녀의 넘치는 열정과 끼, 에너지는 누구도 따라오지 못한다.
ⓒ 존 먼로

관련사진보기

말리가 속한 학교 음악 동아리 <트라이엠Tri-M>의 회장인 내 큰딸은 말리를 위로하기 위해 대형 하트 카드를 만들었고 거기에 동아리 친구들이 말리에게 주는 위로의 글을 쓰도록 했다. 모두가 말리의 고통과 슬픔에 동참하고 있었다.

사실 말리는 모든 사람들로부터 사랑을 받는 아이였다. 나 역시 이 학교 밴드팀에 있는 아이들 가운데 말리를 가장 좋아했다. 왜냐하면 말리에게는 늘 활기찬 에너지와 매력적인 끼, 열정이 넘쳐 흘렀기 때문이었다. 

학교 풋볼 경기가 있는 날이면 경기도 관전하고 밴드에서 멜라폰과 스네어드럼을 연주하는 두 딸의 연주도 볼 겸해서 나는 늘 경기장을 찾곤 했다. 그 때 가장 눈에 띄는 아이가 바로 말리였다.  

환한 얼굴의 말리는 클라리넷을 불면서 엉덩이를 흔들거나 춤을 추었는데, 어쩌다 팀이 터치다운이라도 하면 그 자리에서 혼자 뱅뱅 돌거나 뛰면서 자신의 끼를 열정적으로 발휘하곤 했다. 그런 씩씩한 말리를 보고 있노라면 엔돌핀이 솟으면서 행복했다.

이렇게 밝고 정열적이던 말리에게 느닷없는 슬픔이 찾아온 것이었다. 더구나 그 엄마는 이른 새벽마다 조깅을 할 정도로 건강했고 자식이 넷이나 있는, 아직은 젊은 부인이었다. 또한 전문직 여성으로 대학 부속기관에서 아동의 건강을 위해 애써온 아동교육 상담가였고.

모두가 아쉬워하는 죽음이었다. 하지만 다행스러운 것은 이런 슬픔에 잠긴 말리가 장례식 전에도 종종 학교에 들러 자신이 좋아하는 밴드 선생님과 많은 이야기를 주고 받았고 선생님으로 부터 많은 위로를 받고 갔다고 한다. 

뺑소니 운전자는 음주 운전자

사람들이 분노했던 뺑소니 운전자에 대한 소식은 사고 이튿날에도 다시 1면 머릿기사로 자세히 실렸다.

사고 이튿날 신문에 난 기사. "뺑소니 용의자 술 마셨다고 자백"
 사고 이튿날 신문에 난 기사. "뺑소니 용의자 술 마셨다고 자백"
ⓒ DNR

관련사진보기


뺑소니 용의자 술 마셨다고 자백

라킹햄 카운티 순회 법정 보석금 청문회에서 용의자 존스는 지난 화요일 새벽, 시내 <The PUB> 술집에서 바텐더로 일을 마친 뒤 그곳에 수 시간 머물며 맥주와 양주를 마셨다고 한다. 하지만 존스는 자신이 친 것은 사람이 아니고 물건이었던 것으로 생각했다고 경찰이 밝혔다.

라킹햄 카운티 일반 법정에서 열린 첫 공판에서 판사는 존스에 대한 보석금을 2만불로 결정했으나 순회판사는 오히려 (1만불을 더 올려) 3만불로 책정했다.

베다니 존스가 바텐더로 일했던 술집 <The PUB>. 뺑소니 운전자는 이곳에서 새벽 2시까지 일을 한 뒤 술을 마시고 귀가했다고 한다. 이번 사건에 대해 시민들은 종업원이 술을 마신 뒤 운전을 하도록 내버려 둔 이곳 고용주에 대해서도 한 목소리로 비난하고 있다.
 베다니 존스가 바텐더로 일했던 술집 <The PUB>. 뺑소니 운전자는 이곳에서 새벽 2시까지 일을 한 뒤 술을 마시고 귀가했다고 한다. 이번 사건에 대해 시민들은 종업원이 술을 마신 뒤 운전을 하도록 내버려 둔 이곳 고용주에 대해서도 한 목소리로 비난하고 있다.
ⓒ 한나영

관련사진보기


뺑소니 운전자는 결국 잡히고 말아

경찰이 뺑소니 운전자를 어떻게 잡았는지에 대해 신문은 상세히 보도하고 있다.

경찰은 사고 현장에서 헤드라이트 렌즈를 발견한 뒤 이를 자동차 판매상으로 가져가, 사고차량이 1989년에서 1992년에 생산된 ‘캠리’ 모델인 것을 밝혀냈다. 경찰은 인근 지역을 수색하여 존스가 살고 있는 사우스 메인 41번지 아파트에 주차되어 있는 용의자 차량을 발견했다.

존스 차는 심하게 파손되어 있었고 경찰은 보행자를 친 것으로 보이는 앞 유리가 결정적인 증거였다고 밝혔다. 경찰은 파손된 차의 소유주가 존스인 것을 확인하고 그녀와 면담을 마친 뒤 곧 바로 체포했다.

조사관이 존스를 면담할 때 그녀 입에서는 사고 발생 12시간이 지났는데도 심한 알코올 냄새가 났다고 한다. 하지만 존스는 사고 이후에는 술을 마시지 않았다고 진술했다.

도대체 얼마나 술을 많이 마셨으면 12시간이 지났는데도 그녀 입에서 독한 술 냄새가 났을까. 더구나 용의자 존스는 과거 2007년에도 혈중 알코올 농도 0.22 (0.08 이상이면 음주운전으로 기록)를 기록하여 음주운전으로 걸린 적이 있는 전과자라고 한다. 이번에는 뺑소니 운전자라는 치명적인 불명예까지 안게 되었고.

꽃다운 24살 아가씨의 돌이킬 수 없는 실수에 대해 나는 잠시 연민이 일기도 했다. 도대체 무슨 사연이 있었기에 젊은 그녀는 그토록 독한 술을 마셔야 했을까. 그리고 겁없이 운전대를 잡고 차를 몰 생각을 했을까. 

하지만 연민은 잠시, 이내 애처로운 말리의 하염없는 눈물을 나는 떠올렸다. 또, 혼자가 된 말리 아빠와 말리네 4형제, 자매의 깊은 슬픔과 외로움도 눈 앞에 떠올랐다. 

말리 엄마와 함께 조깅을 했던 동료들이 이른 새벽, 말리 엄마가 죽은 자리에 러닝화와 꽃을 바친 뒤 묵념을 하고 있다.
 말리 엄마와 함께 조깅을 했던 동료들이 이른 새벽, 말리 엄마가 죽은 자리에 러닝화와 꽃을 바친 뒤 묵념을 하고 있다.
ⓒ DNR

관련사진보기


말리 엄마 장례식이 치러지던 날, 큰딸은 다른 친구들과 함께 수업을 빠지고 장례식에 참석했다. 말리를 사랑했던 학교 선생님들도 일부 참석했다. 말리가 의지했던 밴드 선생님은 말리의 요청으로 장례식에서 조가를 불렀고.

이제 사랑스러운 딸 말리에게는 엄마가 없다. 늘 힘이 넘치고 활발했던 말리였다. 그런데 그 말리가 풀이 죽은 모습으로 다시 학교로 돌아왔다고 하니 가슴이 아프다.

12학년 졸업반인 말리는 이제 대학에 원서를 내놓고 결과를 기다리고 있다. 조만간 합격 소식을 듣게 될 것이다. 하지만 그 합격의 기쁨을 함께 나눌 엄마가 안 계시다는 사실이 얼마나 큰 슬픔인지, 든든한 기둥이었던 엄마의 부재가 얼마나 쓸쓸하고 외로운 것인지 말리는 아직 실감하지 못할 것이다. 

술 마시는 사람들이여. 제발 술 마시고 운전대를 잡지 마시라. 그대들의 순간 실수가 단란한 가정의 행복을 어떻게 파괴하는지 그대들은 짐작하지 못하는가. 그대들의 순간 어리석음이 한 가족을 얼마나 슬픔과 비탄에 잠기게 하는지 그대들은 상상하지 못하는가.


태그:#음주 운전 사고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독자의견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