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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끝나지 않은 20세기>
▲ 표지 <끝나지 않은 20세기>
ⓒ 역사비평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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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시 2005년 봄으로 돌아가 보자. 해방 60주년이었던 그 때 고이즈미 일본 총리는 타국의 간섭을 받을 문제가 아니라면서 야스쿠니 신사를 참배했고, 주한 일본 대사는 외신 기자와의 영어 인터뷰에서 독도(다케시마)를 일본 영토라고 주장했다. 그리고 같은 시기, 이러한 인사들의 역사 인식을 반영한 ‘새로운’ 역사교과서가 일본 정부의 검정을 통과했다. 그들 역시 마찬가지로 당시 일본이 처한 현실을 ‘잃어버린 10년’이라고 표현하고 있다. (책 속에서)

‘잃어버린 10년’을 주문처럼 앞세워 여론은 나 몰라라 막무가내 정책을 앞세우는 최근 대한민국 모습과 고이즈미 총리 집권 시기의 일본 모습이 닮은꼴이다. 모두 보수 우파 정권이라는 점, ‘잃어버린 10년’을 앞세워 자신들을 정당화하고 있다는 점, 여론에 반해서 역사 교과서 수정이 이루어진 점 등이 닮았다.

어째서 이런 상황이 벌어지는 걸까. 일본의 식민지 지배로부터 벗어난 지 60년이 지났는데, 아직도 일본과 닮은꼴 정치가 진행되고 있을까. <끝나지 않은 20세기>에서 그 답을 찾아보자.

근대화로 포장된 식민지

1930년대엔 경성에 있는 백화점에 가서 엘리베이터 한 번 타보고 우동 한 그릇 먹어보는 게 소원인 사람들이 많았다. 상상도 하지 못했던 신기한 문물을 경험하고 이국적 음식을 맛볼 수 있다는 건 부러운 일이었다.

백화점을 거리낌 없이 드나들 수 있었던 사람들은 신식이고, 한 번도 가본 적이 없는 사람은 구식이 되었다. 돈만 있으면 누구나 갈 수 있는 게 백화점이었다. 조선인이라고 차별해서 출입을 통제하는 것도 아니었다. 백화점도 들어서고 고층 건물도 들어서 세상은 변화하고 발전하고 있는데 가보지도 못하고 그 혜택을 제대로 누릴 수 없다는 건 그래서 내 못난 탓으로 돌렸다.

정 반대로 그 변화를 거리낌 없이 누릴 수 있는 사람들은 한껏 뽐내고 위세를 부렸다. 그들에게 식민지는 더할 나위 없이 좋은 기회의 땅이었다. 식민지다 뭐다 아우성치는 건 무식하고 못난 놈들일 뿐이었다. 세상은 나날이 변화하고 발전하고, 자신들의 기반 또한 굳건하게 다져지고 있다고 여겼다. 근대화는 다른 어떤 것보다 우월한 최선의 가치였다.

위에 등장하는 두 부류의 사람들은 각각 어떤 부류의 사람들일까. 책 속의 만평 속에서 찾아보자. 그리고 근대화의 의미를 되새겨보자.

식민지가 근대화에 도움이 되었다며 환호하던 사람들은 그림 속에서 누구일까. 그 변화의 혜택을 누릴 수 없었던 사람들은 어떻게 됐을까. 아직도 일제 식민지 시대가 근대화에 도움이 되었다고 얘기하는 사람들은 어떤 사람들일까.
▲ 넬리도프와 평화의 비둘기(1907) 식민지가 근대화에 도움이 되었다며 환호하던 사람들은 그림 속에서 누구일까. 그 변화의 혜택을 누릴 수 없었던 사람들은 어떻게 됐을까. 아직도 일제 식민지 시대가 근대화에 도움이 되었다고 얘기하는 사람들은 어떤 사람들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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끝나지 않은 냉전

20세기 역사는 냉전의 역사였다. 자본주의와 사회주의라는 이데올로기의 대립, 혁명과 반혁명의 대립, 국가에 의해 강요되는 전쟁과 폭력의 갈등이 심화되었다. 하지만 21세기로 접어들면서 냉전은 과거 역사 속으로 묻혀버렸다.

20세기 냉전의 질서는 우리 현대사를 관통했다. 분단과 전쟁, 그리고 분단 체제를 이용한 독재 권력 강화로 이어지면서 수많은 사람들의 희생이 뒤따랐다. 21세기로 접어들어 냉전 질서가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지고 있지만 한반도에서는 여전히 냉전 질서가 막강한 위력을 발휘하고 있다.

21세기에 냉전적 사고를 되살리려 애쓰는 곳을 찾는다면 일본이다. 정확하게 얘기하면 일본 우익이라 할 수 있다. 식민지 지배와 전쟁에 대한 책임을 회피하며 야스쿠니 신사 참배 등을 강행하며 주변 국가를 자극하고 있다. 일본이 저지른 일을 교과서에서 지워버리기 위해 국가 차원에서 교과서 왜곡을 주도하기도 했다.

최근 한국에서도 비슷한 상황이 전개되고 있다. 일제 식민지 지배 시기가 근대화에 도움이 되었다는 얘기를 공공연하게 주장하고, 일제에 저항한 독립운동이나 분단을 극복하기 위한 통일운동, 그리고 독재에 저항한 민주화운동보다는 대한민국의 정통성을 강조하면서 독재 정권의 정당성을 강조하려는 움직임이 교과서 수정으로 이어지고 있다.

역사 속에 길을 물어

현재 우리나라에서 사용되는 ‘잃어버린 10년’이나 ‘자학사관’이란 말도 모두 일본 우익 정치인들이 사용하던 말이다. 해방 64년째로 접어들고 있지만 아직도 우리 정치는 일본의 영향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걸까?

<끝나지 않은 20세기>는 1894년부터 현재까지 한국, 중국, 일본의 역사를 비교해서 보여준다. 1894년은 동학농민운동, 청일전쟁, 갑오개혁이 일어난 해로 한국, 중국, 일본의 역사에 아주 중요한 해였다.

그 뒤 침략과 식민지 지배의 주체였던 일본, 식민지 지배와 침략의 대상으로 전락했던 한국과 중국의 역사를 비교한다. 마지막으로 냉전 질서에 편입된 한국, 중국, 일본의 역사를 분석하면서 그 영향이 현재까지 어떻게 이어지고 있는지를 보여준다.

오늘날 한국, 중국, 일본의 역사는 일본 제국주의의 침략이 남긴 유산이 지속적으로 영향을 미치고 있다. 분단도 역사 교과서를 둘러싼 갈등도 식민지 유산이 끼친 영향에서 자유롭지 못하다는 사실을 <끝나지 않은 20세기>를 읽으며 아프게 확인할 수 있다.

덧붙이는 글 | 이시카와 쇼지, 히라이 자즈오미 엮음/최덕수 옮김/역사비평사/2008.11/14,000원



끝나지 않은 20세기

이시카와 쇼지.히라이 가즈오미 엮음, 최덕수 옮김, 역사비평사(2008)


태그:#20세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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