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KBS <바람의 나라>를 이야기하기 전에 한 번쯤 이런 의문이 들법하다. 만일 이 작품이 <주몽>이나 <대조영>보다 한발 일찍 찾아왔더라면, 과연 전작들 못지않은 인기와 화제를 누릴 수 있었을까? 개인적으로 아마도 충분히 그럴 수 있었으리라 생각된다.

 

김진 작가의 동명 인기만화를 원작으로 한 <바람의 나라>는 지난 2006년부터 안방극장을 강타한 '고구려 사극'의 후발주자로 시청자들을 찾아왔다. <주몽>, <태왕사신기>, <연개소문>, <대조영>등으로 이어지는 고구려 사극들은 하나같이 고대사에 빛나는 '민족 영웅'을 주인공으로 내세워 웅장한 스케일과 화려한 전쟁 장면, 뚜렷한 민족주의 정서를 표방하며 시청자들의 감성을 자극했다.

 

<바람의 나라>역시 전작들과 유사한 고구려 사극의 흥행 공식들을 모두 답습하고 있다. 또한 기존 고구려 사극들과 다른 점이라면, 확실한 '원작'을 가지고 있었으며 이미 만화나 뮤지컬 등을 통하여 OSMU(원 소스 멀티유즈)로 검증된 아이템이었다는 점. 그리고 기존의 고구려 영웅들에 비하여 훨씬 비극적인 사연을 간직한 인물을 주인공으로 설정했다는 점이다. 

 

무휼은 주몽이나 대조영, 광개토대왕 같은 역대 고구려의 영웅처럼 한 시대를 풍미한 정복군주지만, 동시에 사랑하는 사람들을 모두 잃으며 고독해질 수밖에 없었던 비운의 영웅이기도 하다.

 

태어날 때부터 이미 어머니를 잃고 자신이 유리왕의 아들인지도 모르고 성장해야했던 무휼은 고구려의 태왕이 되는 과정에서, 아버지 유리왕과 형 해명, 이복동생 여진, 죽마고우 마로, 첫사랑 연, 라이벌이자 친구였던 도진, 심지어는 아들인 호동(드라마에서는 묘사되지 않았지만)까지 모두 잃어야했다.

 

대무신왕의 위대한 정복 여정과 대비되는 그의 개인적 불행은, 우리 역사에서 충분히 조명되지 않았던 대무신왕의 이야기를 그 어떤 작품보다 어둡고 비극적인 정서의 드라마로 만들어가는 계기가 되었다.

 

하지만 결과적으로 드라마 <바람의 나라>는 고구려 사극의 전작들이나 다른 장르에서만큼의 화제성과 인기를 보여주지는 못했다. 방영 초반에는 MBC <베토벤 바이러스>·SBS <바람의 화원>과의 경쟁에서 고전을 면치못했고, <주몽>의 '아류작'이라는 편견 아닌 편견에 시달려야 했다. <베·바>가 종영한 11월 중순 이후부터 수목극 선두로 뛰어오르기는 했으나 20% 고지를 넘기는데 허덕인 것은 투자나 기대치에 걸맞은 성적표는 아니었다.

 

<바람의 나라>는 왜 '제2의 주몽'이 되지 못했을까. 첫 번째 패착은 역시 시점을 잘못잡았다는 데 있을 것이다. 검증된 트렌드나 흥행공식도 때와 시기를 놓치면 낡은 것이 되고 만다. <바람의 나라>가 보여준 웅장한 전투 장면이나 '팩션' 스타일의 구성은 매력적이기는 하지만 이미 더 이상 '새로운 볼거리'는 아니었다. <주몽>이나 <태왕사신기>의 후발주자가 되면서 <바람의 나라>가 가진 고구려 사극으로서의 참신함은 어느 정도 퇴색된 것이나 마찬가지였다.

 

여기에 <바람의 나라>는 검증된 원작의 매력을 드라마로 재해석하는데 아쉬움을 남겼다. 여기에는 주인공 무휼 역에 아직 '주몽'의 이미지가 강하게 남아있던 송일국이라는 배우를 캐스팅했다는 점도 한 원인이 되었다.

 

이것은 송일국의 연기력과는 또 별개의 문제였다. 송일국은 분명 고전적인 남성미를 표현하는데 있어서 적합한 마스크와 연기력, 사극 경험을 지니고 있는 배우지만 <주몽>을 연기한 지 2년도 안 되는 시점에서 이야기와 시대배경이 그대로 이어지는 <바람의 나라>에 손자 역을 또 맡았다는 것은 무리한 캐스팅이었고 본인에게도 과욕이었다. 초반 시청자들이 무휼이라는 인물에 있는 그대로 몰입하는데 지장을 주었기 때문이다.

 

주몽과 무휼은 엄연히 다른 인물이다. 주몽이 창업군주로서 무에서 유를 창조해 나가는 '개척자형' 영웅이라면, 무휼은 국가를 위해 끊임없이 자신에게 소중한 것을 상실해가는 '자학적인 매력'을 발산하는 영웅이다.

 

송일국의 무휼이 별볼일없는 사고뭉치에서 구국의 영웅으로 성장해가는 과정이나, 전쟁의 신이 되어 말 위에서 칼을 빼들고 '공격하라'고 소리치는 장면, 혹은 연과의 이루지 못할 사랑에 가슴 아파하는 절절한 멜로 연기에서 시청자들은 본의 아니게 자꾸 주몽의 데자뷰를 느껴야 했다. 무휼로서 표현되어야 할 극중 인물이 독자적인 캐릭터가 아니라 자꾸 배우의 전작 이미지와 겹친다는 것은 드라마로서는 치명적인 약점이었다.

 

<바람의 나라>는 TV 드라마로 각색하는 과정에서 원작이 지니고 있는 신화와 판타지 요소를 배제하고 좀더 대중적인 정통사극에 가까운 분위기로 회귀했다. 하지만 이 과정에서 드라마는 원작이 가지고 있는 특유의 매력을 살리지 못하고 기존 고구려 사극들의 이야기 전개방식이나 주요 설정들을 답습하는데 그쳤다.

 

<바람의 나라> 원작의 주제의식은 주변 사람들을 파멸로 몰고 가게 되는 무휼의 비극적인 운명을 중심으로  등장인물들의 관계가 미묘하게 엇갈리는 '인연의 아이러니에 관한 서사'였다. 원작의 무휼은 좀더 냉철하고 차갑지만 내면에 깊은 고독과 상처를 간직한 인물이었다.

 

그러나 드라마는 대중성과 타협하는 과정에서 무휼의 영웅적 활약상과 스펙터클을 부각시키는 쪽으로 치우치면서, 원작이 가지고 있는 무휼의 어둡고 복합적인 내면이나, 극 중 캐릭터들 간의 엇갈린 운명을 둘러싼 다채로운 텍스트들을 그리 설득력 있게 흡수하지 못했다.

 

주인공이 미션을 해결하고 다음 스테이지로 넘어가면서 성장하는 RPG 게임식 구성, 대규모 전투 장면, 등장 인물들을 둘러싼 출생의 비밀과 엇갈린 사랑들은 사실 기존의 대하 사극들에서도 한번쯤 보여준 설정들이었다.

 

여기서 <바람의 나라>는 원작만이 가지고 있는 캐릭터와 스토리의 독특한 분위기를 상실하는 우를 범했고, 대중적인 듯하지만 실상은 몰개성한 작품이 되고 말았다. 드라마가 가장 많은 심혈을 기울였던 중반부 대전차 전투 장면이 정작 '글래디에이터'의 모방이 아니냐는 조롱을 받은 것은, 이 드라마의 근본 한계를 그대로 보여주는 대표적 사례라 할만 하다.

 

실제로 원작에서 상당한 비중을 차지하는 후반부 무휼과 호동왕자의 이야기, 한나라와 낙랑군과의 전쟁 등이 지지부진한 스토리 전개에 쫓겨 대거 생략되며 부여와의 전쟁을 소화하는데 그쳤고, 원작의 비극적인 정서가 많이 희석된 것도 <바람의 나라>가 대중적으로 타협하느라 개성을 잃어가는 모습을 보여준다.

 

이 작품이 그나마 <주몽>이나 <대조영>에 비하여 한 가지 나은 것이 있다면, 시청률이나 못다한 이야기 등을 핑계로 무리한 연장방송을 하지 않았다는 정도가 아닐까. 굳이 <주몽>이나 원작의 무게와 비교하지 않는다 할지라도 <바람의 나라>는 걸작의 반열에 오르기에는 2% 아쉬움이 남는 작품으로 기억될 것이다.


태그:#드라마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독자의견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