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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이 내린 일출봉
 눈이 내린 일출봉
ⓒ 전용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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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게 길을 열어주지 않은 야속한 한라산

새벽 4시 반 기상. 오늘(1월 10일) 한라산에 올라갔다가 고흥 녹동으로 돌아가려면 서둘러야 한다. 5시 반까지 아침을 먹고 호텔 앞으로 나왔다. 기사님 얼굴이 미안한 표정이다. 오늘 산에 못 간단다. 눈이 너무 내려서 한라산 가는 모든 도로가 통제되었단다. 지금도 눈이 내린다.

기사님께서는 꼭 산에 가고 싶으면 700미터 정도 되는 오름에 올라가는 것도 괜찮겠느냐고 추천을 한다. 근데 지금은 5시 반. 잠시 쉬었다가 7시에 다시 만나기로 하였다. 어쩌겠어. 겨울 한라산은 나와 인연이 없는가 보다.

호텔로 들어가 쉬었다가 7시에 다시 나왔는데, 중산간도로도 통제되어 오름도 가기 힘들단다. 좌절! 그럼 일출봉은? 그쪽은 눈이 얼마나 왔는지 모르겠지만 가는데 시간이 많이 걸릴 것 같단다. 어떻게든 산 구경이라도 해야겠다.

가자! 일출봉으로

제주 시내를 엉금엉금 빠져나오니 해안도로는 의외로 눈이 쌓이지 않았다. 한라산에 눈을 다 쏟아버려서 그런가? 자꾸만 한라산으로 눈길이 간다. 하지만 보여주지도 않는다. 야속한 산.

모자를 엎어 놓은 것 같은 분화구. 성산 일출봉은 세계자연유산이라는 자랑스러운 표지를 하였다. 많은 등산객들이 한라산 대신 일출봉으로 모였다. 하지만 입구에는 무척 불만에 찬 소리가 들린다. '서울에서 비행기타고 여기까지 왔는데 한라산도 못 올라가게 하고, 일출봉도 못 올라가게 하면 어쩌라고.'

비닐로 눈썰매를 타는 아이들. 추운줄도 모른다.
 비닐로 눈썰매를 타는 아이들. 추운줄도 모른다.
ⓒ 전용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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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출봉 들어가는 입구에 피어있는 갯쑥부쟁이. 너무나 반갑다.
 일출봉 들어가는 입구에 피어있는 갯쑥부쟁이. 너무나 반갑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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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출봉은 눈이 쌓이지 않았지만 바람이 너무 불어 안전사고 위험이 있어 통제한단다. 또 좌절. 별수 없이 해안가나 돌아보자며 들어섰다. 바람이 세차게 불어댄다. 귀를 가리고 모자를 눌러쓴다. 이 와중에도 애들은 추운 줄 모른다. 언덕에서 비닐로 눈썰매 탈 생각이라니….

해안 절벽 위 전망대에서 우도도 바라보고 일출봉의 웅장한 자태도 감상한다. 바닷가에 내려가서 검은 모래도 만져본다. 파도는 너무나 세찬 바람에 일출봉에 도달하기 전부터 물보라를 날리며 부서진다.

일출봉에 오르니 아쉬움은 더하고

바람도 차고 나가야겠다고 생각하고 있는데 통제가 풀렸단다. 이렇게 좋을 수가. 서둘러 올라간다. 올라가는 길은 외국인 관광객들도 많다. 주로 아시아 따뜻한 나라에서 겨울을 즐기려고 찾는 관광객들이다. 아마 세계자연유산으로 지정된 힘이 아닐까 싶다.

일출봉 오르는 길은 전체가 계단길이다. 반듯하게 다듬은 바닥은 눈이 올 때는 무척 미끄럽다. 조금 덜 다듬었으면 좋을 텐데. 가끔은 너무 깔끔한 것보다는 거친 것이 나을 때도 있다. 장군바위의 전설이 서려있는 선돌 같은 바위들이 올라가는 길을 조심하라는 듯 내려다보고 있다.

일출봉 분화구. 세계자연유산으로 지정되어 외국인 관광객도 많이 찾는다고 한다.
 일출봉 분화구. 세계자연유산으로 지정되어 외국인 관광객도 많이 찾는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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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출봉에서 내려본 풍경. 바다 건너 우도가 보인다.
 일출봉에서 내려본 풍경. 바다 건너 우도가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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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상 가까이 가니 바람이 세차게 분다. 통제가 풀린 지 얼마 안 되었는데도 그새 많은 사람들이 올라왔다. 나무 난간에는 많은 사람들이 왕관처럼 생긴 커다란 분화구를 바라본다. 뒤를 돌아보니 아름다운 해안선이 이어지고 빨갛고 파란 지붕들이 이국적인 풍경처럼 다가온다.

한참을 난간에 기대어 구경을 한다. 아쉬움 때문일까? 내려가기가 싫다. 다시 보아도 그 풍경 그대론데, 내려서면 다시 보지 못할 것 같은 미련이 남는다. 내려와 주변식당에서 갈치조림으로 점심을 먹었다. 살이 통통하고 부드럽다.

미로 찾기. 그거 식은 죽 먹기지

어디로 가볼까? 목적지를 잃어버린 떠돌이 신세가 되었다. 얼마 전 TV에 나온 미로공원으로 향했다. 차창 밖으로 제주의 돌담이 구멍을 송송 낸 채 위태롭게 지키고 있다. 무너질까 불안해서 어떻게 저런 담을 쌓을까? 제주사람들의 여유로움일까? 

미로공원은 만장굴 가는 길에 있는데 특별한 시설은 없다. 쉽게 설명하자면 잡지를 보면서 볼펜으로 하던 미로 찾기를 발로 걸어 다니면서 하면 된다. 나무 울타리로 만들어 놓은 미로 가운데에 종을 걸었는데, 종을 치면 게임이 끝나게 된단다. '이 정도야 식은 죽 먹기지.'

미로 속으로. 쉽게 찾을 것 같아도 쉽지만은 않다. 측백나무 울타리 사이로 걷는 기분이 싱그럽다.
 미로 속으로. 쉽게 찾을 것 같아도 쉽지만은 않다. 측백나무 울타리 사이로 걷는 기분이 싱그럽다.
ⓒ 전용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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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에서 내려다 본 미로
 위에서 내려다 본 미로
ⓒ 전용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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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로에 들어서면서부터 혼란은 시작된다. 어디로 갈까? 가면서 계속되는 선택의 순간. 미로는 쉽게 끝나지 않는다. 열심히 갔는데 처음 들어섰던 곳으로 다시 나왔다. 이런! 다시 다른 길로 들어서면서부터 걸음이 빨라진다. 땡! 땡! 땡! 가끔씩 미로를 끝냈다는 종소리가 울린다.

너무 쉽게 생각했을까? 그 길이 그 길같이 보인다. 이 길은 아까 온 것 같은데? 한참을 헤매다가 계단으로 올라서면서 미로는 끝이 난다. 종을 힘차게 친다. 땡! 땡! 땡! 너무나 기쁘다.

제주에서만 부는 바람을 느끼다

제주도까지 와서 바닷가에 가보지 않으면 서운하다. 그래서 돌아오는 길에 모래가 아름답다는 함덕해수욕장에 들렀다. 바다 빛깔이 너무나 곱다. 겨울바람을 잔뜩 맞은 모래해변과 해안선을 따라 이어진 건물들이 바다를 사이에 두고 아름다운 풍경을 만들어낸다.

함덕해수욕장 풍경. 이 추운날에도 애들과 해변을 즐기고 있다.
 함덕해수욕장 풍경. 이 추운날에도 애들과 해변을 즐기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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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다는 파도가 거세다.
 바다는 파도가 거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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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서운 겨울바람은 바다를 그냥 두지 않는다. 세찬 파도가 거세게 밀고 들어온다. 거친 바람은 몸을 가누기 힘들 정도다. 하지만 기분은 상쾌하다. 차가운 바람이 차갑게 느껴지기 보다는 제주도의 바람으로 다가온다.

근데, 바다가 저렇게 우는데 배는 어떻게 타고 가나?

민속자연사박물관도 찾았다. 의외로 볼거리가 많다. 찰흙을 짓이겨 놓은 것 같은 화산석도 보고, 제주의 풍속을 모형으로 전시해 놓은 곳도 재미있다. 우리 주변에서 점차로 사라져버린 생활용품 등을 보면서 옛날 기억도 되살려 본다.

배를 못 가게 해야 되는 거 아니냐고

연안여객터미널에 도착해서 배에 올랐다. 선실에 들어서자 배는 쿵쿵거린다. 정박해 있는데도 파도와 바람은 배를 두드린다. 배가 갈 수는 있으려나?

제주에서 고흥 녹동간을 운항하는 카페리
 제주에서 고흥 녹동간을 운항하는 카페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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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는 서서히 바다를 향해 머리를 돌리고서 항구를 빠져 나온다. 심하게 출렁거린다. 장난이 아니다. 안내방송이 계속 나온다. 될 수 있으면 걸어 다니지 말고 자리에 앉아 있으란다. 배가 심하게 요동을 친다. 앉아있는 채로 그대로 밀려다닌다.

처음에는 재미있기도 했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 내 생각으로는 45도 정도 출렁거리는 것 같다. 드디어 올 것이 왔다. 머리가 어지럽다. 속도 매스껍다. 이거 큰일이다. 참을 만큼 참아본다. 도저히 안 되겠다.

걸어가기도 힘들 정도다. 벽을 부딪치면서 화장실로 향했다. 영화에서 배가 침몰할 때의 광경이 떠오른다. 화장실은 이미 만원이다. 들어갈 곳이 없다. 어떤 분은 무척 불만이다. '바다가 이 정도면 배를 못 가게 해야 되는 거 아니냐고.'

그래도 카페리는 간다. 태풍이 오지 않는 한 뱃길을 다닌다고 한다. 그렇게 한 시간 반 정도 항해하니 출렁거리는 게 조금 덜하다. 아마 다도해로 들어서면서부터 바다가 조금 온순해진 것 같다. 바다는 변덕쟁이. 언제 그랬느냐는 듯 바다위로 커다란 보름달이 은은하게 비추고 있다.

덧붙이는 글 | 제주도 가는 여객선 정보 : 남해고속카페리7호(3,780톤, 1,081명), 고흥 녹동 출발 9:10~13:10/제주 출발 17:10~21:10, 3등 객실 운임 23,000원

미로공원 입장료는 3300원. 아쉬운 것은 입장료에 비해 미로외에는 다른 게 없다는 거.



태그:#제주도, #미로공원, #일출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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