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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등학교 동기들과 신년 산행으로 선자령 원행을 하기로 했다. 선배, 후배들과의 동반 산행으로 계획되었다.

 

1월 11일 산행이 계획된 날인데, 주말이 다가오면서 뉴스마다 난리다. 금요일부터 날이 추워져서 정작 산행일인 일요일은 무지하게 춥단다. 게다가 유독 우리가 오르기 시작하는 곳인 대관령은 영하 20도에 가깝다고 꼬집어 알려준다, 고민된다.

 

충남 아산에 직장을 잡고 내려오기 앞 몇 개월부터 산을 못 갔으니, 거의 반 년만에 가는 산행이 될텐데, 그리 춥다니. 체력적으로 무리가 아닐까 싶기도 하고, 또 내심 추운데 떨 생각을 하니 귀찮아 보이기만 한다. 그래도 며칠 전부터 마누라한테 겨우(?) 허락을 받아 놓았는데, 라는 아쉬움에 토요일 밤 잠자리에 들며 알람을 맞춘다.

 

6시 조금 안 된 시간 알람 소리에 눈을 뜨는데, 또 고민이다, 정말 가야 하는 건가? 왜 그리 이불 안이 따뜻하기만 한지. 겨우 마음을 다 잡고 일어나 물을 데워 보온병 하나를 가득 채우고, 배낭 짊어지고 집을 나선다. 이 놈의 일기예보는 오늘 따라 이리 정확한지, 문을 나서자마자 한기가 후두둑 덮친다.

 

49회 17명, 우리 동기 7명, 그리고 후배들 7명 그렇게 압구정역에 세워진 관광버스를 채우고 대관령으로 향한다. 머피의 법칙인가, 잠 자려고 애를 쓰다 겨우 눈 붙이면, 휴게실에서 쉬어 가자고, 또 다 도착했다고 한다.

 

설 잠에 조금 멍멍한 채로 버스를 내리나, 나오자 마자 맞닿는 바람에 번쩍 정신이 곤두선다. 정말 춥긴 하다, 그런데 이런 추위에도 왜 그리 사람은 많은지? 다들 어디선가 그렇게 모였나 싶다. 아마 게중에는 나처럼 주저하면서 온 사람들도 제법 될 테지만,

 

눈 하나 달랑 내놓게 옷 추스리고, 두툼한 장갑으로 손 가리고 출발한다. 어디선가 모인 그 많은 사람들이 줄 서서 산을 오르는 그 대열에 낀다. 얼마를 오르니 그나마 바람 막아줄 만한 어떤 거 하나 없는 대관령 고원에 선다. 좁은 산행길 한참을 바람 피해 고개 푸욱 숙이고 길게 늘어선 줄 내 앞 사람의 발꿈치만 보고 한참을 걷는다.

 

참 한심하다는 생각이 불쑥 든다. 이 많은 사람이 머 좋다고 바람 맞으며 여기 모여 걷는지 싶고, 그 속에 끼어 있는 내가 우습다. 간혹 반대쪽에서 오는 사람들 덕에 대열은 수시로 멈추는데, 신기하게도 바람은 안 멈춘다.

 

한참을 앞 사람 뒤만 쳐다보고 걷다보니 순간 넓은 벌판이 나오고, 군데 군데 풍차가 돌아가는 우편엽서에서 익숙하게 봐왔던 풍경이 펼쳐진다. 그리고 선자령 정상이 앞 넓은 시야 저 편에 우뚝 서 있다.

 

좁은 길에서 해방된 탓일까, 달랑 몸 하나로 바람을 맞아야만 했기 때문인가, 대열이 흩어지고 사람들이 넓게 퍼지며, 흡사 어느 전쟁 영화의 한 장면이 연상되는 그림이 그려진다.

터덜 터덜 선자령을 향해 걸어가는 군상들, 러시아 벌판의 패잔병들의 걸어가는 듯 한..

 

선자령 정상에 백두대간을 나타내는 큰 비가 하나 서 있고, 어련하련만 그 앞에서 증명 사진 남기는 사람들로 바글거린다. 바람은 시간이 갈 수록 거세지기만 하는데, 흔적을 남기는 것은 여전히 중요한 듯하다.

 

 

손 대면 톡하고 터질 것만 같다는 것이 실감될 정도로 얼굴은 얼어 오는데도, 불쑥 점심은 어디서 먹을 수는 있기는 한 건가 생각이 든다. 추워서 배가 쉬 비었겠지만, 그 바람에도 밥 먹을 생각이 드는 거 봄 사람이 징하긴 한 거 같다.

 

풍차 뒤도 기웃거리고, 바람 피해 밥 먹을 장소를 두리번 거리지만, 이 바람을 피할 곳은 쉽게 안 보인다. 다들 초행인 탓에 누구 하나 조금 가면 밥 먹을 곳이 있다는 말을 못하니 조금 절망스럽기까지 하다.

 

대충 밥 먹기를 포기할 즈음, 보현사쪽 하행길로 접어 드는 언덕을 넘자 마자 신기하게 바람이 없어진다. 조금이라도 평평한 곳에는 사람들로 그득하다. 사람 사는 게 다 이런 거다 싶다. 겨우 한 귀퉁이를 잡아 배낭을 푼다. 양념 절인 불고기도 나오고, 홍어회에 갖가지 먹을 거리가 풍성하다. 몇 명의 수고 덕에 다들 기쁘다. 산행 내내 우리를 괴롭히던 바람 없는 곳에서 털어넣는 소주는 달기만 하다.

 

하산 길, 생각 없이 밀어넣었던 소주 덕에 가파른 하행길이 더욱 긴장된다. 얼어 붙은 눈이 미끄럽기만 한데, 왜 이리 가파른지. 아이젠 묶은 발에 온 신경을 곤두세우고 한 시간 정도를 내려오니 다리가 무겁기만 하다. 보현사를 지나 조금 앞에 세워진 관광버스가 왜 이리 반가운지.

 

오삼 불고기에 황태찜에 소주. 시간이 가면서 자리는 화기애애해지고, 술 털어 넣는 속도는 빨라진다. 빨라지는 속도 만큼이나 선후배의 서먹함이 눈 녹듯 순간 사라지고, 다들 취해간다.

 

맞을 때 힘들기만 했던 칼바람,

눈길에 다리에 힘들여 걸었던 피로,

잠깐이라도 멈추면 덜덜 거렸던 추위,

 

그런 힘듦이 있어 나누는 술잔이 더 맛있고, 그 맛이 있기에 겨울 산행이 즐겁다. 다음 또 겨울 산을 찾을 때쯤이면, 또 오늘처럼 똑같이 주저하면서도 결국 산을 찾게 되겠지.


태그:#선자령, #대관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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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 여행과 느리고 여유있는 삶을 꿈꾸는 사람입니다. 같이 살아가는 얘기를 나누려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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