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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책이름 : 시튼, 방랑하는 자연주의자 (2) 소년과 살쾡이
- 그림 : 다니구치 지로
- 글 : 이마이즈미 요시하루
- 옮긴이 : 김완
- 펴낸곳 : 애니북스 (2007.5.25.)
- 책값 : 8500원

 (1) '자기 삶터'를 사랑한 시튼이 낳은 문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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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니스트 톰슨 시튼(Ernest Thompson Seton) 님이 쓴 글이 좋아서 이분이 쓴 글을 옮겨낸 책을 하나하나 찾아서 읽습니다. 헌책방 나들이를 하면서 일본에서 옮겨낸 이분 책이 보이면 그때그때 집어들어 함께 갖추어 놓기도 합니다. 한 번 읽으면서 얻은 좋은 열매를 두 번 읽으면서 새롭게 받아들이고 세 번 읽으면서 거듭 곰삭입니다. 지난날과 오늘날과 앞날까지, 이처럼 훌륭한 자연생태 문학이 우리한테 베풀어져 있는 일은 더할 나위 없이 고마운 일이 아닌가 하고 생각합니다.

다만, 나라밖 시튼은 나라밖 목숨과 짐승 삶을 알뜰히 엮어 나갔는데, 나라안에서 우리 둘레 목숨과 짐승 삶, 그리고 자연 삶터를 찬찬히 들려주거나 보여줄 만한 분들은 얼마나 되는가 싶어 안타깝습니다.

.. “어디까지 가지?” “페넬론 폴즈의 펜봉에 있는 농장이요.” “호오, 거긴 이제야 사람이 살기 시작한 숲속 아니냐?” “네, 전 도시보다도 숲이 더 좋아요.” “하하하! 너, 재미있는 아이구나.” “그 숲에선 말이죠, 도시에는 없는 새나 동물을 실컷 볼 수 있어요.” ..  (14쪽)

생각해 보면, 이제 와서 우리 나름대로 ‘우리 자연 삶터 이야기’를 엮어내거나 ‘우리 자연 삶터 짐승 이야기’를 써내기란 대단히 힘듭니다. 전국 구석구석에 아파트가 들어서고 도시처럼 바뀌고 공기가 나빠지고 냇물과 바닷물이 더러워지고 있는 판에, 무슨 자연 삶터와 짐승들 이야기를 찾아보겠습니까. 어디에서 범과 곰과 이리와 여우 이야기를 찾아내겠습니까.

이 땅에서는 시튼 님이 펼친 어마어마한 이야기를, 거룩한 이야기를, 놀랍고도 훌륭한 이야기를 써낼 밑거름이 없습니다. 틀림없이 없습니다.

다만, 시튼 님이 쓴 글이 왜 어마어마하고 거룩하며 놀랍고도 훌륭한가를 읽어낼 수 있다면, 모자라고 아쉬우나마 우리 깜냥껏 ‘우리 자연 이야기’와 ‘우리 짐승 이야기’를 펼칠 수 있어요.

시튼 님은 캐나다 북부 드넓은 자연에서 너르고 깊은 넋을 받아먹을 수 있었습니다만, 우리들은 우리 땅에서 우리 가까이에 있는 자연을 껴안으면서, 이 나름대로 너르고 깊은 얼을 받아안을 수 있습니다. 도시 골목길에 있는 길고양이와 길개를 보면서(시튼 님은 <뒷골목 고양이>를 쓰기도 했습니다) 사람과 자연과 짐승이 얽힌 고리를 파헤칠 수 있습니다. 도시에서 흔히 보는 비둘기와 참새, 그리고 시골에서 언제나 보는 까치와 어치와 까마귀 들 한삶을 살펴볼 수 있습니다.

고속도로나 지방도로와 국도에서 차에 치여 죽는 길짐승 한살이를 돌아볼 수 있습니다. 농사꾼을 애먹이는 날다람쥐와 멧돼지를 들여다볼 수 있습니다. 군부대 짬통을 뒤지는 독수리를 찾아볼 수 있습니다. 낡은 집 틈새에서 살아가는 바퀴벌레를 좇을 수 있고, 거의 모두 사라졌다고 할 만한 시궁쥐나 새앙쥐를 찾아볼 수 있습니다.

.. 처음에는 혼자서 숲속을 걷는 것이 무서워서 톰의 도끼 소리가 들리지 않는 안쪽으로는 가지 않았지만, 조금씩 숲에 익숙해지자 안쪽으로도 들어갈 수 있게 되었다. 소년 시튼의 목적은 숲의 동물들을 죽이는 것보다 동물들을 좀더 잘 알게 되는 것이었다  ..  (44쪽)

모든 이야기는 우리 곁에 있습니다. 시튼 같은 분 곁에는 ‘너르고 깊은 자연’이 있었을 뿐입니다. 시튼 같은 분 곁에 도시만 있었다면, 이분은 틀림없이 도시 이야기를 썼으리라 생각합니다. 다만, ‘도시에서 사람한테 짓눌려 있는 자연’이나 ‘도시에서도 사람과 어우러져 살아가는 자연’이나 ‘도시 한쪽 귀퉁이에서 조용히 웅크리는 자연’을 찾아나섰겠지요. 아니, 시튼 같은 분 눈길에는 이러한 자연이 한결같이 보였을 테며, 언제나처럼 이 자연을 품에 안고 아끼고 보듬었으리라 생각합니다.

.. “(숲속 오두막에서) 혼자 쓸쓸하지 않았어?” “아, 쓸쓸하지는 않았어. 오히려 무서운 건 그 숲이 모르는 사람들에게 어지럽히는 거였지. 그래서 계속 비밀로 해 뒀어.”  ..  (165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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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튼 님은 시튼 님 삶을 꾸밈없이 바라보고,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며, 수수하게 펼쳐 보인 대목에서 대단하다고 여겨야 하지 않으랴 싶습니다. 자연 이야기를 ‘대서사시’로 보여주어서 대단한 시튼 님이 아니라, ‘자기 곁에 있는 아름다운 모습’을 놓치지 않고 잡아채면서 자기 이웃으로 삼고 언제나 사랑하고 아낀 대목에서 대단하며 훌륭한데다가 놀랍고 아름답다고 보아야 하지 않으랴 싶어요.

우리한테는 없는 어떤 대단한 모습을 찾은 시튼 님이 아닙니다. 우리한테도 늘 곁에 있으나 우리들은 찾아내지 못하고 느끼지 못하고 바라볼 줄 못하는 빈자리를 아낌없는 사랑과 그윽한 믿음으로 먼저 손길을 내밀면서 북돋워 준 시튼 님이라고 봅니다.

.. 식량을 잡지 못한 날은 젖이 나오지 않기 때문에 새끼들은 구슬픈 목소리로 울어댔다. 살쾡이는 어떻게든 살아남기 위해 애썼다. … 시튼은 주저했다. 바로 옆에 총을 겨눈 인간이 있는데도 (살쾡이) 새끼들은 천진하게 놀고 있다. 도저히 쏠 마음이 생기지 않았다. 시튼은 마음을 다잡으려 했다. 바로 어제 있었던 일을 떠올렸다. 이 새끼들도 언젠가 자라면 닭을 훔치게 될지도 모르는 일이다. … 그곳에는 옆구리에 부러진 작살이 박힌 살쾡이의 시체가 있었다. 두 마리의 새끼가 어미의 젖을 빠는 것처럼 달라붙은 채로. 1875년 여름, 15세의 시튼이 펜봉의 숲에서 맛본 이 강렬한 사건은, 그의 생애에 있어 결코 잊을 수 없는 무거운 경험으로 각인되었다 ..  (26, 88∼89, 267쪽)

입시지옥이 되어 버린 대입 제도를 비판하는 사람이 많습니다. 그러나 이 입시지옥을 고치고자 제 몸을 바치는 사람은 아주 드뭅니다. 입으로는 대안을 말하는 듯 보이지만, 정작 자기 스스로도 아이들을 교과서 외우는 데로 내몰고, 자율학습이 자율이 아닌 외우기일 뿐임에도 아이를 지켜 주지 않을 뿐더러 잘못된 교육을 쑤셔넣는 교사를 일깨우지 않는 한편 비틀린 교육 얼거리를 고치고자 소매 걷고 나서지 못합니다. 글로는 세상에 둘도 없이 멋진 생각을 보여주지만, 막상 자기 앞에 아이들 사교육 문제가 닥치게 되면 그냥저냥 학원에 넣고 입시공부 시켜서 일류대학이라는 데에 집어넣고 있습니다.

아이를 낳아 기르기 앞서까지는 엄마젖을 먹이고 천기저귀 빨아서 쓰고 생협에서 깨끗한 먹을거리를 마련해 주고 예방주사 문제도 꼼꼼히 알아보고 어쩌고저쩌고 하다가도, 응애응애 아기가 태어나고 보면 하루가 하루가 아닐 만큼 정신없다 보니 이것저것 잊고 잃으며 에라 모르겠다가 되어 버리고 있습니다.

스스로 헤쳐 나가지 않습니다. 스스로 찾고 밀어붙이지 못합니다. 스스로 느끼며 바꾸어 나가지 않습니다. 스스로 받아들여 새로워지지 못합니다.

.. 시튼은 나침반과 태양, 주위 경치의 특징을 이정표 삼아 걸었다 ..  (75쪽)

우리 삶이라지만 그다지 우리 삶이라는 느낌이 들지 않습니다. 우리 삶이면서도 우리 힘으로 우리 스스로 가꾸거나 돌본다는 생각이 들지 않습니다. 우리 삶이라는데 우리 눈과 귀와 머리와 입으로 돌아보거나 헤아리지 못하고, 다른 삶을 우러러보거나 좇아가기에 바쁩니다.

자기 삶을 사랑해야 제대로 된 문학이 나오고, 자기 삶을 믿어야 제대로 된 이야기가 엮이며, 자기 삶을 자기 손으로 돌보아야 아름다운 문학으로 다시 태어나는데, 우리들은 우리 삶을 우리 스스로 일구어 가지 못합니다. 도토리 키재기마냥 다른 이가 버는 만큼은 나도 벌고 싶고, 다른 이가 물질문명 누리는 만큼 나 또한 물질문명 누리고 싶으며, 다른 이가 가진 학력과 연줄만큼 나 또한 학력과 연줄을 움켜쥐기에 바빠, 문학 또한 나라밖에서 사들이기에 바쁩니다.

속그림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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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 만화로 만나는 <시튼>

어니스트 톰슨 시튼이라고 하는 분이 쓴 '짐승 이야기(동물기)' 번역책을 하나씩 사들이며 읽는 맛은 놀랍도록 맑고 싱그럽고 기쁩니다. 그러나 시튼 님 책은 채 열 가지도 옮겨져 있지 않기 때문에, 이 책을 금세 다 읽으면 더는 읽을거리가 없어서 천천히 아끼면서 하나하나 읽었습니다. 처음 읽던 때 뭉클함과 짜릿함을 떠올리며 두 번 세 번 거듭 읽을 수도 있으나, 어쩐지 시튼 님 ‘짐승 이야기’는 처음 읽었을 때 들었던 느낌을 고이 간직하면서, ‘내가 사는 이 나라 이 땅에서 부대끼거나 어울릴 자연이란 무엇인지를 돌아보기도 하고, 이곳에서 내 이웃인 뭇 목숨붙이를 만나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이러는 가운데 마침, 시튼 님이 꾸렸던 삶을 돌아보도록 하는 만화책 <시튼>을 만납니다.

.. “그때 난 잘 알고 있었어. 숲속에 집을 가지는 것이 숲과 친해질 수 있는 가장 좋은 방법이라고. 풀과 나무, 새와 벌레들, 언제든 동물들의 소리를 들을 수 있었지. 아아, 나는 얼마나 행복한 사람일까, 그렇게 생각했어.” ..  (179쪽)

일본판 "시튼 이야기" 네 권. 헌책방 나들이를 하면서 만난 책입니다.
 일본판 "시튼 이야기" 네 권. 헌책방 나들이를 하면서 만난 책입니다.
ⓒ 최종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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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만화를 보는 내내 그리 즐겁지 않습니다. 만화에 담긴 시튼 님 발자취나 매무새나 이야기는 새록새록 느껴지면서 파고들지만, 만화결은 영 맞갖지 않다고 할까요. 그린이 다니구치 지로 님은 붓끝을 함부로 놀리지 않았을 뿐더러, 꼼꼼히 살피고 알아보면서 그림을 담아냈으리라 생각합니다. 그렇지만, 살쾡이나 사슴이나 다른 숲속 짐승들 모습은 어딘가 어설프다고 느껴집니다. 짐승들 모습을 워낙 많이 그려야 하는 시튼 님 이야기이니 그린이로서도 훨씬 더 애쓰고 추스르고 다독였을 테지만, 자연스러움이나 부드러움을 느끼기 어렵습니다.

사람 그림과 짐승 그림은 다르며, 사람 매무새와 짐승 매무새는 다릅니다. 사람을 그릴 때 머리카락과 눈코귀입과 손가락 발가락과 발목과 손목과 팔꿈치와 어깨 들을 하나하나 제대로 가누면서 그려야 하듯, 짐승을 그릴 때 털과 등허리와 다리와 발톱과 눈코귀입과 꼬리 들을 하나하나 빈틈없이 살피면서 그려야 합니다. 걷는 사람을 그릴 때 대칭과 균형이 어그러지지 않도록 담아내야 하듯, 뛰는 짐승을 그리고, 사냥하는 짐승을 그리며, 으르렁거리는 짐승을 그리거나, 새끼한테 젖물리는 짐승을 그릴 때 대칭과 균형은 모두 다르면서 ‘사진과는 또 다른’ 그림결다운 그림 대칭과 균형을 찾아서 담아야 합니다.

이제까지 다니구치 지로 님이 그려낸 여느 ‘사람 살아가는 이야기’ 다룬 만화와는 다른 ‘짐승과 자연 삶터가 함께 어우러지는 이야기’입니다. 작품성과 완성도를 보자면 무척 높은 점수를 줄 만합니다만, 다른 이야기도 아닌 ‘시튼 이야기에 바탕을 둔 만화’이기 때문에, ‘만화로 담는 시튼 삶’이라면, ‘시튼이 자연을 함께하며 들여다본 눈과 부대낀 몸’이 ‘만화로 담아내는 이 나름대로 곰삭이는 흐름 못지않게 시튼이라고 하는 삶자락을 깃들어 넣도록’ 해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러지 않고서야 굳이 ‘시튼 삶’을 만화로 그려낼 까닭이 없을 테지요.

.. “아마, 엄마는 알면서도 모르는 척해 주신 게 아닐까 해. 만약 아버지가 아신다면 회초리 세례를 받아야 하니까. 숲에서 노는 거나 동물 관찰은 무조건 금지였거든. 아버지는 자연주의자나 박물학자 따윈 살아가는 데 아무 도움도 안 된다고 하셨어.” ..  (173쪽)

시튼은 자기가 쓴 책에 거의 모든 쪽마다 그림을 하나씩 집어넣었습니다. 시튼은 어린 날 화가 공부를 하기도 했지만, 자연을 쏘아죽여서 모으는 박물학자보다, 그림으로 담아서 가지고 있는 자연주의자 길을 걸었던 사람입니다.
 시튼은 자기가 쓴 책에 거의 모든 쪽마다 그림을 하나씩 집어넣었습니다. 시튼은 어린 날 화가 공부를 하기도 했지만, 자연을 쏘아죽여서 모으는 박물학자보다, 그림으로 담아서 가지고 있는 자연주의자 길을 걸었던 사람입니다.
ⓒ 최종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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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튼 님은 당신이 겪은 삶을 이야기로 엮어내면서, 책 한 쪽마다 작은 그림을 하나씩 집어넣었습니다. 시튼 님은 ‘자연주의자’나 ‘박물학자’이기 앞서 ‘그림을 그리는 사람’이었고, 그림 가운데에서도 ‘자연을 그리는 사람’이었어요. 그래서 시튼 님 이야기에서는 글과 함께 그림을 보는 즐거움이 넘쳤고, 시튼 님 그림은 깔끔하면서도 웃음이 묻어났습니다. 만화처럼 그리지 않았으나 만화 같았던 시튼 님 그림이고, 정물화처럼 그리지 않았어도 정물화와 다를 바 없던 시튼 님 그림이었으며, 풍경화처럼 그리지 않았어도 멋진 풍경화로 느껴졌습니다.

아쉽지만, 다니구치 지로 님은 이런 시튼 님 그림결을 함께 곰삭이면서 만화책 <시튼, 방랑하는 자연주의자>를 그려야 하지 않았으랴 싶습니다.

그래도, 이 만화 <시튼, 방랑하는 자연주의자>는 훌륭하게 잘 그렸고, 이제까지 나온 ‘다시 풀어낸’ 시튼 이야기 가운데 돋보이는 작품입니다. 별 다섯 만점에서 다섯을 줄 수 없을 뿐이지, 훌륭한 작품입니다.

덧붙이는 글 | 글쓴이 인터넷방이 있습니다.

[우리 말과 헌책방 이야기] http://hbooks.cyworld.com
[인천 골목길 사진 찍기] http://cafe.naver.com/ingol
[작은자전거 : 인천+부천+수원 자전거 사랑이] http://cafe.naver.com/inbusu



시튼 1 - 방랑하는 자연주의자, 늑대왕 로보

다니구치 지로 지음, 이마이즈미 요시하루 스토리, 애니북스(2006)


태그:#만화, #만화책, #시튼, #책읽기, #환경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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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말꽃(국어사전)을 새로 쓴다. <말꽃 짓는 책숲 '숲노래'>를 꾸린다. 《쉬운 말이 평화》《책숲마실》《이오덕 마음 읽기》《우리말 동시 사전》《겹말 꾸러미 사전》《마을에서 살려낸 우리말》《시골에서 도서관 하는 즐거움》《비슷한말 꾸러미 사전》《10대와 통하는 새롭게 살려낸 우리말》《숲에서 살려낸 우리말》《읽는 우리말 사전 1, 2, 3》을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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