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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고사 대신 체험학습을 선택할 권리를 존중했다는 이유로 해직당한 6명의 초등학교 교사와 해당 반 학생들이 참여한 '치유와 소통을 위한 고양이 캠프'가 9일 경기 가평 두밀 수련원에서 열렸다.
 일제고사 대신 체험학습을 선택할 권리를 존중했다는 이유로 해직당한 6명의 초등학교 교사와 해당 반 학생들이 참여한 '치유와 소통을 위한 고양이 캠프'가 9일 경기 가평 두밀 수련원에서 열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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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생님. 저 키 컸어요. 이제 선생님보다 크죠?"
"야. 원래 넌 나보다 더 컸잖아. 일루 와봐."

9일 오전 가평 눈썰매장. 최혜원 길동초 교사가 반 아이와 함께 키를 재며 웃음을 터뜨렸다. 조금 떨어진 곳에 있는 한 여자아이는 "박수영 선생님 나쁘다, 우리만 놔두고 눈썰매 타러 갔다"며 애꿎은 눈썰매를 땅에 땅땅 내리쳤다. 설은주 유현초 교사는 아이들의 눈덩이 세례를 피해 다니기 바빴다.

일제고사 대신 체험학습을 할 수 있는 선택권을 줬다가 지난 12월 파면·해임된 6명의 초등학교 교사들은 간만에 만난 아이들과 연방 웃음꽃을 터뜨렸다. 

해직교사들과 아이들의 '1박 2일' '치유와 소통을 위한 고양이 캠프‘가 9일 오전 경기 가평 두밀 수련원에서 열렸다. 해직교사들의 반 학생만이 아니라 학생들의 동생들도 캠프에 함께 왔다. 학부모, 동료 교사, 후원 시민까지 합치면 캠프 주최 측이 예상한 인원을 훌쩍 넘어 약 120여명이나 됐다.

스승과 제자들의 쉽지 않았던 1박 2일... "그래도 막상 보니 행복해지네요"

일제고사 대신 체험학습을 선택할 권리를 존중했다는 이유로 해직 당한 교사들이 9일 가평 눈썰매장에서 학생들과 함께 눈썰매를 타고 있다.
 일제고사 대신 체험학습을 선택할 권리를 존중했다는 이유로 해직 당한 교사들이 9일 가평 눈썰매장에서 학생들과 함께 눈썰매를 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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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생들과 함께 공동체 놀이를 즐기고 있는 박수영 거원초 교사. 그는 지난 12월 일제고사 대신 체험학습을 선택할 권리를 존중했다는 이유로 해임당했다.
 학생들과 함께 공동체 놀이를 즐기고 있는 박수영 거원초 교사. 그는 지난 12월 일제고사 대신 체험학습을 선택할 권리를 존중했다는 이유로 해임당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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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사들과 아이들의 방학 캠프가 순탄치만은 않았다. 교사들을 잘라낸 학교는 가정통신문, 문자메시지 등을 동원해 아이들의 캠프 참가를 막으려 애썼다.

거원초등학교 학교장은 지난 6일 "평시는 물론이고 방학 중이라도 학생들이 단체로 어떤 모임이나 캠프에 참가할 경우 사전에 학교장의 승인을 받아야 한다"며 "학부모께서는 가족들 간에 이뤄지는 개별 행사가 아닌 행사에 학교장의 사전 승인 없이 학생들을 동원하는 일이 없도록 지도편달 부탁드린다"고 했다.

파면된 윤여강 교사네 학생들은 이날 캠프에 아무도 오지 못했다. 광양중학교장은 직접 윤 교사네 반 학부모 모두에게 문자메시지를 보내 참가를 막았다. 결국 몸과 마음이 심하게 다친 윤 교사는 이날 캠프에 오지 않았다.

김윤주 청운초 교사도 이날 "이렇게 힘든 상황에서 아이들 앞에서 정말 행복한 모습을 보여줄 수 있을까 부담이 됐다"고 토로했다. 김 교사는 "게다가 이제 "이제 담임교사도 아닌데 학부모들과 아이들에게 직접 연락하기도 부담스러웠다"며 "물론 연락을 하면 발 벗고 나서실 분들도 있다. 하지만 그 분들께 부담을 지우는 것 같기도 했다"고 말했다.

하지만 김 교사는 "아이들을 막상 보니 자연스럽게 행복해지더라"며 "적어도 즐겁게 마무리하자는 생각이다"고 덧붙였다.

"지금은 즐겁지만 마음의 상처는 교단에 다시 서기 전까지 남아있을 것"

학생들과 공동체 놀이를 하고 있는 설은주 유현초 교사. 그는 지난 12월 일제고사 대신 체험학습을 할 권리를 존중했다는 이유로 해임 당했다.
 학생들과 공동체 놀이를 하고 있는 설은주 유현초 교사. 그는 지난 12월 일제고사 대신 체험학습을 할 권리를 존중했다는 이유로 해임 당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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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의 말처럼 교사들과 아이들은 정말 즐겁게 놀았다.

강당에서 열린 공동체놀이 때는 마룻바닥이 들썩들썩 울렸다. 아이들은 바닥에 미끄러지고 발에 걸려 넘어져도 금방 일어나 다시 뛰어다녔다. 진행자가 놀이 규칙을 찬찬히 설명해줘도 아이들은 자기 식대로 규칙을 바꿔서 소란스레 강당을 누볐다. 이날 오후 늦게 캠프에 도착한 한홍구 성공회대 교수는 이런 아이들을 보고 "대학 교수 되기 잘했다"며 웃음을 터뜨렸다.

해직교사들도 '아이'가 돼 버렸다. 서로 손바닥을 부딪치고 춤을 추며 아이들과 함께 땀을 흘렸다. "그러다 쓰러지겠다"고 농을 건네니 최혜원 교사는 숨을 몰아쉬는 와중에도 "아직은 괜찮다, 아이들이랑 맨날 이렇게 논다"며 미소 지었다.  

하지만 그렇게 웃는 게 다가 아니다. 교단에서 밀려난 지 벌써 3주가 흘렀다. 인터뷰, 기자회견, 시교육청 앞 농성으로 바쁜 나날을 보내면서 교사들의 몸은 많이 축난 상태였다. 이날 캠프에 도착한 김윤주 교사도 심한 독감을 앓고 있었다. 송용운 선사초 교사는 전날 밤샘 농성을 진행하느라 면도도 제대로 못해 더욱 초췌해 보였다.

송 교사는 "우선 이 1박 2일 동안 아이들과 즐겁게 보내자는 생각이지만 단지 일제고사를 안 볼 권리가 있다는 것을 알려줬다는 이유만으로 파면·해임된 교사들에게 마음의 상처는 계속 남아있을 수밖에 없다"며 "이 상처는 다시 교단에 서기 전까지 회복되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공동체놀이에 이어 진행된 '마음 핥아주기' 치유연극 때, 송 교사의 말처럼 회복되지 않은 그들의 생채기는 고스란히 드러났다. 아이들과 두 손을 맞잡고 조용히 눈을 감고 있던 최혜원 교사는 결국 흐느꼈고, 언제나 미소 짓던 박수영 교사도 말을 하지 못하고 안경을 벗고 눈가를 문질렀다. 간간히 아이들의 훌쩍거림도 들렸다.

서로 보듬으며 상처 치료하는 스승과 제자들... 하늘 위로 소원 태워 올려

일제고사 대신 체험학습을 선택할 권리를 존중했다는 이유로 해직 당한 교사들과 학생들이 9일 경기 가평 수련원에서 열린 '치유와 소통을 위한 고양이 캠프'의 캠프파이어를 하고 있다.
 일제고사 대신 체험학습을 선택할 권리를 존중했다는 이유로 해직 당한 교사들과 학생들이 9일 경기 가평 수련원에서 열린 '치유와 소통을 위한 고양이 캠프'의 캠프파이어를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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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처는 서로 핥아주고 보듬으며 치료했다.

최 교사가 눈물을 흘릴 땐 손을 맞잡고 있는 학생이 그의 등을 조용히 쓸어내렸다. 초췌했던 송 교사의 얼굴은 "선생님 우리 다 잘 지내고 있으니 걱정 말고 학교에 어서 돌아오시라"는 제자의 말에 미소가 피어났다.

밤 11시 스승과 제자들은 한 가운데 모닥불을 피워 놓고 강강술래를 돌며 다시 기운을 회복했다. 그리고 한지에 소원을 담아 불태워 하늘로 날려 보냈다.

청운초 6학년 4반 차아무개(13)양은 "제가 한 선택이 헛되지 않았기를, 내가 진심으로 바라는 것은 모두 이뤄졌으면, 그리고 우리 선생님 징계가 철회돼서 언젠가 같이 공부할 수 있기를 빌었다"고 말했다.

다른 아이들의 소원도 똑같았다. 자신들이 선생님으로부터 다시 수업을 받진 못했지만 교단에 선 교사들을 다시 만나기를 바라는 마음은 같았다. 캠프파이어를 마친 이후 스승과 제자들은 서로의 소원이 이뤄지길 빌며 식혜가 담긴 잔을 부딪쳤다.

해직교사 격려방문한 핀란드 교수, "여러분께 경의 표한다"

경제협력개발기구의 학업성취도 조사(PISA·피사)의 프로젝트매니저인 핀란드 이베스킬레 대학 요우니 봘리예루뷔(Jouni Valijarvi) 교수와 안승문 전 서울시교육위원이 9일 오후 일제고사 대신 체험학습을 선택하는 것을 존중했다는 이유로 해직 당한 6명의 초등학교 교사들과 아이들이 참가한 '치유와 소통의 고양이 캠프'를 격려 방문했다.
 경제협력개발기구의 학업성취도 조사(PISA·피사)의 프로젝트매니저인 핀란드 이베스킬레 대학 요우니 봘리예루뷔(Jouni Valijarvi) 교수와 안승문 전 서울시교육위원이 9일 오후 일제고사 대신 체험학습을 선택하는 것을 존중했다는 이유로 해직 당한 6명의 초등학교 교사들과 아이들이 참가한 '치유와 소통의 고양이 캠프'를 격려 방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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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고사 대신 체험학습을 선택하는 것을 존중했다는 이유로 해직 당한 6명의 초등학교 교사들과 아이들이 참가한 '치유와 소통의 고양이 캠프'에 이날 수많은 이들의 '격려'가 이어졌다. 한홍구 성공회대 교수, 김정헌 전 문화예술위원장 등이 캠프를 찾았고 동료 교사들과 학부모들이 보내온 귤 박스가 쌓여만 갔다.

특히 경제협력개발기구의 학업성취도 조사(PISA·피사)의 프로젝트매니저인 핀란드 이베스킬레 대학 요우니 봘리예루뷔(Jouni Välijärvi) 교수와 안승문 전 서울시교육위원도 이날 캠프장을 찾아와 해직교사들을 격려했다.

요우니 팔리알루뷔 교수는 "핀란드에는 일제고사와 같은 국가시험이 있긴 하지만 철저하게 6~7% 표집만을 활용한 연구용으로 쓰인다"며 "이런 일이 벌어질 수 있다는 것이 이해가 되지 않고 참으로 유감이다"고 말했다.

그는 또 "많은 나라에서 '경쟁'을 통해 학생들의 교육성취를 높이려고 하지만 그보단 교사 연수 및 자료제공에 힘쓰는 게 더 올바른 방식이라고 생각한다"며 "(해직교사들이)올바른 교육에 대한 소신을 몸소 행한 것에 대해 경의를 표한다"고 밝혔다.

현재 스웨덴 웁살라대학 객원연구원으로 북유럽 국가의 선진 교육을 연구하고 있던 안 전 위원은 "생선이나 육류도 상·중·하 세 가지로만 구분하는데 사람을 0단계부터 100단계까지 나눠서 평가하겠다는 발상은 있어서는 안 될 것"이라며 "여러분과 같은 교사가 있기 때문에 아직 한국 교육의 희망이 있다"고 말했다.

안 전 위원은 이어, "여러분들이 반드시 교단에 다시 서리라는 것을 믿는다"며 "저도 그를 위해 함께 할 것이고 여러 사람들의 동참을 호소하겠다"고 약속했다. 


태그:#일제고사, #해직교사, #방중캠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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