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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육 당국은 '국가수준의 전국 학업 성취도 평가'라고 부르지만 대부분의 언론들과 국민들이 '일제고사'라고 부르는 시험이 지난해 일제히 실시되었다. 학부모들에게 일제고사에 대해 설명하고 시험 당일날 체험학습을 허락했다는 이유로 서울에서만 7명의 교사들이 파면·해임 당했다. 또 다른 한 교사도 오는 20일 징계위원회를 앞두고 있으며 강원도와 전북에서도 또 다른 교사들이 파면과 해임을 앞두고 있다.
 
당국은 미국과 영국을 비롯해 세계 모든 나라들이 이런 전국단위 일제고사를 의무적으로 실시하고 있고 이를 통해 교육 질 향상을 꾀하고 있다고 주장하고 있는데, 과연 그럴까? 다른 나라 사례들을 조금만 살펴보면 정부의 이런 주장이 모두 의도된 거짓이거나 잘못된 사실관계에 기초하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미국] 주·교육구 단위 일제고사 존재... 희망 안 하면 면제
 

미국은 아들 부시가 집권한 2001년 '낙제학생 방지법(NCLB)'을 도입한 이후 일제고사(Statewide and Districtwide Assessments, Standardized Testing and Reporting(STAR))를 주 또는 교육구별로 실시하고 있다. 별도의 학력평가나 전국 단위 사설 시험을 치러 그 결과를 공개하고 성적에 따라 지원을 차등하는 등 경쟁을 유도하고 있었다. 그러나 오바마 대통령 당선자는 교육에 경쟁을 지나치게 도입한 전국 일제고사와 같은 제도를 비판적으로 바라보고 있다.

 

그런데 미국은 우리와 근본적으로 다르다. 미국의 일제고사 격인 표준화 시험(Standardized Test and Research, STAR)은 학부모가 시험 보는 것을 원하지 않을 경우 학생에게 선택권을 준다. 미국 각 주에서는 일제고사를 치르기 전에 학부모에게 시험에 참가하지 않을 권리가 있음을 알리고 선택권을 부여하고 있으며, 시험에 참가하지 않은 학생에게 어떤 불이익도 주지 않는다.

 

특히 일제고사 시행 지침에 이를 명시하고 있는데, 우리나라와는 반대로 오히려 이런 선택권을 학부모에게 안내하지 않은 학교나 교사가 법을 어기는 셈이다. 우리나라 일제고사의 모델이라는 미국에서조차 일제고사 참가는 의무가 아니라 학생 선택이었다.

 

[영국] 전국 단위 일제고사 존재... 성적 공개 거부권 행사 가능

 

우리 정부가 일제고사의 정당성을 이야기할 때 미국과 더불어 가장 많이 예를 드는 나라가 영국이다. 영국도 대처의 보수당 정부 이래로 전국적인 또는 지역 단위 일제고사(A-level, GCSE 등)를 치고 그 결과를 학교 순위표(league table)로 만들어 공개하고 있다. 이에 따라 학교 교부금을 차등 지원하고 교사들 인사에도 반영한다.

 

그러나 일제고사 성적을 잘 받아야 한다는 압박이 워낙 심하다 보니, 교사가 학생 성적을 조작하는 등의 불미스러운 사건이 횡행했다. 이런 부정 사건이 2000년에 147건, 2005년에는 600여 건이 발생해 사회적 폐해로 지적되기도 했다. 경쟁을 중시하는 정책, 이른바 '3T(목표치(targets), 일제고사(tests), 학교순위표(tables))'가 교육양극화와 학교서열화를 가속화하고 교육의 획일화를 가져왔다는 비판이 제기되고 있다.

 

영국의 <타임스> <가디언> <데일리메일> 등의 2008년 4월 29일자와 8월 22일자 기사 등에 의하면, 이런 일제고사의 폐해에 반대하여 영국의 10대 명문사학에 속한다는 이튼, 세인트폴 등 61개의 사립학교가 시험 성적 공개를 거부해, 이 학교들은 빼고 학교 순위표를 만들어 공개했다. 즉, 전국단위 일제고사라고 하더라도 학교 차원의 선택권을 보장하고 있다는 것이다. 하지만, 성적공개를 거부했다고 해서 학교와 교사를 징계했다는 소식은 찾아볼 수 없다.

 

흥미로운 것은 우리나라의 교장들은 일제고사 반대 교사들을 파면·해임하고 아이들과 교사들의 만남마저 가로막았는데, 영국에선 교장이 먼저 일제고사의 문제점을 지적하고 일제고사 성적 제출과 공개를 거부하는 데 앞장서고 있다는 점이다.

 

[일본] 2007년 부활했지만, 시험 거부 선택권 있음

 

일본에선 1964년에 일제고사가 사라졌다. 이후 43년 만인 2007년에 부활했고 지난해 4월 제2회 전국학력·학습상황조사(문부과학성 주최)를 시행했다. 전국 초등학교 6학년과 중학교 3학년 전체가 국어와 산수·수학 두 과목 시험을 일제히 치른 것.

 

일제고사가 처음 부활한 2007년엔 거의 모든 국공립학교가 이 시험에 참가했으나 아이치현 이누야마 교육위원회는 시의 교육 철학과 맞지 않는다는 이유로 산하 학교 모두 시험에 불참토록 했다. 이누야마 시교육위는 2008년에도 이 시험에 참가하지 않았다. 사립학교의 경우 전체의 절반을 약간 넘는 53%인 475개 학교가 참가해 2007년의 61%에 비해 크게 밑돌았다(문부과학성의 발표 참고).

 

즉, 일본에서도 전국 단위 일제고사가 2년 전부터 실시되고 있지만 교육위원회(우리 나라로 치면 교육청 단위)가 전체적으로 시험 참가를 거부한 것. 하지만 어떤 교육위원장도, 어떤 교장도, 어떤 교사도 처벌받지 않았으며 사립학교의 경우 절반 정도가 응시 자체를 하지 않고 있다. 그런데 우리 나라는 국공립학교, 사립학교를 막론하고 일제고사를 반대하였다는 이유로 교사들을 집단적으로 해고하고 있다.

 

[프랑스] 전국 단위 일제고사 없음... 대학입학 자격 시험도 선택

 

프랑스엔 모든 학생들이 의무적으로 참가하는 국가 단위의 일제 고사가 존재하지 않으며, 대학입학자격시험(중등졸업자격시험)인 바깔로레아 역시 개인의 선택에 따라서 치지 않을 수도 있다.

 

우리의 일제고사와는 완전히 개념이 다른 시험이다. 이 시험 결과를 기준으로 학교 순위를 매겨 성적을 공개하거나 전국적인 개인 석차를 매기거나, 성적을 공개하는 일 따위는 없다.

 

[핀란드·스웨덴 등] 일제고사 없음

 

요즘 우리나라에도 많이 소개되어 익히 알고 있는, 세계에서 가장 공부를 잘 한다는 핀란드는 어떨까? 물론 없다. 핀란드, 스웨덴과 같은 북유럽의 나라들에는 일제고사라는 제도 자체가 없다.

 

교사만이 자신이 가르친 학생을 평가하는 것이 사회적으로 합의된 원칙이기 때문에 국가 수준에서 실시하는 의무적 공통 학력 시험의 필요성을 느끼지 못하여 이런 개념 자체가 존재하지 않는다.

 

[대한민국] 학생·교사에 일제고사 강요하는 유일한 나라

 

우리나라는 그동안 표집학급과 표집학생을 대상으로 학업 성취도 평가를 해왔다. 그러다가 MB정권 출범과 함께 모든 학생과 학교가 의무적으로 참가해야 하는 전국 단위 일제고사가 부활했다.

 

우리나라는 전국 단위 일제고사를 모든 학생, 모든 학교를 대상으로 동시에, 같은 문제로 의무적으로 보게 하는 세계에서 거의 유일한 나라다. 다른 나라들도 전국단위 일제고사를 의무적으로 실시하고 있다는 정부 주장과 달리, 일제고사에 참가하지 않겠다고 신고한 학생들까지 모두 무단 결석 처리하고, 선택권을 허용한 교사들을 파면·해임하는 나라는 전 세계 어디에서도 찾아보기 힘들다.

 

지난 1월 5일 미국 <LA 타임스>에 "Tioga High students push to recall school board"란 제목의 재미있는 기사가 났다. 미국 캘리포니아 주 고교 학생들이 존경하는 교사를 쫓아낸 교육위원회 위원을 전원 퇴출하기 위한 소환 투표를 사실상 성사시켜 지역 사회에서 화제가 된 것.

 

이 기사에 따르면, 캘리포니아 주 요세미티국립공원 근처의 빅오크플랫-그로브랜드 통합교육구 교육위원회(우리나라의 교육청에서 교사 징계를 하는 것과 달리 미국에서는 교육구 교육위원회가 한다)가 지난해 9월 티오가 고교의 수학교사 라이언 더턴(31)을 파면했다.  

 

이 교사에게 수업을 받았던 학생들은 이 교사의 파면이 부당하다며 학부모와 지역 주민을 설득하기 시작했고 다음날 전원 수업거부에 들어갔다. 그리고 더턴 교사를 복직시키기 위한 운동을 벌이기로 결의한 후 학부모와 교사들, 지역 주민, 교장까지 동참하여 교육위원 소환을 위해 필요한 청원 서명을 받기 시작한 것이다. 결국 학생들의 노력으로 교육위원 5명 모두가 탄핵 당했다.

 

이 사례를 우리에게 적용하면 어떻게 될까? 앞서 밝힌 바와 같이 우리나라 일제 고사의 모델이된 미국에서는 일제고사를 실시할 때 학부모들에게 선택권을 안내한다. 그러니까 우리와는 반대로 일제고사 선택권을 학부모에게 안내한 교사가 아니라 선택권을 안내하지 않은 학교장이 징계 대상이다.

 

한날 한시에 모든 학생이 시험보는 나라는 우리뿐

 

 

그렇다면, 시험 선택권을 줬다는 이유로 교사를 파면한 공정택 교육감과 서울시교육청 징계위원들은 어떻게 될까? 그 답은 서울시민 여론조사에 나와 있다. 지난 12월 15일 공개된 주간 <교육희망>과 리얼미터의 여론조사 결과에 따르면, 공정택 교육감이 퇴진에 대해 서울 시민은 찬성 59.7%, 반대 18%로, 3배 이상 압도적인 다수가 공정택 교육감의 퇴진에 찬성했다.

 

애석하게도 우리나라에는 교육감과 교육청 징계위원에 대한 소환제도가 없다. 그러나 확실한 것은 세계 어느 나라에서도 모든 학생과 모든 학교에서, 같은날 같은 시각에 같은 문제로 전국 일제고사를 치르게 하진 않는다. 또 학생에게 선택권을 안내하였다는 이유로 교사를 파면·해임하지 않는다. 정부는 국민에게 거짓말을 하고 있는 것이고, 파면·해임 교사들과 아이들에게 돌이킬 수 없는 범죄를 저지르고 있는 것이다.

 

과연 공정택 서울교육감과 김경회 부교육감을 비롯한 징계위원들 중에 교원소청심사위원회 또는 법원의 판결에 의해 일제고사 반대 교사들의 파면·해임이 부당하다는 결정이 나온다면, 책임지고 물러나는 사람이 몇이나 있을까? 미국 캘리포니아 주 같으면 당장 국민 소환감이다.

 

그 때 가서 미안하다고 한 마디 하면 그만일까? 공정택 교육감과 서울교육청은 지금이라도 7명 파면·해임 교사의 징계를 철회하는 것이 그나마 우리 교육사와 아이들에게 지은 죄를 조금이라도 씻는 길임을 깨달아야 한다.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민중의소리에도 송고하였습니다.


태그:#일제고사, #세계, #공정택, #파면해임, #소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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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교육에 관심이 많고 한국 사회와 민족 문제 등에 대해서도 함께 고민해 보고자 합니다. 글을 읽는 것도 좋아하지만 가끔씩은 세상 사는 이야기, 아이들 이야기를 세상과 나누고 싶어 글도 써 보려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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