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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찰과 검찰이 확실한 증거도 없이 허위제보에 근거해 10대 여성 지체장애인을 영아유기치사 사건 범인으로 몰아 구속했던 것으로 드러나 인권을 유린했다는 비판을 피할 수 없을 것으로 보인다. 사진은 수원지검 전경.
 경찰과 검찰이 확실한 증거도 없이 허위제보에 근거해 10대 여성 지체장애인을 영아유기치사 사건 범인으로 몰아 구속했던 것으로 드러나 인권을 유린했다는 비판을 피할 수 없을 것으로 보인다. 사진은 수원지검 전경.
ⓒ 김한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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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가인권위원회도 검찰 앞에선 작아지는가?

국가인권위원회(위원장 안경환·이하 인권위)는 지난 5일 경찰이 영아유기치사 사건의 용의자로 10대 여성 지체장애인을 조사하는 과정에서 강압수사 등 '인권을 침해했다'는 진정사건과 관련해 해당 경찰관을 징계하도록 소속 경찰서장에게 권고했다.

그러나 인권위는 경찰에 대한 징계권고와 달리 이 사건의 수사를 지휘했던 담당 검사에 대한 인권침해 진정 등에 대해서는 기각결정을 내린 것으로 밝혀져 인권·여성단체 등이 강한 유감표명과 함께 문제를 제기하고 나서는 등 논란이 일고 있다.

최근 국가인권위원회와 시민단체에 따르면 수원남부경찰서는 2007년 5월 수원역 부근에서 발생한 영아사체유기 사건을 수사하던 중 한 노숙인에게 "노숙인 J양(당시 17세. 정신지체 2급)이 아이를 낳았다"는 말을 듣고 같은 달 31일 J양을 긴급 체포했다.

사건 수사를 맡은 강력팀 Y경찰은 J양이 처음 체포 당시부터 "아이를 낳지 않았다"고 부인했지만 보호자나 변호인 동석 없이 1차 피의자 조사에서 J양이 혐의사실을 인정했다는 이유로 그를 구속했다. 이 사건을 지휘한 이는 수원지검 형사부 소속 Y검사.

이어 J양을 구속한 검찰과 경찰은 같은 해 6월 2일 국립과학수사연구소에 사망한 영아와 J양에 대한 유전자 감정을 의뢰해 이틀 후 인 6월 4일 사망한 영아와 J양이 모자관계가 아니라는 구두통보를 받았다.

검·경찰, 지체장애 J양 허위자백 받아 구속

하지만 검찰과 경찰은 J양을 석방하지 않았다. 담당 검사는 J양에 대해 "추가조사를 해야 한다"는 등의 이유로 그를 10여일 동안 구치소에 더 구금한 뒤 6월 14일 석방했다. 

그러자 다산인권센터·경기복지시민연대 등 시민단체들이 문제를 삼고 나섰다. 시민단체들은 경찰과 검찰의 J양에 대한 체포-조사-구속 과정에서 심각한 인권침해가 있었다고 반발하면서 2007년 10월 10일 수사 경찰과 지휘 검사를 상대로 인권위에 진정서를 냈다.

시민단체들이 진정한 내용은 4가지. 시민단체들은 먼저 "경찰이 피해자를 영아유기치사 사건 용의자로 체포·수사하는 과정에서 미성년 여성 지적장애인임에도 불구하고 변호인이나 보호자 동석 없이 강압수사를 통해 피해자에게 허위자백을 받아냈다"고 주장했다.

당시 J양은 지능지수가 40(언어성 지능 45, 동작성 지능 40)으로 일반상식이나 어휘력이 매우 부족하고 사회적인 판단력도 극히 미약한 상태였던 것으로 밝혀졌다.

특히 시민단체들은 "지휘 검사는 국과수로부터 피해자가 살해된 영아의 친모가 아니라는 구두통보를 받고도 '구두 통보만으로 석방하는 것은 적절치 않고 주거가 일정하지 않기 때문에 석방하면 도망갈 우려가 있다'는 이유로 계속 강제 구금했다"고 주장했다.

이 밖에도 피해자가 여성임에도 불구하고 연행할 당시 여성 경찰관 없이 4명의 남성 경찰관들이 연행했고, 피해자 체포사실을 보호자한테 늦게 통지했다며 조사를 요구했다.

그러나 인권위는 지난 5일 시민단체들의 진정내용 가운데 경찰의 수사과정에 대해서만 인권침해를 인정해 해당 경찰관의 징계를 권고하고, 지휘 검사의 피해자 강제 구금 등 나머지 부분은 모두 기각결정을 내린 것으로 확인됐다.

국가인권위가 10대 지체장애인에 대한 강압수사 등과 관련해 해당 경찰에 대한 징계권고와 달리 이 사건의 수사를 지휘했던 담당 검사에 대한 인권침해 진정 등에 대해서는 기각결정을 내려 논란이 일고있다. 사진은 지난해 11월 25일 인권위 설립 7주년 기념식.
 국가인권위가 10대 지체장애인에 대한 강압수사 등과 관련해 해당 경찰에 대한 징계권고와 달리 이 사건의 수사를 지휘했던 담당 검사에 대한 인권침해 진정 등에 대해서는 기각결정을 내려 논란이 일고있다. 사진은 지난해 11월 25일 인권위 설립 7주년 기념식.
ⓒ 국가인권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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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권위 "경찰 수사과정은 인권침해... 검사 강제구금은 불가피한 조치"

인권위는 사건 지휘 검사의 피해자 구금 행위 등을 "실체적 진실을 밝히기 위해 피해자의 소재를 확보하기 위한 불가피한 조치"라고 판단했다. 하지만 이 문제와 관련해 인권위원들 사이에서조차 논란이 뜨거웠던 것으로 전해졌다.

인권위 한 관계자는 "인권침해 여부를 판단하는 심의위원회 심의 과정에서 지휘 검사에 대한 책임론이 강하게 제기돼 인권위원들 사이에 적지 않은 논란이 있었다"면서 "그러나 나중에 의견조율을 거치면서 인권침해로 볼 수 없다는 결론이 내려졌다"고 말했다.

이 관계자는 또 "인권위는 J양에 대한 긴급 체포 당시 여경이 동행을 하지 않았다고 해서 인권침해라고 볼 수 없다는 판단을 내렸다"고 설명했다. 그는 "J양 체포·연행 과정에서 여경이 동행하지 않아 발생한 인권침해 행위가 없었기 때문"이라고 부연했다.

J양 사건과 관련해 진정을 냈던 다산인권센터·경기복지시민연대·수원여성회·수원다시서기상담센터 등 시민단체들은 인권위의 경찰 징계 권고에 대해 환영의 뜻을 밝혔지만, 지휘 검사에 대한 진정 기각결정 등에는 강한 불만을 나타냈다.

이들은 지난 6일 논평을 통해 "인권위가 피해자의 인권을 침해한 해당 경찰관에 대해 징계 권고를 한 것은 환영한다"면서도 "하지만 진정 사건 중 극히 일부분만을 인권침해로 인정하고 검사에 대한 진정을 기각한 것에 대해 심각한 유감의 뜻을 표명한다"고 밝혔다.

시민단체들은 "인권위가 '인권에는 양보가 없다'는 원칙을 기준으로 판단한 것이 아니라 법률적 근거에 대한 판단만을 했다"며 문제를 제기했다.

시민단체 "약자 인권보호보다 검찰 수사편의가 더 중요하나"

시민단체들은 "죄 없는 미성년자의 구금을 계속하는 것은 인권의 기본인 신체의 자유를 침해한 것"이라며 "인권위는 혐의가 없음이 유전자 검사로 증명된 사회적약자의 인권보호가 중요한 것인지, 권력집단인 검찰의 수사편의가 더 중요한지 답하라"고 요구했다.

또 "피해자가 긴급 체포된 다음날 바로 피해자의 어머니가 찾아와 피해자를 보호하려는 의지를 분명히 표명했다"면서 "그런데도 검찰이 피해자의 '주거가 일정치 않다'고 판단한 것은 설득력을 잃은 처사"라고 반박했다.

시민단체들은 연행과정과 관련해 "피해자는 미성년 장애인 여성으로, 남성 경찰들의 동행이 강압적이고 억압적으로 느껴질 수 있다"면서 "인권침해를 예방하는 것도 경찰관이 지켜야할 수임인데, 인권위가 진정내용을 경시한 것은 심히 우려스럽다"고 반박했다.

시민단체들은 "인권위는 법률기관이 아니고 인권기관임을 다시 한번 되새기라"면서 "인권위가 인권의 원칙에 서서 사회적 약자의 파수꾼이 될 것"을 주문했다.

선지영 경기복지시민연대 활동가는 "인권위가 이 사건 수사와 관련해 수사 경찰에만 징계 권고 조치를 하고 사건 전반을 지휘했던 검사에 대한 진정을 기각한 것은 이해할 수 없다"면서 "연대 단체들과 논의를 거쳐 이의신청 등 대응책을 마련하겠다"고 밝혔다.

인권위 관계자는 시민단체들의 유감표명과 문제 제기에 대한 입장을 묻자 "시민단체들 입장을 충분히 이해한다"면서도 "그러나 인권위원들이 판단을 내린 사안에 대해 내부적으로 입장을 밝히는 것은 적절하지 않은 것 같다"고 답변을 피했다.

국가인권위원회(위원장 안경환)는 지난 5일 경찰이 영아유기치사 사건의 용의자로 10대 여성 지체장애인을 조사하는 과정에서 강압수사 등 ‘인권을 침해했다’는 진정사건과 관련해 해당 경찰관을 징계하도록 소속 경찰서장에게 권고했다. 사진은 인권위가 낸 보도자료 일부.
 국가인권위원회(위원장 안경환)는 지난 5일 경찰이 영아유기치사 사건의 용의자로 10대 여성 지체장애인을 조사하는 과정에서 강압수사 등 ‘인권을 침해했다’는 진정사건과 관련해 해당 경찰관을 징계하도록 소속 경찰서장에게 권고했다. 사진은 인권위가 낸 보도자료 일부.
ⓒ 김한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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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편 인권위가 발표한 조사결과를 보면 경찰은 수사과정에서 피해자가 미성년자이며 여성 지적장애인이라는 특수성을 고려한 별도의 조치를 취하지 않았던 것으로 드러났다.

또한 J양이 체포된 다음날 그의 어머니가 달려와 "딸이 정신지체 2급이고 구체적인 진술서를 작성할 능력이 없다"고 알렸음에도 다시 조사를 하거나 검증하는 절차도 거치지 않았던 것으로 밝혀졌다.

경찰, 객관적 조사 없이 노숙인 허위진술에 피해자 범인 몰아

특히 경찰은 J양이 체포 당시부터 혐의 사실을 완강히 부인했는데도, 출산여부 확인 등 객관적인 증거 조사 없이 한 노숙인의 허위진술만 믿고 J양을 추궁해 결국 허위자백을 받아 구속하는 잘못을 저질렀다.

이처럼 경찰은 영아유기치사 사건을 해결하기 위해 범죄로 붙잡혀 온 노숙인에게 허위진술을 받아내고 이를 근거로 무고한 사람을 범인으로 몰아간 셈이다.

검찰 역시 마찬가지다. 이 사건 수사를 지휘한 검사는 경찰의 엉터리 수사결과에만 근거해 J양을 구속했다. 따라서 경찰과 검찰 모두 확실한 증거도 없이 한 여성 지체장애인의 인권을 유린했다는 비판을 피할 수 없을 것으로 보인다.

인권위는 "피해자와 같은 미성년자 및 장애인이 수사기관으로부터 조사를 받을 경우 심리적 위축감으로 의사표현이 자유롭지 못할 뿐 아니라, 수사과정에서 자신을 방어하고 사건을 진술할 수 있는 능력이 미흡하다"고 지적했다. 

따라서 "이들을 보호하기 위해 '인권보호를 위한 경찰관 직무규칙'은 사회적 약자로 미성년·여성·장애인 등을 정하고, ‘경찰관은 직무수행 중 이들에 대해 신뢰관계에 있는 자 또는 의사소통이 가능한 보조인의 참여를 보장해야 한다'고 규정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인권위는 "하지만 해당 경찰은 이러한 조치를 취하지 않았다"면서 "이러한 행위가 헌법 제12조에서 규정하고 있는 피의자에 대한 권리보호를 소홀히 해 신체의 자유를 침해한 것으로 판단하고 해당 경찰을 징계토록 소속 경찰서장에게 권고했다"고 밝혔다.

사건수사 경찰 "할 말 없다"... 지휘 검사 "노코멘트"

이와 관련 수원남부경찰서 경무계 관계자는 "인권위 조사결과를 바탕으로 자체 확인조사를 벌인 뒤 해당 경찰관에 대한 징계여부를 결정할 방침"이라고 밝혔다.

사건 수사를 맡았던 Y경찰은 9일 전화통화에서 인권위 징계 권고에 대한 입장을 묻자 "드릴 말씀이 없다"고 밝혔다. 당시 사건수사를 지휘했던 Y검사도 기자의 인터뷰 요청에 부속실을 통해 "노코멘트 하겠다"는 입장을 전해왔다.


태그:#국가인권위, #강압수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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