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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나무에 핀 눈꽃이 햇살을 받아 보석처럼 반짝였습니다.
▲ 소나무에 핀 눈꽃 소나무에 핀 눈꽃이 햇살을 받아 보석처럼 반짝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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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신제 지내러 가자."

여행을 하는 듯한, 늘 세상을 돌아다니는 일을 하는 내 친구. 하지만 아직도 여행에 목이 마른지, 안부를 묻는 내 전화에 번뜩이는 제안을 했다. 각자의 삶을 찾아 여기저기 흝어져 살아 얼굴 마주하기가 쉽지 않은 터라 반가웠다. 반가운 것은 더 있다. 386을 넘어 이제 486으로 진화 아닌 퇴보(?)된 삶이지만 아직도 그 시절 삶의 가치와 방황에 관하여 가슴 뜨겁게 얘기할 수 있다는 사실.

사회적 위치나  직업 따위에 묶인, 세속적인 눈치나 계산이 없기에 추억 한 조각만으로도 서너시간쯤은 보낼 수 있는 우리다. 중간쯤의 거리에서 만나기로 했다. 동서의 관문이 되면서 백두대간의 한 줄기인 조령산을 오르기로 했다. 부업을 하면서 오랫만에 휴일을 맞은 아내에게 미안한 생각이 들었다. 전일 야간근무로 새해부터 의도하지 않은 외박에 산행까지 한다니 포기수준의 서운한 음성이 전화기를 타고 왔다. 아이들은 이미 친구들을 만나러 뿔뿔이 흩어졌고 덩그러니 집을 지키며 혼자 점심을 먹을 아내를 생각하니 마음이 무거워졌다. 하지만 '산신령님께 우리가족 모두의 안녕을 빌고 올께'라며 아내와 내 자신을 위로했다.

산 정상에 올라 친구들과 산신제를 지내며 각자의 소원을 빌었습니다
▲ 친구들 산 정상에 올라 친구들과 산신제를 지내며 각자의 소원을 빌었습니다
ⓒ 김영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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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 정상에서 본 월악산의 모습이 너무도 깨끗하고 장엄했습니다
▲ 정상 산 정상에서 본 월악산의 모습이 너무도 깨끗하고 장엄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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뜻밖에도 좋은 산세에 비하여 사람들의 발길이 많지 않았다. 오르내리면서 겨우 두팀 정도 만났을 뿐이다. 이렇게 신년산행이 호젖하리라 생각지 않았는데 차분히 대화하며 걷기에 너무 좋았다. 얇게 내린 눈과 산꼭대기에 걸린 눈꽃마저 아름다운 자연속에 빠져들기에 충분했다. 각자 자신의 분야에서 가슴에 담았던 이야기와 학창시절 함께 했던 이야기, 요즘 뉴스까지 나누니, 이마의 땀처럼 송글송글 새어 나왔다.

삶의 가치를 어디에 두느냐에 따라 생활이 달라질 수 있음을, 요즘 새삼 느낀다. 사회 전반적인 상황이 그 좋은 예다. 피부로 느끼는 경제적 불안으로 인하여 선택한 것들이 조급함과 과대의욕증 그리고 눈에 보이는 욕심으로 말미암아 뒤로 달리는 차에 앉은 듯 멀미가 심하다. 나의 일상 또한 매너리즘에 빠지기도 했다. 이제 나이에 맞는 생활철학을 재정립하는 자정의 시간이 필요다고 생각했다.

눈꽃이 햇살에 살짝 녹으면서 눈처럼 내리는데 보석처럼 반짝였다. 스러져가는 것들의 아름다운 빛을 보고 있자니 잠시 숙연해졌다. 정상 그곳엔 찬바람이 불었지만 하늘과 가까워서 그랬는지 햇살은 투명하고 따뜻했으며, 시선은 멀리까지 날아갔다.

골짜기로 기류를 타며 즐기는 까마귀의 비행에서 한껏 부러운 자유가 느껴졌다. 가까이 월악과 소백 그리고 저 멀리 어띠쯤 속리의 봉우리들이 펼쳐진 꼭대기에서 우리는 막걸리 한잔을 놓고 기원했다. 내 가족의 안녕과 부디 이 땅에서 여기 펼쳐진 자연의 순리가 정의가 되게 해 달라고.

동서를 잇는 새재의 관문에 바람만이 넘나들고 있었습니다.
▲ 문경새재 동서를 잇는 새재의 관문에 바람만이 넘나들고 있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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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들의 비원이 하늘과 가까이 있었으니 이루어질거라는 예감이 들었고, 그 예감을 적중시키기 위한 노력만이 남겨졌다. 내려오는 산길엔 조령3관문쪽으로 돌았다. 왜적을 물리치기 위해 산속에 쌓아 놓은 산성의 흔적들도 보였고, 입신출세를 위해 한양으로 향하던 선비들의 발자국도 보았다.

역사는 자연속에 죽은 듯 그 흔적을 묻어 두고 있지만 산처럼 묵묵히 지켜야 하기에 소중한 것이리라. 주차장에서 올려다 본 조령산은 신년새해 그 교훈을 말해주고 있는 듯했다.
친구들과의 신년산행이 힘이 되었다. 올해는 세파에 흔들리지 않는 바위같은 굳은 의지로 살 수 있겠다.


태그:#신년산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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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북 제천의 소소한 이야기를 전하는 기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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