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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짜면 양잿물도 마신다는 말이 있지요. 양잿물은 아니지만, 공짜로 들어온 펜션 숙박권이 있어서 지난 주말에 이용했습니다. 저희는 집 베란다에서 보이는 섬인 '중도'에서 하룻밤을 묵었습니다. 그런데 그 철 없는 겨울 소풍이 둘째 아이 까이유(태명)의 몸을 불덩이로 만들고야 말았습니다.

흔히 '중도'라고 부르는 의암호 안에 있는 섬은 상중도와 하중도 중에서 하중도 관광지를 일컫는 말이지요. 하중도에는 조경이 잘 가꾸어진 관광지 말고도 배추밭이며 오래된 마을회관이 있습니다. 이 마을은 관광지가 확장되면 곧 사라질 운명이지요.

관광객들은 삼천동 선착장에서 사람만 들고나는 배를 타고, 하중도 주민들은 포클레인이나 관광객들의 자동차와 함께 근화동 주민선착장에서 배를 탑니다. 의암호를 코 앞에 두고 사는 우리 가족에게 중도 관광지는 집에서 5분 정도 걸어나와 '중도 주민선착장'에서 배를 타고 들어가면 되는 이웃 동네입니다.

마을로 가는 흙길. 어른들은 사진을 찍느라 쿠하가 어디쯤 오는지 돌아보지도 않습니다. 쿠하는 아기 걸음으로 눈 녹은 진흙길을 따라옵니다.
 마을로 가는 흙길. 어른들은 사진을 찍느라 쿠하가 어디쯤 오는지 돌아보지도 않습니다. 쿠하는 아기 걸음으로 눈 녹은 진흙길을 따라옵니다.
ⓒ 정진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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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민선착장에서 배를 타고 들어가 내리면 두 갈래 길이 나타납니다. 마을 방면 길은 비포장 흙길이고, 호수 방면 길은 자전거 도로로 목책이 둘러쳐진 시멘트 길입니다. 왼쪽에 의암호를 두고 15-20분 가량 기분 좋게 걸으면 관광지 선착장에 닿습니다.

우리는 마을 방면 길을 택했습니다. 곧 사라질 마을 풍경사진을 찍으며 천천히 걷느라 찬바람을 많이 쏘인 탓인지 초저녁부터 아기의 몸이 따끈해지기 시작했습니다. 밤새 깊이 못 자고 뒤척여 걱정하게 하더니, 낮에는 하루 종일 잘 자고, 잘 먹고, 잘 놀아서 괜찮은 줄 알고 마음을 놓았지요.

"삼촌 자전거 내놔~"
 "삼촌 자전거 내놔~"
ⓒ 정진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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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랜만에 탄 자전거에서 엄마는 내려올 줄 모릅니다.
 오랜만에 탄 자전거에서 엄마는 내려올 줄 모릅니다.
ⓒ 정진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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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요일 밤 11시가 되자 아기는 뜨거워지기 시작했습니다. 워낙 순한 녀석이라 그런지 열이 39.6도까지 올라가도 칭얼대지 않아, 젖을 먹이려고 안기 전까지는 아픈 줄도 몰랐습니다. 평소 순한 아기는 엄마를 편하게 해 주는 고마운 존재이지만, 어떤 상태인지 가늠할 수 없어 답답함을 주기도 합니다. 이럴 때는 미련 곰퉁이에게 꿀밤이라도 한 대 먹이고 싶어지지만 진짜 미련한 쪽은 아이가 아니라 엄마겠지요.

온 몸이 뜨거운 아이를 곁에 두고 <삐뽀삐뽀 119 소아과(그린비 펴냄)>부터 찾습니다.
이 책은 쿠하가 태어날 때 선물로 받았는데, 시간이 갈수록 선물해 준 사람에게 새록새록 고마운 마음이 듭니다. 소아과 의사가 쓴 이 책에는 아이 키우는 부모들에게 필요한 응급 처치 요령은 물론 시기별 육아 정보까지 꽤 많은 분량이 잘 정리돼 있습니다. 급할 때 사전처럼 찾기 좋게 편집돼 있어서 아이가 아플 때마다 책부터 찾게 됩니다. 오늘은 '열이 날 때' 필요한 정보들을 담아둔 674쪽부터 20여 쪽을 읽었습니다.

아기 아빠가 책을 확인하는 동안 저는 가까운 대학병원 응급실에 전화를 걸었습니다. 책 내용대로 따라하기 전에 우선 응급실로 갈 건지 말 건지를 물어보기 위해서지요. 당직 선생님은 환자의 전화에 귀찮은 내색없이 상황을 묻더니 "병원에 와도 해열제 먹이고 물수건 마사지부터 할 테니, 일단 집에서 그렇게 해 본 뒤에 차도가 없으면 오라"고 하십니다.

옹알이와 손동작으로 강하게 촬영거부 들어갑니다. 
"응게~ (찍지 마세요, 찍지마요!)"
 옹알이와 손동작으로 강하게 촬영거부 들어갑니다. "응게~ (찍지 마세요, 찍지마요!)"
ⓒ 정진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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쓰다 남은 해열제를 며칠 전에 버렸는데, 그 사이 새로 사다 두지 않은 게 후회되기 시작했습니다. 아이가 둘이나 있는 집에 해열제가 하나도 없었으니 난처해 졌습니다.

전화를 걸어보니 대학병원 앞에 있는 약국도, 대형마트 안에 있는 약국도 이미 닫았다고 합니다. '밤늦게 미안하지만 혹시 상비해 둔 해열제 있어?' 급한 마음에 쿠하 친구 엄마들에게 단체 문자메시지를 보냈습니다. 있으면 빌려달라고요.

다행히도 약을 구할 수가 있었습니다. 밤 11시 40분에 보낸 문자에 41분, 42분 차례차례 전화가 왔습니다. 차로 15분 거리에 있는 친구 집에서 받아온 해열제를 먹이고, 30도 정도의 미지근한 물에 적신 수건으로 온 몸을 닦았습니다. 30분쯤 닦아주니 겨우 38.5도로 내려갑니다. 체온이 1도만 내려가줘도 엄마 마음도 1도씩 안도하게 됩니다.

5시간 간격으로 해열제를 먹이고, 뜨거워진 몸을 두어 시간 간격으로 물수건으로 닦아 주니 아침이 되서야 37.6로 회복됩니다. 다행입니다. 간밤에 끙끙 앓으면서도 이 순둥이는 표나게 보채지도 않아 엄마 맘을 더 쓰이게 합니다. 곤히 잠든 아이를 보며 비로소 까이유가 '만 6개월'이 됐음을 깨달았습니다. 첫아이 때 모유를 먹이면서 경험했지만, 이번에도 기가 막히게 6개월 경에 감기를 앓은 것입니다. '아, 놀라워라. 우리 몸의 신비여!'

모유만 먹여 키우는 아이들은 대개 6개월까지는 감기에 걸리지 않습니다. 예방주사 외에 병원출입 할 일이 없어 아이도 엄마도 편안한 기간을 보내게 되지요. 6개월이 지나면서 가벼운 감기를 앓거나 중이염을 앓는 경우도 있습니다.

가급적 사람 많은 장소는 피하고 집에서 동면 수준으로 겨울을 나도록 해야겠습니다.

첫아이 키울 때는 상상할 수 없던 장면입니다. 한겨울에 다 벗겨두는 것도, 남편이 먼저 잠을 청하는 것도요. 이제는 교대로 자둘 정도로 여유가 생겼습니다.
 첫아이 키울 때는 상상할 수 없던 장면입니다. 한겨울에 다 벗겨두는 것도, 남편이 먼저 잠을 청하는 것도요. 이제는 교대로 자둘 정도로 여유가 생겼습니다.
ⓒ 정진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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괜히 첫아이 콧바람 쐬게 해준다는 핑계로 엄마가 더 신이 나서 배 타고 놀러가지 않겠습니다. 두 아이를 남편에게 맡겨두고 자전거로 '겨울연가' 촬영지를 호젓하게 달리는 여유를 다시는 부리지 않겠습니다. 그래도 겨울 호수에 비친 서면의 산들은 깊고, 멀리서 바라본 자작나무들은 참 조용했습니다. 

소아과 의사 하정훈의 <삐뽀삐뽀 119 소아과> 밑줄 긋기
1. 부위별로 정확한 체온을 재는 방법
고막 체온계는 편리하지만, 귀지가 귀를 막고 있을 때는 체온이 재지지 않으므로 여러 차례 재봐야 합니다. 체온은 부위에 따라 약간의 차이가 있습니다. 일반적으로는 겨드랑이를 재는 것보다는 입안을 재는 것이 더 정확하고, 입안보다는 항문으로 체온을 재는 것이 좀더 정확합니다.
항문으로 잴 때는 체온계의 수은주에 바셀린을 바르고 아기의 항문을 손으로 벌린 다음 체온계를 집어넣습니다. 6개월 이전의 아기는 0.6 - 1.2 센티미터를 넣고, 6개월 이후 아기는 1.2 - 2.5 센티미터 정도 넣으면 되는데, 아기가 움직여 체온계에 찔리지 않도록 아기를 잘 잡고 있어야 합니다. 3분 정도 지난 후에 눈금을 읽습니다. 항문 체온이 38도 이상 되면 열이 있다고 판단하면 됩니다.

2. 갑자기 열이 날 때 응급처치법
옷을 가볍게 입히고 실내 온도를 서늘하게 하세요. 아기가 힘들어하면 해열제를 용량에 맞게 먹이세요. 해열제를 먹이고 30분 후에도 열이 떨어지지 않으면 기저귀와 옷을 다 벗기세요. 30도 정도의 미지근한 물에 수건을 적셔 온 몸을 닦아주세요. 물로 닦는 것의 효과는 1시간 정도 시속되며 2시간이 지난 뒤에는 효과가 떨어집니다. 물수건이 효과가 없을 때는 30도 정도의 미지근한 물이 5센티미터 정도 담긴 욕조에 아이를 앉혀 두어도 좋습니다. 

3. 남은 해열제는 보관법
먹다 남은 해열제는 아까워도 냉장고에 보관하지 말고, 몇 주가 지나면 버리는 것이 좋습니다. 밤에 급하게 사용할 용도로 작은 포장을 하나 사서 따지 말고 약장에 보관해 두었다가 사용합니다.  

- 쿠하모친의 육아 비상대책 -

1. 응급실이나 신생아실에 전화부터 해보세요.
아이들은 열이 나면 힘들어 합니다. 심한 경우 열성 경련을 일으키기도 해요. 6개월 이전의 아기 체온이 38도를 넘으면 가까운 소아과에 가는 게 좋습니다만, 한밤중이라면 우선 응급실이나 산부인과 신생아실에 전화라도 걸어보세요. 제 경험으로는 응급실과 신생아실 당직 선생님들이 문진을 하고 처치 요령을 알려주셨습니다. 병원에 달려가기 전에 먼저 병원에 가야 할 지 말아야 할 지 문의해 보세요. 응급처치가 필요한 경우는 더 빠른 대처도 가능하고, 때로는 응급실에 가는 수고도 덜어서 일거양득이 가능합니다.

2. 자는 아이 일부러 깨우지 마세요.
첫아이 때는 시간 맞춰 해열제를 먹여야 하는 줄 알고 자는 아이를 깨운 적도 있습니다. 아이들이 잠이 들면 일단 모든 처치 행동을 멈추고 쉬게 하세요. 자는 동안 조금 호전되는 경우가 많습니다.

3. 아기 친구를 사귀면 좋아요.
이사 온 지 얼마 지나지 않아 밤중에 약이 없어 곤란했던 적이 있어요. 해열제 정도만 필요한 데 약국도 문을 닫고, 편의점에서도 구할 수 없다면 또래 아이들을 키우는 엄마들에게 도움을 청할 수 있어요. 산후조리원이나 산부인과 병원에서 비슷한 시기에 태어난 아이 엄마들과 친하게 지내세요.

4. 병원, 약국 전화번호는 핸드폰에 미리 저장해 두세요.
소아과에 가기 전, 집에서 먼저 해 줄 수 있는 응급처치 요령을 문의할 수 있습니다. 집에서 가까운 단골 병원과 약국을 정해 두고 다니면 급할 때 도움을 받을 수 있어 좋습니다.

5. 교대로 자두세요.
아이가 아프면 초보 부모는 둘 다 잠을 설치기 마련이지요. 첫아이 때는 열이 나는 아이 곁에서 둘 다 녹초가 되곤 했어요. 아주 위급한 상황이 아니라면, 교대로 잠을 자두는 게 낫습니다.


태그:#열, #육아, #쿠하, #까이유, #응급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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