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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공업이 번성한 시대에 세워졌으며 내부는 화려한 황금으로 장식되어 당시 부의 축적도를 가늠케 한다.
▲ 산타 프리스카 교회(La Iglesia de Santa Prisca) 은공업이 번성한 시대에 세워졌으며 내부는 화려한 황금으로 장식되어 당시 부의 축적도를 가늠케 한다.
ⓒ 문종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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숨이 멎을 지경이었다. 자전거로 산을 넘은 보람이 있었다. 어쩜 이리도 아기자기 하면서 앙증맞은 콜로니얼 도시가 있는지. 과나후아또 이후 다시는 멕시코에서 도시가 가진 미학에 대해 논할 곳은 나타나지 않을 거라 확신했다. 하지만 보물상자에 보물이 하나만 들어있는 것은 아니었다.

과나후아또가 첫 눈에 반할만한 화려함으로 빛이 난다면 여기는 은근히 매력에 젖어드는 단아한 멋이 있었다. 흰 벽을 따라 포석으로 덮어진 길을 걷는 자체가 행복했다. 햇살 가득 받은 유리 바깥에 놓인 창가의 꽃들과 빨간 지붕이 조화를 이루며 이 아담한 도시를 더욱 아름답게 해 주었다.

딱스코는 멕시코 남쪽의 작은 산악 도시이자 '은의 도시'다. 500여년 전에 광산 기술자들에 의해 은맥이 발견되기 시작해 1743년에는 프랑스의 보르다가 대광맥을 개발한 이후 실버러시가 이뤄졌다. 이 때 북미 최초로 은 광산이 만들어져 은 발굴로 막대한 부를 축적했다. 그리고 광산으로만 개발되어 삭막했던 인디오 촌락을 아름답게 꾸몄다.

그 후 매장량이 점차 고갈되면서 은 발굴의 한계로 도시는 쇠퇴하였지만 1930년대 은세공 기술로 다시 한 번 일어섰고 관광도시화로 성공적인 변모를 거듭하며 멕시코를 기억하게 하는 중세의 동화나라로 탈바꿈했다.

딱스코의 아담한 거리
▲ 예쁘다 딱스코의 아담한 거리
ⓒ 문종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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왠지 음식 맛이 더 달콤할 것 같은...
▲ 분위기 있는 레스토랑 왠지 음식 맛이 더 달콤할 것 같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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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녁이 되자 건물의 불빛과 하늘의 별들이 동시에 불을 밝히고 있었다. 마지막 해넘이가 남기고 간 붉은 노을이 산동네를 감싸 안을 때 느껴지는 환상이란! '신은 보르다에게 부를 주고 보르다는 신에게 이것을 바친다!'라는 명언을 남기고 화려하게 건축된 딱스코의 심장 산타 프리스카 교회(La Iglesia de Santa Prisca)가 붉은 노을과 입 맞추는 장면은 사진으로 담아두고 복사할 수는 있어도 결코 감동까지 카피할 수는 없을 것이다. 너무 황홀한 장면 때문에 잠시 눈이 거시시해질 정도로 두고두고 아껴가며 보고 싶은 기억에 남을 만한 순간이었다.

나는 마치 숨겨진 보물상자를 찾은 듯 좀체 흥분이 가라앉지 않았다. 여기저기 광고를 통해 여행자를 낚는 희떠운 관광지 사이에서 소리없이 고운 속살을 숨겨 놓고 지나가는 이에게만 수줍게 보여주는 새침함. 딱스코를 벗어나면서 나는 혼자만 알고 싶고 혼자만 기억하고 싶은 욕심에 이 보물을 더욱 깊숙한 곳으로 묻고 싶었다. 아무에게도 들키지 말고 오래도록 내 기억에서만 아름답게 기억되도록.

한가로이 걷고 싶은 곳
▲ 딱스코의 거리 한가로이 걷고 싶은 곳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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앞에 애마 로페카(Ropeca).
▲ 성당 앞에 애마 로페카(Ropec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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뒷편으로 보이는 산동네가 딱스코다.
▲ 딱스코의 연인 뒷편으로 보이는 산동네가 딱스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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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제의 놓쳐버린 아쉬움과 내일의 잡힐 듯한 꿈 사이에 막연한 오늘이지만 오늘이 오늘로서 행복한 이유는 지금 이 순간이 기회이기 때문이리라. 갈림길에서 산과 바다의 기회를 두고 딱스코를 선택한 것에 대해 뿌듯하고 감사했다. 덕분에 젊은 날의 고뇌와 정체성에 대한 혼란, 그리고 미래에 대한 불안한 우울을 잠시 동안 가슴 속에서 묻어둘 수 있었다.

이 많은 물건을 언제 다 팔꼬?
▲ 고단해 보이는 노(老)상인 이 많은 물건을 언제 다 팔꼬?
ⓒ 문종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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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리없는 외로움, 모진 그리움의 멍에를 메고 달려가는 자전거 여행자의 뒷모습이 초라해 보일 때 한 번 쯤 작은 변화를 줘야 한다. 그 변화는 도전으로부터 시작된다. 그 순서가 뒤바뀔 경우는 결코 없다. 도전은 투쟁이 아닌 포용이다. 모든 것을 포용하는 순간 모든 것을 이길 수 있다. 고개가 높다 댕돌같이 씩씩대지 말고, 흘러가는 구름 따라 바람이 스치는 나무를 지나 새 소리를 귀담으며 걷는다면 언젠가 마음속으로 그리던 파라다이스가 자신도 모르게 눈앞에 펼쳐질 것이다.

그렇게 내 발걸음이 찾아간 곳에서 한아름 가득 행복을 얻고 나오는 길만큼 진정 여행이 즐거울 때가 없다. 여행은 바로 그런 맛으로 가는 게 아닌가. 그리고 또다시 설렘이 시작된다. 마치 야구경기가 시작되기 전처럼. 오늘, 딱스코 여행의 9회말이 끝났지만 내일은 아카풀코 여행의 1회초가 시작된다. 그렇게 마음껏 기대함을 가지고 다시 무거운 바퀴를 굴려 본다.

언덕을 오르다 여고생들로부터 뜻하지 않은 초콜릿 선물을 받았다.
▲ 발렌타인 데이 언덕을 오르다 여고생들로부터 뜻하지 않은 초콜릿 선물을 받았다.
ⓒ 문종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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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름 다리를 지나다
▲ 살금살금 조심스레 구름 다리를 지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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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붙이는 글 | 필자는 현재 '광야'를 모토로 6년 간의 자전거 세계일주 중입니다.
저서 <라이딩 인 아메리카>(넥서스 출판)
세계 자전거 비전트립 홈페이지 http://www.vision-trip.net



태그:#멕시코, #세계일주, #딱스코, #라이딩인아메리카, #자전거여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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