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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찰직 복귀를 위해 오케스트라 공연을 포기한 강건우에게 강마에가 포기하지 말고 꿈을 꾸기라도 해보라고 말하는 '베토벤 바이러스'의 한 장면
▲ 강마에가 권하는 꿈꾸기 경찰직 복귀를 위해 오케스트라 공연을 포기한 강건우에게 강마에가 포기하지 말고 꿈을 꾸기라도 해보라고 말하는 '베토벤 바이러스'의 한 장면
ⓒ 윤여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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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의 가치에 따라 지금 이 순간 행복하냐."
"꿈을 이루라는 소리가 아냐 꾸기라도 해보란 말야."

MBC 수목드라마 '베토벤 바이러스'에서 나왔던 대사이다. 강마에(김명민 분)가 경찰로 복직하기 위해 오케스트라 공연을 포기하려는 작은 강건우(장근석 분)에게 던지는 말이다. 이 부분이 방영되고 나서 '그 동안 잊고 있었던 꿈을 다시 생각하게 해주었다', '나태한 백수의 가슴에 꿈의 열정을 심어주었다'는 등 감동의 글들로 시청자 게시판이 뜨거웠다고 한다. 지금도 여전히 명대사로 사랑받고 있다.

그런데 강마에가 권하듯 꿈꾸면 행복해질까? '베토벤 바이러스'의 드라마 스페셜 편에 나오는 꿈을 꾸고 그 꿈에 열정을 바쳤으므로 행복해졌다는 말처럼 그렇게 행복해질까? 이런 회의적인 질문이 드는 건 음악에 꿈을 가지고 오로지 음악에만 열정을 불태운 강마에의 삶이 별로 행복해 보이지 않기 때문이다. 드라마 2회차에 나온 강마에의 넋두리를 기억한다면 더욱 그렇다. 사랑을 원했던 여인에게서 빰을 맞고 나서 쏟아지는 비 속에서 골목 귀퉁이에 풀썩 주저앉아 '음악을 위해 버려야 하는 것들이 왜 이렇게 많냐'고 탄식하던 강마에의 모습을 말이다. 

대중문화 평론가 강명석이 '한겨레21'에 썼듯이 강마에는 '무언가를 얻기 위해서는 죽도록 노력해야 하고, 죽도록 노력하는 사이 무언가 결핍되는 인생'을 보여준다. 그렇게 결핍된, 사랑마저 포기하고 살아온 삶을 행복하다고 말하긴 힘들다.

음악을 위해 사랑마저 포기한 강마에의 독한 삶, 행복해 보이는가!

그렇다고 소중한 꿈에 열정을 쏟으며 살아갈 때 행복해진다는 드라마의 주장을 아니라고 말하기도 힘들다. 행복해진다고 주장하지만 살펴보면 행복하지 않은 모순은 드라마가 의도하지 않게 한국의 현실을 반영하기 때문이다. 한국사회에서 꿈에 열정을 쏟는다는 것은 그 이외의 것은 포기함을 말한다. 강마에도 음악 외엔 모든 것을 포기하며 살아왔고, 작은 강건우도 음악을 위해 요즘 같은 경제 불황에 너무나도 매력적인 경찰직을 포기해야 했다.

원래 열정을 쏟는다는 것은 삶의 소소한 즐거움은 포기함을 말하지만, 한국사회에선 삶의 안정과 질마저도 포기해야하는 도박과도 같은 행위가 된다. 그건 행복을 위해 안정을 포기했다는 말보다 독한 승부수를 던졌다는 말이 더 어울리는 행위다. 드라마 후반부에서 강마에도 작은 강건우에게 충고한다. 독해지라고!

행복과 독함이라는 한데 어울리기 힘든 단어가 전제조건이 된, 행복해지기위해 독해져야 하는 차가운 현실을 '베토벤 바이러스'는 의도하지 않게 드러낸다. 그것은 이 드라마가 현실위에 서려고 노력했기 때문이다. 드라마에서 새로 선출된 시장이 능력도 없는 측근 인사를 시립 교향악단의 새로운 지휘자로 선정하는 에피소드는 그러한 면모를 보여준다.

단원들이 부적절한 인사에 반발하여 투쟁에 나서자 시향을 해체하려는 시장의 모습은 MB정권에 대한 비유로도 읽힌다. 오케스트라란 꿈을 위해 직장을 포기했던 콘트라베이스 연주자 박혁권은 꿈을 꿈으로 둔 채 꽃가게라는 '위기'의 자영업을 택해야 했다.  정치마저도 꿈과 행복의 장애물인 한국사회의 우울한 현실을 보여준다.

행복을 위해 삶의 질 하락을 감수해야 하는 이상한 행복

'베토벤 바이러스'의 홈페이지에 나오는 드라마 기획의도를 보자.

"그들이 드디어 한데 모여 꿈을 향해 나아가기 시작한다. 그 길의 끝엔 실패가 뻔히 보인다. (중략) 그리고 결국엔 그들은 실패한다. 꿈을 이루지도 못했을 뿐더러 직장도 없어지고 삶의 질도 더 떨어졌다. 그래도 그들은 행복해한다. 왜일까?"

삶의 질이 떨어졌는데 행복하다는 말을 어떻게 이해해야 할까. 부와 행복이 꼭 같은 방향만은 아님을 배워왔다. 돈이 많아도 불행한 사례를 보아왔기 때문이다. 하지만 삶의 질은 부와는 다른 것이다. 삶의 질과 행복이 함께 할 수 없다면 그 사회의 행복은 이상한 것이다. 그 이상한 행복이 바로 우리 사회의 현실이다.

꿈을 위해 삶의 안정을 도박걸거나, 아니면 생존을 위한 경쟁만이 지배하는 사회였음을 드라마 기획의도가 의도치 않게 드러낸다. 이제는 삶과 문화가 함께 가는, 삶의 질과 행복이 동반하는 사회를 고민해야 할 시점인데, 한국사회는 더욱 거꾸로 가고 있다. 오로지 삽질만이 살길이라고 강요받는 더 척박한 현실이 행복 앞에 놓여 있다.


태그:#베토벤 바이러스, #행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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