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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9일부터 23일까지 화물연대 인천지부 곡물지회가 파업을 감행했다. 화물연대 소속 운전기사들은 6월과 마찬가지로 인천항 근처 곳곳에서 운집하여 파업에 참여하지 않고 지나다니는 곡물 수송 차량들에게 압력을 가하였으며, 확성기 차량을 동원하여 파업의 정당성을 알리는 동시에 참여를 촉구했었다.

곡물운송차량을 막아서는 화물연대 조합원들
▲ 압력을 가하는 화물연대지나가는 곡물운송차량을 막아서는 화물연대 조합원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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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당성을 주장하는 화물연대
▲ 이데올로기 싸움 정당성을 주장하는 화물연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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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물연대가 19일 출정식을 가지면서 공식적으로 표방한 바는 다음과 같다.

"곡물 운송사들은 2008년 6월 파업 시 합의한 약속을 어기고 조합원 가입을 권유했다는 이유, 그리고 집회신고를 냈다는 이유로 화물연대 조합원들을 쫓아내고, 배차 불이익을 주는 등 화물연대 조합원 탄압을 자행하고 있습니다. 여러 차례 면담을 하고 재합의를 하기도 했지만 반복적으로 약속들을 이행하지 않고 있는 상황에서 곡물지회 조합원들 스스로 화물연대 조합원 탄압은 어떠한 이유로도 용납될 수 없다며 총회를 거쳐 98%의 찬성으로 파업에 돌입하였습니다." (화물연대 게시판)

생존권의 문제
▲ 운송차량들의 위기 생존권의 문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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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상기 이유만을 파업의 원인이라고 생각하는 이는 아무도 없다. 대부분의 파업이 그렇듯이 결국 이번 화물연대의 파업의 원인도 최근 떨어지고 있는 운송료에 기인하고 있기 때문이다.

화물연대 관계자의 증언에 의하면 곡물 운송의 경우 6월 화물연대파업 당시 운송료가 20~30% 인상되었는데, 최근 몇몇 대형 화주들이 이를 다시 파업 전의 요율로 내린다고 일방적으로 통보해 와 파업을 하게 되었다고 한다. 이 증언을 편파적으로 해석한다고 하더라도 결국 파업의 원인은 과하게 운송료를 내리려는 화주들과 어렵게 올린 운송료를 방어하려는 기사들 간의 충돌임을 알 수 있다.

이와 같은 상황을 고려할 때 결국 이번 파업은 6월과 마찬가지로 예정됐었던 수순인지도 모른다. 6월의 화물연대파업이 갑자기 인상된 경유가로 인해 제기되었다면, 이번 파업은 현재의 경제위기 상황을 맞아 전체 물량이 줄어들고 경유가 인하로 인한 운송료 삭감이 현실화됨에 따라 일어났기 때문이다. 결국 6월과는 정반대 상황에서 또다시 '운송료'가 도마에 올랐던 것이다.

다른 운송업계의 동향

그러나 혹자들의 우려와 달리 이번 곡물지회의 파업이 다른 운송업계로 번질 가능성은 그리 커 보이지 않다. 비록 같은 운송이지만 곡물운송과 여타 운송업계의 조건이 매우 상이하기 때문이다.

무엇보다 현재 곡물운송은 특화된 시장으로서 몇몇 화주와 운송사가 그 물량을 독점하고 있다. 따라서 차가 남아도는 현재의 다른 운송업계와 달리, 곡물 운송 부분은 대체 차량을 구하기가 힘든 상황이며 그만큼 기사들의 발언권 역시 셀 수밖에 없다. 곡물운송 차량들의 화물연대 가입률이 다른 운송업계보다 월등히 높은 이유 역시 그와 같은 조건에 기반을 하고 있는 것이다.

몇몇 회사의 독점
▲ 곡물 운송 시장의 특징 몇몇 회사의 독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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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물연대 곡물지회의 파업이 짧게 끝날 수밖에 없었음은 바로 이와 같은 조건에서 연유한다. 어차피 공멸을 피하기 위해선 운송료에 대해 화물연대나 운송사, 화주 모두 접점을 찾아야 했기 때문이다. (어쩌면 중앙언론들이 위 파업을 크게 보도하지 않은 것 역시 이 파업이 오래 갈 수 없음을 알고 있었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반면 이런 곡물운송의 특징은 자신들만의 파업의 위력은 높일지 몰라도, 다른 운송업계로의 파업 확산에 있어서는 한계를 지닐 수밖에 없다. 곡물운송시장과 달리 다른 운송 시장은 현재 물량이 줄어들면서 대체할 수 있는 차량이 남아도는 실정이며, 화물연대 가입률도 매우 낮기 때문이다.

6월 화물연대파업 당시 비조합원들이 적극적으로 참여했던 것은 기존의 운송료가 10년 동안 변하지 않은 채 낮게 책정되어 있었고 경유가가 워낙 높았기 때문인데, 지금과 같이 무너지는 운송사가 속출하고 일거리가 없는 운송차량들이 비일비재한 현실에서는 화물연대의 파업안이 쉽게 동조 받을 수 없다.

오히려 현재 상황은 운송사나 기사들이, 높아진 원자재 값에 맞춰 운송료를 낮춰달라는 화주의 요구에 적극적으로 순응하고 있는 실정이다. 얼마 남지 않더라도 그렇게 물량을 잡아 운송하는 것이 이 추운 겨울을 살아내는 방법이며, 궁극적으로 이득이 되기 때문이다.

물론 화주가 터무니없는 운송료를 요구한다면 화물연대파업이 또다시 거론되겠지만 현재의 상황으로서는 가능성이 낮은 이야기일 뿐이다. 경유값이 아주 가파른 속도로 내리지 않는 이상 화주와 운송사, 기사 모두 타협의 여지를 갖고 있기 때문이다.

더 추운 겨울이 기다리고 있다

곡물지회의 파업이 다른 운송업계로 전파되리라고는 아무도 생각치 않았다
▲ 화물연대의 파업 곡물지회의 파업이 다른 운송업계로 전파되리라고는 아무도 생각치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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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제는 현재와 같은 상황이 지속되는 경우이다. 현재 정부는 2009년 성장률을 3%로 잡고 있지만, 많은 전문가들이 1%대 혹은 마이너스 성장률을 예측하고 있는 것이 현실인 이상 지금보다 실물경제는 더 나빠질 것이고 이는 운송시장에도 커다란 영향을 끼칠 것이다. 아마도 운송 다단계의 중간 단계에 있던 작은 운송사는 대부분 쓰러질 것이며, 많은 수의 기사들이 자신의 차를 내놓은 채 거리에 내몰리게 될 것이다.

이는 10년 전 IMF 구제금융 위기 때와 비교해서 전혀 다른 모습이다. 얼핏 생각하면 비슷한 경제 위기라고 생각되지만, 10년 전 경제위기 때 화물차는 오히려 증가했었다. 기존의 면허제가 등록제가 되면서 시장진입이 용이해짐에 따라 IMF를 맞아 구조조정 당한 이들이 면허증만 있으면 가능한 운송시장에 대거 뛰어들었기 때문이다.

1998년의 경우 전 해 대비 1.7% 감소한 물동량에 비해 운송차량은 27.4% 증가했으며 (「화물연대 협상타결 이후의 제도적 개선과제」, 김학소, 한국해양수산개발원, 2008년) 이는 이후 운송료 인하에 가장 큰 영향을 끼쳤다. 이로써 트럭만 몰 수 있으면 집도 사고 자식들 대학도 보낼 수 있었다는 1970~80년대 신화가 깨지고, 오히려 화물연대의 필요성이 두각된 것이다. 대부분 운송사의 올 6월 화물연대파업 전 요율이 10년 전 요율이라는 사실은 이를 증명한다.

10년 전과 달리 운송기사들이 거리로 내몰리는 2008년. 결국 이는 운송시장만이 아니라 국민경제 전체의 위기와도 직결된다. IMF 구제금융 위기 때는 운송시장이 하나의 완충지대로서 구조조정으로 내몰리는 사람들을 많은 부분 흡수했지만, 이번 경제위기에서는 오히려 다른 업계와 마찬가지로 많은 실업자들을 양산해내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와 같은 현실의 결과는 이 경제위기가 끝난 뒤 드러날 것이다. 물량이 한창 모자란 지금에야 화물연대가 파업할 가능성이 매우 낮지만, 경기가 회복국면으로 들어선 뒤 물량이 다시 늘어나기 시작하면 추운 겨울을 견디지 못하고 퇴출된 화물차들의 공백이 매우 크게 느껴질 터, 다시금 화물연대가 단체행동을 할 가능성이 높아질 것이다. 

따라서 멀지 않은 미래의 물류대란을 막기 위해서는 현재의 이 위기를 기회로 이용하여 현재의 운송시장을 합리화시켜야 한다. 운송료에 따라 공급과 수요의 양이 조절되는 시장의 법칙이야 어쩔 수 없지만 이를 왜곡시키는 다단계 화물 알선구조나 지입제 등은 지금 조정해야한다. 일이 터진 후 모든 것을 세계 경기 탓으로, 노조 탓으로 돌리는 것은 너무 무책임하고 한심한 일이기 때문이다.  

화물대란을 피하기 위해서는 근본적인 접근이 필요하다
▲ 구조적 문제 화물대란을 피하기 위해서는 근본적인 접근이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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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유포터 블로그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태그:#화물연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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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와 사회학, 북한학을 전공한 사회학도입니다. 물류와 사회적경제 분야에서 일을 했었고, 2022년 강동구의회 의원이 되었습니다. 일상의 정치, 정치의 일상화를 꿈꾸는 17년차 오마이뉴스 시민기자로서, 더 나은 사회를 위하여 제가 선 자리에서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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