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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발 휘날리는 속에 순천만 갈대를 만났다. 그동안 남도여행길에 으레 찾았던 데다. 이번에는 직장 동료들과 동행했는데, 순천만을 시작으로 강진, 해남, 보길도, 완도를 1박2일에 돌아보는 제법 빡빡한 일정이었다. 시간 여력을 갖고 낯선 곳을 돌아본다는 일은 신명나는 일. 날선 추위에도 아랑곳하지 않았다.

 

예전의 모습을 기대하며 도착한 순천만 갈대밭. 그러나 먼발치에서 보는 순천만은 수삼 년 전과는 많이 달라져 있었다. 우뚝하니 터를 잡고 있는 순천만천문대와 자연생태관이 유독 도드라져 보였다. 널따랗게 단장된 주변 조경은 채 갈대밭을 만나기도 전에 위압당한 느낌이었다. 근데도 내년 7월까지 자연생태공원 주변에다 생태공원과 숙근초원, 미로정원, 보행동선 등을 대대적으로 정비한다는 안내 표지판이 부담스러웠다. 때론 너무 깔끔하게 에둘러버린 탓에 순천만 쉬 만날 수 있는 감흥을 잃어버리게 하는 것은 아닐까 싶어서였다.

 

 

예전에 비해 주차장을 넓게 마련해 두었다. 그러나 유로여서 가족 단위 탐방객들은 대부분 마을 입구에 주차했다. 괜히 예전의 맨땅 주차장을 생각나게 했다. 조금 들어가니 잔디밭 맞은편에 자연생태관이 있다. 그 앞에는 고기와 게 조형물들이 설치돼 있다. 이밖에도 갈대밭에 이르는 길목에는 곳곳에 조형물이 많았다. 조그만 호수에는 오리 한 쌍이 유유히 헤엄치고 있었다. 갈대열차도 승객을 기다리고 있었다. 하지만 우리의 목적은 갈대밭을 보러온 것이기에 곧장 갈대로 담장을 만들어 놓은 길을 따라 순천만으로 향했다.

 

 

갈대밭은 자연생태관에서 200m정도, 용산 전망대까지는 2.2㎞다. 그러나 가는 날이 장날이라고 유난히 바람이 드셌다. 쉼터를 지나 무진교(霧津橋 ‘일명 안개나루’)다. 이 다리를 건너면 갈대밭으로 갈 수 있다. 다리 오른편에 탐조선 선착장이 있다. 다리 중간에 올라서니 광활한 갈대 군락이 한눈에 펼쳐진다. 장관이었다. 평일인데도 사람들이 많다. 다리를 내려오면 두 갈래 길이 있다. 그러나 어느 쪽을 택해도 갈대밭을 한 바퀴 돌기는 마찬가지다. 끝자락이 맞닿아 있기 때문이다.

 

순천만, 광활한 갯벌과 갈대밭이 어우러진 자연의 보고

 

갈대가 한창일 때는 아니었지만, 차가운 날씨 속에서 만나는 갈대는 또 다른 느낌이었다. 한여름 뙤약볕 속에서 만났던 갈대가 초록 융단이었다면 지금의 갈대밭은 은빛너울이다. 그게 순천만의 겨울 운치다. 진흙을 밟으며 갈대밭을 거닐었던 예전과 달리 보행로 전체가 데크로 깔은 탐방다리가 갈대 어깨높이로 1.2㎞가량 설치되어 있다. 목재다리다. 콩콩대며 걷는 기분은 좋았지만 발끝을 꼼지락거리는 느낌만 못하다.

 

 

근데, 눈앞에 장대하게 펼쳐져 있는 갈대를 보고도 ‘갈대’와 억새‘를 구분하지 못하는 사람이 있다. 눈대중으로 쉬 구별할 수 있는 데도 말이다. 갈대는 말 그대로 ’작은 대나무‘다. 볏과의 여러해살이풀로써 키는 1~3m며, 잎은 길고 끝이 뾰족하다. 줄기는 단단하고, 속이 비어 있다. 사람들은 줄기, 즉 대를 이용하여 발, 삿자리 따위의 재료로 사용한다. 습지나 물가에 잘 자라며, 물이 있는 강이나 냇가, 그리고 늪  같은 곳에서 주로 볼 수 있다. 

 

그리고 억새는 갈대와 같이 볏과의 여러해살이 풀인데, 키는 1~2m며, 잎은 좁아 긴 선 모양이다. 7~9월에 누런 갈색 꽃이 피는데 작은 이삭은 자주색이다. 잎을 베어 지붕을 이는 데나 사용하고 말이나 소의의 먹이로 쓴다. 억새는 맨땅에 잘 자라 뜰이나 산등성이에서 무더기로 자생한다. 억새와 갈대의 차이는 갈대는 키가 약간 크고, 갈대는 잎은 억새보다 약간 넓고 길다. 갈대는 대가 튼튼하여 사람들이 생활용품을 만들어 사용한다. 가요에서 ‘으악새 슬피 우는’하는 구절이 있는데 그것은 억새를 두고 하는 노래다.

 

 

갈대는 과거에 땔감이나 빗자루, 김발 같은 일상용품으로 많이 쓰였으나 어느 때부턴가 아무도 거들떠보지 않게 되자 이곳 순천만에 갈대가 번성하기 시작했다고 한다. 게다가 1990년대 초 유입하천상류에 상사호수가 축조되고 나서 물줄기가 줄어들어 퇴적물이 두툼하게 쌓이게 되자 물줄기를 따라 쌓은 방죽과 갯벌 둔덕을 따라 끝을 가늠하기 어려울 정도로 넓은 갈대밭이 형성되었다고 한다. 때문에 순천만 갈대밭은 전국에서 빼어난 자연경관을 자랑한다.

 

갈대와 억새의 차이점은 무엇인가

 

한참을 걷다보니 수로에 탐조선이 유유히 떠간다. 날씨가 추운 탓도 있었지만 빠듯한 일정에 우리 일행은 탐조선을 탈 생각을 못했다. 그렇지만 갈대숲을 헤치며 나아가는 탐조선 탐조객들이 자못 부러웠다. 배를 타고 갈대밭을 돌아보는 것도 또 다른 기분이리라. 군데군데 제법 큰 호수는 하연 갈대꽃과 한데 어우러져 그 정취를 더하고 있었다.

 

 

그간 우리나라 갈대 우거진 갯벌은 대대적인 간척사업으로 메워와 이제는 과거에 비해 습지가 40% 정도만 남아 있다. 요즘 들어 해마다 거듭되는 남서해안 적조현상은 이런 무분별한 습지훼손에 큰 원인이 있다고 한다. 하지만 순천만 앞바다만큼은 그런 피해가 없었는데, 이는 갈대밭이 ‘자연의 콩팥’으로 비유될 정도로 뛰어난 자연 정화 능력을 가졌기 때문이라고 한다. 한때 도로 건설과 댐 건설로 매립 위기에 놓이기도 했던 순천만 갈대밭과 갯벌은 지역 주민들의 노력으로 살아남은 이후로 이제는 자연과 인간이 공존하는 낙원이 된 셈이다.

 

이로 보아 천수만 새만금을 비롯한 국내 크고 작은 갯벌이 개발이데올로기로 몸살을 앓고 있는 것은 시사하는 점이 크다. 그나마 순천만이 원시자연 그대로 오롯이 보전되고 있다는 게 여간 다행스러운 일이 아니다. 지인 중에 일본 갯벌생태를 탐방하고 온 이에 따르면 그들은 자연을 인위적으로 운영하는 것보다 있는 그대로를 보존하고 있다고 부러워했다.

 

 

자연은 있는 그대로 두어야한다. 인간의 편리만을 생각하거나 자본의 논리로 따지면 그 본연의 모습은 사라진다. 물론 일본이야 먹고 살만하니까 자연환경에 대한 관심이 유다를 테지만, 우리도 더 늦기 전에 함부로 자연을 홀대하는 못난 짓은 그만두어야 한다. 그렇게 생각해 보면 현재 마산 진동만에서 대대적으로 벌어지고 있는 갯벌 매립은 이미 그 폐해를 피부로 실감하고도 남는다. 그런데도 그곳에다 첨단 로봇단지를 유치한다는 경제논리가 앞서고 있다. 순천만 지킴이들에게 본받아야할 게 한둘 아니라는 안타까운 생각이 들었다.

 

자연은 있는 그대로 두어야한다

 

순천만은 원시자연생태를 그대로 보전하고 있다는 점에서 창녕 우포늪은 많이 닮았다. 그간 우포늪도 개발의 잣대만을 앞세우는 일부 논자들에 의해 심한 질곡을 감수해야했다. 많은 늪지들이 경작지로 잠식당했다. 물론 람사르 총회를 계기로 그 일부가 복원되기는 하였지만 한번 파괴된 자연생태계는 원상태로의 모습을 되찾기에는 장대한 노력이 뒤따라야했다. 요즘 우포늪은 사람들의 발길로부터 많은 보호를 받고 있다. 유명세(?)를 타고 있는 셈이다.

 

동행했던 지인이 ‘갯벌과 만의 차이점’에 대해서 물었다. 순간 뜨악했다. 평소 나 역시도 그 차이를 뚜렷하게 구분 짓지 않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평소 관심 두고 있는 만에 대해서 설명해주었다.

 

“일반적로 만(Bay)은 바다가 육지로 들어와 있는 걸 말하는데, 순천만은 고흥반도와 여수반도 사이로 깊숙이 바다가 들어와 있어요. 때문에 눈으로 보는 것처럼 이곳은 갯벌과 염습지, 그리고 거기에 자연스럽게 태어난 갈대밭, 일몰 풍광이 유명한 곳이지요.

 

갈대는 여름이면 파릇파릇한 초록갈대 잎 사이로 솟아오른 줄기 끝에 수수마냥 불그스름한 열매자루를 맺습니다. 그러다가 가을이면 줄기와 잎은 회색으로 바뀌고, 하얀 꽃이 만개하여 습지 가득 은빛 찬란한 광채를 뿜어댑니다. 지금이 바로 그럴 때지요. 저는 무엇보다도 원형 그대로 고스란히 보존되어 있는 몽글몽글한 순천만 갈대밭이 자랑스럽습니다.

 

또한 순천만은 붉은 칠면초가 만발하고, 희귀조류 11종을 비롯하여 많은 조류가 월동 서식하는 곳입니다. 꼬막, 짱뚱어 얘기도 빠트릴 수 없겠죠. 그리고 희귀조류인 흑두루미 서식지로도 유명합니다. 더욱이 S자모양의 수로와 거기에 반사되는 일몰의 석양빛 풍경이 유명하지요. 오늘 진눈깨비가 날리지 않았다면 그 장관을 볼 수 있을 텐데 아쉽네요. 그래서 갯벌은 자연생태학적 가치를 지니고 있는 소중한 곳이랍니다.

 

크고 작은 섬들과 주변 산이 함께 어우러져 아름다운 경관을 자랑하는 순천만은 세계 5대 연안습지로서 2006년 1월 람사르 협약에 등록된 우리나라 대표적인 생태관광지입니다. 때문에 요즘은 순천시티투어 코스로 각광을 받는 곳이랍니다. 덕분에 전국에서 수십 만 명의 관광객이 찾아오는 관광지가 되었답니다.

 

이만하면 그동안 짧은 생각으로 갯벌 자체가 소용없다고 전적으로 매립을 주장했던 이들의 개발논리가 머쓱해지는 것 아니겠어요. 자연은 있는 그대로 지켜내야 한다는 게 확연해졌어요. 그런데 이런 갈대밭이 훌륭한 관광자원이 될 줄 누가 알았겠어요?“

 

얘기를 하다보는 어느덧 갈대밭은 다 스쳐 지나고 용산 전망대를 오르는 길목이다. 그렇게 높은 산은 아니었다. 하지만 올라보니 초입부터 가팔랐다. 이십여 분을 헉헉대며 오르고 나니 전망대다. 순간, 사위가 확 뚫려 순천만의 자태가 적나라하게 다 내려다 보였다. 탐방로를 거쳐 올 때는 몰랐던 사실이었다. 사람 키를 웃자란 갈대군락이 올망졸망한 갈대밭을 다 가렸던 까닭이다.

 

 

전망대에서 내려다보는 순천만. 동글동글하게 에워싸고 도는 갈대밭 풍광들이 정답다. 아무리 조경을 잘하고, 매만지기를 잘한다고 해도 저처럼 의좋게 만들지는 못하리라. 와하는 탄성이 절로 났다. 여태껏 순천만을 자주 찾았지만 이번처럼 전망대를 올랐던 적은 없었다. 그냥 수박 겉핥기로 지나쳤던 것이다! 자연의 섭리는 오묘하다 못해 신기했다. 순천만을 찾는다면 필답코스로서 반드시 용산 전망대에 올라 보시라.

 

 

용산 전망대는 순천만 자연 생태 습지가 어떻게 변화하는지를 관찰할 수 있는 중요한 장소다. 그것은 바로 전망대에서 내려다보이는 거의 환상적인 예술에 가까운 원형이 그대로 보존되어 있는 갈대 군락, 처음 듬성듬성 형성되어 자라기 시작한 갈대가 한해에 1~3%씩 확장되어 시간이 지남에 따라 인근 갈대밭에 붙게 되는 과정을 한눈에 보여준다. 그게 용산 전망대를 알라보는 보람이다.  

 

용산 전망대는 순천만 자연 생태 습지를 관찰할 수 있는 중요한 장소

 

이밖에도 순천만에서 정답게 만나는 무리는 나문재와 칠면초 통통마디, 방게와 농게, 짱뚱어와 문절망둥어다. 하지만 계절 탓인지 어느 것 하나도 만나지 못해 아쉬웠다. 한가로이 비상하는 철새 떼는 여기저기 적잖이 보였다. 세찬 바람에 일렁이는 하얀 갈대꽃이 길손의 영흥을 한껏 북돋운다.

 

안내 자료에 따르면 순천만은 오염원이 적어 잘 발달한 갯벌과 염습지, 갈대군락이 그대로 보존되어 있어 질 좋은 수산물이 풍부하며, 천연기념물 제228호인 흑두루미를 비롯하여 검은머리갈매기, 황새, 저어새 노란부리백로 등 국제적 희귀조류 11종과 한국조류 200여종이 월동 및 서식하는 전 세계 습지 가운데 희귀종 조류가 많은 지역으로, 자연관찰과 탐조를 위한 자연학습장과 국제적 학술 연구의 장으로 각광을 받고 있다고 한다.

 

 

또한 인근에 낙안읍성과 천년고찰 송광사와 선암사, 고인돌공원, 드라마촬영지가 있어 자연생태체험학습은 물론, 테마관광지로서 손색이 없는 곳이다. 하지만 바쁜 길손은 순천만을 제외하고는 그 어느 곳도 들러보지 못하고 그 헛헛함을 순천의 명물 ‘짱뚱어탕’으로 대신하며 해남 땅끝마을로 향했다.


태그:#순천만, #갈대밭, #억새, #개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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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종국기자는 2000년 <경남작가>로 작품활동을 시작하여 한국작가회의회원, 수필가, 칼럼니스트로, 수필집 <제 빛깔 제 모습으로>과 <하심>을 펴냈으며, 다음블로그 '박종국의 일상이야기'를 운영하고 있으며, 현재 김해 진영중앙초등학교 교감으로, 아이들과 함께하고 생활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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