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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년 전 논길따라 구불구불한 비.포장길 따라 언덕을 넘어 파출소 옆 구멍가게 앞 버스정류장에서 30분에 한대 꼴로 털털털 거리며 오가는 버스를 한참 기다려 어렵게 올라타서는 시내로 중학교를 다닐 때까지만 해도 제가 사는 마을과 이웃마을은 전형적인 농촌마을이었습니다.

 

인천이라 해서 죄다 도시나 공장인줄 아시는 분들이 많지만, 김포와 강화와 맞닿은 서구의 끝자락은 전형적인 평야지대로 농업을 생계로 하는 마을공동체가 주를 이루고 있었습니다. 동네사람들 대부분이 논농사와 밭농사로 생계를 유지했고, 과수원(포도, 사과)과 젖소, 돼지를 키우는 분들도 있었습니다.

 

 

지금은 급격한 도시화와 택지개발로 밀려들어온 도로와 아파트들 때문에 그린벨트와 군사시설보호구역 이외의 지역은 죄다 아스팔트와 콘크리트로 뒤덮혔고 또 계속 확장되고 있습니다. 이 때문에 마을사람들끼리 아옹다옹거리기도 하고 서로 품앗이를 해가며 정답게 살아가던 전통과 문화, 공동체는 순식간에 파괴되고 사람들의 기억속에서 사라지고 말았습니다.

 

그런데 이런 개발과 파괴행위 뒤에는 '편리' '문화생활'이라는 면죄부가 따라 다녔습니다.

땔감을 구해 군불을 지펴 난방을 하지 않아도 되고 담배나 술, 과자 등 기호식품을 손쉽게 사먹을 수 있고 새롭고 신기한 것들을 구할 수도 있고, 좀 더 안락하고 편리하게 도시시람들처럼 문화생활을 누릴 수 있을꺼란 환상과 기대들이 몰려왔습니다. 그 바람에 삼촌과 고모, 동네 젊은 사람들은 편리를 쫓아 일자리를 찾기 위해 돈을 벌기 위해 하나둘 도시로 도시로 떠나갔습니다.

 

방앗간도 사라지고 젖소 농장도 사라지던 그 때 가장 눈에 띈 것은, 동네 구멍가게라곤 이웃마을 언덕과 냇갈 건너 군부대로 이어지는 옛길에 자리한 집뿐이었는데, 시내에서 보던 그런 '슈퍼마켓'이 빌라촌과 아스팔트 도로 옆에 새건물에 자리하기 시작했습니다. '공촌슈퍼'라는 이름의 슈퍼마켓은 그사이 인근에 생긴 코끼리 같이 큰 슈퍼마켓 때문에 사라지고, 코끼리보다 더 큰 대형슈퍼마켓과 대형마트가 이웃마을에 들어섰습니다.

 

 

파헤치고 잘려나간 논과 산뿐만 아니라 그 때 어린 제 눈에서 정말 많은 것들이 사라졌습니다. 삭막하고 낯선 도로와 택지개발로 마을이 어수선할 때에도 어머니나 마을사람들은 예전처럼 큰 일이 있어 물건을 사들이거나 밭에서 수확한 농작물을 팔러나가기 위해 보자기에 비닐에 짐보따리를 만들어 머리에 이고 들고는 먼 버스정류장까지 걸어가 재래상설시장(송림시장. 부평시장)을 오가곤 했습니다. 정말 옛날 할머니는 징매이고개를 넘어 걸어서 부평시장을 오간 적도 있다 합니다. 이젠 주변에 슈퍼마켓이나 대형마트가 많아 그런 수고를 하지 않아도 되고, 내다팔 마땅한 곳도 농작물을 재배할 땅도 흔치 않습니다.

 

추억을 더듬어보니, 가정동(개나리아파트)과 신현동(주공아파트)에 인천지역 공장과 시내 또는 서울로 출퇴근하는 사람들이 모여 살면서 새로운 상권도 형성되고 석남동 거북시장처럼 활기를 띄면서 어머니는 여름내내 열무와 오이, 토마토, 호박, 콩, 고추 등을 아침나절에 밭에나가 따와서는 점심을 먹고 팔러나갔습니다. 간혹 어머니를 따라 동생과 시장에 가곤 했는데, 늦은 저녁이 되어서야 돌아올 수 있었습니다.

 

어머니 혼자 시장에 나간 날이면, 할머니와 함께 마루에 불을 켜놓고 어두운 밤길 가져간 짐보따리를 훌훌 털고 돌아오길 소원하기도 했습니다. 장편소설 <분례기>에서 시집갈 날을 학수고대하던 분례가 석서방댁이 오랜만에 장터에 나가 사올 치마저고리며 분갑을 떠올리며 목을 빼고 어머니를 기다리듯이.

 

그 추억과 기억이 점점 멀어져갑니다.

도시에서 구멍가게와 장터, 재래시장이 점점 설자리를 잃고 사라지는 것처럼.

비효율적이고 비생산적이고 비경제적이라 낙인찍힌 농업같이 사람들에게 외면받는 것처럼.

 

안도현 작가가 글을 쓰고 이흥재 사진작가가 사진을 담은 책 <그리고 구멍가게가 생기기 전에는?>을 읽고 떠오른 기억들입니다. 점점 사라지는 장터의 삶과 모습을 수년간 카메라에 담아온 이흥재 작가의 사진을 통해 동네 할아버지, 허리 굽은 할머니, 퉁명스런 아저씨, 좌판 벌인 아주머니, 쌈박질 좋아하는 동네형과 곱상한 누나, 장난꾸러기 또래친구들을 떠올리는 것은 어찌보면 너무나 당연한 건지도 모르겠습니다.

 

도시 때문에 장터를 빼앗기고 이젠 이미지만 남아, 장터순대국과 장터국수, 100원 호떡의 맛조차 제대로 기억못하는 기억상실증에 걸린 우리들의 깊은 곳에서 그것들을 되살려 낼 정도입니다. 고된 삶을 살아온 농사꾼과 장꾼들로 바글거리고, 온갖 신기한 것들로 넘쳐나 아이들 눈이 휘둥그해지는 신명나는 놀이터이자 공연장인 시장통의 모습들 말입니다.

덧붙이는 글 | 이기사는 U포터뉴스와 블로거뉴스에도 송고합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덧. 사진을 전문적으로 배우지 않아 무턱대고 눈이 가는대로 발이 가는대로 똑딱이 카메라의 셔터를 눌러대고 있던 차에 접한 책...사진이 매력적인 이유...내가 담아내고자 하는 것들이 무엇인지 생각케합니다. 


그리고 구멍가게가 생기기 전에는?

이흥재 사진, 안도현 글, 실천문학사(2000)


태그:#그리고구멍가게가생기기전에는, #장터, #사진, #추억, #기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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