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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월 셋째주, 거리는 온통 연말 분위기로 들떠있는 지금, 대학가는 기말고사를 치르느라 분주하다. 2008년 한 해를 갈무리하는 시험인 만큼, 대학생들은 눈코 뜰 새 없이 준비에 매진하고 있는 모습이다.

기말고사 기간이면, 각 대학 도서관 열람실은 24시간 내내 개방해도 한가할 틈 없이 빼곡하다. 완벽한 학점관리가 필수 요건이 되어버린 현 대학가 세태를 그대로 보여주는 풍경이다. 발등에 불이 떨어진 시험기간, 1분 1초가 아까운 대학생들은 아예 옷가지·세면도구를 싸들고 학교에서 숙식을 해결하기도 한다.

20대 젊은 대학생들이 24시간 동안 학교에서 얌전히 앉아 공부만 하고 있을 것이라는 생각은 큰 오산이다. 아무리 기말고사 기간이라고 해도 '금욕'을 하며 공부만 하기엔 온몸이 너무나도 근질거릴 나이다.

야식을 잔뜩 사들고 동기들과 함께 먹으며 이야기꽃을 피우는 학생들, 잠깐 머리 식히려고 만났는데 시간 가는 줄 모르고 새벽 데이트를 즐기는 캠퍼스 커플들, 시험기간임에도 예외 없이 학교 앞 호프집에 몰려들어 "한 잔만 더"를 외치는 애주가들까지….

기말고사 기간의 대학교에서는, 젊은이들의 다채로운 개성만큼이나 다양한 이야기들이 펼쳐진다.     

[피 터지는 자리 맡기] 새벽 줄서기는 기본... 자리배석 연장 깜빡하면 '곤욕' 

16일 오전 6시경, 서울 동국대 만해관 열람실 앞 풍경.
 16일 오전 6시경, 서울 동국대 만해관 열람실 앞 풍경.
ⓒ 송주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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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일 오전 6시, 서울 동국대 만해관 로비에는 책을 한 권씩 펴든 재학생들이 길게 앉아 있다. 좌석배석 시간은 오전 7시. 하지만 간발의 차로 자리를 못 얻는 경우가 많기 때문에 새벽부터 나와 로비 바닥에 앉아 대기하고 있는 것.

경기도 부천시에 사는 재학생 최우철(24)씨는 이날 새벽 5시경 집을 나섰다고 한다. 그는 "캄캄한 시각에 일어나는 게 힘들긴 하지만, 시험기간에는 자리를 얻지 않으면 시간 활용이 어렵기 때문에 일찍 오지 않으면 안 된다"고 말했다.

배석 개시 후, 1시간여 만에 좌석은 동이 났다. 한발 늦은 학생들은 아쉬운 듯 투덜댔다. 그러고는 혹시나 남아있을지 모를 자리를 찾아 다른 건물로 급하게 발걸음을 옮겼다.    

책 더미와 가방으로 열람실을 독점하는 얌체 행위를 막기 위해, 대부분의 대학에서는 첨단 자리배석시스템을 운영하고 있다. 새롭게 등장한 이 기계 또한 시험 때만 볼 수 있는 재미난 풍경을 연출해내곤 한다.           

연일 학생들로 북적이는 서울 한양대 백남학술정보관 앞에서 만난 재학생 강진호(23)씨는 "좌석을 배정받으면 6시간 동안 있을 수 있는데, 연장신청을 못 하면 다른 학우가 눈 깜빡할 사이에 바로 신청해버린다"며 "그럴 때면 바로 짐 싸들고 나가야 한다"고 말했다.

서울 고려대 캠퍼스 중앙광장 지하1층에 있는 좌석배석기 앞에서, 자리를 맡기 위해 서성이고 있는 재학생들
 서울 고려대 캠퍼스 중앙광장 지하1층에 있는 좌석배석기 앞에서, 자리를 맡기 위해 서성이고 있는 재학생들
ⓒ 송주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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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처럼 대학별로 4~6시간마다 돌아오는 좌석연장신청과 이를 깜빡하는 대학생들, 그리고 새롭게 열람실에 '입성'하려는 대학생들의 모습이 맞물려 웃지 못할 일도 자주 일어난다. 이재덕(27·고려대)씨는 "시험 30분 남겨놓고 연장을 못해 자리를 비켜줘야 할 때면 정말 난처한 일이 발생한다"며 사연을 소개했다. 

"노트북에 교재에 참고서에 책상을 꽉 채운 채로 공부하고 있는데, 연장신청을 깜빡해 다음 학우가 들어오면 정말 난감하다. 이제 내 자리가 아니니 책상 짐은 치워줘야 하고, 마땅히 둘 때는 없고, 시험시간은 다가오고…. 짐을 바리바리 싸들고 나가 둘 곳이 없어 허둥대다가 결국 아무데나 밀어놓고 급하게 시험 보러 뛰어가는데, 정말 아찔하다."         

[3박4일 학교 투숙] 세면도구·옷 싸들고 온 '밤샘족'... 졸리면 과·동아리방으로

16일 새벽 3시경, 서울 한국외대 도서관 열람실 풍경. 늦은 시각임에도 여전히 열람실에는 많은 학생들로 가득하다.
 16일 새벽 3시경, 서울 한국외대 도서관 열람실 풍경. 늦은 시각임에도 여전히 열람실에는 많은 학생들로 가득하다.
ⓒ 송주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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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중앙대 캠퍼스 학과실 소파에서 잠을 청하고 있는 재학생(왼쪽), 서울 경희대 캠퍼스 로비 소파에서 잠시 잠을 청하고 있는 재학생
 서울 중앙대 캠퍼스 학과실 소파에서 잠을 청하고 있는 재학생(왼쪽), 서울 경희대 캠퍼스 로비 소파에서 잠시 잠을 청하고 있는 재학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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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자는 것을 잊은 채 하루 24시간을 학교 도서관과 함께하는 대학생들도 많다.

16일 새벽 2시경, 서울 경희대 푸른솔문화관 앞에서 만난 재학생 김현철(27)씨는 "오늘 시험을 두 과목 보기 때문에, 잠을 포기하고 밤새워 공부할 예정"이라고 말했다. 학교 기숙사에서 생활한다는 그는 기숙사까지 걸어가는 단 몇 분도 아끼고 싶은 눈치였다. 
    
24시간을 넘어 2박3일, 심지어 3박4일을 학교 도서관과 함께하는 대학생들도 있다. 장기간 '투숙 작전'은 주로 집이 멀어 통학 시간이 오래 걸리는 대학생들이 애용한다.

지난주 기말고사를 치른 김아람(26·가명·중앙대)씨는 시험이 시작된 후 둘째 날부터 '학교 투숙'을 시작했다. 통학시간이 2시간가량 걸렸기 때문에, 이를 아끼고 기말고사 준비에 열중하기 위한 고육책이었다.

그는 집에서 수건·칫솔을 비롯한 세면도구와 여벌 옷 몇 벌을 싸들고 와 학교 도서관에 진을 쳤다. 김씨는 "학교에서 며칠씩 있어 보니 공부 시간도 많아졌고, 색다른 경험이라 재미도 있었다"고 말했다.

그렇다면 3박4일 동안 씻고 자는 것은 어떻게 해결했을까?

"아침마다 학교 체육관 샤워실에 가 씻었어요. 따뜻한 물도 잘 나오고 좋던데요. 자는 것은 도서관에서 새우잠을 자거나, 정 졸려서 안 되겠으면 과방과 동아리방을 전전하며 소파에 누워 깊은 잠을 청했죠. 히터도 '빵빵'하고 조용하고, 숙소로서 손색이 없었어요.(웃음)"

[출출할 땐 야식을] 주먹밥에 군고구마까지 등장... 쓰레기통은 넘치고

15일 밤, 서울 고려대 캠퍼스 중앙광장에서 학생복지위원회가 준비한 야식인 주먹밥과 음료수를 받아가고 있는 재학생들
 15일 밤, 서울 고려대 캠퍼스 중앙광장에서 학생복지위원회가 준비한 야식인 주먹밥과 음료수를 받아가고 있는 재학생들
ⓒ 송주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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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일 새벽, 서울 경희대 중앙도서관 앞에서 기말고사 기간을 맞아 군고구마를 구워 재학생들에게 제공하고 있는 총학생회의 모습.
 16일 새벽, 서울 경희대 중앙도서관 앞에서 기말고사 기간을 맞아 군고구마를 구워 재학생들에게 제공하고 있는 총학생회의 모습.
ⓒ 송주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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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먹밥 먹고 출출함 달래고, 공부 열심히 해서 시험 대박 나길 바래요."

15일 밤 9시, 서울 고려대 중앙광장에서는 '주먹밥 파티'가 벌어졌다. 학생복지위원회에서 300여인분의 주먹밥과 음료수를 들고 와 공부 중인 재학생들을 유혹했다. 잠시 펜을 놓은 학생들은 구름같이 주먹밥 앞으로 몰려들었다. 순식간에 중앙광장 복도를 가득 메운 학생들은 70m가량 줄을 짓고 섰다. 배식이 시작되자 주먹밥은 10여분 만에 동이 났다. 

16일 자정경 찾은 경희대 중앙도서관 앞에는 고구마 굽는 연기가 피어오르고 있었다. 총학생회에서 기말고사를 맞아 '열공' 중인 재학생들을 위해 특별히 준비한 이날의 야식이 군고구마였다. 도서관 앞 군고구마 제공은 새벽 3시까지 계속됐다.  

능숙한 솜씨로 군고구마 통에서 군고구마를 꺼내 학생들에게 나눠주던 엄대철 경희대 총학생회장은 "밤새 공부하느라 피곤한 학우들을 위해 고구마를 굽고 있다"고 말했다.

학생자치단체들의 '시험기간 야식 제공'에 대해 재학생들은 큰 만족감을 나타냈다. 15일 밤 고대 중앙광장에서 주먹밥을 먹고 있던 조영민(24·고려대)씨는 "시험 때면 이상하게도 자주 배가 고픈데, 친구들과 함께 야식 먹는 재미가 은근히 쏠쏠하다"고 흡족해했다.

대학생들이 먹는 야식이 늘어갈수록, 도서관 안팎의 쓰레기통도 쌓여만 간다. 수북이 쌓인 정도를 넘어 온갖 쓰레기로 철철 넘쳐 흐르는 쓰레기통이 보인다면, 그 대학은 시험기간이 한창임에 틀림없다. 음료수 캔부터 시작해, 과자 봉지·컵라면 용기·피자 상자, 심지어는 먹다 남은 족발 뼈다귀까지, 시험기간의 도서관 쓰레기통에는 없는 쓰레기가 없다.

서울 한국외대 도서관에서 쓰레기 수거 일을 하는 정기홍(60)씨는 16일에도 새벽 5시경 학교에 나왔다. 그는 "시험 기간에는 평소보다 5배 이상 쓰레기가 많이 나온다"며 "일찍 나와 신경 써서 수거하지만, 계속 학생들이 있다 보니 쓰레기가 많다"고 말했다.

하루에도 몇 번씩 쓰레기를 치워야 하는데, 쓰레기를 대량으로 뿜어내는 학생들이 밉지는 않을까? 정씨는 되레 "쓰레기가 더 많이 나와야지"라며 환하게 웃는다. 

"이것도 부족해. 학생들 밤새며 공부하느라 그런 건데, 더 많이 먹고, 열심히 공부해야지."

서울 한국외대 도서관에서 나온 쓰레기를 정리하고 있는 정기홍씨의 모습
 서울 한국외대 도서관에서 나온 쓰레기를 정리하고 있는 정기홍씨의 모습
ⓒ 송주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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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험기간도 즐겁다] '새벽 데이트' 즐기는 CC, 한 잔 걸치는 애주가들

16일 새벽, 서울 경희대 캠퍼스를 거닐고 있는 캠퍼스 커플의 모습.
 16일 새벽, 서울 경희대 캠퍼스를 거닐고 있는 캠퍼스 커플의 모습.
ⓒ 송주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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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일 새벽 1시경, 경희대 캠퍼스 학생회관 앞을 손 꼭 붙잡고 걸어가는 남녀가 있다. 다른 대학생들은 보기만 해도 머리가 아픈 두꺼운 전공 책을 펴고 굳은 표정으로 도서관에 앉아 있는 이때, 캠퍼스 커플인 김윤근(21)씨와 배지숙(21)씨는 환한 미소를 지으며 주옥같은 시험기간의 새벽을 보내고 있다.

"데이트와 공부를 함께할 수 있는 셈이잖아요. 서로 자리 맡아주고, 하루 종일 밥도 같이 먹고, 공부하다 머리 아프면 수다도 같이 떨고…." 

'여친' 배씨가 먼저 운을 떼자, '남친' 김씨가 곧바로 말을 받았다.

"같이 옆에 앉아 공부하는 거 자체가 좋죠."

캠퍼스 커플의 '닭살 데이트'와는 다르게 '알콜'로 추억을 만드는 대학생들도 적지 않다.

기말고사가 한창인 15일 밤 10시경 찾은 서울 A대 앞  K호프집에는 몇몇 대학생들이 모여 술자리를 갖고 있었다. 그중, 유독 환한 분위기를 내고 있는 한 테이블로 다가가 자리를 함께했다. 이들은 선후배 사이인 이성천(22·가명)씨와 박용진(20·가명)씨였다.

이씨는 "시험 때 한 잔씩 하는 술맛이 또 캠퍼스 생활의 낭만 아니겠나"라며 껄껄댔다.

"1학년 때만 해도 시험기간에 만사 제쳐두고 술도 한 잔 하고 그랬는데 요즘은 통 그런 재미가 없어진 것 같아요. 오늘은 간단히 목만 축이러 나오자고 했는데 결국 따라온 것은 옆에 있던 후배 한 명이었죠."

K호프 주인 김기숙(46)씨는 "시험기간에는 손님이 확 줄긴 하지만, 한 잔 하러 오는 학생들도 은근하게 있다"며 "만취할 정도로 마시기보단, 공부하다 기분전환을 할 겸 와서 가볍게 즐기고 가는 학생들이 많다"고 말했다.

서울의 한 대학가 앞 호프집. 시험기간 중에도 친구들과 술잔을 나누러 온 대학생들이 몇몇 있다.
 서울의 한 대학가 앞 호프집. 시험기간 중에도 친구들과 술잔을 나누러 온 대학생들이 몇몇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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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붙이는 글 | 제3회 전국 대학생 기자상 공모전 응모기사입니다.



태그:#대학, #기말고사, #시험, #도서관, #야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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