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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8] 사진을 찍어 보니 알겠다

 

사진을 찍어 보니, 왜 '1000장을 찍으라'느니 '1000통을 찍으라'느니 '열 해를 찍으라'느니 '서른 해를 찍으라'느니 이야기하는지 알겠어요. 한 번 찍어서 기막히게 멋진 사진을 얻어낼 수 있지만, 그 기막히게 멋진 사진은 고작 첫걸음일 뿐 마지막이 아니거든요.

 

또한, 내가 사진으로 담는 대상은 '내가 부대끼기로는 짧은 동안 몇 차례 만남'이지만, 그 대상은 내가 자기를 찍기 앞서부터 오랜 세월 자기 삶을 꾸려 왔고, 제가 알아보지 못했어도 앞으로도 꾸준히 자기 삶을 이어가요. 그러니 어느 한때 그 대상을 기막히고도 멋지게 잡아챘어도 그 대상이 흘러온 발자취와 앞으로 살아갈 길까지 담아내지는 못합니다.

 

한 사람 한 모습을 사진 한 장에 담아야 하기도 하지만, '어느 대상을 나타내는 대표가 되는 한 장'은 언제나 새로워져야 하고 꾸준하게 바뀌어야겠더군요. 사진을 찍는 저부터도 어제 찍은 사진과 오늘 찍는 사진이 다르며, 오늘 찍는 사진과 내일 찍을 사진이 다르거든요.

 

 

[179] 내 사진

 

어리석고 미련하다고 할 만큼 기록사진만 찍는 나. 그것도 헌책방만 외곬로 찍는 나. 둘레사람들은 '헌책방 사진이라면, 몇 장만 찍으면 그만 아니냐'고 이야기한다. '지나치게 많이', '그것도 쓸데없이 찍는다'는 소리를 듣는다. 이런 말마따나, 나는 지나치게 깊이 파고들고 있지 않은가?

 

맞으리라. 아니 맞다. 그런데, 나는 이런 어리석음과 미련이 좋으니 어떡한담. 나는 미련과 어리석음이 휩싸인 사진찍기에서 길을 찾고 싶은데 어떡한담. 내 사진은 전문가로 찍는 사진이 아니다. 취미로 찍는 사진 또한 아니다. 누구나 사진기를 들고 다니다 보면 언제라도 즐겁게 담을 수 있을 만한 여느 사진으로 찍을 뿐이다. 다만, 이런 여느 사진을 앞으로도 꾸준히 찍고 싶을 따름이다. 여느 사람이 주인공이 되어 수수하게 살아가는 모습을, 이 삶을, 있는 그대로 꾸준히 담아서 긴 흐름으로 엮고 싶을 뿐이다.

 

그렇지만 이런 내 사진 찍기는 '호사 취미'라는 말을 듣는다. 그동안 찍은 사진도 제대로 추스르지 못하니까. 그동안 찍은 사진이 무엇인지 사람들한테 보여주지 않았으니까. 그래, 사진을 찍기만 하지 말고, 가끔이나마 제대로 추스르며 무언가 여럿이 널리 나눌 수 있는 자리에 내보여 줄 수도 있어야지 싶다.

 

 

[180] 자동차 모는 사람

 

자동차 모는 사람 마음을 헤아려 줄 수 있어요. 그러나 저는 자동차를 몰 생각이 없어요. 그냥 걸어다니거나 자전거를 탈 생각이에요. 상업주의 사진을 찍는 사람을 얼마든지 받아들일 수 있어요. 그러나 저는 상업주의 사진을 찍을 생각이 없어요. 언제나 제 둘레에 있는 사람들과 삶터를 찍을 생각이에요.

 

 

[181] 단골 사진관 1

 

요즈음 찾아가는 단골 사진관에서. 지난달 끄트머리 어느 비 많이 쏟아지던 날. 사진관 아저씨는 어제 마셨다는 술 때문에 일터에서 엎드려 주무시고, 겨우 깨어나서 나를 보며, "아, 종규씨? 종규씨 왔어? 오랜만이네. 아유. 요새 장사도 안 되니까 이렇게 술이나 마시고 사는 거지. …… 슬라이드 필름? 찾는 사람이 있어야 갖다 놓지. 갖다 놓고 있어도 찾는 사람이 없어. …… 자, 이것도 가져가고 저것도 가져가. 다 가져가도 돼. 필름 공짜로 줄 테니까 더 많이 찍으라고"하는 말씀. 오랜 세월 사진 기자재를 도매로 다뤄 온 아저씨가 디지털로 넘어가지 않은, 또는 못한 일은 잘못인가? 그렇다면 디지털사진이 아닌 필름사진을 찍는 나는 무엇인가.

 

 

[182] 단골 사진관 2

 

저는 단골 사진관에만 갑니다. 일부러 자주 갑니다. 요새는 서울 아닌 곳에서 살림을 꾸리기 때문에 자주 찾아가지 못하게 되었지만, 서울에서 살 때에는 한 주에 한 번씩은 꼬박꼬박 찾아갔습니다. 그렇게 꾸준히 찾아가서 제 필름을 사진관 일꾼한테 보여드려야, 제 사진을 뽑을 때에 어떤 질감과 채도와 명도로 맞추어야 가장 알맞는지 사진관 일꾼들 손과 눈과 마음에 익힐 수 있기 때문입니다.

 

때때로 일이 바빠서 두어 주나 한두 달 만에 찾아가서 사진을 맡기면, 그사이 제 사진을 뽑는 질감을 죄 잊어버려서, 그야말로 돈 날리고 마음 아픈 일이 여러 번 있었습니다. 어쩌다가 단골이 아닌 다른 사진관에 필름을 맡긴 적이 있는데, 필름 현상부터 잘못된 적이 있습니다. 혼자서 사진 현상과 인화까지 다 할 만큼 시간이 넉넉하다면 모르지만, 사진 찍으러 다니기에도 바쁜 몸이라면, 사진관 사람과 살갑게 지낼 수 있어야 합니다. 아니, 사진관 사람과 제가 바라보는 눈길이 같은 자리에 있을 수 있어야 합니다.

 

 

[183] 단골 사진관 3 

 

제 첫 번째 단골 사진관은 서울 외국어대학교 앞에 있습니다. 이곳에서 일하던 '미호'라고 하는 누님이 제 사진을 도맡아서 찾아 준 분입니다. 저는 이 누님 때문에 이 사진관에만 들락거렸습니다. 언제나 제 헌책방 사진을 잘 챙겨 주었고, 제가 미처 느끼지 못한 틀거리를 바로잡아 주었으며, 비슷한 틀거리에서는 어떤 사진이 '헌책방을 잘 모르는 사람이 보기에도 나은가'를 알려주었으며, 자잘한 손재주가 아닌 사진에 담는 마음이 '사진을 보는 사람'한테 큰 즐거움이 됨을 깨닫게 했습니다.

 

그런데 이 누님이 시집을 가고 난 뒤, 단골 사진관에서 제 헌책방 사진을 뽑아 줄 때마다 사진이 많이 헝클어졌습니다. 질감을 비롯해서 명도와 채도가 도무지 안 맞더군요. 그래서 제가 잘못 찍었나 싶어 필름을 꼼꼼히 살펴보았는데, 그게 아니었어요. 저는 사진을 찍을 때 '대충 기계에 넣고 돌려도 제가 바라는 모습이 나오도록 찍으려고' 애를 쓰기는 했지만, 그렇다고 하더라도 이렇게까지 엉망으로 나오도록 찍지는 않았거든요. 아무리 누가 뽑아도 될 만하게 찍는다고 하더라도, 흑백필름으로 찍는 사진을, 또 감도를 높여서 찍는 사진을, 아무렇게나 기계에 넣고 돌릴 수는 없는 법이더군요.

 

그래서 필름에는 틀림없이 이 대목 저 대목이 살아 있는데, 막상 사진으로 뽑힌 것을 보면 머리가 잘리고 다리가 잘리고 하면서 장난이 아니었습니다. 몇 차례 이런 일을 겪은 뒤 조용히 사진관 아저씨한테 말씀드렸습니다. 그러니 그 다음부터 사진이 바뀌었습니다. 예전으로 돌아오더군요. 그러나 얼마 안 가 또다시 망가졌습니다. 다시 말씀드렸고, 다시 나아졌으나 오래 가지 못했습니다. 그래서 단골 사진관을 바꾸기로 마음먹었습니다. 예전 사진관 아저씨한테는 참으로 죄송스런 이야기이지만, 돈벌이가 좋지 못한 저로서는, 제 뜻하고 아주 다르게 나온 엉터리 사진에 돈을 갖다 바칠 수는 없는 법입니다.

 

저는 돈이 남아도는 사람이 아니거든요. 사진 현상과 인화 하는 곳을 바꾼다는 일은, 사진을 찍는 사람한테는 크나큰 모험이자 고달픔입니다. 새로운 현상소 사람들이 제 필름과 인화된 사진 느낌과 질감과 명도와 채도에 익숙해질 때까지, 제가 바라는 사진이 무엇인가를 그분들이 몸으로 받아들이고 마음으로 함께할 때까지 한두 달로는 모자라거든요. 그래도 꾹 참고 기다렸습니다. 그러고 두어 달 뒤부터인가, 제 사진을 조금씩 알아봐 주셨고, 반 해쯤 지난 뒤부터는 굳이 제가 말을 하지 않아도 제 사진을 헤아려 주었습니다.

 

 

[184] 단골 사진관 4

 

그동안 열 차례 넘게 사진잔치를 열면서, '단골 사진관' 이름을 '고마운 분들' 이름에 늘 넣었습니다. 아마, 앞으로 제 이름으로 된 사진책이 나온다고 할 때에도 그분들 가게이름이 들어가겠지요. 비록 그 가게가 문을 닫고 사라진다고 해도.

덧붙이는 글 | 글쓴이 인터넷방이 있습니다.

[우리 말과 헌책방 이야기] http://hbooks.cyworld.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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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말꽃(국어사전)을 새로 쓴다. <말꽃 짓는 책숲 '숲노래'>를 꾸린다. 《쉬운 말이 평화》《책숲마실》《이오덕 마음 읽기》《우리말 동시 사전》《겹말 꾸러미 사전》《마을에서 살려낸 우리말》《시골에서 도서관 하는 즐거움》《비슷한말 꾸러미 사전》《10대와 통하는 새롭게 살려낸 우리말》《숲에서 살려낸 우리말》《읽는 우리말 사전 1, 2, 3》을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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