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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 드넓은 억새평원과 저 부드러운 능선 좀 봐? 아늑하고 포근한 느낌이 매우 좋은 걸.”

“그러게 말이야. 공연스레 겁먹었잖아, 어려운 코스도 전혀 없고, 크고 높은 산이지만 정말 어머니 품속처럼 포근한 산인데...”

 

누에봉과 중봉사이 드넓게 펼쳐진 억새능선을 걸으며 친구들이 감탄을 합니다. 억새능선 중간에서 바라본 정상 능선도 매우 부드러운 모습이었습니다. 출입통제로 정상인 천왕봉에는 오르지 못했지만 중봉에서 둘러보는 무등산 풍경이 토실토실 살찐 암소 등처럼 매끈하고 부드러운 모습이었지요.

 

지난 12월 9일 전국 100대 명산을 찾아서 45번째 산으로 광주광역시와 담양, 화순군에 걸쳐 있는 무등산에 올랐습니다. 산행은 증심사 입구 골짜기에서 시작했습니다. 시내버스 종점에서 내려 증심사로 오르지 않고 골짜기를 따라 곧장 약사사로 오르는 길이었지요.

 

골짜기 길가의 올망졸망 늘어서 있는 가게 앞길을 따라 오르다가 산길로 접어들었습니다. 포장길은 좋았지만 날씨가 따뜻하여 금방 땀이 흐르기 시작했습니다. 그래도 겨울인지라 혹시 추울까봐 두툼하게 입었던 겉옷들을 벗어버리자 가뿐하고 시원합니다.

 

약사사 일주문에서 오른 급경사 등산길

 

약사사 입구 일주문에 올라 바라본 절집은 따뜻한 겨울 햇살에 고즈넉한 풍경입니다. 일주문에 서서 잠깐 땀을 식히고 다시 오르막길로 나섰습니다. 이곳에서부터는 그냥 산길입니다. 돌계단도 나타나고 잘 만들어 놓은 나무계단 길도 나타났습니다.

 

그러나 등산객들은 돌계단도 나무계단도 싫고 자연 그대로의 산길을 좋아합니다. 그러나 어쩌겠습니까? 산을 보호하고 등산객들의 안전을 위하여 만들어 놓은 시설이니 불평하지 말고 이용해야겠지요.

 

“아 시원하다, 능선에 도착했으니 이제부터는 쉬운 길이겠지?”

급경사길을 오르느라 땀을 많이 흘린 친구가 은근히 기대감을 표시합니다.

 

“어림없는 소리, 이 산이 얼마나 높은 산인데 겨우 이만큼 오르고 착각을 하다니?”

그러자 다른 친구가 여지없이 말타박을 합니다. 정말 이 친구 말이 맞을 것 같습니다. 무등산은 해발 1187미터나 되는 산입니다. 그런데 아직 한 시간도 오르지 않고 거의 올랐다고 생각하는 건 분명히 당치 않은 착각일 것입니다.

 

예상했던 것처럼 능선길은 다시 급경사 오르막길로 이어지고 있었습니다. 그래도 길은 험하지 않고 좋았습니다. 지난 번에 내린 눈도 모두 녹고 응달 풀숲에만 잔설이 조금씩 보일뿐이었습니다. 준비해간 아이젠은 사용할 필요가 없을 것 같았습니다.

 

한 시간여 만에 새인봉에 올랐습니다. 앞쪽은 바위절벽이었지만 봉우리 위엔 산불감시초소가 덩그렇게 서있는 억새밭이었습니다. 새인봉에서 억새밭 내리막길로 내려서자 중머리재가 나타났습니다. 길쭉한 바위에 새겨 세운 ‘중머리재’ 표지석 옆 억새밭은 점심을 먹는 등산객들의 포근한 안식처가 되어주고 있었습니다.

 

넓은 품과 부드러운 능선으로 이어진 아름답고 거대한 산

 

중머리재에서 왼편으로 오르면 중봉입니다. 그러나 우리들은 중봉으로 오르지 않고 오른편 산허리를 감아 도는 길을 따라 장불재로 향했습니다. 멀리 가까이 바라보이는 무등산 줄기 능선들이 하늘과 맞닿아 부드럽게 이어진 하늘선이 아름답기 짝이 없습니다.

 

“앗, 샘이다. 시원한 물 좀 마시고 담아가야 되겠어.”

장불재로 가는 길에서 작은 샘을 만난 것입니다. 포근한 날씨에 땀을 많이 흘려 준비해간 물을 다 마셔버린 친구가 반색을 합니다. 겨울철이어서 땀을 그렇게 많이 흘릴 것 같지 않아 물을 많이 준비하지 않았던 친구에겐 여간 반가운 샘이 아니었을 것입니다.

 

물을 마시며 살펴보니 ‘샘골’이라는 이름을 가진 이 작은 샘이 바로 광주천의 발원지였습니다. 물을 마셔보니 물맛도 좋았습니다. 시원한 물을 한 바가지씩 마시고 물병까지 채운 일행들은 다시 길을 재촉했습니다. 발 빠른 사람들은 벌써 시야에서 사라진 지 오래였습니다.

 

장불재는 온통 공사중이었습니다. 오른편에는 통신시설들이 세워져 있고 제법 넓은 고갯마루에는 쉼터가 만들어져 있었지만 눈 녹은 물 때문에 질퍽거리는 것이 흠이었습니다. 왼편 산허리 앞쪽에 돌기둥을 빼곡히 세워놓은 것처럼 보이는 것이 입석대였고 조금 더 왼편으로 역시 불쑥 솟아있는 돌기둥들이 서석대였습니다.

 

그러나 아쉽게도 입석대와 서석대는 출입금지구역이었습니다. 복원공사 중이어서 출입을 막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펑퍼짐하고 부드러운 능선으로 이루어진 무등산에 반듯하게 깎아 세운 듯한 돌기둥들이 단애를 이룬 입석대와 서석대, 그리고 정상부근의 수신대는 아주 특이한 주상절리입니다.

 

제주도 해안에서 많이 볼 수 있는 주상절리가 이곳 무등산에도 있다는 것이 여간 신기한 모습이 아닙니다. 주상절리는 단면의 모양이 육각형이나 삼각형의 기다란 기둥 모양을 이루는 절리를 말합니다. 화산암 암맥이나 용암에서 생성되는 것으로 주로 화산지대 현무암에서 많이 나타납니다.

 

바위가 삼각형이나 사각형, 또는 육각형 모양으로 크고 기다란 기둥이 형성되는 이유는 급격한 온도 변화로 마그마의 표면이 급속도로 냉각될 때 수직방향으로 갈라지면서 굳는 현상 때문입니다. 바닷가가 아닌 내륙지방에서는 흔하지 않은 이런 주상절리가 이곳 무등산에 있다는 것이 놀랍고 아름다운 모습이었습니다.

 

주상절리인 입석대와 서석대를 보호하기 위한 공사가 진행 중이어서 출입을 통제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아쉬운 마음으로 왼편 중봉으로 가는 길에 누에봉에 올랐습니다. 누에봉은 봉우리가 멀리서 바라보면 누에의 머리처럼 생겼대서 붙여진 이름으로 군부대에 가로막힌 무등산의 정상 천왕봉에 가장 가까운 봉우리입니다.

 

어머니의 품처럼 아늑하고 포근하지만 날카로운 손톱이 있는 당찬 형상

 

주봉인 천왕봉이 있는 주능선과 중봉 능선 사이는 드넓은 억새평원이 형성되어 있었습니다. 억새밭 사이로 뚫린 길에 들어서자 어느 외국영화에서 보았던 풍경이 떠오릅니다. 한없이 넓게 펼쳐진 평원에서 젊고 아름다운 연인들이 다정하게 손을 잡고 걷는 풍경 말입니다.

 

지왕봉과 천왕봉, 인왕봉에서 규봉암과 누에봉, 서석대로 이어진 주능선의 산기슭에서 중봉으로 이어진 펑퍼짐하게 광활한 지역이 억새평원과 어우러져 환상적인 풍경을 연출하고 있었습니다.

 

“이 무등산 과연 명산이야, 명산, 날카롭지 않게 펑퍼짐하고 부드러운 능선에 이 넓은 품이 큰 산의 풍모를 유감없이 갖추고 있잖아?”

 

“어머니 같은 무등산의 넓은 품이 광주시민과 이 지역 주민들을 품에 안아 행복하게 해주는 형상인 것 같구먼.”

 

“저 입석대와 서석대는 어쩌면 어머니 산의 손톱인지도 몰라. 넓고 부드럽지만 때로는 날카로운 손톱 말이야. 일제치하의 광주학생의거나 5·18 광주민주항쟁처럼 불의에는 단호하고 당당하게 맞서는 기백 말이야.”

 

그럴 듯한 말입니다. 광주광역시와 인근 담양, 화순을 품에 안고 있는 무등산은 결코 단순하게 넓고 부드럽고 큰 산만은 아니었습니다. 입석대와 서석대, 수신대 같은 주상절리가 당차고 기백 넘치는 절경을 보여주고 있었으니까요.

 

억새평원을 가로질러 중봉에 올랐습니다. 중봉에서 바라보는 풍광 또한 일품이었습니다. 골짜기 깊숙이 파고든 광주시가지가 때 이른 옅은 황사 속에서도 어렴풋하게 바라보입니다. 맞은편에 높고 길게 가로 누운 무등산 주능선은 여간 웅장한 모습이 아니었습니다.

 

중봉은 전에 군부대가 자리 잡고 있었던 곳이었습니다. 부대를 이전하고 복원한 곳이었지만 방송국 송신탑이 세워져 있는 곳까지 역시 억새능선이 이어져 있었습니다. 억새밭에 드문드문 서있는 그리 크지 않은 주목들은 부대이전 후에 복원사업의 일환으로 심은 것 같았지요.

 

송신탑 아래 울타리 안에는 제법 덩치 큰 개 한 마리가 지나가는 등산객들을 실눈을 뜨고 쳐다볼 뿐 관심을 보이지 않았습니다. 제법 커다란 바위지대를 지나자 비스듬한 내리막 능선입니다. 능선 끝 부분에 푸른 침엽수들이 수북하게 자리 잡고 있었는데 이곳이 바로 ‘토끼등’이었습니다.

 

토끼등에 이르기 전에 길은 오른편으로 꺾여 있었지요, 이곳에서부터는 원효사까지 계속 내리막길이었습니다. 이쪽은 응달이어서 길가에 녹다 남은 잔설이 보이고 흙길은 질척거리는 진흙 밭이어서 조심스러웠습니다. 넘어지기라도 하면 온통 흙투성이를 면할 수 없겠기 때문이었습니다.

 

‘늦제’ 삼거리에서 오른편으로 길을 잡고 원효사까지 내려가는 길은 룰루랄라 여유가 넘쳐났습니다. 경사도 급하지 않고 길도 좋았기 때문입니다. 신라고승 원효의 발자취와 임진왜란 때 승병을 이끌고 왜구와 맞섰던 영규가 수도했던 원효사는 조용한 정적이 감돌고 있었습니다.

 

특이한 풍경의 원효사 앞마당과 일주문에서 시작하여 일주문에서 마친 산행

 

마당가에는 산위에서 포효하며 내려오는 듯한 자세의 호랑이 상이 인상적입니다. 대웅전 앞마당의 석상 네 개도 다른 절에서는 보기 드문 모습이었습니다. 중앙의 지팡이를 짚은 승려상은 삼장법사인 것 같았습니다.

 

“그럼 오른 쪽은 저팔계고 왼쪽은 사오정이 맞을 것 같은데, 가운데 작은 승려상이 손오공이란 말인가?”

마침 불전함 뒤의 촛불을 손보려고 온 처사에게 물으니 빙그레 웃기만 합니다. 범종각을 돌아 내려오는 길가의 부도군이 지나는 길손들을 전송하는 모습입니다.

 

“아니, 일주문이면 당연히 절로 가는 길인 것 아녀?”

무슨 말인가 싶어 쳐다보니 원효사 일주문 옆 길가에 세워져 있는 간판이었습니다. 자세히 살펴보니 음식점 간판이었습니다. 그런데 세로로 세워진 간판이 하필이면 원효사 일주문과 나란히 세워져 있었는데 음식점 이름이 ‘절로 가는 길’이었던 것입니다.

 

“저 음식점 주인 참 기발한 사람이구먼, 어떻게 저런 구상을 했을까? 그나저나 우린 약사사 일주문에서 등산 시작하여 원효사 일주문으로 나와 등산을 마쳤으니 무등산을 일주한 건가? 허허허”

원효사 일주문 앞 주차장에서 바라본 무등산 위에 흰 구름이 두둥실 떠올라 있었습니다.

덧붙이는 글 | 이기사는 유포터뉴스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태그:#이승철, #무등산, #입석대, #서석대, #어머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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