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지난 3일, 노회찬 진보신당 대표 인터뷰를 마친 기자는 잠시 망설였다. <난장이가 쏘아올린 작은 공(이하 <난쏘공>)>의 소설가 조세희씨가 이곳 서울 노원에서 강연을 하기로 했다는 소식 때문이었다.

 

조세희씨를 강연회장에서 만나기란, 과장을 섞어 얘기하자면 하늘의 별 따기만큼이나 어렵다. 그를 보기라도 할라치면 거리로 나가야 한다. 그곳에서야 펜이 아닌 카메라를 들고 세상을 기록하는 그를 볼 수 있다.  

 

그런데 그날 저녁은 청와대 비서관과 만나기로 며칠 전부터 약속했던 터라 잠시 망설이지 않을 수 없었다. 고민한 끝에 불참을 알리고, 조씨가 특강한다는 장소로 노 대표와 함께 이동했다.

 

왜 <난쏘공>의 판매 속도는 빨라지는가

 

이날 강연자로 나선 조세희씨는 얼마 전 <난쏘공> 출간 30주년을 맞이했다. 판매 부수만 106만부에 이른다고 한다.

 

그런데 노회찬 대표는 어떻게 조씨를 강연자로 초청할 수 있었을까? 정말 궁금했다. 노 대표는 특강이 시작되기 전 기자에게 "정확하게는 기억나지 않지만 조세희 선생님과 알고 지낸 지가 20여 년은 되는 것 같다"며 이렇게 귀띔했다.

 

"몇 달 전에 조세희 선생을 초대하고 싶어서 직접 전화를 했다. 처음엔 조 선생이 난색을 표했다. '강연하다가 쓰러질지 모른다'는 게 이유였다. 그런데 '노형을 위해서 한 가지는 해야겠다'며 승낙했다."

 

노 대표가 전한 대로 조씨의 건강 상태는 좋지 않았다. <난쏘공> 30주년 간담회에도 의사가 동행했고, 이번 특강 얘기에도 주치의가 따라가겠다고 했다는 후문이다. 주최 측에서도 이날 의사를 배치했다고 한다.

 

노회찬 대표는 인사말에서 "조세희 선생을 모신 뒤 가장 많이 들었던 얘기가 '어떻게 모셨나'라는 것이었다"며 이렇게 말했다.

 

"그런데 특별한 비결은 없다. 조세희 선생의 누님이 노원구민이고, 손위 처남도 노원구민인데 (지난 총선 때) 나를 도와주셨다."

 

이날 특강에 조씨의 막내 누님과 손위 처남이 잠시 왔다가 그와 인사를 나누고 돌아갔다. 착하고 따뜻해 보이는 막내 누님의 눈매가 조씨의 그것과 닮았다는 생각이 잠시 들었다.

 

인문학적 재치가 돋보이는 노 대표의 인사말이 더 이어졌다.

 

"오늘 소설가를 모셨다. 시나 소설 등 문학이 더 풍요로워지지 않고 멀어져 가고 있다. <난쏘공>이 처음 나왔을 당시 모든 일간지에는 매월 시평과 소설평이 실렸다. 그달에 발표된 시나 소설을 모아 평론하는 고정란이 있었다. 하지만 이제 그런 난을 찾아볼 수 없다. 20~30년 전에 없었던 '오늘의 운세'가 자리하고 있다. 문학은 멀어지고 운세는 가까워졌다. 문학의 사막화가 진행되고 있는 셈이다. 그런 점에서 조세희 선생을 모신 것은 값지다."

 

이어 노 대표는 출간 30주년을 맞이한 <난쏘공>을 화제로 올렸다.

 

"<난쏘공>은  연속 단편이다. 첫 단편이 쓰인 때가 1975년이다. 그러니까 33년이나 된 셈이다. 몇 쇄를 찍었고, 몇 만부가 팔렸는지도 중요하다. 하지만 초판이 출간된 뒤 100쇄를 찍는 데는 18년이 걸렸고, 100쇄에서 200쇄로 가는 데는 9년 밖에 걸리지 않았다. 소설 등 문학은 시대를 반영한다. 보통 시간이 지날수록 잊히는데 <난쏘공>의 경우 시간이 지날수록 (독자들이) 더 많아지고 있다."

 

그러니까 <난쏘공>의 판매속도가 점점 더 빨라지고 있다는 얘기다. 참 흥미로운 분석이다. 그런데 왜 시간이 지날수록 <난쏘공>의 독자들은 더 많아지는가?

 

"(난쏘공의) 문학성과 그 노선이 전하는 메시지가 우리 현실 속에서 절실하게 와 닿았기 때문이다. 오늘 강연의 주제가 '2008년, 우리 시대 난장이'인데 지금 80% 이상이 그 난장이의 처지에 있다."

 

조세희 "노회찬의 언어와 제 언어, 동급 아니에요"

 

이어 조세희씨는 "태어나서 살다 죽는 과정을 문학에서는 '소멸'이라고 하는데 그 소멸하는 시기에 갖가지 병이 쳐들어왔다, 기억이 나빠지고 건강이 나빠지고…"라며 강연을 시작했다.

 

"노회찬 전 의원이 어떻게 저를 불러냈느냐? 제가 신세를 졌어요. 우리에게 변화가 이루어져야 하는게 그러기 위해서는 우리가 쓰는 말이 달라져야 합니다. 말은 생각이에요. 노회찬 전 의원을 두고 '스타가 나왔다'고 하는데 그건 바보의 언어예요. 노회찬 전 의원이 다른 언어를 사용했어요. 이 사회 구성원으로서 (노 전 의원에게) 신세를 진 거지요."

 

노 대표는 앞선 인사말에서 "조세희 선생을 모신 특별한 비결은 없다"고 했는데, 본인 자체가 '비결'이었던 셈이다. 물론 조씨가 단순히 노 대표의 말솜씨를 추켜세우고 있는 것은 아니었다.

 

"노회찬 전 의원은 변화를 가능하게 하는 새로운 언어를 쓰고 있었어요. 새로운 생각을 하게 하는 특별한 말들을 쓰고 있었어요. 뛰어난 언어였어요. 노 전 의원과 저는 동급이 아니에요. 저는 제 고집의 언어를 썼어요." 

 

"꼭 쓰여야 할 말이 쓰이지 않는" 정치권에서 노 대표는 꼭 해야할 말을 해왔다는 얘기로 들렸다. '촌철살인'의 진정한 의미는 그런 것이었다.

 

조씨는 예정된 시간을 훌쩍 넘겼다. 건강상태가 나빴음에도 과거 '마들평야'였다는 노원구 등지에서 몰려온 시민들과 얘기하는 것이 즐거웠던 모양이다. 그는 특강 말미에 이런 말을 했다.

 

"이 땅에서 바로 이 시간에 행복하다고 믿는 사람이 있다면 그는 다음 두 부류 중 하나다. 하나는 도둑이고 하나는 바보다."

 

우리는 아직도 '낙원동'에 도착하지 않았다는 얘기다. 아마도 조씨는 노 대표가 그런 슬픈 현실을 변화시킬 수 있을 거라는 믿음을 가지고 있는 것 같았다.  

 

지역 명품 특강의 산실, 마들연구소
 

3일 <난쏘공>의 조세희씨 특강이 열린 서울북부고용지원센터 10층 대강당은 300여명의 사람들로 가득 찼다. 자리가 없어 서서 특강을 들어야 할 정도로 열기는 대단했다. 이른바 '지역 명품특강'이 만들어지고 있는 곳이다. 한 관계자는 "특강이 열릴 때마다 200~300명이 몰려오고 있다"고 자랑했다. 생긴 지 얼마 안 되는 서울북부고용지원센터가 이 특강으로 인해 인지도를 높이고 있다는 우스갯소리도 나왔다.

 

'지역 명품특강'을 만들어낸 곳은 노회찬 대표의 지역 근거지인 '마들연구소'다. '마들'이란 노원구 상계동 일대에 말들을 들판에 풀어놓아 길렀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이라는 설과 이곳이 삼밭이어서 삼밭의 순 우리말인 '마뜰'에서 유래했다는 설이 있다. 마들연구소는 지난 11월 28일 '나눔'과 '돌봄'을 모토로 공식 창립됐다. 연구소는 공식 창립하기 전부터 '명사특강'을 열어왔다.

 

지금까지 아나운서 이금희씨('KBS 아침마당을 통해 본 우리들의 삶과 사랑'), <한겨레> 기획위원 홍세화씨('내가 본 프랑스, 다시 보는 한국'), 여성학자 오한숙희씨('저비용 고효율의 부모가 되는 법') 등이 강연자로 나섰다. <난쏘공>의 조세희씨는 네 번째 출연자인 셈이다.

 

내년 1월과 2월에는 각각 <감옥으로부터의 사색> 저자 신영복 성공회대 석좌교수와 진중권 중앙대 겸임교수가 강연자로 나선다. 그리고 영화배우 박중훈씨와 오지여행가 한비야씨, <야생초 편지>의 황대권씨도 섭외 중에 있다. 또 지난 6일에는 정태인·신정완 성공회대 교수, 우석훈 금융경제연구소 박사 등이 '위기의 한국 경제 어디로 가야 하나-한국 경제위기 진단과 해법'이란 주제로 '하루집중 경제특강'을 열었다.

 

일각에서는 마들연구소를 서울시장 도전의 전초기지로 본다. 하지만 노회찬 이사장은 연구소를 '진보의 성찰'을 위한 전진기지로 설정하고 있다. 노 이사장은 창립식에서 "진보진영에 쏟아지는 '당신들만 떠든다', '선언만 한다', '가르치려 한다', '배우려 하지 않는다'는 사람들의 지적을 수용해야 할 것”이라며 “왜 함께 떠들려 하지 않았는지, 우리 편을 왜 많이 만들지 못했는지 성찰해봐야 한다"고 말했다.

 

[최근 주요기사]
☞ "시험은 내가 거부했는데 왜 선생님을 자르나요?"
☞ "30년 버텼지만 점포 정리... 행복하세요"
☞ [기고] 동료 의원들, 종부세 깎는 게 뭐 그리 급합니까
☞ [미디어 비평] 위기의 MBC 뉴스와 75명 기자의 성명
☞ [엄지뉴스] "나를 징계하라"... 서울시교육청 앞 1인시위


태그:#노회찬, #조세희, #마들연구소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1970년 전남 강진 출생. 조대부고-고려대 국문과. 월간 <사회평론 길>과 <말>거쳐 현재 <오마이뉴스> 기자. 한국인터넷기자상과 한국기자협회 이달의 기자상(2회) 수상. 저서 : <검사와 스폰서><시민을 고소하는 나라><한 조각의 진실><표창원, 보수의 품격><대한민국 진보 어디로 가는가><국세청은 정의로운가><나의 MB 재산 답사기>


독자의견

이전댓글보기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