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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수의 도시 풍경. 오래된 기억들이 되살아 나는 풍경
 여수의 도시 풍경. 오래된 기억들이 되살아 나는 풍경
ⓒ 전용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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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름다운 여수 시내를 보려면 구봉산으로

며칠 무척 춥더니 날이 밝으면서 날씨도 풀어진다. 서서히 몸에서 오는 신호. 오늘(12월 7일)은 어디로 떠날까? 그래 여수 시내나 한번 걸어볼까? 시내만 걸으면 너무 심심하니 여수시내 우뚝 솟은 구봉산을 돌아서 내려오는 것도 좋겠다.

간단한 채비만 하고 길을 나섰다. 언제 추웠냐는 듯 산길은 반짝거리는 졸참나무 낙엽들이 바스락거리며 포근하게 느껴진다. 워낙 여수시민들이 즐겨 찾는 산이다 보니 등산로는 잘 정비되어 있다. 힘들지 않게 정상에 선다. 아홉 마리 봉황이 앉아있는 형국이라는 구봉산(九鳳山, 388m) 정상에는 봉황대신 세 개의 큰 안테나가 서있다. 봉황이 날지는 못하겠다.

야! 경치 좋다. 바다위에 떠있는 여수 시내가 한눈에 내려다보인다. 바다 풍경도 아름답다. 건너편 남해도와 돌산도 사이로 수평선을 만들더니 돌산도의 긴 허리를 타고 금오도, 개도, 백야도로 에워싼 호수를 만들어 놓았다. 햇볕을 가득 받은 작은 바위에 앉아 한참을 내려다본다. 따스한 햇살이 너무나 좋다.

바다가 내려다보이는 종각. 해질 녘 울려퍼지는 종소리는 여수 팔경의 하나라고 한다.
 바다가 내려다보이는 종각. 해질 녘 울려퍼지는 종소리는 여수 팔경의 하나라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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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수팔경의 하나인 한산모종

내려오는 길은 등산로를 벗어나 작은 숲길을 따라 내려갔다. 시내 한복판에 있는 산이라 길 잃을 염려는 없겠다. 인적이 드문 길은 터벅터벅 내려가니 나무사이로 기와지붕들이 보인다. 절집을 위에서 내려다보니 또 다른 운치가 있다. 한산사다.

한산사(寒山寺)는 보조국사 지눌이 1195년(고려 명종 25)에 보광사(普光寺)라는 이름으로 창건했다고 전해진다. 임진왜란 때는 수군과 의승군(義僧軍)의 주둔처로 활용된 호국사찰 역할을 수행하였다. 하지만 점차로 쇠락의 길을 걷다가 1931년부터 법당 등을 고쳐지어 지금의 절 규모를 이루고 있단다.

한산사는 유명한 사찰은 아니지만 여수팔경 가운데 하나인 한산모종(寒山暮鐘)으로 유명하다. ‘해질 녘 한산사의 종소리.’ 바다가 보이는 산사에서 울려 퍼지는 종소리는 어떻게 느껴질지 궁금하기만 하다. 하지만 해가 질 때까지 여기서 기다리기는 힘들겠지? 가끔씩 차를 타고 올라오신 분들이 시원한 바다 풍광에 무척 즐거워한다.

구봉산을 내려오면서. 발 아래로 보이는 여수 시내
 구봉산을 내려오면서. 발 아래로 보이는 여수 시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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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수 시내를 걸어서

절 모퉁이로 빠져나가는 산길을 따라 걸으니 체육공원이 나오고 낮은 봉우리를 다시 올라서니 여수 시내가 발아래로 내려다보인다. 가파르게 걸어 내려가는 길은 여수시내로 빨려 들어가는 느낌이다. 시원하게 난 대로(大路). 한쪽으로 집들이 산으로 올라가고, 아래로는 바다로 이어진다.

산비탈에는 오래전부터 지어왔을 밭들이 털갈이 하듯 맨살을 드러내고 있다. 작은 골목길로 들어서니 정겨운 풍경들이다. 구불구불. 차는 들어오지 못하는 길. 지붕위로 빨래가 바람에 날리고, 빨랫줄에는 생선이 햇살을 받으며 꼬들꼬들 말라간다.

골목길 풍경
 골목길 풍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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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수 시내를 가로 지르는 큰 길로 나왔다. <봉산동 벅수>가 마치 새 화장을 한 것처럼 화사하게 반긴다. 석물은 역시 비바람에 닳아야 멋이 있는데….

봉산동은 전라좌수영의 군수기지인 사철소(沙鐵所)가 있던 곳으로, 두개의 돌 벅수는 기지(基地) 수호의 비보(裨補) 역할과 더불어 주민들의 민속신앙의 대상이었다. 하지만 이곳으로 도로가 개설되면서 어디론가 가버리고, 1984년 도로 확장 공사 때 복원해 놓은 것이라고 한다. 집 떠난 돌 벅수는 잘 살고 있을까?

마침 여수장날이다. 시장은 북적거린다. 시내 번화가를 따라 걷는다. 정말 오래간만에 걸어보는 길이다. 요즘은 시내 번화가를 걸을 일이 없다. 아파트 주변에서 모든 일이 해결된다. 친구들과 어울려 다니던 젊음의 열정은 다시는 돌아오지 않을 것 같다. 어디선가 은은히 들려오는 크리스마스 캐럴이 귓가를 살랑거린다. 아직 사람들은 거리로 많이 나오지 않았다.

국보 제304호로 지정된 진남관의 웅장한 모습
 국보 제304호로 지정된 진남관의 웅장한 모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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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남관은 학교로 사용된 적이 있다

거리가 끝나갈 즈음 진남관이 자리 잡고 있다. 진남관(鎭南館)은 이순신 장군이 전라좌수영의 본영으로 사용하던 진해루(鎭海樓) 터에 임진왜란 뒤인 선조 32년(1599) 삼도통제사 겸 전라좌수사 이시언(李時言)이 건립한 객사다. 건물 높이가 14m, 길이가 54.5m로서 둘레가 2.4m의 기둥이 68개나 서있는 큰 건물이다.

유물전시관 진남관 자료 사진.
 유물전시관 진남관 자료 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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망해루(望海樓)를 지나 진남관으로 들어선다. 웅장한 지붕선이 하늘을 받치고 있다. 진남관(鎭南館) 현판글씨가 힘차게 보인다. 남쪽의 왜구를 진압하여 나라를 평안하게 한다는 의미를 가지고 있단다. 진남관을 한 바퀴 돌아본다. 기둥이 참 많다. 근데 기둥에 땜질한 자국들이 있다. 그것도 기둥 간에 서로 마주보면서 일정하게.

마루에 올라가면 좋겠는데 올라가지 말란다. 말을 잘 들어야지. 마루에 앉으니 담장 너머로 돌산대교 보인다. 옛날에도 담장이 있었을까? 담장 아래 네모난 돌을 쌓아 놓은 탑이 보인다. 가까이 가보니 돌 하나하나에 글자 한자씩 여보공립학(麗普公立學)이라고 쓰여 있다. 이게 왜 여기에 있을까?

이 의문은 바로 아래에 있는 임란유물전시관에서 시원한 답을 얻었다. 근대 진남관의 역사를 알려주는 사진에 1910년대부터 1930년대까지 학교로 사용한 사진이 남아있다. 아! 또 열 받게 한다. 호국의 상징인 진남관을 기둥마다 벽을 만들고 학교로 사용했다니. 거기다 사진 속에는 난로 연통도 보인다. 불이라도 났다면….

주택가 속에 숨어있는 사적비

진남관 옆으로 길이 있다. 위로 올라가니 학교가 나온다. 학교(여수공고) 앞으로는 여수 시내를 내려다보면서 걸어갈 수 있는 포장도로가 잘 나 있다. 길을 따라 걷는다. 길 이름도 재미있다. 동헌령길, 큰샘길, 빨래터골목, 가파른길 등등. 산 아래 달동네 분위기가 물씬 풍긴다.

산 아래 동네 풍경
 산 아래 동네 풍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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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 아래 달동네 사이로 난 반듯한 길은 차가 별로 다니지 않는다. 옛날 풍경이 고스란히 남아있는 골목골목을 기웃거린다. 정겹기만 하다. 여수 시내를 좌측으로 끼고 계속 걸어가니 <여수 호좌수영 수성 창설 사적비>가 있다. 의외다. 좌수영성에서 한참을 떨어진 거린데 왜 여기에 이런 비석이 있을까?

대충 내용은 이렇다. 1773년(영조49년) 호남좌수사 김영수(金永綬)가 전라좌수영 성을 대대적으로 개축·보강하고, 군사를 정비하여 군기와 잡물 등을 마련하고, 중앙에서 지방관아로 매달 부과하는 세금[月課米]과 털없는 겉벼[正租] 등을 백성들에게 거두지 않고 마련해낸 공적을 기리기 위해 여수지방의 군사들과 의승(義僧)들의 뜻을 모아 1779년(정조 3년)에 세운 것이라고 한다.

비석의 의미만큼 큰 대접을 받지는 못한 것 같다. 비각을 차지한 좁은 공간만 놔두고는 집들로 에워싸여 있다. 문은 굳게 닫혀있어 내용을 자세히 볼 수도 없다. 난데없는 불청객에 철문사이로 개가 심하게 짖는다.

코가 큰 벅수는 누구?

다시 길을 따라 걸어간다. 조금 더 걸어가니 길 양편으로 마주보고 있는 벅수를 만난다. <연등동 벅수>다. 근데 한쪽 벅수의 코가 무척 크다. 왜 이렇게 코가 큰 벅수를 만들었지? 이리저리 둘러보며 의심을 감출 수가 없다. 혹시 최근에 만든 건 아닐까? 하지만 안내판에 중요민속자료 제224호로 지정되어 있는 걸 보면 오래전에 만들어진 게 분명하다.

당시에 코큰 외국인이 있었을까? 맞은편 뭉툭한 코를 가진 벅수와 너무나 대조된다. 문득 떠오른 이름. 혹시 하멜? 그러고 보니 하멜은 전라좌수영에서 노역을 했다고 했는데. 당시가 1660년대. 아마 밤을 틈타 도망간 하멜일행을 영원히 잡아두고자 문지기로 만들어 놓았을까?

여수 연등동 벅수. 동편 코가 큰 벅수는 남정중(南正重), 서편 코가 뭉툭한 벅수는 화정려(火正黎)라고 쓰여 있다.
 여수 연등동 벅수. 동편 코가 큰 벅수는 남정중(南正重), 서편 코가 뭉툭한 벅수는 화정려(火正黎)라고 쓰여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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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수 연등동 벅수 한쌍
 여수 연등동 벅수 한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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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시 즐거운 상상을 하면서 계속 걷다보니 여수사건 전적지도 나온다. 잉구부 전투지라는 안내판이 서있다. 예전 여수로 들어오는 길목인 이곳에서 반군과 진압군의 치열한 격전을 벌였던 곳이라고 한다. 이곳에서 반군이 진압군을 공격하여 큰 피해를 주었다고 한다.

잉구부길을 쭉 따라가니 시외버스터미널이 나온다. 시내를 걸어 다니는 건 무척 힘들다. 산길을 다니는 것 보다 허리에 충격이 많이 간다. 아이고! 허리야.

여수(麗水) 연등동(蓮燈洞) 벅수

중요민속자료 제224호

벅수는 한국적인 토속미를 잘 보여주는 전통 신앙물로서 장승이라고도 한다. 마을의 성역(聖域)·사찰입구·도로변·성문 밖 등에 세워져 잡귀를 막고 경계표시와 방향 및 거리를 나타내는 이정표(里程標) 역할을 하였다.

동편 벅수에는 하늘을 맡은 신이란 뜻의 남정중(南正重), 서편 벅수에는 땅을 관장하는 신이란 뜻의 화정려(火正黎)가 새겨져 있다. 서편 벅수 뒤편에 ‘무신(戊申)사월’이라는 명문이 있다.

이 벅수가 위치한 곳은 옛 전라좌수영성(全羅左水營城)의 서문(西門)으로 통하는 길이므로, 여수의 중심부로 들어가는 길목의 표지 기능을 하였을 것으로 보인다.

- 여수시 안내판에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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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붙이는 글 | 걸어간 길 : 시외버스터미널-구봉산-한산사-진성정보고 옆-봉산동-서시장-진남관-여수공고-충무동사무소-돌벅수-잉구부길-시외버스터미널(전체 소요시간 4시간 30분정도)



태그:#여수, #진남관, #벅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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