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버스 레이업을 시도하는 김효범 김민수 선수를 피해 리버스 레이업을 시도하는 김효범. 출처-울산 모비스 피버스 홈페이지

▲ 리버스 레이업을 시도하는 김효범 김민수 선수를 피해 리버스 레이업을 시도하는 김효범. 출처-울산 모비스 피버스 홈페이지 ⓒ 모비스 피버스 홈페이지

울산 모비스 피버스. 등번호 34번.

 

2005-06시즌, 울산 모비스가 KBL리그에서 우승을 차지할 때, 농구 팬들은 34번 선수가 누구인지, 어느 대학 출신인지 궁금해 했다.

 

보통은 고등학교와 대학시절 이름을 알린 선수가 프로무대에서도 빛을 내기 마련. 하지만, 혜성같이 등장한 신인 선수에 대한 정보는 없었다.

 

덩크를 자유로이 구사하고, 호남형 외모에 해외파라는 것이 전부였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 부상으로 결장하는 시간이 늘어나고, 신인 양동근이 스포트라이트를 받으면서 김효범에 대한 관심은 더이상 계속되지 않았다.

 

KBL 데뷔와 함께 그를 끈질기게 물고 늘어졌던 허리부상은, 평균 20점 이상은 족히 해낼거라던 촉망받는 선수를 3년동안 교체멤버로 전락시켰다. 선수의 심리를 정확히 알고 있던 유재학 감독의 덩크슛 금지와 수비형 선수로의 훈련도 그를 힘들게 했다.

 

2007-08 시즌동안 경기 수를 늘이면서 감각 되찾기에 노력했던 그에게, 유재학 감독의 고된 훈련과 언론의 뭇매는 그에게 또 다른 시련이었다. 잘못된 점을 되새기고, 패배의 원인을 찾아 곱씹고 또 곱씹었다.

 

고진감래라 했던가.

 

양동근이 빠진 모비스는 약체팀이 될 것이라는 항간의 평가를 비웃듯, 새로 영입된 김현중과 우승연, 무섭게 성장하는 함지훈과 함께 모비스를 최강의 팀으로 만들어 놓았다.

 

12월 8일 현재, 경기당 3점슛 성공이 가장 많은 선수(경기당 2.81개)로 이름을 올리고,성공률2위(47.37%), 득점부분 국내2위(16.06점)를 기록하며 모비스가 단독 선두에 이름을 올릴 수 있게 했다.

 

시즌 초반, 팬들에 의해 국가대표로 뛰는 모습을 보고 싶다는 말들이 소록소록 피어나더니, 김효범의 국가대표 확정설이 나돌았다. 그러더니 12월 5일 그에 관한 기사들이 앞다투어 생산되기 시작했다.

 

특히나, 중앙일보 S 기자의 병역기피 의혹성 기사가 나오면서 김효범의 KBL 등록자체를 의심스레 바라보는 눈이 생겼다.

 

용병들 만으로는 KBL이 기대했던 만큼의 프로농구에 대한 관심이 나지 않자, KBL은 해외동포 선수들을 용병이 아닌 한국인으로 등록을 할 수 있도록 했고, 그에 따라 김효범은 2005년 드래프트에서 울산에 2순위로 지명이 되었다. 83년생으로 당시 22살이었던 그는, 태극마크도 달아 보고 싶었을 것이고, 프로에서 최고의 선수가 되고 싶었을 것이다.

 

하지만 부상이 이어졌고, 국가 대표는 물론이고 스타 플레이어는 꿈에도 생각해 보지 않았다, 아니 엄두가 나지 않았다. KBL에 남아 있는 것 자체가 김효범에겐 목표였으니까.

 

그렇게 4년이 흐르고, 사람들이 알아주고 실력이 어느 수준에 이르르자 이런 이야기가 흘러나왔다.

 

논란이 시작되고 기사화된 것이 12월 5일. 이 것으로 인해 신문사와 잡지사와의 인터뷰가 이어졌으니 12월 7일  경기에서 김효범은 경기에 집중을 할 수 없었다. 14득점에 필드골 성공률이 23%에 머무는, 이전 게임과는 달리 다소 흔들리는 모습을 보였다.

 

국가대표 차출을 위한  언론 플레이인가, 아니면 김효범을 짓누르기 위한 타 팀의 술책인가.

 

호사다마. 2008년 김효범의 힘겨운 KBL 겨울나기는 쉽게 가라앉지 않을 듯 하다. 

2008.12.08 16:53 ⓒ 2008 OhmyNews
김효범 모비스 KB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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