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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디 갔다 돌아와 보니 현관 문 앞에 얌전하게 택배 박스가 놓여 있다. 박스 크기를 보니 그다지 크진 않다. 뭘까? 내가 시킨 건 아니고, 그렇다면 그 사람이 시킨 건데 뭘 시킨 걸까?

며칠 전에 그가 했던 말이 떠올랐다. 씨를 뿌려서 차나무를 한 번 키워보고 싶다고 그랬다. 차는 그냥 마시는 거지 키우는 거라고는 생각하지 않았는데 그는 차나무를 키워보고 싶단다. 그냥 사서 마시면 되지 뭘 키우기까지 하냐고 퉁박을 줬었는데, 그새 차 씨앗을 주문했던 모양이다.

그는 차를 좋아한다. 그가 차를 좋아하는 걸 아는 지인들은 우리 집에 올 때면 차를 잘 들고 온다. 좋은 차가 생기면 반절 뚝 잘라서 덜어주기도 한다. 그래서 우리는 이런저런 차를 입맛대로 골라가며 맛본다.

시험 삼아 심은 차나무, 혹여 얼어 죽을까 봐 비닐막을 쳐주고 낙엽으로 덮어 주었다.
 시험 삼아 심은 차나무, 혹여 얼어 죽을까 봐 비닐막을 쳐주고 낙엽으로 덮어 주었다.
ⓒ 이승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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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 맞는 이와 함께 하는 차의 향연

사실 나는 아직도 차 맛을 잘 모르겠다. 그가 좋아하는 보이차도 내 입에는 짚단을 삶아 우려낸 물 같기만 하다. 색깔도 맛도 꼭 짚 삶은 물 한가지다. 다만 차이가 있다면 끝 맛 정도가 조금 다르긴 다르다. 보이차는 마시고 나면 입안에 단맛이 남는다. 그리고 입 안이 개운하며 마르지도 않는다.

또 어떤 차는 구수하게 느껴지기도 한다. 단맛과 구수함 그리고 미묘한 향기와 청량감 때문에 차를 좋아하는걸까. 나는 그가 왜 차를 좋아하는 지 잘 모르겠다.

차 맛을 결정하는 데는 어떤 차를 마시느냐보다 누구와 함께 마시느냐가 더 중요하다고 나는 생각한다. 비싼 차가 아니라도 좋은 다기가 없더라도 좋다. 마음 맞는 이와 함께 마시는 차는 그냥 차가 아니다. 좋은 이와 함께 마시는 차는 무궁무진한 세계로 들어가는 문이다. 아마도 그는 그 문 앞에서 서성이는 여행객인 지도 모르겠다.

차 주전자를 앞에 두고 대여섯 시간씩 시공간을 넘나들며 이야기의 꽃을 피운다. 대화의 소재는 무궁무진하다. 다른 주전부리도 필요 없다. 그저 차만 있으면 된다. 나는 그런 그들을 보며 우스갯소리를 한다.

"물고문이 따로 없네요. 물만 한 바가지씩 마시게 하고."

차를 좋아하지 않는 사람들에게는 물고문이 따로 없겠지만 차를 좋아하는 이들에게는 다시 없는 향연이 되는 셈이다.

차를 즐겨 마시다 보니 그런지 그는 차나무에도 관심이 좀 많다. 그래서 늘 궁리한다. 우리가 사는 강화도에서도 차나무를 키울 수 있는지 궁금해 한다.

그의 말에 의하면 차나무는 추위에 약하다 한다. 기온이 영하 10℃ 이하로 며칠 계속 되면 차나무는 얼어 죽고 만다고 한다. 때문에 차의 재배지는 우리나라의 경우 전라도와 경상도를 경계로 그 위의 위도 상에서는 차를 재배하기에 어렵다고 한다.

하지만 예전과 달리 겨울에도 기온이 올라가고 있는 요즈음에는 차 재배지가 위쪽으로 올라오는 경향이 있다 한다. 그래서 자기도 시험 삼아서 차를 한 번 심어봤으면 싶다고 그랬다.

좋아하는 차, 직접 만들어 보자

봄에 차나무 묘목을 주문했는데, 이리 말랐는데도 살아날 지 의문이다.
 봄에 차나무 묘목을 주문했는데, 이리 말랐는데도 살아날 지 의문이다.
ⓒ 이승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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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에 대해 이 것 저 것 연구하고 궁리하던 그가 드디어 일(?)을 저질렀다. 지난봄에 그는 시험 삼아 심어 본다면서 차나무 묘목을 몇 그루 샀다.

차나무는 땅 속으로 깊게 뿌리를 내리는 성질이 있다 한다. 그래서 차나무를 옮겨 심으면 잘 살아 남지 않는단다. 때문에 씨를 뿌려 살리는 방법이 좋다고 한다. 씨를 뿌려서 싹을 틔운 차나무는 병치레도 잘 안 하고 특별하게 가꾸지 않아도 잘 견딘단다. 돌이 있는 비탈 밭이나 산에 차나무 씨를 뿌리고 그냥 두어도 차는 싹을 틔우고 뿌리를 내린단다. 차나무 둘레의 풀들을 베줄 필요도 없단다. 오히려 적당하게 풀이 있는 게 더 좋단다.

또 차나무는 산불이 나서 다른 나무들이 다 타죽어도 살아남는단다. 다음 해 봄에 보면 불붙은 등걸 밑으로 해서 새싹이 나고 가지를 뻗는단다. 그만큼 차나무는 생명력이 강하다는 소리일 거다.

아는 이 중에 지리산 자락에 기대어 사는 이가 있다. 그는 자기만의 차를 만들었고 지금은 그 차를 판매할 정도로 차에 대해서 일가를 이루었다. 그이는 남편에게 자기만의 차를 만들어 보라고 권했나 보다. 그이의 말을 들은 남편은 차나무에 대한 공부에 열을 올린다.

드디어 그가 행동에 나섰다. 지난봄에 차 묘목을 사서 텃밭에다 심었다. 보내져 온 차 묘목은 잎뿐만 아니라 뿌리까지도 말라 있었다. 이게 과연 살아날까 의문이었다. 차나무는 옮겨 심으면 잘 살지를 않는다는데 과연 뿌리를 내릴 지 반신반의했다.

차 묘목을 열 그루 심었는데 다행히 그 중 여섯 그루가 살아남았다. 시험 삼아 심은 거였는데 살아남았으니 그의 기쁨은 컸다.

하지만 그걸로 만족하기에는 양이 안 찼는 지 그는 한 번씩 차나무 타령을 한다. 그래서 세뇌교육을 한다. 가랑비에 옷 젖는다고 자꾸 듣다보니 나도 어느 새 차나무에 관심이 간다.

그러자 그는 본격적으로 나서기 시작한다.

"여보, 처갓집 동네에다 차를 한 번 심어 보자. 그긴 여기보다 따뜻하고 또 감나무가 잘 되는 곳이니 차도 잘 될 거야. 처가집 근처에 차를 심으면 당신도 친정 자주 가게 되고 좋잖아. 그리고 야생차는 씨를 뿌려두고 십 년이나 지나야 수확을 한다는데, 그 동안 손 볼 일도 별로 없대. 헐쭉한 땅을 사서 차 씨를 좀 뿌려보자."

아니, 일껏 수도권으로 올라왔건만 다시 경상도로 내려가잔다. 수도권의 편리함에 길이 든 나는 그 제안을 일언지하에 물리쳤다. 하지만 그 또한 자꾸 듣다보니 구미가 약간 동한다.

그 낌새를 눈치 챈 그가 드디어 차씨를 주문한 모양이다.

참 갈수록 태산이다. 차를 좋아하면 그냥 좋아하는 차를 사서 마시면 될 일이지 뭐하려고 차나무를 심겠다는 걸까. 차를 만드는 일이 그리 쉽다면 그 누군들 안 했겠나. 어려우니 못 달려들지.

하지만 그는 오늘도 용맹분투 꿈에 젖는다. 처가집의 묵밭을 얻어서 차 씨를 심고 십 년 뒤에 자기만의 차를 마실 꿈에 오늘도 부풀어 있다.

차나무 씨앗. 겉껍질을 깐 도토리 같다.
 차나무 씨앗. 겉껍질을 깐 도토리 같다.
ⓒ 이승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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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그:#차 나무, #차 씨앗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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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일을 '놀이'처럼 합니다. 신명나게 살다보면 내 삶의 키도 따라서 클 것이라는 생각을 하며 오늘도 뭐 재미있는 일이 없나 살핍니다. 이웃과 함께 재미있게 사는 게 목표입니다. 아침이 반갑고 저녁은 평온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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