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스트 러브 인 뉴욕>은 바로 시한부 인생 남녀가 보석 같은 시간들로 엮은 사랑이야기입니다.

<라스트 러브 인 뉴욕>은 바로 시한부 인생 남녀가 보석 같은 시간들로 엮은 사랑이야기입니다. ⓒ 골드써클필름스

그 남자가 마지막으로 사랑한 여자, 그 여자가 마지막으로 사랑한 남자, 그들의 너무 아파 상큼한 사랑이야기가 가슴 짠하게 합니다.

시한부 인생, 이미 영화나 문학의 단골메뉴가 된 지 오랩니다. <라스트 러브 인 뉴욕>은 바로 시한부 인생 남녀가 보석 같은 시간들로 엮은 사랑이야기입니다.

원제는 '그리핀 앤 피닉스'인데, '그리핀'은 상체는 독수리고 하체는 사자인 상상 속의 동물이고, '피닉스'는 눈부신 진홍빛의 불사조를 뜻합니다.

아마 이들의 시한부 삶의 희소가치를 두고 붙인 이름인 듯한데, 우리나라에서는 그들이 사랑하는 현장인 뉴욕을 강조하여 <라스트 러브 인 뉴욕>으로 정한 것으로 보입니다. 몇 가지 관전 포인트를 집어 평을 써보겠습니다.

[첫째 포인트] 시한부 인생

바람이 나뭇가지를 살살 흔들어대는 가을 어느 날, 뉴욕의 한 병원에서 진찰을 받은 한 남자, 그리핀(더모트 멀로니 분)은 의사로부터 폐암 말기로 진단받습니다. 1년밖에는 살 수 없는 시한부 인생이라는 겁니다. 그는 병원에서 시간을 보낼 수는 없다고 생각합니다.

똑같은 상황에서 똑같은 생각을 하는 다른 한 사람이 있습니다. 대학의 부학장이면서 누구에게도 선망의 대상인 아름다운 여자 피닉스(아만다 피트 분)가 그녀입니다. 그녀 역시 자궁암 말기 환자로 시한부 인생입니다. 둘은 죽음을 맞기 위해 죽음에 대한 심리학 강의를 듣다가 첫눈에 반합니다.

이미 청년기의 열정은 아니지만 그들에게는 얼마 안 남은 날들에 대한 열정이 있습니다. 그 열정이 뉴욕에 녹아듭니다. 그 열정이 서로에게 녹아듭니다. 그들의 '침대에서 남은 날들을 보낼 수 없다'는 생각의 공통분모가 둘의 사랑을 삶에 절규하게 만듭니다. 관객인 저 또한 그들의 사랑에 콧등이 찡합니다.

우린 모두 시한부 인생이 아닙니까. 그게 1년이든 30년이든 다를 게 뭡니까. 시간의 길이만 다를 뿐입니다. 그렇다면 인생에 답은 나와 있습니다. 어차피 누구나 시한부 인생이라면 그들처럼 사랑하며 삽시다. 다투고 미워할 시간이 없습니다. 욕하고 질시할 시간이 없습니다. 사랑하며 삽시다.

[둘째 포인트] 분노

 시계탑 안에서의 정사 장면이 너무 환상적입니다.

시계탑 안에서의 정사 장면이 너무 환상적입니다. ⓒ 골드써클필름스


분노하기에 인간이라는 사람도 있습니다. 그러나 이들의 분노에는 이유가 없습니다. 그 분노에는 대상이 없습니다. '왜 하필이면 나냐?' 바로 이게 이유입니다. 왜 하필이면 그리핀일까요. 왜 하필이면 피닉스일까요. 그것은 그들 자신도 모릅니다. 그렇다면 남이 알까요. 역시 모릅니다.

신만이 아는 일이겠지요. 그들의 삶이 부도덕해서일까요. 그들의 삶이 비정상이어서일까요. 아무래도 그 이유는 쉽게 손에 잡히지 않습니다. 그래서 분노합니다. 그래서 화가 납니다. 그리핀의 집에서 시한부 환자를 위한 책을 발견하고 자신을 속였다며 분노하는 피닉스의 모습을 시작으로, 데이트 도중에 만난 한 아이 엄마에게 화를 내는 피닉스의 모습은 어이가 없을 정도입니다.

거리에서 둘이 데이트를 하다 한 엄마가 아이에게 야단을 치는 장면을 목격하고 피닉스가 끼어듭니다. "당신은 엄마 자격이 없다"라며 유모차를 빼앗아 내동댕이칩니다. "당신 같은 사람이 엄마라니 어떻게 이럴 수가"라고 그녀가 외친 이 말 속에는 참담한 자신에 대한 분노가 들어있습니다.

화는 나는데 누구에게 화를 내야 하는지 그것을 모릅니다. 자신에게 화를 낼 수도 없습니다. 의사에게 화를 낼 수도 없습니다. 아니면 세상에 화를 낼 수 있을까요. 그리핀은 모든 게 설명 가능하다고 믿습니다. 그러나 자신들의 운명에 대하여는 역시 설명이 불가능합니다.

이들의 분노는 원인규명도 안 되지만 출구도 없습니다. 피닉스가 엉뚱한 아이 엄마에게 화를 내듯, 그리핀은 애꿎은 자동차를 마구 부수며 화를 풉니다. 그렇게 분노는 삭아듭니다. 그렇게 암 덩어리도 시간이 가면 삭아들면 얼마나 좋을까요. 하지만 암은 그렇게 삭아드는 게 아니었습니다.

[셋째 포인트] 마지막으로 ○○○하기

 그리핀이 아이들과 낚시하던 강, 아이들과 농구하던 공원, 둘이 만난 학교, 레스토랑, 둘이 숨어들었다가 쫓겨난 극장, 허드슨 강변… 뉴욕의 모습입니다.

그리핀이 아이들과 낚시하던 강, 아이들과 농구하던 공원, 둘이 만난 학교, 레스토랑, 둘이 숨어들었다가 쫓겨난 극장, 허드슨 강변… 뉴욕의 모습입니다. ⓒ 골드써클필름스


'당신이 만약 내일 죽는다면 무엇을 해보고 싶습니까?' 사람들은 때로 이런 질문 앞에서 자신의 삶을 성찰하기도 합니다. 그런데 영화는 교육이 아니라 실제입니다. 그간 하고 싶었으나 하지 못한 일, 꼭 해보고 싶은 일을 하나하나 해나갑니다.

마지막으로 바다를 보러갑니다. 왜 하필 좋은 바닷가 다 두고 코니아일랜드냐는 피닉스의 불평이 있긴 했지만, 어쨌든 둘은 바닷가를 거닙니다. 이어 마지막으로 공공장소에 낙서를 합니다. 물 저장탱크에 '그리핀은 피닉스를 사랑한다'는 내용의 낙서를 하고는 잡으려고 쫓아오는 경찰들을 피해 줄행랑을 치는 이들이 그리 천진스러울 수가 없습니다.

다음으로, 마지막으로 센트럴 파크를 산책합니다. 가을의 냄새가 물씬 풍기는 거리에서, 낭만으로 가득 찬 거리에서 마지막 산책을 합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완벽한 이별을 하기로 약속합니다. 그 완벽한 이별은 누구든 먼저 병원에 가더라도 찾아가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이 약속은 지켜지지 않습니다. 조용히 병원으로 사라진 피닉스를 결국 그리핀은 찾고 말았으니까요. 그들은 이미 중년입니다. 그리핀의 경우는 두 아이의 아빠인 이혼남입니다. 하지만 그들의 짧은 사랑은 청년들 못지않습니다. 나름대로 불타는, 그러면서도 애틋한 사랑입니다. 나이나 연애 기간은 숫자에 불과하더군요.

[넷째 포인트] 뉴욕

 병원을 몰래 나와 멋진 계곡에서 벌인 크리스마스 축하파티 또한 잊을 수 없는 장면입니다. 뉴욕에서의 마지막 사랑, 짠하군요.

병원을 몰래 나와 멋진 계곡에서 벌인 크리스마스 축하파티 또한 잊을 수 없는 장면입니다. 뉴욕에서의 마지막 사랑, 짠하군요. ⓒ 골드써클필름스


에드 스톤 감독은 멜로드라마를 뉴욕에서 찍고 싶었던 같습니다. 결국 이 영화를 뉴욕에서 찍었습니다. 뉴욕의 가을이 아니라면 해낼 수 없는 둘의 사랑은 조용히 겨울을 향하여 달리는 뉴욕과 잘 어울립니다. 우리나라에서 '그리핀 앤 피닉스'를 굳이 <라스트 러브 인 뉴욕>으로 정한 것도 감독의 뜻을 읽은 결과라고 생각합니다.

2000년 조안 첸 감독의 <뉴욕의 가을> 못지않은 풍경이 '역시 뉴욕이구나' 하게 만듭니다. 가을, 뉴욕, 아름다운 풍경, …. 예, 모두 다 갖추고 있습니다. 금붕어 수족관에 떠오르는 금붕어를 손가락으로 내리누르는 그리핀의 첫 장면부터 심상치 않습니다. 수족관이 뉴욕에만 있는 것은 아니지만 뉴욕에서의 삶을 보여주는 장면입니다. 그리핀 자신의 모습이기도 하구요.

복잡하고 다양한 뉴욕, 약육강식의 뉴욕, 기회의 땅 뉴욕, 뉴요커가 된다는 것 자체가 특권인 뉴욕, 그 속에서 두 남녀만큼은 다른 뉴요커들과는 다른 삶과 사랑을 합니다. 이 아이러니가 두 연인을 사랑하는 것만으로도 만족하고 행복한 뉴요커로 만드는가 봅니다.

그리핀이 아이들과 낚시하던 강, 아이들과 농구하던 공원, 둘이 만난 학교, 레스토랑, 둘이 숨어들었다가 쫓겨난 극장, 허드슨 강변, 각이 분명한 성냥갑 같은 고층 건물들, 짧은 계단을 올라야 하는 아파트, 철도, 자동차, 거리, 병원, 그 무엇보다 다양한 사람들, 그 중에 사랑하는 연인 사이인 그리핀과 피닉스가 있기에 뉴욕은 뉴욕일 수 있습니다.

시계탑 안에서의 정사 장면이 너무 환상적입니다. 병원을 몰래 나와 멋진 계곡에서 벌인 크리스마스 축하 파티 또한 잊을 수 없는 장면이고요. 뉴욕에서의 마지막 사랑, 짠하군요.

덧붙이는 글 <라스트 러브 인 뉴욕> / 에드 스톤 감독 / 더모트 멀로니, 아만다 피트 주연 / 골드 서클 필름스 제작 / (주)스튜디오 2.0 배급 / 102분 / 11월 27일 개봉 / 지난 4일 감상하고 쓴 글입니다.
라스트 러브 인 뉴욕 개봉영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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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도 행복이라 믿는 하루가 또 찾아왔습니다. 하루하루를 행복으로 엮으며 짓는 삶을 그분과 함께 꿈꿉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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