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암스테르담 거리 풍경
 암스테르담 거리 풍경
ⓒ 전용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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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덜란드의 또 다른 이름들

네덜란드 사람들은 낮은 땅덩어리라는 뜻의 네덜란드(Nederland)라는 이름보다는 다른 이름으로 부른다. 거리에도, 간판에도, 버스에도 모두 홀란드(Holland)라고 쓰고 있다. 우리에게 잘 알려진 한자식 표기인 화란(和蘭)도 여기서 유래되었단다.

네덜란드는 12개주로 구성되어 있는데, 주요도시인 암스테르담, 로테르담과 함께 헤이그가 있는 홀란드 주가 가장 크다. 16세기경 홀란드주가 경제중심으로 떠오르면서 국명처럼 알려졌고, 지금도 대부분 홀란드라고 부른다. 궁금증이 풀린다.

또 다른 이름으로는 더치(Dutch)라고도 부른다. 13세기 무렵 영국으로부터 양모를 값싸게 들여와서 가공 생산하는 중계무역을 하다가 점차로 영국과 상권을 가지고 경쟁하게 된다. 17세기에 들어서면서 영국에서는 견제를 하고 전쟁까지 하게 되지만 결국에는 가장 강력한 해상세력을 갖게 된다.

이때부터 영국에서는 네덜란드인들에게 치를 떨고 버러지 같다고 비아냥거리는 은어로 더치라고 불렀단다. 하지만 네덜란드인들은 아끼는 정신이 더치의 정신이라고 자랑스럽게 사용한다고 한다. 짠돌이의 나라. 공짜가 없는 나라. 더치페이의 원조다.

운하 유람선
 운하 유람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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운하 유람선을 타고 옛 도시 속으로

운하의 도시에 와서 운하유람선을 안타고 갈 수 없다. 중앙역 앞에 유람선 선착장이 있다. 한강유람선과 비슷한 배를 탔다. 배안에는 많은 관광객들이 타고 있다. 한국관광객들이 많이 찾는가보다. 설명을 한국어로도 방송을 한다.

네덜란드인들은 자기 말을 갖고 있는 걸 자랑스럽게 생각한다. 무역을 중요시하게 생각하는 것도 있겠지만 외국인에 대한 배려로 외국말을 잘 구사한다고 한다. 그래서 모든 사람들이 영어로 대화가 가능하며, 인접국가 말들은 기본적으로 배운다고 한다.

NEMO라고 이름붙여진 과학기술관
 NEMO라고 이름붙여진 과학기술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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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원해 놓은 배의 뒷모습
 복원해 놓은 배의 뒷모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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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는 도심을 빠져나와 강 하구로 나간다. 암스테르담 항이라고 한다. 독특한 건물의 과학기술관이 보인다. 이름을 네모(NEMO)라고 지었다. <해저2만리>에 나오는 네모선장이 떠오른다. 과학기술관 옆으로 옛날 영화를 누리던 동인도회사의 배를 복원해 놓았다. 화려한 색상만큼 전 세계를 누비던 자부심을 가득 담아 놓았다.

암스테르담 항을 한 바퀴 돌더니 시내 운하로 들어선다. 운하에도 정박금지 지역이 있고, 교차로에는 반사경 등 교통시설물들이 잘 되어있다. 운하에서도 교통사고가 날까? 노랗게 든 단풍은 이국적인 풍경으로 다가온다. 유난히 색깔이 진하다. 단풍도 물이 다른가 보다.

운하 주변으로 기울어진 집들도 보인다. 연약지반에 나무 말뚝을 박고 지은 집이 오랜 세월을 지나는 동안 기울었다고 한다. 하지만 부수고 다시 지을 수 없단다. 도로변 건물 외관은 시에서 수리를 해주고 보조금을 주는 대신 임의로 고칠 수 없다고 한다.

400년 넘은 집들이 21세기에도 계속 존재하는 이유인가 보다. 부럽다. 우리나라는 새마을운동으로 옛날 집 다 부수고 뜯어버렸는데….

운하 주변 풍경. 노란 단풍과 아름답게 어울린다.
 운하 주변 풍경. 노란 단풍과 아름답게 어울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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운하 주변으로 기우뚱거리는 오래된 집들
 운하 주변으로 기우뚱거리는 오래된 집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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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고흐박물관
 반고흐박물관
ⓒ 전용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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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물관에서 다시 살아난 그림들

우울한 날씨는 벌써 힘을 잃었다. 하루해가 너무나 짧다. 반고흐박물관(Van Gogh Museum)으로 향했다. 박물관 앞은 많은 사람들로 북적거린다. 매표를 하고 검색대를 지나야 들어갈 수 있다. 그림을 보호하기 위해 물을 가지고 들어갈 수 없단다.

와! 관람객들이 엄청나게 많다. 우리나라 박물관과 비교가 된다. 계단을 올라 2층에 들어서니 고흐의 초기 그림부터 시기별로 전시되어 있다.

그림을 보는 순간. 어! 이게 고흐의 그림인가? 어둠이 짙게 드리운 칙칙한 그림들은 눈을 의심하게 한다. 고흐가 처음 그림을 그리기 시작하던 시절 작품이다. 어떻게 이런 그림으로 관심을 받을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을까?

Cottages, 1883 - 고흐 초기 작품
 Cottages, 1883 - 고흐 초기 작품
ⓒ www.vangoghgaller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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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세계적인 화가 고흐의 그림이 아니라면 그리 관심 있게 보지 않았을 그림들이다. 하지만 여인 등 여러 가지 인물 그림들은 얼굴표정이 살아있다. 눈도 조금 비틀게 그리고, 초점을 고정시킨 강렬한 눈빛은 무언가를 말하고자 한다.

Self-Portrait, 1889
 Self-Portrait, 1889
ⓒ www.vangoghgaller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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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흐(Vincent van Gogh, 1853~1890)는 1853년 브라반트에서 목사의 아들로 태어나 젊은 시절에 선교활동도 하고, 탄광촌 생활 등 여러 가지 일들을 했다고 한다.

하지만 하는 일들이 적성에 맞지 않아 1880년부터 그림을 그리기 시작했는데, 정규 그림교육을 받지 않아 초기에는 밀레의 농촌풍경을 답습하기 시작했단다. 그림에는 네덜란드의 우울한 풍경이 그대로 배어있다.

벨기에 앤트워프로 이동하지만 날씨가 우중충하기는 마찬가지. 하지만 앤트워프는 17~18세기 무역의 중심으로 일본 상품의 포장지를 접하면서 동양적 풍경인 기생 매화 등 화려한 색감을 표현하기 시작했다.

프랑스 파리로 옮기면서 화창한 날씨, 꽃, 언덕을 보면서 그림이 밝아지기 시작했다고 한다. 고갱과 친분을 가지면서 화려한 색감을 흉내 내다 고흐 특유의 작품세계와 색깔을 만들었다. 하지만 그림을 그린 지 10년 만에 자살로 생을 마감했다고 한다.

우리가 많이 보아온 붓이 춤추는 듯 그린 그림. 가까이에서 보니 물감을 붓에 듬뿍 묻혀 그대로 캠퍼스에 찍어 발라 놓았다. 꿈틀거리는 질감이 그대로 살아있다.

근데 유명한 고흐 작품이 왜 이리 많이 남아있을까? 사실 지금이야 유명하지만 당시에는 아무도 관심을 주지 않았을 그림으로 보인다. 이 그림들은 고흐의 영원한 지원자이자 동생인 태오(Theodore van Gogh)의 부인이 보관하던 것을 시에 기증했다고 한다. 덕분에 고흐의 초기 작품부터 변화되어가는 다양한 그림을 볼 수 있게 되었다.

3층과 4층은 당시 활동했던 유명한 화가들의 작품도 전시되어있다, 밀레, 고갱, 모네 등등. 이 그림들을 보니 고흐의 그림이 다시 보이기 시작한다. 그래서 다시 2층으로 내려와 처음부터 다시 보기 시작했다.

Wheat Field Under Clouded Sky, 1890
 Wheat Field Under Clouded Sky, 1890
ⓒ www.vangoghgaller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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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가가 되려는 열망하나로 당대 유명화가들을 답습해가면서 그린 그림들. 유치하리만큼 거칠게 모방한 그림들은 고흐의 손을 타고 전혀 다른 느낌을 만들어냈으며, 화가가 되기 위한 고흐의 끊임없는 열정으로 다시 태어났다. 그리고 마침내 고흐만의 꿈틀거리는 새로운 세계를 표현해냈다.

당시에는 관심을 받지 못했던 그림들 앞에는 수많은 사람들이 한참을 서있다 간다.

덧붙이는 글 | 11월 9일부터 16일까지 다녀왔습니다.



태그:#암스테르담, #고흐, #네덜란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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