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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2005년 6월 경기도 연천군 GP에서 일병이 수류탄을 던지고 총기를 난사해 동료 소대원 8명의 목숨을 앗아간 사건이 일어났습니다. 그로부터 3년 후 이와 비슷한 일이 강원도 철원군 초소에서 또 일어났습니다. 이런 일이 일어날 때마다 그 대책은 대개 '기강 해이→ 정신교육 강화'에 그치고 있습니다. 그러나 이런 사건은 한 개인의 문제가 아니라 우리 사회 환경이 낳은 구조적인 문제일 수 있다는 의견이 있습니다. 점증하는 '묻지 마 살인', '충동 범죄'의 한 유형이라는 분석이 그것입니다. 이에 <오마이뉴스>는 이 문제에 천착해 우리 사회에 대책 마련을 촉구해 온 '아이건강국민연대' 이용중 사회설계위원장의 글을 싣습니다. [편집자말]
지난달 23일 강원도 철원군 최전방 GP(전방초소) 내무반에서 수류탄 폭발 사건이 발생했다. 애꿎은 부상자와 무한 책임을 져야 하는 지휘관들 그리고 사고의 당사자인 황 이병을 비롯한 모든 이에게 안타까운 일이다. 그런데 이런 사건은 앞으로 점점 더 많아지리라는 것이 내 예상이다. 이유는 이렇다.

분노를 차곡차곡 쌓아두는 아이들

요즘 초·중등학교에서는 남의 말을 듣지 않고 자기 말만 하는 아이들과, 남의 말만 들으며 자기 말을 하지 않는 아이들이 동시에 늘고 있다. 자기 말만 하는 아이들의 맨 앞줄에는 ADHD(주의력 결핍 과잉행동 장애)를 가진 아이들이 있고, 자기 말을 하지 않는 아이들의 맨 뒤에는 자폐아들이 있다.

자기 말만 중시하는 아이들이 대략 15%이고 자기 말을 하지 못하는 아이들이 5% 내외인데 이런 아이들 중 절반은 적극적인 치료를 받아야 할 상태다. 그러나 이런 아이들 중 제대로 치료받고 있는 아이들은 10% 정도밖에 되지 않으며 부모들은 대부분 자기 아이들이 병들어 있다는 데 동의하지 않는다.

초·중등학교에서는 주로 자기 말만 하는 아이들이 사고를 치고, 자기 말을 하지 않는 아이들은 '왕따'를 당하지 않는 한 수면 위로 떠오르지 않는다. 자기 말만 하는 아이들은 분노를 매우 쉽게 외부로 표출하고 자기 말을 하지 않는 아이들은 분노를 차곡차곡 쌓아둔다.

그러기에 전자의 아이들은 '왕따'를 시키는 자이거나 폭력을 일삼는 아이들이고 일부는 '왕따'를 당하기도 한다. 후자는 주로 '왕따'나 폭력을 당하는 경우가 많고 어린 시절에는 드물게 나타나지만 자살을 비롯한 감당하기 어려운 일을 저질러 버리기도 한다.

'정신교육 강화'로 해결할 일 아니야

이번에 일어난 황 이병 수류탄 투척 사건이나 지난해 벌어진 버지니아 공대 조승희 총기난사 사건은 후자의 경향성을 띠는 사건들이다. 문제는 이런 아이들이 점점 더 늘어나고 있는데도 우리 사회가 이에 대한 대책을 세우려 하지 않고 있으며, 대책을 세워도 문제의 본질에 접근하지 못하는 처방이 대부분이라는 것이다.

버지니아공대 총기난사사건이 벌어진 지난해 4월 16일(현지시각) 사건 직후 경찰들이 다급히 사고 현장으로 달려가고 있다. 한국 사회도 이러한 충동 범죄의 위험이 높아가고 있다.
 버지니아공대 총기난사사건이 벌어진 지난해 4월 16일(현지시각) 사건 직후 경찰들이 다급히 사고 현장으로 달려가고 있다. 한국 사회도 이러한 충동 범죄의 위험이 높아가고 있다.
ⓒ AP·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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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사건이 일어나자 이명박 대통령은 정신교육 강화를 주문했다. 당연한 주문이지만 이 처방은 시력이 나쁜 아이들에게 집중하면 잘 볼 수 있다는 우격다짐 성격이 강한 대책이다.

아이들이 이렇게 변하는 요인을 살펴보면 아래와 같다.

첫째, 유해화학물질과 중금속, 설탕을 포함한 인공감미료에 중독됐다.
둘째, 쌍방대화를 배워야 할 시기에 야외놀이와 운동이 부족하고 자연과 격리됐다.
셋째, 인터넷이나 TV에 과도하게 몰두한다.
넷째, 사회양극화를 초래하는 정글 자본주의에서 경쟁만 배운다.
다섯째, 저출산으로 왕처럼 떠받들어지는 가정에서 자란다.

이렇게 자라나는 아이들이 '나 때문에'라 자책하게 되면 우울증에 시달리며 심지어 자살까지 할 수 있으며, '너 때문에'라고 탓하며 좌절하게 되면 대구지하철 방화, 자살, 버지니아 총기사건, 내무반 수류탄 투척과 같은 일들을 벌일 수 있다.

위에서 열거한 사항 중에서 가장 큰 문제를 일으키고 있는 것은 첫째와 둘째 사항인데 한국에서는 이에 대한 구체적인 대책을 세우지 않아 대재앙을 잉태하는 중이라 이 두 가지만 잠깐 살펴보고자 한다. 

각종 유해물질 섭취로 폭력성 강화

인체에 유해화학물질이나 중금속이 쌓이면 체내 미생물의 균형이 깨지면서 아토피, 비염, 천식, ADHD, 자폐, 정자 수 감소 등 환경성 질병의 직접적인 주요 요인이 되고, 우울증을 비롯한 정신과 질환과 각종 암에 상당한 영향을 끼치며, 고혈압을 비롯한 습관성 질병에 간접적 요인이 된다. 

양수의 오염과 탯줄을 통한 태아의 오염, 제왕절개, 분유수유, 화학식품첨가물, 유전자조작식품, 방사선조사식품, 성장호르몬이 과다한 공장형 축수산물, 농약과 비료, 건축물 내장재에 의한 환경호르몬, 가구와 전자기기의 유해화학물질, 미세먼지를 비롯한 공기 오염, 생활 속에서 각종 유해화학물질, 유해화학물질과 중금속 배출에 관여하는 속성을 지닌 미네랄·비타민·식이섬유·오메가-3지방산 등 미량 영양소 부족, 운동부족 등이 어우러져 인체에 유해화학물질과 중금속이 쌓이고 있다.

문제는 이런 일이 식생활을 통해 일어나는 것이 50~60%로 추정된다는 것이다. 여기다가 설탕과 인공감미료 그리고 MSG는 저혈당 증세를 일으켜 폭력과 자살을 강화하고 있는데 이런 아이들이 자라서 담배와 술을 접하면 그 증상은 더욱 심해진다.

지구온난화와 비교하여 설명하면 1℃ 상승하면 30만 종의 생물종이 감소하고, 2℃ 상승하면 현재보다 10억 이상의 인구가 물 부족에 시달리며, 3℃ 상승하면 인류의 생존에 심각한 문제를 야기하고, 6℃ 상승하면 지구생물체 90%가 멸종한다고 한다.  

현재 초등학생이 환경호르몬을 포함한 유해화학물질과 중금속에 오염된 정도는 1℃를 지나 2℃에 비견되는 상태로 아이들이 이렇게 자라면 1/3이 불임 환자가 될 가능성이 높고, 각종 안전사고와 범죄는 지금의 2~3배 정도 늘어날 것이며, 장년이 되면 습관성 질병이 3배 정도는 늘어날 것이라고 예측된다.

요즘 남자아이들, 싸움 탓에 축구 못하기도

쌍방대화를 배워야 할 시기에 인터넷 게임이나 TV에 과도하게 몰두하는 아이들이 늘어나고 있다.
 쌍방대화를 배워야 할 시기에 인터넷 게임이나 TV에 과도하게 몰두하는 아이들이 늘어나고 있다.
둘째, 쌍방대화를 배워야 할 시기에 야외놀이와 운동이 부족하고 자연과 격리된 상태 또한 폭력을 잉태하고 있다. 언어는 쌍방소통의 산물로 현재의 과학문명의 토대를 이루는 것이다.

유아 때는 사람과 사물과 자연과 대화를 나눈다. 이 세 가지 중에서 상당수 아이들이 자연과 멀어져 버렸다. 꽃과 나무와 동물과 곤충을 비롯한 자연과 나누는 대화는 유아들이 가진 속성이고 권리기도 하다.

야외놀이와 게임은 아이들 사이에 쌍방소통을 배우는 매우 중요한 지점이며 체력 증진을 위한 필수코스다. 도시화와 정보화가 진행되면서 이것이 매우 약화되어 남들과 정상적인 대화를 하지 못하고 체력이 떨어지는 아이들이 급격하게 늘고 있다.

한 가지 예를 들면 초등학교 4학년 남자 아이들이 좋아하는 축구를 어른이나 교사가 개입하지 않고 스스로 하게 내버려두면 20년 전에는 대충 20% 정도가 싸움으로 끝났다면 지금은 50% 이상이 싸움 때문에 게임을 끝내지 못하는 상황이 되어 버렸다. 이런 상황이 벌어지는 가장 큰 이유가 쌍방소통의 훈련 부족으로 몸과 마음이 병든 아이들이 많기 때문이다.

위 사항들은 한국의 일반적 현상이며 현재 아이들에게서 벌어지는 훨씬 심각한 상황이다. 현재 우리 사회에서 벌어지는 충동성 범죄의 밑바탕에는 이러한 문제가 본질적으로 도사리고 있다.

그리고 이런 사건은 계속 늘어날 수밖에 없는 상황으로 치닫고 있다. 그러나 사건이 벌어질 때마다 본질적인 문제는 외면하고 관리 문제와 절차 문제에만 치중하면서 CCTV 설치, 학교 경찰 상주, 안전관리 철저만 되풀이하고 있다. 

이번 사건도 황 이병 구속, 지휘관 처벌, 정신교육 강화라는 겉핥기식 대책으로 매듭지어 또 다른 비극적 사건을 잉태하고 있는 중이다. 

충동 범죄가 만연한 사회를 물려줄 것인가

그동안 우리는 끔직한 범죄를 천성의 문제로 몰아붙이며 '인면수심'이라는 용어를 주로 사용하며 우리와는 별개의 문제로 치부해 왔다. 끔찍한 범죄자에게 그런 특성이 전혀 없지는 않겠지만 생물학적 범죄이론을 주창하는 학자들 중에 다수가 "범죄는 천성 대 양육이 대립하는 것이 아니라, 다만 양육을 통한 천성만이 존재한다"라고 지적한다. 이 말에 귀 기울이길 간곡하게 호소한다.

이번 사건에서 수류탄 관리 소홀의 문제는 분명 지휘관에게 물어야 하지만 나머지 근본적인 문제는 지휘관에게 물어서는 안 된다. 책임질 사람은 양육을 맡은 부모이고, 교육을 담당해온 초·중등교사이며, 황 이병을 병들게 한 이 사회다. 그들은 가해자이면서 피해자로 존재하지만 지휘관을 희생양으로 만들며 자신의 책임을 회피하려고 하고 있다.

필자는 군사문화의 병패였던 반독재 투쟁에 젊은 시절을 보냈고 지금은 아이들 건강에 관심이 많은 30년 경력의 초등교사다. 지금 자라나는 아이들의 몸과 마음의 건강 상태를 보면 이 나라의 미래에 치안 불안, 비감염성 질병 만연, 불임 급증, 각종 안전사고가 아른거리는 풍경이 눈앞에 그려진다.

이것은 국권 침탈과 분단에 버금가는 병리현상으로 우리 앞에 소리 없이 다가오고 있다. 그런데도 이 나라 정치권은 이 문제에 무지해 결과적으로 아이들의 미래를 도둑질하고 있다. 아이들에게 부끄럽고 죄스러운 마음이다.     

주) 이 글과 관련한 좀 더 자세한 내용은 2007년 10월 <오마이뉴스> 특별기획 '한국의 아이들이 위험하다'를 참조하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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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붙이는 글 | 이용중 기자는 초등학교 교사이자 '아이건강국민연대 21세기사회설계위원장'으로 일하고 있습니다.



태그:#생태건강, #수류탄, #충동성 범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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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들의 건강과 관련한 기사를 쓸려고 합니다. 정보화 사회로 진척되면서 나타나는 가장 큰 병리현상이 자라나는 세대의 건강 문제이고 이 중심에 아이들 비만이 있습니다. 급증하는 아이들의 비만에 대해 심층있는 기사를 써서 널리 알리고 성장기 비만 방어시스템을 구축하는데 조력하고자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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