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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뉴스의 모토는 '모든 시민은 기자다'입니다. 시민 개인의 일상을 소재로 한 '사는 이야기'도 뉴스로 싣고 있습니다. 당신의 살아가는 이야기가 오마이뉴스에 오면 뉴스가 됩니다. 당신의 이야기를 들려주세요.】

산에는 꽃 피네
꽃이 피네
갈 봄 여름 없이
꽃이 피네

산에
산에
피는 꽃은
저만치 혼자서 피어있네

산에서 우는 작은 새여
꽃이 좋아
산에서
사노라네

산에는 꽃 지네
꽃이 지네
갈 봄 여름 없이
꽃이 지네

김소월님의 <산유화> 라는 제목의 시입니다. 존재의 고독을 노래했지요. 모든 존재는 '저만치' 만큼의 거리감을 갖고 살아가고 있다는 의식에서 출발한 시입니다. 결국 우리는 세상을 혼자 살아가고 있다는 뜻입니다. 가족이 있고 연인이 있고, 친구가 있지만 모두들 저만큼의 거리감을 갖고 있으므로 결국은 혼자라는 의미지요.

아마도 이 시와 반대되는 세계관을 보여주는 게 생텍쥐페리의 <어린왕자>가 아닌가 싶습니다. 어린왕자는 많은 장미 중 고향에 두고 온 장미에게 특별한 마음을 갖고 있습니다. 그건 어린왕자가 그 장미에게 관심을 보이고 애정을 쏟으면서 그 장미를 길들였기 때문이고, 또한 길들여졌기 때문입니다. 이렇게 <어린왕자>에서는 '길들인다'는 표현을 통해서 어떤 식으로든 타자와 소통하는 삶을 표현했습니다. <산유화>에서 표현한 단절감과는 사뭇 다른 가치관입니다.

그런데 우리는 보통 특별한 관계를 귀찮아하는 편이지요. 지하철을 타본 사람은 알겠지만 지하철에는 불문율이 있습니다. 다른 사람과 눈빛을 교환해서는 안 된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모두들 애써 상대를 외면합니다.

눈을 마주치는 건 아주 큰 잘못이라도 되는 것 마냥 황급하게 시선을 피해버립니다. 아예 처음부터  신발을 내려다보거나 핸드폰 액정을 뚫어져라 쳐다보면서 시선이 부딪치는 것 같은 불상사를 애초에 예방하기도 합니다. 그런데 가끔 눈치 없게 옆 사람을 힐끔거리는 사람이 있는데 이건 정말 지하철에서는 수상쩍은 행동이지요. 그래서 그런 사람에 대해서 이런 생각을 합니다.

'뭐야, 이 사람, 뭔가 좀 이상한 거 아니야?'

로마에 가면 로마법을 따르라고 지하철에서는 지하철법을 따라야 하는 것입니다. 지하철법이란 절대로 상대와 눈을 마주치지 않는 것이고 상대방에게 익명의 편안함을 보장하는 것입니다.

난 너와 관계를 맺는 걸 원하지 않아, 식의 단호한 외면은 지하철뿐만 아니라 엘리베이터 안 공공시설 등 우리 사회의 전반적인 풍경입니다.

물론 나도 이렇게 외면하면서 살아온 사람입니다. 그리고 그게 참 편하다고 생각하고요. 그런데 오늘 아침에 나의 이 오래된 생각이 잘못됐음을 일깨워주는 아이를 만났습니다.

우리 애들이 내가 횡단보도에서 만난 그 애처럼 세상에 관심을 갖고 살고,  또 그걸 적극적으로 표현하며 살아가는 그런 애들이었으면 좋겠습니다.
 우리 애들이 내가 횡단보도에서 만난 그 애처럼 세상에 관심을 갖고 살고, 또 그걸 적극적으로 표현하며 살아가는 그런 애들이었으면 좋겠습니다.
ⓒ 김은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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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은 애들 학교 등교 길에 횡단보도 앞에서 교통지도를 했습니다. 모든 학부모들이 한 번씩 맡는 일인데 오늘이 내 차례였지요. 그래서 횡단보도 앞에서 노란 기를 들고 초록 불일 때는 애들이 횡단보도를 지나가게 하고, 빨간 불일 때는 기다리게 했습니다.

그런데 빨간 불일 때 내 옆에 서있던 어떤 여자애가 내 팔을 두드렸습니다. 그 애 손에는 캐러멜이 쥐어져있었습니다. 초등학교 1학년 정도로 보이는 아이였습니다.

"이거 드세요."

나는 일순간 당황했습니다. 예상하지 못했던 상황이니까요. 왜냐면 애들은 아주 바쁘게 등교하느라 나 같은 건 안중에도 없는 상황이었으니까요. 난 그저 규칙적으로 빨간 불과 파란 불을 번갈아가면서 켜주는 신호등에 다름없었고, 어쩌면 내가 흔들고 있는 기의 존재감 정도만을 갖고 있었을 뿐입니다.

그런데 그 애가 나를 다시 사람으로 돌아오게 했던 것입니다. 깃발에서 사람이 되는 순간이라 좀 당황했던 것 같습니다.

"이거 나 주는 거야?  맛있겠다. 정말 고마워."

아이에게서 사탕을 받았습니다. 그리고 감사하는 마음을 잘 표현하기 위해 그 자리서 껍질을 벗기고 먹었습니다.

"우리 집에는 캐러멜 굉장히 많아요. 엄마가 좋아해서 계속 사와요. 집에서 나올 때 갖고 나와서 지금 내 주머니에 가득 들어있어요."

그 애는 나에게 마음을 열고 말했습니다. 아니 그 애는 처음부터 마음이 열려 있었습니다. 그러니까 아침에 횡단보도 앞에서 잠깐 본 낯선 아줌마인 내게 사탕을 내밀었지요. 지나가는 바람처럼 그렇게 지나갈 관계였는데 마음이 열려있는 그 애는 그 짧은 순간 작은 사탕 한 개로 나와 관계를 맺었고, 그래서 지금 내게 글감을 주고 있습니다.

차가운 횡단보도 앞에서 정말 무의미하게 지나칠 수 있는 시간이었습니다. 그런데 그 애는 그 시간에 온기를 돌게 했습니다. 사탕 하나로.

마음이 열려있어야 나올 수 없는 행동입니다. 그 애가 보기엔 아줌마가 자기들을 위해서 교통지도를 하는 게 고맙게 여겨졌겠지요. 아니면 원래 사교적인 성격이라 즉흥적으로 내게 사탕을 주고픈 마음이 생겼을지도 모릅니다.

어떤 이유든 타인에게 관심을 갖고 자기 마음을 표현한다는 건 분명 올바른 일입니다.  외면이나 단호한 무관심이 올바른 삶의 방법은 아니지요. 이 아이와 같은 삶의 태도를 가진 사람이 많을수록 우리 사회가 훨씬 밝고 따뜻해질 것 같습니다.

김소월의 <산유화>에서처럼 저만큼 떨어져 살지 말고 타인에게 관심을 기울이고 애정을 갖고 길들이면서 어린왕자와 장미처럼 그렇게 사는 게 세상을 보다 잘 사는 길이라는 걸 오늘 그 작은 소녀를 통해 깨달았습니다.


태그:#관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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