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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상으로 오르는 길에서 지용조씨부부와 일행들
 정상으로 오르는 길에서 지용조씨부부와 일행들
ⓒ 이승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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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히야! 세상에, 이 남쪽 들녘에 이런 산이 있었다니 놀랍군, 이건 완전히 작은 금강산이네, 금강산!”
“정말 대단하구먼, 저 바위봉우리들 좀 봐? 온 산이 기암괴석 바위봉우리로 뒤덮여있네 그려.”

일행들이 산을 오르며 감탄사를 터뜨리고 있었습니다. 산행을 시작하면서 멀리 바라보이는 산봉우리들을 바라보며 멋진 산일 것이라는 기대를 했었지요. 그러나 고갯길에 올라 바라본 경치는 벌어진 입을 다물 수 없게 만들었습니다.

“지금 한참 올라가고 있는 중이야. 너 오늘 이 산에 오지 않은 것 평생 후회할 거야. 이 산을 오르지 않았으니 앞으로는 명산 어쩌구 말하지도 말고.”

능선길에서 숨을 돌리며 쉬고 있던 일행이 전화를 받으며 하는 말이었습니다. 누구냐고 물으니 그동안 함께 산행을 했던 일행 한 사람이 이날 등산에 참가하지 않고 전화를 하자 그를 약 올리려고 하는 말이었습니다.

안개 속을 달려 찾아간 남도의 작은 금강산

지난 11월 26일 '전국 100대 명산을 찾아서' 43번째 산으로 찾은 곳이 전남 영암에 있는 월출산이었습니다. 아침 7시 서울을 출발할 때부터 하늘은 안개에 뒤덮여 있었습니다. 그러나 날씨가 맑을 것이라는 일기예보를 믿고 출발했지요.

남근바위 사잇길
 남근바위 사잇길
ⓒ 이승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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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날씨가 맑아질 것 같지 않네, 오늘 산행은 완전히 망친 것 같은데….”

몇 사람이 걱정을 했습니다. 짙은 안개는 영암에 거의 도착할 때까지 개지 않고 있었으니까요. 관광버스가 속도를 낼 수 없을 정도로 짙은 안개는 모두를 실망시키고 있었습니다.

“우와! 하늘이다. 아니 저 산 좀 봐? 저 산이 월출산 같은데….”

그런데 놀라운 일이 벌어졌습니다. 영암읍을 지나 조금 달리자 거짓말처럼 하늘이 맑아지기 시작한 것입니다. 저만큼 앞쪽에 바위봉우리 일색의 산이 나타난 것도 그때 쯤 이었습니다.

“그럼 그렇지, 오늘 누가 오를 산인데 안개가 안 걷히겠어? 허허허.”

맑은 하늘과 멋진 봉우리가 반가운 일행들이 서로 마주보며 유쾌한 웃음을 터뜨렸습니다. 산행 시점인 경포대에서 내리자 언제 안개가 끼어 있었냐는 듯 쾌청한 하늘이 우리들을 반기는 듯했기 때문입니다.

천황봉으로 오르는 길에 뒤돌아본 맞은편 산 풍경
 천황봉으로 오르는 길에 뒤돌아본 맞은편 산 풍경
ⓒ 이승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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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 번째 목표는 바람재였습니다. 산행대장이 바람재까지만 오르면 그 다음부터는 능선을 타는 길이고, 경치가 좋아 힘든 줄 모르고 산행을 마칠 수 있다고 했기 때문입니다. 산길은 그리 험하지 않고 경사도 급하지 않아 별로 힘든 줄 모르고 오를 수 있었습니다.

“저 푸른 나무들은 혹시 동백나무 아닐까?”

남쪽지방이라고는 해도 활엽수들은 거의 잎을 떨어뜨린 나목들이었습니다. 그런데 그런 나목들 사이로 소나무가 아닌 잎이 파랗고 둥그런 나무들이 자주 나타나 관심을 끌었습니다. 산행대장에게 물으니 역시 동백나무라고 합니다.

그런데 이 동백나무들은 능선길을 제외한 산자락 어느 곳에나 많이 자생하고 있었습니다. 북쪽지방 산에서는 소나무나 잣나무 같은 침엽수가 아니면 볼 수 없는 잎이 푸른 나무여서 싱그럽고 여간 귀한 모습이 아니었지요. 숲 사이로 조금씩 얼굴을 보이곤 하는 바위봉우리들을 바라보며 허위허위 올라갔습니다.

바위절벽을 마주보고 서있는 삼장법사바위
 바위절벽을 마주보고 서있는 삼장법사바위
ⓒ 이승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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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와! 저 봉우리들, 능선에 솟아있는 기암괴석들 좀 봐? 우리들 혹시 금강산에 와있는 것 아니야?”

한 시간 만에 바람재에 오른 일행들이 탄성을 질렀습니다. 아직 금강산에 올라보지 못한 일행이 금강산에 오른 것 같다고 합니다. 말로 듣고 사진으로 보았던 금강산과 비교해도 손색없는 풍경이었기 때문일 것입니다.

기암괴석과 바위봉우리들이 즐비한 풍경에 벌어진 입을 다물지 못하다

“정말 금강산 저리 가란데요, 이만하면 정말 금강산만 못하지 않아요.”

모처럼 우리 일행들과 함께한 지용조(62)씨가 거들었습니다. 이날 부부가 함께 우리들의 일행으로 등산에 참여한 지용조, 김경숙씨 부부는 얼마 전 금강산에 다녀왔다고 합니다.

바람재에서 바라본 모습은 알프스에라도 오른 것처럼 매우 이국적인 풍경이었습니다. 바람재 주변은 억새 사이로 뚫린 산길을 올라 구정봉과 향로봉, 발봉과 도갑산으로 이어진 능선에 수많은 바위봉우리들이 일제사열이라도 하듯 기묘한 자태를 보여주고 있었습니다.

맨 뒷편의 높은 봉우리가 천황봉
 맨 뒷편의 높은 봉우리가 천황봉
ⓒ 이승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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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람재에서 잠시 쉬었다가 오른편 천황봉 쪽으로 다시 오르기 시작했습니다. 첫 번째 바위봉우리에 오르자 맞은편의 능선과 봉우리들은 물론, 천황봉으로 이어진 능선과 천황봉에서 뻗어 내린 능선에 솟아있는 바위들이 그야말로 만물상을 연출하고 있었습니다.

천야만야 깎아지른 절벽 위에 뾰족하게 솟아있는 촛대바위의 모습이며, 웅크린 사자와 괴물이 포효하고 있는 것 같은 모습이 끝없는 상상의 날개를 펼치게 만들었습니다. 바위봉우리에 올라 간식을 들고 산행을 계속했습니다.

바위봉우리를 내려와 능선을 통과하자 비좁은 바위사이로 뚫린 길이 나타났습니다. 반대편으로 나가보니 그 좁은 길 바깥쪽의 바위가 바로 남근바위랍니다. 그러나 모양이 그럴듯하게 닮지 않아 조금은 억지스러운 이름인 것 같았지요.

그러나 조금 더 나아가자 수북하게 자란 산죽이 있는 바깥쪽에 우뚝 솟아있는 두 개의 바위가 묘한 대조를 보이고 있었습니다. 날카롭게 솟아있는 크고 높은 바위를 마주보고 서있는 작은 바위는 사람의 모습과 흡사했기 때문입니다.

촛대바위와 아슬아슬한 바위절벽
 촛대바위와 아슬아슬한 바위절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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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까이 다가가보니 ‘삼장법사’ 바위라는 안내판이 세워져 있었습니다. 안내판이 서있는 곳에서 바라본 모습은 정말 영화나 그림에서 본 법사의 모습과 흡사하다는 생각을 갖게 했습니다. 바위절벽을 마주하고 생각에 젖어 있는 것 같은 모습이었지요.

“손오공, 저팔계는 어딜 가고 삼장법사 혼자 서계실까?”
“사오정도 보이지 않는 걸. 허허허.”

모두들 중국의 고전 장편소설인 서유기를 떠올리며 한 마디씩 합니다. 산행중에 만난 기이한 모습의 바위 하나가 잊고 있던 고전소설 속의 주인공들을 끌어내고 있었습니다. 그런 우리들을 우람한 바위봉우리인 천황봉이 무거운 시선으로 내려다보고 있었습니다.

억겁을 지켜온 자연을 바라보며 교만한 인간과 겸손을 생각하다

멀리서 바라보기에는 도저히 올라갈 수 없을 것 같아보였던 봉우리도 별로 어렵지 않게 올라갈 수 있었습니다. 온통 바위봉우리인 천황봉 정상은 제법 넓었습니다, ‘월출산 천황봉 809m'라고 새겨진 표지석은 크고 우람한 모습으로 중앙에 세워져 있었습니다.

천황봉 표지석과 정상에서 영암읍내와 들녘을 바라보는 등산객들
 천황봉 표지석과 정상에서 영암읍내와 들녘을 바라보는 등산객들
ⓒ 이승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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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상에서 바라본 영암읍이 손바닥처럼 좁아 보입니다. 그러나 읍내 뒤로 펼쳐진 들녘은 드넓게 펼쳐져 있었습니다. 바위바닥에 앉아 간식을 들며 정상주를 한 잔씩 나누어 마셨습니다. 확 트인 전망과 쑥쑥 빼어난 바위봉우리들을 바라보며 모두들 기분이 좋아 보입니다.

“월출산이 명산이라는 말은 많이 들었지만 이 정도인지는 몰랐는걸, 정말 대단한 명산이야, 명산, 이보다 더 멋진 산을 어디 가서 찾아볼 수 있겠어?”

정상에서 주변을 휘둘러보던 일행이 새삼스럽게 감탄을 합니다.

“저 능선이며 골짜기 봉우리들을 봐요. 억겁의 세월을 저렇게 서있었는데…, 우리 인간들을 비교하면 그야말로 티끌이요 스쳐가는 바람 같은 존재인데….”

“그러게 말예요, 그런데 그 스쳐가는 바람 같은 인간들이 개발이라는 이름으로 저렇게 의연한 자연을 파괴하고 있으니 얼마나 안타까운 일입니까?  타락한 인간들의 교만이고 죄악이죠, 크나큰 죄악!”

통천문을 통과하는 등산객
 통천문을 통과하는 등산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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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행들이 너나없이 탄식을 합니다. 그러고 보면 우리일행들은 남다른 자연사랑 정신을 가진 사람들입니다. 그래서 산에 오를 때면 잊지 않고 쓰레기를 주워 내려오는지도 모릅니다. 비록 작은 일이지만 그 작은 실천 속에 자연을 대하는 겸손함과 자연을 사랑하는 마음이 담겨있을 것입니다.

내려오는 길도 어려움이 없었습니다. 등산로가 너무(?) 잘 정리되어 있었기 때문입니다. 영암읍내를 바라보며 내려오는 길에서는 사자봉과 장군봉, 그리고 매봉 등 우람하고 거친 봉우리들을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손에 땀을 쥐게 만들었습니다.

잠깐 내려오자 바위사이로 뚫린 구멍이 바라보입니다. 통천문이었습니다. 천황사쪽에서 오르면 이 바위구멍을 통과해야 천황봉에 오를 수 있기 때문에 붙여진 이름입니다. 바윗길을 돌고 돌아 높이가 120m나 되는 월출산의 명물 구름다리를 건넜습니다.

하늘에 걸린 구름다리
 하늘에 걸린 구름다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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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이 뜬다, 달이 뜬다, 둥근 둥근 달이 뜬다. 월출산 천황봉에 보름달이 뜬다… 이 아름답고 멋진 정자에 앉아 있으니 내가 마치 신선이라도 된 기분이군.”

구름다리를 건너자 날아갈 듯 멋진 정자가 있어서 잠깐 쉬어 가지로 했지요. 정자에 앉자마자 가수 하춘화가 불러 인기가 높았던 ‘영암 아리랑’ 한 소절을 부르던 친구가 신선이 된 기분이라고 합니다.

골짜기 건너편 바위산보다 높아 보이는 하늘 계곡에 걸린 구름다리 옆에 있는 정자에서 바라보는 경치도 그만이었습니다. 내려가는 길은 구름다리 아래로 나있는 골짜기 길이었습니다. 아스라한 바위절벽 밑으로 나있는 길을 따라 내려가며 올려다본 구름다리가 하늘에 걸린 무지개 같아 보였습니다.

‘영암 아리랑’ 노래비가 있는 곳으로 내려오자 주변엔 동백나무 숲과 함께 조릿대 숲이 울창합니다. 부근 커다란 바위 아래 제단을 만들어 놓은 곳 앞에서는 그린 듯 꼼짝 하지 않고 앉아 치성을 드리는 사람이 있었는데 머리를 풀어헤친 모습이 섬뜩한 모습이었습니다.

하산길에서 만난 동백나무 터널
 하산길에서 만난 동백나무 터널
ⓒ 이승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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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산은 삼국시대에는 달이 난다 하여 월라산이라 불렸고, 고려시대에는 월생산이라 부르다가 조선시대부터 달이 솟아오르는 것 같다하여 월출산이라는 이름이 붙여졌습니다. 신라말기에는 99개의 절이 있었다고 하는데 지금은 도갑사와 무위사 두 개의 절이 남아있었습니다.

천황 매표소 주차장에 도착하니 주변에는 아직도 고운 단풍이 많이 남아있어서 이곳이 우리 국토의 최남단이 가까운 지역임을 실감나게 했습니다. 세계적인 명산 금강산을 방불하게 하는 호남의 소금강 월출산 산행은 경포대에서 시작하여 이곳 천황매표소 주차장까지 4시간동안의 산행이었습니다.

덧붙이는 글 | 이기사는 유포터뉴스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태그:#이승철, #월출산, #천황봉, #구름다리, #작은 금강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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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른 시각으로 세상을 보고 불의와 타협하지 않고 겸손하게 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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