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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화요일(25일) 소란스런 겨울숲을 산책하며 감귤빛으로 물들어가는 인천 앞바다가 굽어보이는 철마산 등줄기에 올랐다가, 인천지방공무원연수원 쪽으로 내려갔습니다. 다 읽은 책을 연구원 내 도서실에 반납하고 새로 읽을거리를 빌릴 생각으로 집을 나선터라, 철마산에서 연수원과 소방교육원으로 내려가는 비탈진 산책로를 따라 내려왔습니다.

작고 아담한 도서실은 여느때와 같이 조용했습니다. 도서실을 지키는 직원은 다른 이들과 담소를 나누고 있었습니다. 아참 간혹 도서실 직원이 다른 일로 자리를 비워 문이 잠겨 있는데, 그럴 때면 반대편 의무실에 책을 반납하면 됩니다.

아무튼 서가에서 지난번에 읽지 못한 소설 <분홍바늘꽃>을 우선 집어들고, 새로 읽으려고 점찍어 둔 소설 <분례기>를 찾아냈습니다. 그리고 만화 <식객>을 20권까지 모두 읽어 가볍게 읽을만한 다른 것을 찾다가, 도서실에 새로 들어온 만화 <바둑삼국지>를 집어 들었습니다. 와인을 소재로한 일본만화 <신의 물방울>도 눈에 띄었는데, 어렸을 적 사랑방 한구석에 가득쌓인 바둑잡지와 신문에 실린 기보, 바둑판(반상)을 끼고 산 큰삼촌의 영향 때문인지 바둑을 소재로 한 것에 저절로 손이 갔습니다.

도서실에서 빌린 책3권
 도서실에서 빌린 책3권
ⓒ 이장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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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을 빌려 나와서는 도서실 맞은편 독서실에 자리를 잡고 앉아, 늘 하던대로 빌린 책들을 카메라에 담았습니다. 그러고는 휴대폰을 충전하는 동안 읽을 요량으로 만화 <바둑삼국지>를 들춰봤습니다. 그런데 한번 손에 잡힌 <바둑삼국지> 1권을 중간에 놓치 못하고 그만 끝까지 읽고 말았습니다.

만화 <바둑삼국지> 1권은, '바둑계의 전신(戰神)'이라 불리는 조훈현 9단이 어렸을 적부터 독학을 깨우친 바둑실력으로 4살때(1958년)부터 목포에서 "바둑신동"이라 불리다가, 일본에서 대학까지 나와 수학교사를 하던 아버지 덕에 서울까지 올라와 당대 국내 바둑계를 이끌던 조남철 선생과 만나 지도바둑을 두면서 '전체를 읽는 힘'을 가진 대단한 바둑쟁이로 성장할 것을 내비치고 이후 세계 바둑을 주름잡고 있는 일본으로 바둑유학을 떠나는 계기 등 파란만장한 바둑인생사의 시작과 1989년 제1회 잉창치배(應昌期杯)에서 중일 슈퍼대항전에서 연승가도를 달린 '철의 수문장'이라 불리는 중국의 녜웨이핑과의 숨막히는 마지막 승부를 다루고 있습니다.

* 잉창치배 : 잉창치는 바둑애호가이자 상해 출신의 대만 대부호, 자신의 이름을 딴 세계 바둑선수권대회 '잉창치배'를 창시했다. 이는 세계 바둑계를 주름잡던 일본의 아성을 무너트리고 놀래킨 중일 슈퍼대항전 결과를 기반으로, 중국 바둑을 세계에 알리려는 시도였다. 당시 우승상금은 40만달러(89년 당시 환율 1달러는 약 680원, 40만달러는 약 2억 7천만원, 당시 자장만 한 그릇 값이 1,000원 정도고 89년 말 분양된 분당 1차 신도시 32평 아파트 분양가가 5천만원대였다고 한다)로 어마어마한 거금이었다.

'바둑이 융성해야 나라가 산다'

한국바둑을 대표하는 불세출의 천재기사 조훈현이란 걸출한 바둑계의 영웅이, 한국 바둑계를 휩쓴 이후 일본 나아가 중국까지 제패하는 그 화려하고 긴장되는 이야기의 서막이었습니다. 그 엄청난 이야기를 세밀한 묘사와 터치로 사실감 있게 그려낸 김선희 작가와 바둑을 모르지만 바둑을 모르는 사람이 봐도 재미있게 읽혀야 한다는 것에 초점을 두고 글을 쓴 박기홍 작가, 이 부부만화가와 함께 일본 열도 전역에서 청소년들이 바둑에 관심을 갖게 한 만화 <고스트바둑왕>에 버금가는 작품과 바둑 콘텐츠 개발에 몰두하는 소설 <바둑삼국지>의 김종서 작가 세분이 한마음으로 단행본으로 출간해낸 것입니다.

흔히 만화를 쉽게 생각하는 경향이 있지만 한국 음식만화의 대표라 불리는 <식객>이나 바둑을 소재로한 <바둑삼국지>는 장편 드라마나 영화를 보는 것과 다를 바 없을 정도로 그 배경이나 내용이 알차고 알찹니다. 특히 독서실에서 꼼짝않고 자신도 모르게 몰입해버린, <바둑삼국지>의 경우 실존 인물과 실화, 수많은 참고문헌을 배경으로 하고 있기에 더욱 그러하고, 처음 접하는 바둑의 역사와 바둑의 기본(용어, 입문강좌), 소설 <바둑삼국지>까지 즐길 수 있습니다. 만화 <바둑삼국지>를 통해 조훈현 9단의 바둑인생과 활약뿐만 아니라 바둑이 무엇인지, 그 오묘한 세계까지 즐길 수 있다는 말입니다.

만화 <바둑삼국지> 바둑의 세계에 정신없이 빠져든다.
 만화 <바둑삼국지> 바둑의 세계에 정신없이 빠져든다.
ⓒ 이장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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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게 감동하며 정신나간 듯이 만화 <바둑삼국지>를 읽고나서, 문뜩 떠오른 것이 있었습니다. 수개월 동안 임대가 되지 않아 이것저것 짐들을 부려놓은 2층 창가에 놓여있던 바둑판과 바둑알, 장기알이었습니다. 사람들이 한동안 손을 대지 않아 먼지만 가득 쌓인 그것들을 어제(28일) 옥상에 올려놓고 우선 먼지를 털어내고 욕실에서 찬물에 씻어냈습니다.

빨래비누를 수세미에 묻혀 닦아낸 바둑판은 경첩이 떨어져 있었지만 그럭저럭 쓸만 했습니다. 바둑알과 장기알은 세숫대야에 쏟아붓고 비벼가며 먼지를 없앴습니다. 물에 젖은 바둑판과 알들은 방바닥에 신문지를 깔고는 말렸습니다.

어렸을 적 큰삼촌의 성화로 바둑판 앞에 앉아 바둑돌을 잡기도 했지만 오래가지 못해, 결국 바둑판과 바둑알을 가지고는 오목과 알까기 밖에 못했습니다. 그런 제가 다시 바둑판과 바둑알을 찾은 것은, 만화 <바둑삼국지>를 접하고 바둑에 대한 관심 부쩍 생겼기 때문입니다. 얼마나 갈지 모르겠지만, 가로 19줄 세로 19줄의 선이 교차하는 반상위에서 바둑돌들이 펼쳐내는 승부에 얼마간 눈을 뗄 수 없을 듯 합니다.

먼지가 쌓여있던 바둑판과 바둑알을 씻어냈다.
 먼지가 쌓여있던 바둑판과 바둑알을 씻어냈다.
ⓒ 이장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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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건 바둑이 아니라 오목...ㅋ
 이건 바둑이 아니라 오목...ㅋ
ⓒ 이장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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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둑은 어떻게 둬야하지??
 바둑은 어떻게 둬야하지??
ⓒ 이장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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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붙이는 글 | 이기사는 U포터뉴스와 블로거뉴스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태그:#바둑삼국지, #바둑, #만화, #조훈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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