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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달장애청소년 관악단 '하트-하트윈드오케스트라'. 음악을 통해 발달장애 청소년의 지능개발 및 사회참여에 기여하고자 2006년 3월에 창단되었습니다.
 발달장애청소년 관악단 '하트-하트윈드오케스트라'. 음악을 통해 발달장애 청소년의 지능개발 및 사회참여에 기여하고자 2006년 3월에 창단되었습니다.
ⓒ 하트-하트재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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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포레스트 검프>에서 끝없이 달리며 끝없는 희망을 보여준 포레스트. <아이 엠 샘>에서 딸을 향한 눈물 나는 사랑으로 가슴을 울린 샘. <말아톤>에서 "초원이 다리는 백만 불짜리 다리"를 외치며 서브쓰리 도전의 감동을 전해준 초원이.

잊혀지지 않을 영화주인공들, 이들에겐 공통점이 하나있습니다. 포레스트, 샘, 초원이 그들은 모두 발달장애인이었습니다. 발달장애는 신체 및 정신이 해당하는 나이에 맞게 발달하지 못한 상태를 의미한다고 합니다. 구체적으로는 해당 연령의 정상적인 성장 기대치보다 25% 이상 뒤져 있는 경우로 운동과 언어 등과 관련해 발달 지연의 어려움을 겪는 것을 말한다고 하네요. 설명만으로는 감을 잡기 어렵지만 포레스트와 샘, 초원이를 떠올려보면 발달장애가 어떠한 장애인지 다소나마 알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인지능력이 떨어지고, 타인과의 수월한 대화에도 어려움이 따르고, 누군가의 보호 없이는 결코 원활한 사회활동이 쉽지 않았던 그들. 더군다나 그러한 그들의 '모자람'을 바라보는 주변의 뻣뻣한 편견들이 남긴 상처들. 그들의 성취, 성공이 한층 깊은 감동을 줄 수 있었던 건 바로 그들이 그러한 큰 어려움을 겪어내었기 때문일 겁니다.

여기에도 포레스트, 샘, 초원이처럼 그들이 직면한 어려움에 맞서 열심히 땀 흘리고 있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물론 수월한 대화에 어려움이 따릅니다. 3~5분조차도 한 자리에 앉아있기가 힘듭니다. 벌떡 일어나서 난데없이 소리를 지르기도 하고 갑자기 성큼성큼 걸어 나가기도 합니다.

악보를 읽어내는 것도 영 더디네요. 때론 악기를 집어 던지기도, 손을 물어뜯기도 합니다. 사회성이 결핍된 경우가 많아 여러 명이 호흡을 맞추는 일도 참으로 어렵습니다. 그럼에도 그런 그들, 발달장애청소년들이 한자리에 모여 '음악'을 꿈꿉니다. 용기 있게 당당히 오케스트라를 꾸려 값진 땀을 흘리고 있습니다.

발달장애청소년 관악단 '하트-하트윈드오케스트라'

'하트-하트윈드오케스트라'는 발달장애청소년 관악단입니다. 20여 년간 다양한 나눔·봉사활동을 이어온 하트-하트재단(이사장 신인숙)의 지원 하에, 음악을 통해 발달장애 청소년의 지능개발 및 사회참여에 기여하고자 2006년 3월에 창단되었습니다.

"아이들의 진심어린 소리가 절 늘 이곳에 오도록 만들었습니다." 하트-하트윈드오케스트라를 이끌어오고 있는 박성호 지휘자.
 "아이들의 진심어린 소리가 절 늘 이곳에 오도록 만들었습니다." 하트-하트윈드오케스트라를 이끌어오고 있는 박성호 지휘자.
ⓒ 하트-하트재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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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까지 3회의 정기연주회를 비롯하여 KAIST 초청공연, MBC특집생방송, M.net 콘서트, 환아를 위한 병원순회연주 등 총 30여 차례의 공연을 해왔고 올해 9월에는 시카고 최대 발달장애전문기관 Ray Graham Association의 초청으로 시카고, LA에서 해외순회공연을 갖기도 했답니다. 미국에서의 공연소식은 KBS의 <휴먼다큐-사미인곡>를 통해 전해지기도 했지요.

지난 27일 밤, 서울의 장천아트홀에서 '하트-하트윈드오케스트라'의 제3회 정기연주회가 열렸습니다. 열심히 땀 흘리는 그들의 소리를 듣고 싶어 직접 연주회장을 찾았습니다. 일찌감치 찾은 연주회장에서는 리허설이 한창이더군요. 리허설을 지켜보고 있던 하트-하트재단의 오은혜 팀장으로부터 오케스트라에 대한 이야기를 전해 들었습니다. 대화는 오케스트라를 만들게 된 계기로부터 시작되었습니다.

"기존에는 발달장애아들을 위한 활동이 함께 박물관 견학을 가는 등의 식으로 간단한 치료활동에 치중되어 있었습니다. 따라서 이 아이들에게 좀 더 궁극적인 도움을 줄 수 있는 방법은 없을까 고민을 하게 되었죠. 여러 복지관에서는 특기활동으로 아이들에게 악기를 가르치고 있었는데요, 그럼 우리가 이 아이들을 모아서 합주의 장을 만들어보자는 생각을 하게 된 것입니다."

윈드오케스트라는 바람(호흡)으로 연주하는 악기, 즉 관악기를 중심으로 구성된 악단임을 말합니다. 굳이 관악단으로 오케스트라를 구성한 것은 관악기가 아이들이 배우기에 상대적으로 쉬웠기 때문이라고 하네요.  

"단원들은 오디션을 통해 선발했습니다. 그렇다고 해서 어릴 때부터 전문적으로 악기를 다루어 온 것은 아니고 거의 중·고등학교 때 악기를 처음 시작했어요. 오디션을 리코더로 치르고 입단 후 새로운 악기를 배우게 된 경우도 있지요. 아이들이 오케스트라 단원이 된 뒤 가장 행복해한 사람들은 아마도, 오랜 시간 혼자 깊은 슬픔을 삭여야 했던, 발달장애 아이들의 부모님이었을 겁니다. 아이들이 스스로 공연 스케줄을 체크하고, 적은 돈이지만 통장으로 들어오는 연주비도 모으고, 악보를 읽고 연습에 몰입하는 모습을 보면서 부모님들은 눈물을 흘리십니다. 오케스트라에서는 타인과의 소통이 아주 중요합니다. 타인을 배려하고 서로 교류하며 조화를 이루어가야 하지요. 오케스트라 활동을 통해 아이들의 사회성이 좋아졌음을 확연히 느낄 수 있습니다. 이를 바탕으로 아이들이 자신감을 갖고 여러 사회활동에 참여하고, 사회에 적응해가길 희망합니다."

사회성 증대, 원활한 사회적응. 희망을 이야기하며 리허설에 한창인 단원들을 바라보는 오은혜 팀장의 얼굴에 조용한 미소가, 길게 걸립니다.

"발달장애아동 부모들은 아이가 먼저 죽어주길 바랍니다"

하트-하트재단의 홍보대사인 최수종-하희라 부부. 그들의 인사말로 연주회의 막이 올랐습니다.
 하트-하트재단의 홍보대사인 최수종-하희라 부부. 그들의 인사말로 연주회의 막이 올랐습니다.
ⓒ 이대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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탁탁탁, 지휘봉 소리가 나고 박성호 지휘자가 입을 엽니다. 리허설이 끝났나봅니다.

"여러분들은 다른 사람들보다 100배, 1000배 이상의 노력을 해왔습니다. 여러분들의 진심어린 노력을 관객들이 알게 될 겁니다."

단원들을 향한 격려. '100배, 1000배 이상의 노력'이란 말이 마음에 박힙니다. 박성호 지휘자는 현재 강남심포니 오케스트라에서 트럼본 연주자로 활발한 연주활동을 하고 있다고 합니다. 그는 '하트-하트윈드오케스트라'의 창단부터 죽 오케스트라를 이끌어오고 있습니다.

첫 아기가 태어났고, 아기에게 멋진 아빠가 되고 싶다는 마음에서 시작하게 된 '하트-하트윈드오케스트라'. 그에게는 봉사활동이라지만 본업까지 제쳐둘 정도로 많은 힘을 쏟고 있다고 하네요. 그동안의 많은 고충과 사연들을 깊이 품고 있을 그에게 질문을 건넸습니다.

- 지금까지 오케스트라를 이끌어오며 많은 고충이 있으셨을 것 같은데요?
"3년 전 이 아이들을 처음 만났을 때, 날마다 두통에 시달렸고 몇 번이나 그만두고 싶었습니다. '이 아이들이 과연 나를 쳐다봐줄까? 지휘가 무의미하지 않을까?' 걱정이 많았습니다. 하지만 아이들의 열정 어린 눈빛을 보았고 시간이 조금 더 걸릴 뿐, 좋은 연주를 할 수 있다는 희망을 발견했지요. 아이들의 진심어린 소리가 절 늘 이곳에 오도록 만들었습니다."

- 단원들의 음악에 대한 열정·즐거움이 정말 느껴지시나요?
"물론입니다! 처음에 아이들은 늘 수동적이었죠. 그런 아이들이 목표 의식이 생겨 스스로 꾸준하게 연습을 하고, 악기를 사달라고 조르고, 연습에 오지 않은 친구들의 안부를 궁금해 하고, 연주가 마음대로 되지 않으면 스스로에게 크게 화를 내는 등 엄청난 변화와 발전이 있었습니다.

저는 유치원 선생님이 되었다가 초등학교 선생님이 되었다가 음악 선생님이 되었다가 사회복지사가 되었다가 합니다. 지금은 이 아이들을 장애인이라기보다 그저 '낯을 심하게 가리는 아이들' 정도로 생각하고 있어요. 일반 아이들만큼은 아니지만 힘들게 그리고 천천히 실력이 나아지는 걸 보는 보람이 무척 큽니다."

다음으로 '하트-하트윈드오케스트라'가 앞으로 어떤 오케스트라가 되길 바라는지 물었습니다. 그는 이내 "아, 이제는 말할 때가 됐습니다"라며 단호한 표정을 짓습니다. "아시나요? 발달장애아동 부모들은 세상에서 유일하게, 아이가 먼저 죽어주길 바라는 부모입니다."

아, 머릿속이 어지러워집니다. 이내 송아름 단원의 어머니가 한 인터뷰에서 하셨던 말들이 떠오르더군요. "제가 하루라도 더 오래 살아아죠. 놓고 갈 수는 없을 것 같아요…. 내가 오래오래 살아야지."

박성호 지휘자의 말이 이어집니다.

"저는 아이들이 오케스트라를 통해 단순히 후원에 의존하는 것이 아니라 직접 자립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직업화가 되어서 자립할 돈까지 벌 수 있는 모습이지요. 그럼으로써 부모님의 가슴 시린 걱정도 덜어내고, 세상에서 덜 무시 받으며 살아가는 것이지요. 물론 좀 더 높은 음악성을 추구하며 내실을 다지는 노력은 계속해나갈 것입니다. 하지만 음악성에서는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습니다.

음악CD를 제작하기 보다는 다큐형식의 DVD를 제작하는 등의 활동들이 더 의미가 있을 거라고 생각합니다. 우리 오케스트라가 이렇게 활동하고 있음을 널리널리 알리는 게 중요하죠. 그를 통해 발달장애인에 대한 사회적 편견 타파와 인식 개선을 이룰 수 있을 겁니다. 나아가 아이들이 본인들보다 더 어려운 상황에 처한 장애아 친구들까지 대변하고, 희망을 줄 수 있는 오케스트라이길 바랍니다."

오케스트라의 활동을 통해 발달장애에 대한 사회적 인식이 개선되길 바라는 그의 마음이 강하게 전해옵니다. 실은 그와 직접 대면한 시각은 공연 시작을 얼마 앞두지 않았을 때. 지휘자실에서 홀로 골몰하며 공연에 대한 생각을 정리하고 있어야 할 때임에도 그는 애써 귀한 시간을 저에게 떼어준 것입니다. '하트-하트윈드오케스트라'가 조금이라도 더 세상에 알려지길 바라며, 그럼으로써 '아이들'에 대한 세상의 인식이 바뀌어가길 바라며.

땀방울 소리가 빚어낸 화음이 가슴을 적시다

"이 아이들은 자신 안에 갇힌, 세상과 소통하지 못하는 병에 걸려있었습니다. 이제 이 아이들이 직접, 세상과 소통하기 위해 악기를 들었습니다." 

하트-하트윈드오케스트라의 단원들. 그들의 연주는 끊이지 않을 것입니다.
 "이 아이들은 자신 안에 갇힌, 세상과 소통하지 못하는 병에 걸려있었습니다. 이제 이 아이들이 직접, 세상과 소통하기 위해 악기를 들었습니다." 하트-하트윈드오케스트라의 단원들. 그들의 연주는 끊이지 않을 것입니다.
ⓒ 하트-하트재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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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층의 500여 석이 가득 찬 가운데 하트-하트재단의 홍보대사인 최수종-하희라 부부의 인사말로 정기연주회의 막이 올랐습니다. 이번 정기연주회의 프로그램은 시벨리우스가 작곡한 'Finlandia Symphonic Poem Op26-No.7', 찬송가 '면류관 가지고', 대표적인 우리 민요 '아리랑' 등 총 11곡이 준비되어 있었습니다.

플루트, 클라리넷, 색소폰, 트럼펫 등을 손에 쥔 24명의 발달장애인 단원 사이에 지도 선생님 몇 분이 자리를 잡습니다. 오보에, 바순 등 다루기 힘든 악기는 지도 선생님들이 전담했고 특별히 타악기 파트에 단원의 어머님 세 분이 참여셨더군요.

물론 음악전공자들로 구성된 오케스트라와의 연주와는 감히 비교할 수 없습니다. 중간 중간 어긋나는 음, 멋대로 뻗어 나오는 음, 누군가 악보를 놓쳤는지 계속해서 악보를 짚어주는 지도 선생님도 있습니다. 자세도 가지가지. 신발을 살짝 벗고 있는 사람도 있고 덜덜덜 다리를 떨기도 합니다. 어디에선가 '우~우~' 신음소리, 기침소리가 새어나옵니다. 한 단원은 다소 흥분했는지 계속해서 껑충껑충 일어나려 합니다. 이렇듯, 어수선합니다. 하지만, 분명 합주입니다. 둥글둥글 부드럽지만은 않지만, 조화를 이룬 음들이 널리널리 퍼져나갑니다.

단원 모두가 동시에 한 자리에 앉는 데만도 두 달이나 걸렸고, 3~5분도 집중하기 힘들어하던 단원들이었습니다. 합주를 따라하는 건 상상도 못했었고 입장, 인사 등 세세한 행동 하나하나까지 배워야만 했습니다. 그랬던 그들이 두 시간에 가까운 공연시간 동안 진지한 모습으로 합주를 이루어갑니다. 그들이 그러한 합주를 이루어내기 위해 그동안 얼마나 많은 땀을 흘려왔을지 감히 상상하기 힘들었습니다.

마지막 곡을 앞두고 박성호 지휘자가 객석을 향합니다.

"이 아이들은 자신 안에 갇힌, 세상과 소통하지 못하는 병에 걸려있었습니다. 사람들은 이 아이들을 마주치게 되면 피하기만 해왔죠. 이제 이 아이들이 직접, 세상과 소통하기 위해 악기를 들었습니다. 일반 음악의 잣대를 감히 들이대지는 말아주십시오. 이 아이들의 음악을 가슴으로 따뜻이 들어주시길 바랍니다."

많은 관객들이 귀가 아닌 가슴을 열고 음악을 감상해서 일까요. 마지막 곡의 연주가 끝나고, 전관객의 기립박수가 이어졌습니다. 세상과의 소통을 위해 악기를 꼭 쥔 그들. 그들이 흘려온 수많은 땀방울 소리가 빚은 화음에 그만 가슴이 젖어버렸습니다. 그들에게 보답하는 길은 그들을 향한 내 안의 편견을 허무는 치열한 노력에 있음을 떠올립니다. 연주회장을 가득 메운 박수소리는 끊이질 않습니다. 그들의 연주도 끊이질 않을 것입니다.

덧붙이는 글 | '하트-하트재단'의 누리집 http://www.heart-heart.org/
'하트-하트윈드오케스트라'에 대한 소식을 들을 수 있고, 후원도 할 수 있습니다.



태그:#해피윈드, #해피윈드오케스트라, #해피재단, #박성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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