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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학여행의 단골 코스 중 하나였으니 아마도 많은 이들이 설악산을 수학여행과 함께 기억하리라. 나 역시 여고 때 설악산으로 수학여행을 다녀왔다. 콘도에서 밤늦게까지 놀았던(?) 기억은 비교적 선명한데 설악산을 올랐던 짧은 산행코스는 가물가물하다. 흔들바위를 갔던 기억은 또렷하다. 가서 직접 굴려 보면서 흔들리는지 실험했던 기억 때문에.

 

거기까지였다. 바로 위 웅장하게 서 있는 울산바위는 흔들바위와 계조암을 사이에 두고 고개를 뒤로젖혀 가며 올려다 본 기억이 난다. 그리고 돌아서 왔다.

 

그때의 기억을 짜 맞춰 보자면 설악동 근처의 콘도에 숙소가 있었고 우리는 소공원에서 걸어 흔들바위까지 걸어갔었다. 비교적 선명하게 기억되는 흔들바위와 함께 정갈한 숲길이 생각난다. 가을이어서 단풍나무가 고왔었고 간간히 낙엽이 떨어진 산길은 마치 스님이 대빗자루로 쓸어 놓은 산사의 마당 같이 정갈했었다.

 

초겨울로 진입하는 11월의 막바지에도 불구하고 소공원으로 향하는 차량의 행렬이 참으로 길게 이어졌다. 예년에 비해 가을 날씨가 따뜻해서 단풍이 늦게까지 남았다더니 늦은 단풍을 구경나온 사람들로 소공원 가는 길이 한참이나 지체가 되었다.

 

'고됨'으로 기억되던, 20년 전 수학여행 산행

 

 

천천히 흐르듯 차량 행렬을 따라 가면서 만난 권금성 주변의 산능선 어디메쯤, 토왕성폭포가 하얗게 얼어 있는 걸 보았다. 아득한 봉우리 사이에서 마치 하늘에서 품어내는 듯한 물줄기가 아래를 향해 힘차게 내리 꽂다가 그대로 멈춘, 한폭의 그림 같은 정경이었다. 토왕성폭포가 점점이 멀어지면서 소공원에 닿았다.

 

소공원에서 신흥사쪽으로 가면서 세계최고라는 청동불상을 만난다. 이 땅의 평화와 통일을 염원하는 뜻으로 만들어진 불상을 '통일대불'이라고도 부른다니, 그 숭고한 뜻을 받들어 나도 두 손 모아 합장. 남북의 입장이 첨예하게 대립하는 이때, 통일대불을 바라보는 마음이 간절해지는 건 어쩔 수 없다.

 

계곡의 물은 말라버렸고 신흥사쪽으로 향하는 나무다리는 낡았다. 20년도 훨씬 넘은 옛날, 내가 여고 때 건넜던 그 다리가 이 다린가. 신흥사 정갈한 앞마당을 한 바퀴 둘러보고 영조때 지어졌다는 '보제루'에서 빠꼼히 내다보이는 절 가운데 건물인 '극락보전'을 바라만 보고 돌아 나온다. 절 집은 너른 담장이 둘러섰고, 사천왕상이 서있는 문 앞에 일주문처럼 서 있는 두 그루의 전나무가 인상적이다.

 

다시 다리를 건너서 흔들바위를 향해 길을 걷는다. 깨진 화강암 덩어리들이 발 아래 밟히는 길을 벗어나니 예의 내 기억 속의 정갈한 숲길이 나타난다. 산죽 사이로 이미 져 버린 단풍나무가 숲을 이룬 곳이다. 산을 오르는 일의 '고됨'으로만 기억되는 20년도 훨씬 지난 그때, 수학여행 중 설악 산행에서 그래도 소득이었다면 바로 그 '길의 정갈함'이 아니었을까. 옛 기억을 되짚으며 산길을 걷다보니 어느덧 계조암 앞이다. 바위와 바위 사이 움푹한 곳에 절묘하게 들어선 숲 속의 암자를 보니 화들짝 반가움이 일어난다.

 

깎아지른 듯한 쇠 난간을 묵묵히 오르다

 

 

'여기, 맞아.'

흔들바위를 만나기 전 계조암의 특이한 구조에 한참을 들여다보았던 기억이 났다. 그리고 계조암을 내려다보는 듯한 울산바위도. 흔들바위에 올라 아이들과 흔들바위를 시험해 본다. 흔들리는 것 같기도 하고 아닌 것 같기도 하다. 흔들림의 분명함이 느껴지지 않는지 많은 관광객들이 똑 같은 말을 한다. 어떤 이는 왼편으로 돌아가 약간 들어간 부위를 힘껏 밀면 흔들림이 느껴질 거라고 훈수를 두기도 한다. 울산바위로 향하는 길은 '흔들바위'가 있어 재미가 더한다.

 

길은 이제 가파른 오르막으로 향한다. 길 양편에 로프가 설치되어 있으나 많은 이들이 찾는 곳이니만큼 흙이 많이 깍인 산길은 미끄럽기 그지없다. 울산바위의 가장 높은 봉우리가 873m이니 설악산 다른 봉우리에 비해 비교적 낮은 곳에 위치해 있으며 가는 길 역시 짧은 편이라 이곳은 늘상 사람들로 북적인다. 그러나 짧은 길치고 만만치 않음은 다녀간 이들은 안다.


온통 돌투성이 바위산, 바위 틈새를 뚫고 자란 소나무의 멋진 자태가 눈길을 끌긴 하지만 본격적으로 울산바위 봉우리를 오르는 철 계단에서는 첫째도 조심, 둘째도 조심이다. 직벽에 가까운 바위봉우리를 쇠 난간을 타고 오르는 일은 쉽지 않은 일. 오금이 저려 뒤를 돌아 볼 수가 없다. 묵묵히 쇠로 된 계단을 하나 하나 오른다. 아래를 내려다 볼 수 없으니 더 자주 위를 올려다보면 아득한 길의 끝이 마치 하늘로 나 있는 듯한 착각이 인다. 누가 뭐라겠는가? 저 혼자 둥그렇고 높은 봉우리를 만들어 파란 하늘을 뚫을 듯 우뚝 서 있는 울산바위 라는데.

 

울산바위 없었다면 설악산이 얼마나 밋밋했을까

 

겁 없이 앞서가는 아이들과 울산바위 전설을 이야기하기 좋은 장소다. 아득한 벼랑길을 일부러 의식하기 싫어서 울산바위 전설을 꺼내 들었다. 무슨 놀이시설이라도 올라 탄 듯, 신나게 앞서가던 아이들의 걸음이 한 템포 늦춰지면서 울산바위 전설이 풀려 나온다.

 

금강산 산신령님이 금강산을 아름답게 꾸미려고 세상의 모든 봉우리를 불러 모았대. 울산에 사는 한 커다란 바위도 금강산에 가겠다고 길을 나섰는데 워낙에 몸이 무거워 하루를 설악산에서 지체 하게 되었다지. 하루를 지체하다 보니 일만이천봉 금강산 봉우리가 완성되었고 울산바위는 울산으로도 금강산으로 가지 못하고 이곳에 머물게 되었단다.

 

우리가 너무도 잘 알고 있는 '울산바위'이야기를 울산바위를 오르면서 주고받노라니 전설이 더욱 실감나게 와 닿는다. 울산바위를 오르는 일은 생각보다 쉽지 않았다. 대청봉도 올랐고 악명 높다는 공룡능선도 탔던 경험만 믿고 울산바위를 허투루 보았던 내가 얼마나 오만했던가 후회할 정도로. 그리고 아름다웠다. 푸른 하늘 아래 떡 하니 놓인 온통 하얗고 둥근 봉우리에 서서 보니 울산바위의 아름다움이 더욱 생생했다. 주변에 높은 봉우리가 없는 탓이었는지 한 뼘만 뻗으면 손이 하늘에라도 닿을 것만 같았다.

 

울산바위를 타고 오르는 일이 생각보다 쉽지 않았지만 내려가는 일은 더욱 그랬다. 발아래는 아득한 벼랑길이어서 고소 공포증과는 상관없는 나도 다리가 후들거려 몇 번인가는 쉬다 걷다를 반복하고서야 쇠 난간을 벗어날 수 있었다(쇠 난간이 오래 되었나 보다. 여기저기 균열이 보이고 몇 군데는 나사가 빠진 곳도 있었다. 예방 차원에서 안전 점검이 있었으면 한다).

 

울산바위는 외설악의 끄트머리를 장식하는 듬직한 풍경으로 보는 이들을 압도한다. 그래서 오늘도 많은 사람들이 이곳을 찾아 설악산의 또 다른 절경 앞에서 감탄사를 내뱉는다. 나 역시 그들과 마찬가지였다. 울산바위가 없었다면 설악산의 끝자락이 얼마나 밋밋했을 것인가.

덧붙이는 글 | 지난 11월 23일에 다녀왔습니다.


태그:#흔들바위, #계조암, #울산바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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