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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동리.목월 문학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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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천년에 가까운 신라왕국이었던 경주는 조선시대의 사람 김시습이 최초의 한문소설 <금오신화>를 쓴 곳이기도 하다. 경주의 남산 용장사지는 김시습이 7년 동안 기거했던 절터라 한다. 수양대군이 조카 단종을 내몰고 왕위에 올랐다는 소식을 들었던 김시습은 책을 불태우고 중이 되어 설잠이라는 이름으로 전국을 방랑했고, 그가 경주 남산에 들어와 살게 되었던 1462년(28세)에 용장사 근처에서 금오산실이라는 집을 짓고 살면서 금오신화를 완성했다.

문학의 향기에 취해보고 싶어 경주가 낳은 두 거목을 만나러 간다. 동리. 목월 문학관은 토함산 기슭에 위치해 있었다. 경북 경주시 진현동 550-1번지에 동리. 목월 문학관이 있다. 토함산 산행을 마치고, 불국사 주차장에서 차를 타고 나와 불국사 쪽으로 올라가다가 불국사 옆에선 주차금지라는 표시를 발견, 바로 길 맞은편에 입구가 보이건만, 어쩔 수 없이 차량 관리를 하고 서 있는 아저씨한테 바로 앞에 있는 동리·목월 문학관을 어떻게 가느냐고 물었다.

함께 찍은 사진...
▲ 김동리. 박목월 함께 찍은 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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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100~150미터 더 올라가면, 동리·목월 문학관 표시가 있다고, 정문이 있다고 일러 주었다. 바로 지척에 있었다. 동리·목월 문학관은 사단법인 동리·목월 기념사업회에서 2000년 12월 1일, 한국 문단의 거봉 김동리와 박목얼의 문학적 업적을 기리는 기념관을 건립해 지역사회의 정신문화를 견인하는 문화의 전당으로 만들자는 건립취지에 찬동하는 13명이 모여 결성해 만든 것이라 한다. 덕분에 우리 문단의 거인들 중 두 거봉이 남긴 작품들과 생애를 한꺼번에 만날 수 있었다.

동리·목월 문학관은 기와지붕을 이고 있는 깨끗한 건물이다. 마당에 들어서자 한쪽에 무슨 탑이 보이고, 맞은편 마당 앞에는 ‘신라를 빛낸 인물들’이라는 팻말이 붙은 건물이 있다. 동리·목월 문학관 안으로 들어서자 엄마와 선생님들과 함께 온 아이들이 안내데스크 앞에 모여 있는 것이 보인다. 입구에서 오른쪽엔 목월 문학관, 왼쪽엔 김동리 문학관이 각각 자리하고 있다. 어디서부터 둘러볼까. 망설이다가 김동리 선생의 문학관부터 들어간다.

김동리 문학관 내부...
▲ 동리. 목월 문학관 김동리 문학관 내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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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동리 선생의 문학관을 둘러보고 있으니까 안내데스크에 있던 사무원이 다가와서 말을 건넨다. ‘지금 지하에 있는 영상실에서 마침 방송통신대학생들이 선생님의 영상 설명을 듣고 있다’며 설명을 듣고 보면 더 이해하기 쉽다며 안내해 주어서 우린 지하로 내려간다. 지하엔 사무실과 자료실, 영상실 등이 있다. 영상실 문을 열고 들어가자 동리·목월 기념사업회 회장의 설명을 듣고 있는 여남은 명의 사람들이 앉아 있다.

그들 뒤에 앉아 이어지고 있는 설명을 듣는다. 곧 영상이 시작되었다. 김동리의 삶과 문학, 그리고 박목월의 문학과 삶을 대략적으로 영상에 담아 보여주고 있었다. 우리 문학의 거목인 김동리 작가와 박목월 작가 두 사람의 고향이 경주인데다 선후배 사이라는 것을 여기서 또한 알 수 있었다. 영상을 본 뒤, 아무나 차를 마실 수 있도록 해놓은 차 탁자 위에 놓인 녹차와 커피 중, 우린 커피 한잔씩 마시고 다시 1층으로 올라간다.

가장 한국적인 작가라고 불리는 김동리 작가

김동리 문학관으로 먼저 들어간다. 깨끗한 건물 안에 김동리 선생의 생애와 작품들이 일목요연하게 배치되어 있다. 김동리 선생(본명은 시종,1913년 11월 24일생)은 경주 성건리 마을에서 출생하였고 경주제일교회 부설학교를 거쳐 대구 계성중학교를 2년 수학한 뒤 서울 경신중학교4년에 중퇴후 문학수련에 전념하였다.

소설가이며 시인이었던 그는 순수문학과 신인간주의 문학사상으로 일관했다. 1934년 조선일보 신춘문예 당선으로 등단해 <화랑의 후예>, <무녀도>, <역마>, <황토기>, <등신불> 등 많은 작품을 남겼다. 그가 생애동안 남긴 작품은 4권의 시집과 6권의 창작집, 10권의 장편소설집, 8권의 수필집, 3권의 평론집 등 다수가 있다. 그의 문학은 다양한 종교적 색채를 띠고 있다는 것이 특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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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동리. 목월 문학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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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가 문학을 하게 된 계기는 아주 어린시절로 거슬러 올라간다. 이웃 집 소녀 ‘선이’의 죽음을 일찍이 경험한 뒤 그는 늘 죽음에 대해 생각했고 그것이 결국 그를 문학의 길로 가게 만들었다. 초기에는 토속적이고 샤머니즘적, 동양적 신비의 세계에서 제재를 선택한 글을 썼으며 인간생명의 허무적인 운명과 신비를 추구해 <무녀도>와 <황토기> 등을 남겼다.

중기에는 한국전쟁을 계기로 보다 더 역사적 현실 인식이 강화되면서 참여 의식이 강한 작품들을 남겼다. <귀환장정>, <흥남철수>, <역마> 등이다. 후기 작품은 보다 근원적인 인간구원의 문제를 다루고 있다. <등신불>, <사반의 십자가> 등을 남겼다. 그가 개인적으로 자신의 작품 중 작품다운 작품이라고 친 것은 <사반의 십자가>라고 한다.

작품과 생애...
▲ 동리.목월문학관 작품과 생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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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동리문학관에서...
▲ 동리.목월문학관 김동리문학관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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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동리 선생이 서라벌예술대에서 후학을 가르치는 명장으로서 그의 면모를 설명해 주는 하나의 일화가 있다고 한다. 그가 가르친 제6회 서라벌예술대 졸업생 전원이 문단에 나왔는데 김동리는 강의 첫날, 학생들을 글을 쓰게 해보고 그 사실을 예언했다는 것이다. 서울대 국문과, 고려대 국문과 강사를 거쳐 중앙대 예술대에 이르기까지 그가 강단에서 가르친 세월은 30년이라는데,

감태준, 김민숙, 김원일, 김정례, 김주영, 김지연, 김형영, 노순자, 박상륭, 백시종, 송기원, 송상옥, 양문길, 오정희, 유현종, 이경자, 이근배, 이동하, 이문구, 이채형, 천스에, 한문순, 황충상 등 우리가 익히 들어 알고 있는 빼어난 문학 활동을 하거나 해 온 현역 작가들이 1백여명에 이른다는 사실이 과연 놀랍다.

‘가슴 속에 언제나/벌레 우는 고향/그 꿈속의 고향은 얼마나 먼 곳일까/내 고장 서쪽 산 옥녀봉 비탈/끝없이 펼쳐진 갈대밭 속에/작고 붉은 묏새들 날고 있었지/갈대밭 위로 떠오르던/둥근 달은 어머니 얼굴/갈대밭 속의 깊이 모를 늪가엔/늙은 개구리 한 마리/두 눈을 굴리며 나를 바라보았지/옥녀봉 한쪽 비탈 끝없는 갈대밭/그 늪가의 늙은 개구린/지금도 그 큰 눈 굴리고 있을까’ (김동리 시 ‘갈대밭’)

‘청노루’ 같은 ‘나그네’의 시인

시인 박목월의 본명은 영종, 그는 1915년 1월 6일, 경북 경주군 서면 모량리 571번지에서 맏이로 태어났고, 어머니 박인재는 박목월 선생이 보통학교 4학년 때부터 교회에 나가기 시작했고 어머니의 신앙은 그의 정서 형성에 많은 영향을 미쳤다 한다. 1939년 <문장>에 ‘길처럼’, ‘산그늘’ 등을 정지용 추천으로 발표하며 등단했던 그는 1946년, 조지훈, 박두진과 함께 <청록집>을 발간하기도 했다.

박목월 시인이 남긴 책들과 원고들...
▲ 동리.목월문학관 박목월 시인이 남긴 책들과 원고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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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의 향기에 취하다...
▲ 문학관 문학의 향기에 취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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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지용의 추천 글에 ‘북에는 소월이 있다면 남에는 목월이 있다’고 했다고 한다. 초등학교 때 즐겨 불렀던 ‘송아지’도 박목월 시라는 것을 아는 사람이 얼마나 될까. 박목월 문학관에서는 박목월 시인의 육성으로 자작시를 들을 수 있게 해 놓고 있었다. 그의 초기 시와 중기 시, 그리고 후기 시 등이 차례로 전시되어 있다. 글을 쓰고 책을 읽곤 했을 서재도 마치 그대로 옮겨놓은 듯 꾸며놓고 있다. 학창시절에 익숙했던 박목월 시인의 ‘나그네’가 보인다.

‘강나루 건너서/밀밭 길을/구름에 달 가듯이/가는 나그네/길은 외줄기/남도 삼백리/술 익는 마을마다/타는 저녁놀/구름에 달 가듯이/가는 나그네’

문학의 향기에 취하다...
▲ 문학관 문학의 향기에 취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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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의 향기에 취하다...
▲ 문학관 문학의 향기에 취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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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인적으로는 ‘나그네’를 비롯해 주옥같은 시들이 많지만, 박목월 시인의 ‘가정’이라는 시를 나는 무척 좋아한다. 박목월의 시 ‘가정’은 1964년에 발표한 시로 <청담>에 수록되어 있는 시 가운데 하나다. 나는 이 시를 읽을 때마다 가난했던 그 시대와 한 가정의 가장으로서의 고단함과 가정의 따사로움이 번지는 듯 하다. ‘얼음과 벽을 짜 올린, 지상의 연민한 삶의 길’에서 ‘아랫목에 모인’ 가족의 온기와 가장의 연민어린 눈빛을 보는 듯 하다.

‘지상에는
아홉 켤레의 신발
아니 현관에는 아니 들깐에는
아니 어느 시인의 가정에는
알전등이 켜질 무렵을
문수가 다른 아홉 켤레의 신발을.

내 신발은
십구문 반.
눈과 얼음의 길을 걸어
그들 옆에 벗으면
육문삼 코가 납작한
귀염둥아 귀염둥아
우리 막내둥아.

미소하는
내 얼굴을 보아라
얼음과 눈으로 벽을 짜올린
여기는
지상
연민한 삶의 길이여.
내 신발은 십구문반

아랫목에 모인
아홉 마리의 강아지야
강아지 같은 것들아
굴욕과 굶주림의 추운 길을 걸어
내가 왔다.
아버지가 왔다
아니 십구문 반의 신발이 왔다.
아니 지상에는
아버지라는 어설픈 것이
존재한다.
미소하는
내 얼굴을 보아라.‘

오랫동안 켜켜이 먼지 앉아 있을 만큼 손길 닿지 않았고 관심에서 멀어졌던 이분들의 문학작품들을 다시 꺼내 읽어봐야겠다고 생각하며 동리·목월문학관을 나왔다. 밖으로 나오자 ‘아사달 아사녀 사랑탑’이 보인다. 이 사랑탑은 석공들이 자기들 선조들 중 이름 있는 최고의 선조가 아사달인데 그 선조를 기리기 위해 전국의 석공들이 모여 만든 것이라 한다. 돌 무게는 200톤이나 된다고 한다.

어느새 저녁이 내리고 있었다.

(관람시간: 오전 9시~오후 6시까지. 휴관일은 1월 1일, 월요일, 설날 및 추석 당일이다. 관람료는 1인당 1,500원이다)


태그:#문학관, #경주, #김동리, #박목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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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항상 기뻐하라 쉬지 말고 기도하라 범사에 감사하라 이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너희를 향하신 하나님의 뜻이니라.'(데살전5:16~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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