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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이렇게 빙빙 도는 거야?"

 

버스에 타고 있는 사람들의 입에서 불만의 소리가 터져 나왔다. 불만의 소리가 들리는지, 안 들리는지, 버스는 계속 달리고 있었다. 변산 국립공원이 있는 부안군을 일주하고 있었다. 나중에 알고 보니, 내비게이션의 오작동으로 인한 결과였다. 직소폭포를 목표지점으로 하고 달렸는데, 내소사 안으로 잘못 인식한 것이다.

 

 

 

1시간 정도면 도착할 수 있는 변산 국립공원의 직소폭포를 3시간이 결려서야 겨우 도착할 수 있었다. 덕분에 서해의 아름다운 바다 풍경을 구경할 수 있어 좋기는 좋았다. 단지 버스를 너무 오래 탔기 때문에 일정에 차질이 생겼을 뿐이었다. 미술관을 관람하기로 되어 있었는데, 미술관에 갈 시간을 가질 수 없어 포기하는 수밖에 없었다.

 

직소폭포에서 내소사로 향하는 산행은 약 6km가 소요되는 거리다. 등산이라고 하지만 길이 그렇게 험하지 않아서 어렵지 않게 걸어갈 수 있는 좋은 코스였다. 가을을 지나 겨울로 넘어가는 능가산의 풍광을 즐기면서 걷는 길은 즐거운 산행이 될 수밖에 없다. 호젓하고 여유를 만끽할 수 있는 오솔길이라고 말할 수 있다.

 

 

내소사는 아주 오래된 사찰이다. 당나라의 소정방이 이곳으로 상륙하여 찾아왔다는 이야기가 전해지기도 한다. 백제를 멸망시킨 장수이니, 결코 기억하고 싶지 않은 장수이지만, 이름이 전해지고 있어 역사의 아이러니라 할 수 있다. 하늘로 향한 산사 입구의 거목들은 찾는 이를 예를 갖추어 맞이하고 있는 듯하여 좋았다.

 

절 안으로 들어서게 되면 천년을 지켜온 노거수가 반갑게 맞이해준다. 둘레가 7m나 되는 거대한 나무다. 이런 나무도 세월에는 어쩔 수 없는지 가지들이 여기저기에서 찢겨져 나간 흔적이 역력하다. 세월의 무상함을 새삼 실감할 수 있게 한다. 천년을 버티고 있으니, 신령스러운 나무임에는 틀림이 없다.

 

 

보물로 지정되어 있는 고려 시대에 만들어졌다는 동종과 대웅전이 가슴에 와 닿았다. 낮은 곳으로 임하라는 부처님의 가르침을 실천하고 있는 소나무와 어우러진 삼층 석탑 또한 기도하는 삶이 얼마나 소중한 것인지를 깨닫게 해준다. 나 잘났다고 우쭐거리는 어리석은 범부의 삶을 버리고 낮은 곳으로 임하면서 다른 사람을 위한 삶을 살아가야겠다는 생각이 저절로 들게 하였다.

 

대웅전의 꽃 창살 무늬가 시선을 잡는다. 대웅전의 전면 문에 새겨진 꽃 창살 무늬의 아름다움을 바라보면서 그것을 만든 장인들의 마음을 생각해본다. 무늬 하나를 새기고서 합장하며 절을 하였을 것을 생각하니, 저절로 고개가 숙여진다. 살아오면서 그런 마음으로 나를 낮춘 적이 없다는 사실이 마음을 무겁게 한다.

 

어른들은 지나간 날의 일에 미련을 버리지 못하면서 살고 아이들은 앞으로 일어날 일에 더 큰 관심을 가지면서 살아간다고 하였던가? 산사를 찾는 것이 즐겁고 마음이 편안해지는 것은 동심은 모두 다 사라졌다는 것을 뜻하는 것이리라. 분명 나에게도 동심이 살아 있던 시절이 있었는데, 이제는 그것이 아련한 추억이 되었으니, 당혹스럽다.

 

 

꽃 창살 무늬를 만든 장인들의 정성을 생각하면서 어머니의 따뜻한 사랑이 그리워진다. 배가 아프다고 하면 호 불어주시던 어머니의 입김을 언제부터 잊어버리고 살았는지, 모르겠다. 동심을 잃음으로 인해 삶의 많은 기쁨도 함께 잃어버렸다는 것을 꽃 창살 무늬를 바라보면서 깨닫게 된다.

 

내소사를 나서서 집으로 돌아오는 동안 내내 많은 생각을 하였다. 어른이 되면서 잃어버린 많은 것들이 얼마나 소중한 것인지를 새삼 실감하게 된다. 다른 사람들의 이야기에 귀 기울이며 함께 웃고 함께 슬퍼하는 것이 행복의 기본 조건이라는 것을 새삼 깨닫게 된다. 겨울의 길목에 찾은 내소사 여행은 많은 것을 생각하게 하였다.<春城>

덧붙이는 글 | 사진은 전북 부안 내소사에서 직접 촬영


태그:#내소사, #꽃창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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