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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생님, 요즘 무척 춥죠? 아침에 세수 하려면 손이 시려요. 우리 집은 아파트가 아니거든요. 그래서 몇 번이나 망설여져요. 그럴 때 엄마는 무엇이 춥냐며 손에 물을 끼얹어요. 그렇지? 나도 요즘 너처럼 날씨가 차가워졌다는 걸 느껴. 아직 손을 호호 불어댈 만큼은 아니지만 추워.

 

그런데 인서야, 이런 계절일수록 좀더 부지런을 떨어야 해. 춥다고 마냥 몸을 움츠리면 자꾸만 게을러지거든. 알아요. 그냥 해본 얘기에요.

 

그런데 있잖아요. 엄마는 지난 몇 달 동안 가을은 독서의 계절이라고 책을 읽으래요. 난 벌써 가을이 지나고 겨울 같은데 말에요. 엄마는 아직도 가을인가 봐요. 그렇지 않아. 아직 곳곳에 가을의  모습이 남아 있어. 들판 가득 하얗게 서리가 내리면 그때 본격적인 겨울로 접어들지.

 

다른 지방에는 벌써 흰눈이 펑펑 내렸다는 걸요. 얼음 얼고 눈 내리면 겨울 아닌가요? 맞아, 눈 내리면 겨울이지. 그렇지만 엄마가 그렇게 말씀하시는 것은 후딱 지나쳐 가는 가을 이 아쉬워서 그런 걸 거야.

 

"그런데 선생님, 왜 가을은 독서의 계절이라고 하나요?"

 

글쎄다. 굳이 요즘 같은 세상에 딱히 ‘독서의 계절’이라고 단정지어놓고 얘기하기에는 뭣하다만, 지금은 봄여름가을겨울 어느 때나 독서의 계절이야. 계절에 관계없이 쾌적한 환경을 유지할 수 있고, 언제어디서나 간섭도 받지 않고 책을 읽을 수 있어.

 

하지만 옛날에는 그렇지 않았어. 여름에는 너무 더웠어. 에어컨은 물론, 선풍기도 없던 시절에는 부채로 더위를 쫓았는데, 한 손에 부채, 한 손에 책, 그러고서 독서에 빠지기는 힘들었지.

 

또한 겨울은 너무 추웠어. 따뜻한 아랫목이야 있었겠지만, 지금과 달리 옛날 집들은 외풍이 심했거든. 아랫목 구들장은 뜨거웠지만, 어깨는 썰렁했어. 때문에 책 읽기에 좋은 분위기는 아니었어. 그래서 독서를 하기에는 여름과 겨울보다는 봄과 가을이 좋았어. 그렇겠군요.

 

근데 인서야, 봄과 가을은 비슷한 계절인데도 유독 가을이 독서의 계절이었을까? 글쎄요, 제 생각에는 봄에는 모든 것을 새롭게 시작하니까 바빠서 그런 것 아닐까요? 오, 역시 인서답다.

 

왜 가을은 독서의 계절이라고 하나요

 

그래, 네 생각이 옳아. 똑같이 춥지도 않고 덥지도 않다고 해도 봄은 겨우내 얼었던 땅이 풀리면서 나무에는 새순이 돋고, 뜰에는 아름다운 꽃이 피고, 종달새가 노래를 하고, 나비가 훨훨 날아와서 꽃과 어울리지. 봄바람 살랑대는 봄은 책 일기에는 아까운 계절이었어.

 

또, 농경사회였던 우리나라에서는 봄은 시기적으로 아주 바쁜 시기였어. 씨앗파종 준비하랴, 논 갈랴, 밭갈이 하랴, 그야말로 일손이 딸리는 시기에 책을 잡기도 좀 그랬어.

 

그러나 가을은 오곡이 여물면서 차분해지는 시기지. 농촌에서는 가을걷이로 부엌 부지깽이도 일손을 거들어야 할 만큼 바쁜 철이었지만, 책을 읽는 학동이나 선비들은 알차게 맺은 곡식을 보면서 자신들의 가슴에도 마음의 양식을 채우고 싶어 했어. 생각해 보련? 더위는 한풀 꺾였고, 추위는 아직 오지 않아 책 읽기에 그만큼 좋은 계절이 또 있겠니? 

 

가을 농번기에는 바쁘기는 하지만, 봄만큼 촉박하게 바쁜 것은 아니거든. 알곡을 거두는 마음은 똑같은 거야. 씨를 뿌리는 마음보다는 넉넉했을 테고, 모든 게 풍성해지니까 한 해 동안 다급했던 마음도 한결 여유로웠을 거야. 그래서 가을이 독서의 계절이 된 것이 아닐까요? 네 생각은 어때?

 

선생님 말씀을 듣고 보니 그런 것 같아요. 그런데 어쩌죠, 한창 책을 읽어야 할 계절이 다 지나가 버렸으니 말에요. 아니다, 인서야. 늘 내가 말 했었지. 세상일들 늦었다고 깨달았을 때가 가장 빠른 때라고. 더구나 배움이나 책 읽는 데는 막연하게 정해진 시기가 없는 거야. 알겠어요, 헤헤, 저도 오늘부터 새롭게 마음잡고 책을 읽을 거예요. 

 

책 읽는 데는 막연하게 정해진 시기가 없는 거야

 

그래, 그렇게 생각해 주니까 고맙구나. 요즘 인서 네가 생각도 야무지고 참 대견스러워. 난 이렇게 생각해. 엄마가 애써 책 읽으라고 닦달하는 것은 네가 생활하는 것이 못마땅해서 그런 게 아니야, 책 읽기에 좋은 때를 놓치지 말고, 네가 자라는 데 필요한 지식을 얻는데 충실했으면 하는 바람일 거야.

 

책을 읽어서 나쁠 게 하나도 없다. 알지? 그렇지만 나도 너만 했을 때 집안에 붙박여서 책 읽는 게 싫었어. 그보다도 바깥에 나가 신명나게 노는 게 더 좋았거든. 하지만 지금에 와서 생각해 보면 그때 그 시절 책을 즐겨 읽지 않은 게 후회가 될 때도 있어. 그래서 책 읽어라 권하는 얘기는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다고 생각해.

 

세상에 좋은 빛을 내는 사람들을 보면 다 훌륭한 독서광이었어. 오죽했으면 단 하루라도 책을 읽지 않으면 입에서 구린내가 난다고 했을까. 때문에 부모님이나 선생님들은 너희에게 책을 읽어라 다그치는 게야.

 

나도 지난 한 해 동안 귀 딱지가 앉도록 책 읽어라 지청구를 해댔다. 근데, 너흰 오늘내일하면서 미뤘지. 인서 넌 6학년 때 책을 얼마나 읽었니? 솔직히 많이 읽지는 못했어요. 뭐 그렇다고 미안해 할 필요는 없어. 열심히 읽었으면 만족해.

 

책 읽어라 권하는 얘기는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다고 생각해

 

인서야, 오늘은 뭣하고 지냈니?

 

그냥 집에서 이것저것하며 인터넷 서핑하고 보냈어요. 그랬구나. 나는 학교 수업을 쉬는 토요일마다 도서관에 가,

 

그곳에 가면 새롭게 얼굴을 내놓고 있는 책들을 쉽게 만날 수 있거든. 마침 도서관에 가보니까 생각보다 많은 사람들이 책을 읽고 있더라. 너 만한 아이들도 많았지만, 머리가 희끗희끗한 어른들도 함께 자리하고 있었어.

 

주위 사람들에 개의치 않고 독서삼매경에 빠져 있는 사람들, 참 아름다웠어.

 

그 속에 네 모습을 만났으면 얼마나 기뻤을까.

 

헤, 미안해요. 녀석, 그렇게 부담스러워 할 까닭은 없어. 이제부터 차분히 책을 읽으면 돼. 때늦은 가을이지만 가을은 독서의 계절이잖아. 


태그:#독서, #독서삼매경, #독서광, #독서의 계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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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종국기자는 2000년 <경남작가>로 작품활동을 시작하여 한국작가회의회원, 수필가, 칼럼니스트로, 수필집 <제 빛깔 제 모습으로>과 <하심>을 펴냈으며, 다음블로그 '박종국의 일상이야기'를 운영하고 있으며, 현재 김해 진영중앙초등학교 교감으로, 아이들과 함께하고 생활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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