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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1세의 남아프리카공화국 여성전사가 21일 한국의 진보신당을 방문했다.

 

남아공의 집권여당인 ANC(아프리카민족회의)에서 활동하고 있는 '좌파여성주의자' 부니(Bunie)는 이날 오전 서울 여의도에 위치한 진보신당 사무실을 방문해 박김영희 공동대표와 정종권 집행위원장 등과 대화를 나눴다.

 

진보신당측의 설명에 따르면, 부니는 아파르트헤이트(인종차별정책) 정권이 집권했을 당시 ANC의 비합법 활동가로 오랫동안 활동해왔다. 그런 과정에서 인종주의자들의 총격과 차량폭파로 인해 아들 등 가족을 잃는 비운을 겪었다. 

 

이후 네덜란드로 망명한 부니는 ANC가 집권한 이후에도 정부에 들어가지 않고 '비판적 지지세력'으로 남아 활동을 계속하고 있다고 진보신당측은 설명했다.

 

"여성의 요구가 나의 저항의 중심이었다"

 

부니는 이날 간담회에서 남아공의 독립사를 언급하며 이야기를 풀어나갔다. 그는 "독립운동을 만델라 혼자 한 것이 아니다"라며 "만델라를 우리 운동의 얼굴로 우리가 함께 한 일"이라고 평가했다.

 

넬슨 만델라라는 한 지도자가 아니라 운동에 참가한 무수히 많은 민중(people)들의 연대로 독립을 쟁취했다는 얘기다.

 

부니는 "남아공의 정치적 투쟁과 저항의 역사는 300년에 걸친 역사 속에서 반식민지 투쟁의 역사"이라며 "그 중 가장 잔인했던 것이 아파르트헤이트였는데 인종주의뿐만 아니라 여성에 대한 억압도 함께 있었다"고 지적했다.

 

이어 부니는 "'인종'과 '젠더'는 매우 중요한 파트너로서의 역할을 서로 했다"며 "여성의 요구가 나의 저항의 중심이었다"고 일갈했다. 즉 "여성을 중심으로 만드는 것은 세계의 저항과 함께하는 것"이자 "시민권의 저항"이라는 것.

 

실제 1994년 이후 ANC 안에서 '30% 여성 할당'을 이루어냈으며, 2004년부터는 정계 등에서 활동하는 여성의 비율이 50%에 이르렀다고 한다. 

 

또한 부니는 "비례대표 명부에 여성뿐만 아니라 많은 사회적 소수자들이 포함됐고, 여성의 권리나 성소수자들의 권리가 명시된 진보적 헌법을 가지게 됐다"며 "이러한 결과는 짧은 14년 동안 이뤄졌다"고 말했다.

 

부니는 "이전에는 어디서, 누구와 만나고 어떤 조직을 만들 것인지가 금지되어 있었다"며 "(하지만) 최소한 이론상으로는 이런 자유를 누릴 수 있는 헌법적 권리를 얻었다"고 말했다.

 

"억업의 도구를 어떻게 해방의 도구로 활용할 것인가?"

 

이어 부니는 집권 이후 겪어야 했던 '딜레마'를 언급했다. 이는 한국에서 진보정당이 집권했을 경우 겪을 수 있는 문제이기도 했다. 그는 "남아공은 집권 이후에 어떤 종류의 민주주의인가가 문제가 되었다"며 이렇게 말했다.

 

"국가의 해방을 위해 싸우던 것과, 통치의 질을 어떻게 높일 것인가는 같지만 다르기도 하다. 사실 반대의 위치에서 말하고 싸우는 것은 매우 쉽다. 그러나 통치의 입장이 되면 매우 어려워진다."

 

부니는 "공공서비스의 영역에서 봐도 지배제도의 억압 도구도 이제는 해방의 도구로 활용돼야 했다"며 "(이것은) 우리가 부딪힐 수밖에 없는 딜레마"라고 말했다.

 

이어 부니는 "ANC의 문제는 이데올로기의 문제가 아니라 사회, 정당 안에서 문제를 어떻게 실현할 것인가의 문제가 남았다"며 강간죄로 기소된 적이 있는 차기 대통령 예정자 주마(Zuma) ANC 당의장을 우회적으로 비판했다.

 

"여성이 의상을 너무 야하게 입었다거나, 가방에 세면도구가 있었다거나 하는 이유로 강간을 합리화하는 것을 보고 어이가 없었다. 남아공이 새로운 헌법을 만들었을 때는 사법 개혁 또한 전제되었어야 했는데 그러질 못했다는 것이 이 사례에서 보인다. 이 사건이 아프리카 민족회의의 분리를 낳았다. 법정에서 이 증언을 했던 남자가 내년에 대통령이 되는 상황이다."

 

부니는 "이런 상황에서 ANC는 많은 도전에 부딪히게 됐다"며 "집권여당에 불신하는 세력도 많아졌다"고 지적했다.

 

 

"진보신당은 여성의 처지에서 더 목소리를 내야"

 

한편 이날 간담회에는 부니뿐만 아니라 14년간 대만 노총에서 활동한 곽명주씨, 말레이시아 공산당에서 활동한 린메이, 이라크 출신의 타히르, 싱가포르 출신의 아그네스도 참여했다. 진보신당쪽에서는 최현숙 성정치기획단 대표, 박성이 당원사업실장, 엄기호 <닥쳐라 세계화> 저자 등도 함께 했다. 

 

박김영희 공동대표는 "한국은 경제상황이 날로 어려워지고 양극화가 심화되면서 비정규직, 여성 노동자들의 문제가 점점 심각한 상황에 이르고 있"며 "그 안에서 여성의 인권이 매우 열악한 상황이기 때문에 진보신당은 여성의 처지에서 더 목소리를 내는 역할을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정종권 집행위원장은 "한국의 노동운동, 여성운동, 환경운동 등 사회운동과 밀접한 연관을 가지면서 당의 발전을 추구하고 있다"며 "지금 저희는 당의 가치, 정체성, 이념 문제를 중심으로 전당적인 토론을 진행하고 있으며 내년 3월 초 경에 제1차 당대회를 가질 예정"이라고 부니 등에게 진보신당을 소개했다.


태그:#부니, #진보신당, #아프리카민족회의, #AN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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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0년 전남 강진 출생. 조대부고-고려대 국문과. 월간 <사회평론 길>과 <말>거쳐 현재 <오마이뉴스> 기자. 한국인터넷기자상과 한국기자협회 이달의 기자상(2회) 수상. 저서 : <검사와 스폰서><시민을 고소하는 나라><한 조각의 진실><표창원, 보수의 품격><대한민국 진보 어디로 가는가><국세청은 정의로운가><나의 MB 재산 답사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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