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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 들어 가장 추운날씨를 기록한 오늘(18)아침 서울 영하 4도 체감온도 영하 10도라며 TV뉴스에서 잔뜩 겁을 준다. 창밖을 내다보니 아파트 마당에는 은행잎과 단풍잎이 어제 분 바람에 모두 떨어져 나뒹굴고 있다.

 

쓱싹쓱싹 이른 아침부터 아파트 관리인 아저씨가 커다란 대나무 빗자루를 들고 부지런히 낙엽을 쓸어 모은다. 이맘때쯤이면 늘 있던 풍경이라 그러려니 하고 생각하다 아니지 고생하시는 아저씨에게 따뜻한 차라도 한잔 타다 드려야지 맘먹고 보온병에 차를 타서 내려갔다. 얼굴은 추위에 빨갛게 상기되었지만 겉옷을 벗고 일을 하신다.

 

"아니 이렇게 추운데 왜 겉옷을 벗고 일을 하시나요?"

"낙엽을 쓸어 모으는 일을 한참 하다보면 땀이나요."

"땀이 식으면 더 추워 감기가 걸릴 수 있어 차라리 겉옷을 벗고 일하는 게 좋습니다."

"그래도 추운데 차 한 잔 드시고 하세요"

 

마침 복분자 엑기스가 집에 있기에 따뜻한 물에 타서 가지고 내려가 차를 따라 드리자 고맙다며 잠시 허리를 펴고 차를 드신다.

 

얼마 전부터 우리 아파트는 라인마다 한분씩 한 동에 두 분이 근무를 하셨다. 그러던 아저씨들을 관리비절감을 위해 동마다 한분씩만 남기고 모두 그만두게 되었다. 그래서 두 사람이 하던 일을 혼자서 해야 하니 두 배로 힘들게 되었다.

 

그래도 요즈음 일자리 찾기가 힘들기 때문에 그나마도 힘들다는 내색 없이 일을 하고 계신다. 늘 마음이 짠하던 차인데 오늘은 어제 떨어진 낙엽이 아파트 마당에 수북이 쌓여 있으니 두 배로 힘든 것은 당연지사 아닌가?

 

 

"낙엽이 한꺼번에 많이 떨어져서 많이 힘드시죠? 몇 시부터 낙엽을 쓸어 모으기 시작 했나요?"

"6시 반부터 쓸기 시작했어요"

"그 시간이면 요즈음 밖이 어둑어둑한데 부지런하십니다."

"뭘요 제가 해야 할일을 하고 있는걸요."

"그래도 한꺼번에 거의 다 떨어져서 다행입니다. 매일 이렇게 낙엽을 쓸어 모아야 하는데 오늘 하루 힘들게 하고 나면 며칠은 좀 쉴 수 있으니까요."

 

아파트 주위를 한 바퀴 돌고 있는데 은행잎이 푹신푹신한 융단처럼 수북이 쌓여 있다. 추위에도 아랑곳 하지 않고 그 길을 걷고 있노라니 힘들게 낙엽을 쓸고 계시는 아저씨에게 미안한 생각이 들지만 나는 참 좋다. 시간이 흐르자 마침 등교하는 아이들이 보인다. 갑자기 추워진 날씨에 아이들이 두터운 겨울 모자를 쓰고 몸을 잔뜩 움츠린 체 종종걸음으로 학교를 향한다. 그런데 어린아이들이 하는 말이 참 시인이다. 자매처럼 보이는 아이 중 동생인 듯 한 아이가

 

"언니 은행잎이 융단처럼 푹신푹신해서 너무 좋다. 이 길을 계속 걷고 싶어, 그런데 날씨가 좀 춥지? 그리고 학교도 가야하고 일요일이면 좋을 텐데 한다."

 

 

 

아이들의 동심의 세계는 무한대의 상상력을 발휘 하는 것 같다. 시인이 따로 없다. 순수한 아이들이 시인이다. 땅위는 가을이요, 하늘을 바라보면 앙상한 나뭇가지가 겨울을 알린다. 현관문을 열어 놓았는지 밤사이 불어댄 바람이 낙엽을 날려 엘리베이터 앞까지 늦가을의 정취를 느끼게 한다.

 

을씨년스러운 바람이 현관 창틀 사이로 휑하니 불어온다. 낙엽이 뒹군다. 엘리베이터 안에 있는 거울에 내 모습이 보인다. 차가운 바람에 볼이 빨갛게 익어 있다. 단풍을 닮은 것처럼……. 기온이 영하로 뚝 떨어진 오늘 아침 우리 아파트의 풍경이다.


태그:#초 겨울풍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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