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닭이 먼저냐 달걀이 먼저냐와 같은 아리송한 질문의 답처럼.

 

모진 세상의 갖가지 차별 중 학력차별 때문에 남보다 친구보다 성적이든 뭐든 앞서야 한다는 강박관념적 입시경쟁이 필요한거냐, 아니면 학벌경쟁에서 도태된 이들에게 사회가 가하는 수많은 차별과 가혹한 착취 때문에 입시경쟁을 통해서도 대학이란 전혀 안전하지 않는 안전망(학위)을 하나 얻는데 기를 쓰고 학생이든 학부모든 사회든 모두가 모든 고통을 감내해야 하는거냐란 기괴한 질문에 나는 어떤 답을 내놓을 수 있을까??

 

어제(13일) 대학수학능력시험을 치른 고3뿐만 아니라 중학생 아니 초등학생, 유치원생들까지 과도한 사교육(영어몰입교육)에 내몰려, 괴물처럼 변해버린 입시경쟁과 학벌지상주의에 매몰된 한국교육의 병폐는 그동안 여기저기서 많이 들어와 입시폐지를 비롯한 사교육, 공교육, 대학교육에 대한 비판에 대해서는 어느정도 수긍하고 있다.

 

 

하지만 위의 질문에 나는 누군가를 설득시킬만한 명쾌한 답을 가지고 있지 않다.

 

다만 얼마 전 도서실에서 빌려 읽은 소설 <하모니 브라더스>에서, 14살된 히비키가 경쟁에서 이기는 것이 삶의 큰 목표라고 믿는 성실한 아빠와 늘 위선적인 웃음을 지으며 집 안 팎을 꾸미는 교양 있는 엄마의 유일한 공동 취미생활인 노랑, 보라, 하양, 빨강, 분홍, 초록, 파랑, 오렌지색 등 여러 빛깔의 꽃들이 담긴 화분을 죄다, 히비키의 중간고사 성적때문에 다그치던 부모 앞에서 산산히 부숴버리며 집어 던질 때, 여장을 하고 7년만에 집에 돌아온 형에게 "방해하지 마! 형도 숨막힌다고 했잖아. 나도 그렇단 말이야. 숨이 막혀 견딜 수가 없다고! 형은 이해할 수 있잖아!"라고 말하는 대목에서 그 답을 함께 찾을 뿐이다.

 

차별과 경쟁이 판치는 세상에 대한 분노의 외침과 노래, 소설 <하모니 브러더스>

 

왜 이제 막 중학교에 올라간 어린 히비키가 "형은 몰라. 저런 사람들이 소중히 여기는 것 따위 산산조각으로 부숴 버려야 돼. 이런 엄마 아빠는 죽어 버렸으면 족겠어!"라며 배에서 차오르는 분노를 토해내야 했는지, 히비키가 7살이던 그 때 동성을 좋아한다는 것을 알게 된 19살 난 형이 가출해 오랫동안 집에 돌아오지 않았는지 그 사연을 들어보면, 차별과 경쟁이 행복한 세상과 집을 결정짓는 지금 우리의 삶과 모습에 무언가 잘못된 것이 스멀스멀 거린다는 것을 눈치챌 수 있기 때문이다.

 

 

히비키는 초등학교 때 보통 반에서 1,2등을 하던 아이였다. 공부도 잘하고 운동도 잘하는 '슈퍼맨' 같은 아이여서 여학생들에게 인기도 좋았고, 부모에게는 큰 자랑거리였다. 그런 히비키는 자신이 원하던 중학교에 들어간다. 그 중학교는 고등학교 진학시 시험을 별도로 치르지 않아도 되는 중고등학교 통합과정을 배우는 중학교로 죽자 사자 공부하지 않으면 안되는 곳이었다. 말도 많고 탈도 많은 국제중학교와 만화속의 "정글고" 또는 리얼정글고 진성고와 같은 곳이다.

 

그런데 학교에서 히비키는 예습을 해가도 수업을 따라가지 못하는 자신을 발견하고 만다. 그에 반해 예습을 하지 않는 것 같은데도 같은 반 아이들은 선생의 설명을 딱 한번 듣고 잘도 이해하는 것에 충격을 받는다. 중학생인데도 모두가 어른스럽고 똑같은 색깔을 하고 있는 하나의 집단에서 히비키는 예외인 자신을 인정하려들지 않는다.

 

아니 인정받고 싶고 진짜 공부 잘하는 그들과 동종이고 싶어, 눈이 사시이고 몸집이 뚱뚱하지만 히비키보다 성적이 위인 후토시, 히비키에게 선뜻 돈을 빌려줘가며 함께 콘서트에 가자고 친근하게 다가온 반 친구를 오만한 차별의 눈으로 무시하고 적대시한다.

 

 

후토시도 눈치챌 만큼 히비키의 거친 말투와 불쾌한 시선은, 흡사 남자를 사랑하게 된 형을 바라보는 아빠와 엄마 그리고 부모와 똑같은 부류의 세상 사람들의 차가운 눈과 조롱, 비웃음의 폭력과 닮아 있다. 이는 머리를 기르고 화장을 하고 치마를 입은 채 7년만에 돌아와 엄마와 아빠를 놀래켜놓고 집안 분위기를 망쳐놓은 형이 우여곡절의 3주 휴가를 집에서 보내지만, 정작 부모에게 인정받지도 환영받지 못하고 소리를 줍기 위해 밤산책을 나갔다가 '게이 자식'이라 고함치며 달려든 취객 두명에게 붙잡혀 눈두덩이가 찢어질만큼 맞고 망가져 돌아오는 장면과 겹쳐진다.

 

눈에 잘보이지 않는 학벌경쟁과 학력에 따른 차별과 달리, 성소수자와 동성애자에 대한 무지막지한 차별과 노골적인 편견이 어떤 폭력을 불러오는지, 다른 사람과 다르지만 평범하게 살아가고픈 이들이 무엇을 원하는지 히비키 형의 속내를 털어놓은 말을 통해 엿볼 수도 있다.

 

이후 차별과 경쟁만이 오로지 '최선의 선'으로 추앙받는 모순된 사회와 가식적인 가족으로부터 인정받지 못하고 도태된 형을 지켜보던 히비키는, 그 말 못할 굴레를 양말공장 화재에서 피어오르는 연기처럼 하늘에 날려보낸다. 자신의 삶을 찾고 그것을 인정받기 위해 부모 앞에 선 형의 슬프지만 경쾌한 멜로디의 피아노곡을 통해, 설 자리가 없어 혼자였던 후토시와의 다툼을 통해, 명문중학교 다니는 히비키가 자신들이 원하는대로 되주길 바란 부모에게 화를 내고 화해를 청하면서.

 

그렇게 숨이 막혀 죽을 것 같은 어린 히비키와 치마를 휘날리는 형은 차별과 경쟁이 행복을 좌우하는 세상에서 도망치지 않고 함께 맞선다. 이번 2009학년도 대학수학능력시험에서도 시험을 당당히 거부한 여학생처럼 말이다.

 

 

하모니 브러더스 / 우오즈미 나오코 지음, 고향옥 옮김 / 사계절

덧붙이는 글 | 이기사는 U포터뉴스와 블로거뉴스에도 송고합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덧. 모대학 연구소에서 일하면서 알게된 한 남학생이 있다. 그는 고등학교 시절 청소년 인권운동을 하다 자퇴를 했다고 한다. 입시경쟁 그런것도 싫었다 한다. 그런 그가 검정고시를 보고 대학에 입학하게 되었다고 한다. 그 이유는 대학이란 곳에서 다른 것을 배울 수 있을 것 같다는 주위의 권유 때문이었다. 하지만 괜찮은 대학(민주적. 진보적 색채를 띈...??)이라해서 들어왔지만, 역시 기대했던 것과는 다르다 했다. 



그의 이야기를 듣고, 세상과 사회가 그러한만큼 대학도 어쩔 수 없을꺼란 당위적 생각이 밀려왔지만, 그 당위성을 깨트릴 무언가가 더욱 필요한데 그것을 쉽게 찾을 수가 없다는 것이 고민스러웠던 적이 있다. 결국 답은 지금까지 찾지 못했다. 그렇다고 청소년과 학생들을 그냥 이렇게 숨막힐 듯한 세상에서 가혹하게 모질게 살아남으라고 할 수도 없는 노릇인데, 어쩌하면 좋을지 도통 모르겠다. 


하모니 브러더스

우오즈미 나오코 지음, 고향옥 옮김, 사계절(2007)


태그:#하모니브러더스, #수능, #차별, #경쟁, #입시경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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