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딸애와 둘이 택시를 타고 시험장인 둔산여고 근처에서 내렸습니다. 아침 7시 30분, 늦지 않은 시간인데도 교문 앞은 벌써 장날처럼 왁자합니다.

 

"엄마, 저기 사람들 모인 데를 뚫고 가야 돼!"

 

책가방을 메고 도시락과 실내화를 든 딸애가 교문 앞으로 씩씩하게 걸어갔습니다.

 

"아, 어머님! 여기는 들어올 수 없습니다."

 

교문 안쪽으로 들어서자 학교 관계자가 두 팔을 벌리며 더 이상 들어갈 수 없다는 경계선을 알립니다. 나는 들고 있던 방석과 담요를 딸애에게 건넸습니다. "엄마, 갈게!" 하는 말에 나는 잠깐, 딸애를 꼭 안아주었습니다. 딸애 얼굴은 볼 수 없었습니다. 뭐라고 말도 하지 않았습니다. 그저 둘이 안고 있는 그 짧은 순간에 우리 모녀는 서로의 마음을 이미 알고 있었습니다.

 

 

 

교문 앞에서는 노래를 부르고 북을 치며 응원하는 소리가 계속 이어졌습니다. 수험생이 들어서면 학교후배들이 함께 소리를 모아 격려를 보냅니다. 딸애는 보이지 않습니다. 학교건물만 바라보면서 잘 들어갔으리라 생각해봅니다. 오전 8시 10분까지 교실에 들어가야 하는데 아직 시간은 넉넉했습니다.

 

 

작년에 이어 올해 또 수능을 보는 딸애는 일년 동안 독서실을 다니며 공부했습니다.  시간표를 촘촘히 짜고 하루하루를 보냈습니다. 얼굴은 락스에 담갔다 건져놓은 것처럼 푸석푸석하고 통통하던 살집은 홀쭉해졌습니다. 고3이었을 때 친구들과 어울려 먹던 간식은 좀처럼 하지 않았습니다. 시간에 맞춰 세 끼를 먹었을 뿐입니다.

 

동네 공원을 가운데 두고 집과 독서실을 오가는 딸애가 유일하게 움직일 수 있는 때가 밥 먹으러 집으로 왔다가 독서실로 돌아가는 시간이었습니다. 딸에게 내가 해줄 수 있는 것은 때맞춰 밥을 챙겨주는 것이 내가 할 수 있는 일의 전부였습니다.

 

오늘은 새벽 5시에 일어나 밥을 안치고 기도하는 마음으로 도시락 준비를 했습니다. 아마 같은 시간 즈음에 대한민국의 많은 부모들이 수험생 자식에게 줄 음식을 그렇게 준비할 것입니다. 음식은 평소에 아이가 부담 없이 잘 먹는 것으로만 만들었습니다. 무국에 김치와 계란찜, 비엔나소시지를 야채와 볶고 달지 않은 오미자차와 따끈한 보리물을 보온병에 넣었습니다.

시험장에 따라가 보기는 처음입니다. 그 동안 화면에서만 보았던 풍경들을 직접 보니 수험생 가족들 얼굴마다 참 애틋합니다. 선배를 응원하는 후배들도 그렇지만 두 손을 모으고 기도하는 모정은 바로 내 마음 같기만 했습니다.

 

아침 8시가 지나면서 급하게 들어가는 수험생은 별로 눈에 띄지 않았습니다. 방송사의 카메라맨은 뒤늦게 택시에서 내리는 수험생에게 달려갑니다. 학교 주변에는 오늘 새벽녘까지 밤새워 응원하던 자리가 고스란히 남아있었습니다. 불을 피우고 컵라면을 먹었는지 그을린 깡통과 포장지가 어지럽게 널려있습니다.

 

수험생 입실 시간이 가까워지면서 복잡했던 거리에 모였던 많은 사람들은 하나 둘씩 자리를 떴습니다. 딸애가 들어간 학교를 바라보며 지금쯤 자리에 앉아 숨고르기를 할 아이에게 따뜻한 기운을 얻기를 기원하며 나도 집으로 돌아가야 했습니다.

 

아침기온이 꽤 차갑습니다. 집으로 가는 버스가 있었지만 곧바로 버스를 탈 수 없었습니다. 학교를 한번씩 뒤돌아보면서 나는 계속 걸었습니다. 이렇게 걸으면서 응원을 보내고 싶었습니다. 지금쯤 딸애는 문제지에 자기 이름을 쓰겠지, 문제지가 배부되고 안내방송을 듣고 있겠구나, 시간마다 짐작되는 시험장 모습들이 그림자처럼 따라옵니다.

 

초겨울 찬 공기가 느껴지며 몸이 덜덜 떨릴 때쯤, 시간은 아홉시가 넘었습니다. 딸에게 가 있는 마음은 이제 하늘에 맡기기로 했습니다. 수험생부모와 가족들에게 오늘 하루는 참 길 것 같습니다.

덧붙이는 글 | sbs u 포터에도 송고합니다.


태그:#수능, #수험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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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에게 가면을 줘보게, 그럼 진실을 말하게 될 테니까. 오스카와일드<거짓의 쇠락>p18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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