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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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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조정숙

아 가을은? 온 산하가 붉게 타오르는 뜨거운 열정과 동시에 농익어 뚝 떨어지는 달콤한 홍시와 같습니다. 어디를 가나 붉게 타오르는 낙엽이 온갖 힘을 쓰며 버티지만 흐르는 세월을 이길 수는 없나봅니다.

떠나려 하는 가을을 아쉬워 하며 뚝뚝 떨어져 자연으로 돌아가기 위해 애써 의연한 모습을 보입니다. 미래의 비옥한 토양으로 돌아가기 위한 밑거름이라 여기며 제 할 일을 다 했다고 자부합니다. 그래도 못내 아쉬움을 달래기 위해 수북이 쌓여 있습니다. 유난히 가을을 타는 여인에게 어서 오라 손짓 합니다. 낙엽을 밟으며 지나가는 다정한 부부가 있습니다.  남편이 한탄 섞인 푸념을 합니다.

뚝뚝 떨어지는 낙엽을 보면 왠지 눈물이 나올 것 같아! 사물의 이치에 의문 나는 점이 없었다고 해서 나온 불혹의 나이도 어느새 훌쩍 지나가고 50세가 넘어서야 천명을 알게 되었다는 지천명도 중반에 접어들었는데 내가 주책인가? 아직도 이런 감정들이 내 안에 있다는 것이 새삼 놀랄 때가 많다오. 안 그래요? 사진작가 양반. 우리도 아름다운 낙엽과 함께 멋지게 한 장 찍어주시구려. 해마다 찾아오는 가을이지만 다가오는 느낌은 언제나 다르니 지금의 추억을 이대로 간직하고 싶답니다. 허허허…….

떠나가는 가을이 못내 아쉬워 가을의 끝자락을 기억 속에 묻어 두기 위해 연신 카메라 셔터를 누르고 있는 저에게 말을 건넵니다. 중년남자의 푸념이 남의 일 같지 않아 흠칫 나 자신을 뒤돌아봅니다. 가을은 떨어지는 낙엽이 쓸쓸하게도 만들고 뒹구는 낙엽을 보면서 시의 구절이 생각나게도 합니다.

대화의 마당에는 걷다가 지치걸랑 편히 쉬어가라며 기다립니다.
 대화의 마당에는 걷다가 지치걸랑 편히 쉬어가라며 기다립니다.
ⓒ 조정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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붉게 타오르는 단풍잎이 새색시 볼 같습니다. 이 길을 함께 걸어 보실까요?
 붉게 타오르는 단풍잎이 새색시 볼 같습니다. 이 길을 함께 걸어 보실까요?
ⓒ 조정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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들녘에는 풍성한 가을걷이와 넉넉한 인심이 우리네 마음을 푸근하게 만듭니다. 감나무 가지 위에 까치밥으로 매달려 있는 홍시가 정겹습니다. 만나는 사람들의 얼굴도 붉게 타올라 새색시 볼과 같습니다. 화창한 늦가을 집안에 가만히 있기에는 뭔가 서운한 날 사랑하는 사람과 함께 근교에 있는 걷고 싶은 아름다운 길을 찾아 나섭니다.

제가 사는 곳에서 10분 정도만 벗어나면 탄성이 절로 나오는 한적하면서도 가을을 물씬 느낄 수 있는 아름다운 오솔길이 나옵니다. 그곳은 사람들에게 그다지 알려져 있는 곳이 아니기 때문에 쉽사리 찾을 수는 없지만, 짬을 내어 주위를 찬찬히 둘러보면 쉽게 찾을 수 있는 곳입니다.

이곳을 찾아가 조용히 묵상하면서 자연과 대화하는 시간이면 충분합니다. 자연과 벗하면서 걷노라면 일상생활에서 우리를 괴롭혔던 온갖 군상들을 모두 잊게 해줍니다. 자연의 숨소리가 맑게 정화 시켜줍니다.

눈만 뜨면 복잡한 현대 사회에서 복닥거리며 살아야 하는 현대인들에게는 이보다 더 좋은 장소는 없을 거란 생각이 드는 곳이지요. 조용히 자연과 벗하면서 자신을 되돌아볼 수 있는 공간이기 때문입니다. 모든 상념을 접어두고 편안하게 산책하고 싶다면 꼭 이곳을 소개해 주고 싶은 장소입니다.

직장 생활에서 쌓인 스트레스를 이곳에서는 단번에 날릴 수 있기 때문에 지상낙원인 셈이지요. 작고 아담한 오솔길을 걷고 있노라면 여기저기서 새들이 지저귑니다. 붉게 물든 단풍잎은 내리쬐는 가을 햇살 아래 수줍게 물든 볼을 감싸 쥐고 산골 소년 소녀처럼 고개를 떨어뜨립니다. 그 빛깔이 어찌나 선홍빛으로 빛이 나는지 눈이 부십니다.

생명을 다한 단풍잎이 거미줄에 걸려 바람에 흔들립니다.
 생명을 다한 단풍잎이 거미줄에 걸려 바람에 흔들립니다.
ⓒ 조정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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까치밥으로 남겨진 홍시가 정겹습니다.
 까치밥으로 남겨진 홍시가 정겹습니다.
ⓒ 조정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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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나가는 길에는 언제 떨어졌는지 모르게 낙엽이 살포시 내려 앉아 나그네의 발걸음을 푸근하게 만들어줍니다. 한참 걷다보면 나이가 좀 더 들면 꼭 돌아가고 싶었던 고향이 불현듯이 생각납니다.

어찌나 고요하고 적막한지 고향의 어머니 품 같은 그리움이 가슴 밑바닥에서부터 스멀스멀 올라옵니다. 자연은 그렇게 우리를 보듬어 안아줍니다. 떨어진 낙엽이 거미줄에 걸려 있습니다. 먹잇감인줄로 안 거미가 잽싸게 달려갑니다. 거미를 속인 단풍잎이 서너 개 매달려 바람에 흔들립니다.

은행잎이 수북이 떨어져 은행잎 크리스마스트리를 만들었습니다. 자연이 주는 또 하나의 선물입니다. 먼발치에 다정하게 서서 소곤소곤 대화를 나누는 사람이 있습니다. 은행잎이 그들의 머리 위로 내려앉습니다. 만추에 취해 시간 가는 줄 모릅니다. 유난히도 가물었던 올 가을은 늦은 단비로 저물어가는 늦가을에 더욱더 빛을 발합니다. 가을이 익어 갑니다.

단풍이 붉게 물든 길을 걷다보니 김영랑 시인의 "오메 단풍 들것네"라는 시가 생각납니다.

오매 단풍 들것네   
- 김영랑

"오매, 단풍 들것네."
장광에 골 붉은 감잎 날아오아
누이는 놀란 듯이 치어다보며
"오매, 단풍 들것네." 
추석이 내일 모레 기둘리니
바람이 자치어서 걱정이리
누이의 마음아 나를 보아라.
"오매, 단풍 들것네."


태그:#만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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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연과 사람이 하나 되는 세상을 오늘도 나는 꿈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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