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쉬는 날엔 산에 오른다

 

일요일(9일) 아침은 편안하다. 일찍 출근을 서두르지 않아서 좋다. 쉬는 날에는 산에 오르는 게 나의 즐거움인데, 난데없는 비가 내리고 있다. 아내가 내게 묻는다.

 

"당신, 산에 간다고 안했어요?"

"그런데 비가 와서 산통을 깨겠는 걸!"

"그럼, 나랑 대청소나 할까? 이따 비 그치면 고춧대도 뽑고요."

"비 그치면 산에 가야지! 고춧대 뽑는 것은 급하지 않잖아!"

 

부슬부슬 가을비가 내린다. 하늘에는 잔뜩 먹구름이 끼었다. 아침을 먹고 이제나저제나 비 그치기를 고대한다. 똥 마련 강아지 마냥 서성이는 내가 아내는 못마땅한 모양이다.

 

지금 내리는 비는 김장밭에 많은 도움이 될 것 같다. 배추 포기가 지고, 무 밑동도 더 굵어지리라. 그런데 눈길은 한사코 뒷산 마니산 장군봉에 머문다. 만추! 그야말로 알록달록한 단풍이 절정이다. 오늘 산에 못 오르면 다음주에 오르지! 아니다. 그땐 단풍이 죄다 떨어질 게 아닌가!

 

내 마음을 헤아리는지 얼마가지 않아 비가 뚝 그친다. 다행이다. 산행을 위해 이웃을 불러 모아야겠다. 옆집에 전화부터 걸었다.

 

"아저씨세요? 하늘이 벗어졌어요. 산에 가야죠?"

"나도 방금 전화하려던 참인데…. 새집 할아버지도 우릴 기다리실 거야!"

"그럼 서둘자고요."

"막걸리 한 병 챙겨가는 거 잊지 말구!"

 

전화소리를 엿듣는 아내 시선이 곱지 않다. 그래도 거실 청소를 하다 말고, 이것저것 간식을 챙겨준다. 아내 마음이 고맙다.

 

"마니산이 그렇게 좋아?"

 

배낭을 짊어졌다. 아내가 마당까지 나와 산행을 배웅한다. 출발하는 나에게 생뚱맞은 질문을 한다.

 

"시도 때도 없이 오르면서 마니산이 그렇게 좋아요?"

"그럼! 산은 오를 때마다 색다르다는 말도 몰라! 저렇게 예쁘게 물들어있는 산을 보면서도 그래!"

 

아내가 웃음으로 말을 그만둔다. 그렇다. 마당에서 올려다 보이는 마니산 장군봉 쪽은 한 폭의 그림 같다.

 

우리가 사는 동네에 민족의 영산이라는 마니산이 있다. 산에 오르고 싶을 때, 쉽게 오를 수 있는 산이 있다는 게 얼마나 행운인가! 등산화만 간단히 갈아 신고, 마실 물병 하나 챙기면 준비도 간단하다.

 

나는 틈이 나면 마니산에 오른다. 가족끼리, 이웃끼리 수시로 산행을 즐긴다. 집에 손님이 오면 마니산으로 안내한다. 땀을 흘리고, 맑은 공기를 쐬고 오면 몸도 마음 가뿐하다. 더구나 마니산은 기(氣)가 세기로 유명하지 않는가!

 

마니산은 그리 높지 않은 산(해발 468m)이지만 산행코스는 다양하다. 계단을 타고 오르기도 하고 계곡길, 암릉길로도 오르기도 한다. 출발지를 달리하면 처음 오르는 것처럼 생소한 느낌이 든다. 능선을 따라 길게 타면 편안하고, 계곡 코스로 급경사를 타면 숨이 턱에 차오른다.

 

산은 계절에 따라서 얼굴을 달리한다. 마니산도 그렇다. 만물이 소생하는 봄이면 진달래꽃길이 환상적이다. 녹음이 우거진 여름에는 산길을 따라 비지땀을 흘리면서 서해바다를 바라다보며 오른다. 새소리를 쫒아 산행을 즐기는 재미 또한 쏠쏠하다. 단풍이 절정인 가을엔 붉은 단풍에 넋을 잃는다. 하산 길에 만나는 서해낙조는 또 다른 느낌이다. 하얀 설경이 있는 겨울 마니산에서는 새 얼굴의 색다른 묘미를 만끽하기도 한다.

 

낙엽처럼 뒹구는 게 우리네 인생인가?

 

옆집 아저씨와 새집 할아버지가 나를 보고 반긴다.

 

"오늘은 푹석푹석 낙엽을 밟고 가자구! 단풍도 낭만이지만 낙엽 밟는 재미도 묘미지!"

 

우리 일행은 동네 고샅길을 따라 사람 발길이 뜸한 코스를 택했다. 산 들머리에 들어서자 수북이 쌓여있는 낙엽이 장관이다. 위를 보자 단풍이 바람에 휭 하니 떨어져 나뒹군다.

 

숲 터널을 지나며 할아버지와 아저씨가 이야기를 나누신다.

 

"낙엽을 보니 우리네 인생하고 다르지 않아. 잎이 푸르고, 가지가 무성할 때가 좋은 시절이었고, 말라 비틀어져 나뒹구는 낙엽은 늙은 우리나 비슷해!"

"그래도, 낙엽은 힘이 달려 떨어진 게 아니잖아요. 살아남기 위한 또 다른 준비지요. 떨어진 자리에 눈이 생겨 다음해를 기약하는데요."

 

두 분 말씀에 쓸쓸함이 묻어있다. 출발할 때만해도 쌀쌀한 기운이 가파른 산길에 접어들자 몸을 후끈 달아오르게 한다. 이제 겉옷이 거추장스럽다. 벌써 이마에는 땀이 맺힌다. 비온 뒤끝이라 숲길이 한결 신선하다. 어디서 작은 새들이 시끄럽게 지저귀는 소리가 들린다. 녀석들도 단풍에 취한 것은 아닐까?

 

한참을 오르자 쉼터가 나왔다. 이곳에는 솔잎이 그야말로 수북이 쌓였다. 아저씨가 소나무 가지를 지팡이로 흔들어본다. 솔잎이 우수수 떨어진다. 솔잎을 지팡이로 긁어보며 할아버지께 묻는다.

 

"할아버지, 예전 갈퀴나무 하던 일, 생각나세요?"

"그럼. 추수 끝나고 겨우살이 준비할 때 죄다 긁어 땠잖아. 얼마나 좋은 땔감이었남!"

 

그렇다. 예전엔 겨울철 이런 솔잎을 긁어 땠다. 동네 장정들은 소나무 숲이 있는 나지막한 산자락을 갈퀴로 죄다 긁었다. 겨울을 나기위한 땔감을 마련하기위한 것이다. 크게 둥치를 만들어 지게로 지고 내려왔다. 솔잎은 정말 잘 탔다. 불을 지펴 가마솥에 밥을 짓고, 구들을 따끈따끈 달궜다. 내가 두 분께 물었다.

 

"화로 생각나세요? 솔잎을 태우고 남은 불씨를 화로에 담았잖아요."

"그 화로가 난로였지! 외풍도 잠재우고, 거기다 군것질거리를 굽기도 하고 말이야!"

 

화롯불에 집안 식구들이 둘러앉아 긴긴 겨울밤 이야기꽃을 피웠던 생각이 난다. 불화로에 군밤이며 땅콩, 고구마를 구워먹었던 맛이 새롭다.

 

아름다운 가을을 붙잡을 수 없을까!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다 보니 어느새 마니산 장군봉 정상이다. 오늘도 정상에 우뚝 선 기기묘묘한 바위의 미소가 빛이 난다.

 

산불이라도 난 것처럼 붉게 물든 마니산이다. 울긋불긋 물든 단풍이 산 아래서 느낀 것과는 딴판이다. 형형색색의 단풍이 꽃보다 현란하다.

 

발아래 펼쳐진 산하가 그림 같다. 추수가 끝난 가을 들판이 한가하다. 물이 들어차 넘실대는 바다도 오늘따라 넉넉해 보인다.

 

날이 완전히 갰다. 가을햇살이 따사롭다. 정상에서 먹는 막걸리 한 잔에 기분이 좋아진다. 산에 오르면 옆집 아저씨는 늘 감정이 풍부하다. 오늘도 의미심장한 말씀으로 산행을 마감하신다.

 

"야! 볕이 드니 마니산 단풍이 더 멋있네 그려! 떠나는 가을이 아쉽고, 마음 같아서는 가을을 붙잡고 싶네. 그럼, 우리도 늙지 않을 텐데 말이야! 할아버지, 제 말이 맞죠! 우리 낙엽이나 또 실컷 밟아보며 내려가죠."


태그:#마니산, #장군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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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화 마니산 밑동네 작은 농부로 살고 있습니다. 소박한 우리네 삶의 이야기를 담아내고자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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