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오마이뉴스의 모토는 '모든 시민은 기자다'입니다. 시민 개인의 일상을 소재로 한 '사는 이야기'도 뉴스로 싣고 있습니다. 당신의 살아가는 이야기가 오마이뉴스에 오면 뉴스가 됩니다. 당신의 이야기를 들려주세요.】

바야흐로 가을입니다. 울긋불긋 단풍으로 물든 풍경을 보며 감탄하고 지는 낙엽을 보면서 삶을 돌아보는 일도 가을에 누릴 수 있는 권리지요. 벌써 쌀쌀한 낌새를 풍기며 겨울이 다가오고 있지요. 계절은 가을이었지만 아직 저는 가을을 누리지 못했기에  조급한 생각이 들더군요. 안되겠다 싶은 마음에 일요일 오후, 양재천으로 나갔습니다.

한적한 산책길 옆으로 우거진 수풀들과 울긋불긋 나무들이 가을 멋을 내고 있네요.
▲ 양재천 표정 한적한 산책길 옆으로 우거진 수풀들과 울긋불긋 나무들이 가을 멋을 내고 있네요.
ⓒ 이인

관련사진보기


양재천은 제가 자라는 동안 곁에서 흘렀던 벗입니다. 어릴 때야 구정물이 흐르고 이상한 물건들이 둥둥 떠다니는 악취 나는 하천이었지요. 한창 환경오염으로 기형물고기에 사람들이 걱정하던 시기라 양재천에도 그러한 물고기 말고는 어떠한 생명체도 살 수 없는 곳이었지요. 어김없이 여름이면 흙탕물이 가득 차서 흘러가던 모습이 떠오르네요.

그때와는 양재천이 많이 달라졌지요. 복원 사업 이전에는 BOD(생화학 산소요구량)기준 평균15mg/l로 5급수의 수질을 보였으나 2급수로 좋아져서 여러 물고기가 헤엄치고 있지요. 맑은 물 주변으로 잘 손질한 수풀과 나무, 그 사이로 산책로들이 잘 만들어졌으며 자전거도로가 닦이어 있지요. 수많은 사람들이 찾아와 자연을 한껏 즐기는 생태 공원이 되었지요.

도시의 생활하수가 흘러들어 더러웠던 예전의 양재천 모습. 이런 양재천이 몰라보게 바뀌었지요
▲ 예전의 양재천 도시의 생활하수가 흘러들어 더러웠던 예전의 양재천 모습. 이런 양재천이 몰라보게 바뀌었지요
ⓒ 서초구홈페이지

관련사진보기

오랜만에 찾은 양재천은 한결같이 푸근한 표정으로 맞아주었지요. 날씨 좋은 여름 저녁이면 수많은 사람들로 북적되는데 조금 서늘한 날씨 탓인지 평소보다 한적하더군요. 여유롭게 하늘과 풀들을 바라보며 쉬엄쉬엄 걸었습니다. 갖가지 빛깔들을 뽐내며 가을은 넉넉하게 익어가고 있었습니다. 

나무마다 다채로운 색깔을 자랑하며 가을을 맞고 있었습니다. 자연스럽게 이곳저곳을 둘러보며 걸었어요. 안타깝게 이름을 모르는 풀과 꽃을 바라봤어요. 도시인들은 어려운 숫자와 말들은 배웠지만 가까이에 있는 풀과 꽃 이름은 모르지요. 김춘수 시인의 유명한 시<꽃>처럼 이름을 불러줘야 나에게 의미가 되어주는데 아무 말 못하고 쓰다듬어 봅니다. 하늘하늘 흔들리며 피어있는 꽃에게 미안하더군요.

비가 온 뒤 맨발로 걸으면 참 좋다는 흙길이에요. 그 흙길 옆으로 울긋불긋 가을빛을 내는 나무들이 반겨주네요.
▲ 와, 흙길이다! 비가 온 뒤 맨발로 걸으면 참 좋다는 흙길이에요. 그 흙길 옆으로 울긋불긋 가을빛을 내는 나무들이 반겨주네요.
ⓒ 이인

관련사진보기


크게 숨을 들이마시며 가을빛 속으로 더 들어가 봅니다. 고른 산책길을 걸으면서도 둘레에 나 있는 흙길도 걸어보고 다른 편으로 건너갈 수 있는 징검다리도 넘어봤지요. 내딛는 발끝마다 단풍이 배는 느낌이에요. 달력과 옷 두께로만 느끼던 가을이 몸으로 스며들었지요. 그제야 진짜 가을이 되었지요. 떨어지는 가랑잎에도 눈과 마음을 주고 낙엽을 주워 만지작거리며 이 녀석이 푸르렀던 날을 생각해봅니다.

산책하는 사람은 시간을 제대로 쓸 줄 아는 사람이지요. 모든지 ‘빠르게’를 외치는 시기에 천천히 걷는 일은 시대에 저항하는 의미도 갖지요. 뛰는 사람이 급하다면 걷는 사람은 한가해요. 내달리는 사람은 시간에 쫓기며 오로지 도착만을 목표하지만 산책하는 사람은 시간을 들이며 가는 길 전체가 아름다워지죠. 양재천 산책은 아름답게 주말을 수놓았지요.

고요하게 물이 흐르고 물가에 나무와 수풀들이 잘 어우러져 있네요.
▲ 양재천 풍경 고요하게 물이 흐르고 물가에 나무와 수풀들이 잘 어우러져 있네요.
ⓒ 이인

관련사진보기


피로하고 지쳤던 어느 날, 혼자서 걸었던 일이 떠오르네요. 힘들고 모든 게 귀찮아서 걷기도 싫었지만 억지로 몸을 이끌고 밖으로 나왔지요. 바람마저 쌀쌀하게 불어와 다시 들어가서 쉴까도 생각도 했지만 한발 한발 걸어 나갔지요. 탄천에 햇빛이 반사되어 물이 반짝거리고 수많은 오리들이 꽥꽥되면서 예쁘게 노래하는 모습이 보였습니다. 그러자 가슴이 탁 트이더군요. 이어서 속 좁게 일처리를 하고 손해를 보지 않으려고 애쓰던 제 모습이 보였어요. 꽉 들어찼던 돌덩이들이 발바닥으로 빠져나가는 기분이었습니다.

프랑스 사상가 몽테뉴는 “꼭 산책할 장소가 있어야 한다. 다리가 흔들어놓지 않으면 정신은 움직이지 않는다."라며 산책을 찬양한 사람이죠. 이 밖에 날마다 같은 시간에 산책을 했던 철학자 칸트 등 수많은 사람들이 산책을 하면서 생각을 갈무리하고 지혜를 얻었지요. 몇 번 걷는다고 생각이 크게 달라지지 않지만 기분전환이 되고 새로운 기운이 솟아나는 것은 틀림없지요.

늦가을, 천천히 걸으면서 울긋불긋 한 풍치를 보다보면 마음도 단풍이 드나봅니다. 바쁘고 빡빡한 생활이지만 가끔 시간을 들여 산책을 해야겠네요. 햇살이 반사되는 물결에 반사되는 그 오묘한 기쁨은 보지 못한 사람은 알 수 없지요. 선선하게 불어와 온 몸을 간질이는 바람을 즐겨본 사람은 알지요. 가을이 더 저물기 전에 가까운 곳으로 산책하며 가을정취에 빠져보는 것은 어떨까요.

낙엽 하나에도 마음이 흔들리는 가을, 떨어진 가랑엽과 단풍 든 나무들이 걸으라 하네요. 천천히 천천히.
▲ 가을길 낙엽 하나에도 마음이 흔들리는 가을, 떨어진 가랑엽과 단풍 든 나무들이 걸으라 하네요. 천천히 천천히.
ⓒ 이인

관련사진보기



태그:#양재천, #산책, #가을, #단풍, #가을정취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독자의견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