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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을 가다가 '하늘로 보내는 편지 우체통'발견했다. 항상 지나다니면서도 무심하게 스쳐지나가서 보지 못한 '하늘로 보내는 편지 우체통'은, 부산시 중구 중앙동 사십계단 문화 거리, 중앙동 우체국 뒷편에서 서 있었다.

 

하얀 색의 '하늘로 보내는 편지 우체통'을 보는 순간 왠지 가슴이 찡했다. 아무리 살기 바빠도 얼마전까지만 해도 자주 편지를 써서 우체국을 찾았다. 이젠 메일로 간단하게 사연을 주고 받을 수 있어 편지보다는 메일을 많이 쓴다.

 

그러나 또박또박 침을 묻혀 연필로 위문편지를 쓰던 시절에는, 우체부 아저씨가 전해주는 편지 한통을 전해 받는 일만큼 가슴이 설레이던 일이 또 있었을까. 가을은 편지의 계절이다. 누구라도 시인이 되어 우체국 창가에 서서 그리움의 편지를 쓰게 한다.

 

그러나 정말 그리운 편지는 대부분 보낼 수 없는 편지... 하늘 나라로 먼저간 부모형제나 친구에게 편지를 쓰지만 이 편지는 보낼 수 없는 편지...가까이 곁에 있어도 마음이 너무 멀어진 가족이나 헤어진 이 등 우리가 살아가면서 만든 생이별때문에 보낼 수 없는 편지 너무 많다.

 

정말 가슴 아픈 이야기지만, 함께 근무한 적이 있던, 옛 동료가 년전에 자살을 했다. 사업의 실패를 이기지 못한 그의 자살은 그의 가족들만 아니라 그를 아는 지인들에게 너무나 충격적인 일이었다. 그는 사업에는 실패했지만, 자살할 만큼 끔찍한 가난과도 거리가 먼 사람이었다. 왜 죽었을까 ? 그의 사업 실패는 인생의 실패가 아니었는데 말이다. 너무나 훌륭하게 큰 그의 자식들과 현모양처인 그의 아내와 그를 사랑하는 가족들에게는 이해할 수 없는 그의 죽음,

 

난 그에게 이 가을 보낼 수 없는 편지를 쓴다. 그 옛날 초등학교 소년시절로 돌아와서 연필심에 침을 발라 쿡쿡 눌러쓴다. 

 

어떻게 사는 게 바르게 사는 것일까, 회의하고 고통 받으면서도 어디 하소연 할 수 없는 사연들을 받아 주는 우체통이 있었다면, 그는 어쩜 자살하지 않았을 것이다. 이렇게 우리가 사는 삶은 보낼 수 없는 편지를 쓰게 하지만, 이런 편지를 받아 주는 우체통이 현실 속에는 없는 것이다. 

 

가만히 생각하면 우리나라는 반세기 넘게 분단국가라서, 아직도 남북 이산가족들은 그 흔한 메일로 간단하게 소식을 주고 받을 수 없다.

 

사십계단 문화거리의 '하늘로 보내는 우체통'은 6. 25 당시 헤어진 부모형제, 그리고 일가친척 등 어디에 살고 있는지 모르는 이산가족 등을 위한 우체통이다. 그러나 이 가을에는 이산가족이 아니라도 헤어져 소식 없는 친구, 돌아가신 부모님 등 보낼 수 없는 사연을 편지지에 사연을 옮겨 적어서 우표를 붙여서 '하늘로 가는 우체통'에 넣어보는 것이다.

 

그럼 그 누구라도 그대가 되어 이 가을에는 꼭 답장이 올 것 같다.

 

당신의 편지가 왔다기에 꽃밭 매던 호미를 놓고 떼어 보았습니다.

그 편지는 글씨는 가늘고 글줄은 많으나 사연은 간단합니다.

만일 님이 쓰신 편지이면 글은 짧을지라도 사연은 길터인데

 

당신의 편지가 왔다기에 바느질 그릇을 치워 놓고 떼어 보았습니다.

그 편지는 나에게 잘 있느냐고만 묻고 언제 오신다는 말은 조금도 없습니다.

만일 님이 쓰신 편지이면 나의 일은 묻지 않더라도

언제 오신다는 말을 먼저 썼을 터인데.

 

<당신의 편지> 한용운

 


태그:#우체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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